<설강화> 마지막 화에 바라는 것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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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강화> 마지막 화에 바라는 것

나는 지금 막 JTBC 드라마 〈설강화〉에 대해 쓴 글을 모두 삭제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글을 시작하는 중이다.

김현유 BY 김현유 2022.01.28
나는 지금 막 JTBC 드라마 〈설강화〉에 대해 쓴 글을 모두 삭제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글을 시작하는 중이다. 원래는 지금까지 방영한 〈설강화〉의 구체적인 부분들을 열거하며 드라마를 약간 변호할 생각이었다. 드라마가 정말로 민주화운동을 왜곡했나? 안기부를 미화했나? 방영 전에 쏟아졌던 질문들은 여전히 인기 있는 논쟁거리다. 기사와 논평이 지나치게 많아서 헷갈린다면 존재 여부를 두고 여러 논쟁이 있지만 남의 논쟁 정리에는 최적화된 사이트인 나무위키를 검색해보시라. 그런데 그 사례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설강화〉를 싫어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싫어할 것이다. 〈설강화〉를 변호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계속 변호할 것이다.
 
드라마가 어떻게 마무리되든 〈설강화〉는 ‘역사 왜곡’이라는 불주사 자국을 영원히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이 됐다. 9회 차에 와서야 정해인이 연기하는 남파 간첩의 입을 통해 “(안기부 직원들은) 공안정국 만들려고 죄 없는 동포의 인생을 짓밟은 정권의 개!”라고 항변해도 소용없다. 어쩌면 이런 대사들은 논쟁이 벌어진 후에 만들어 넣은 것일 가능성도 높지만, 어쨌거나 〈설강화〉의 내용은 점점 최초의 논쟁 지점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오해하기를 선택할 것이다. 제목과 짧은 시놉시스 때문에 비난을 쏟아냈던 사람들이 여전히 보지 않고 계속해서 미워하기로 결심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비슷한 운명이다.
어쩌면 이 글이 〈에스콰이어〉에 실려 출간되는 순간에는 누구도 〈설강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논쟁이 사그라진 이후의 변론은 딱히 재미없기도 하다. 다만 내가 〈설강화〉에 대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공적 착각 같은 것을 잠시나마 느낀 이유는 정의당 심상정 대통령 후보의 소셜미디어 글이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 정의로운 안기부, 시대적 고민 없는 대학생, 마피아 대부처럼 묘사되는 유사 전두환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면 오히려 문제입니다. 엄혹한 시대에 빛을 비추겠다면 그 주인공은 독재정권의 안기부와 남파 간첩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피와 땀, 눈물을 흘렸던 우리 평범한 시민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강조했다. “창작의 자유는 역사의 상처 앞에 겸허해야 합니다.”
 
나는 심상정의 그 글이 약간 혼란스러웠다.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진보는 ‘창작의 자유’의 편이었다. 보수는 ‘검열’의 편이었다. 진보는 끊임없이 대중문화 속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창작의 자유’는 역사의 상처 앞에 겸허해야 하는 동시에 역사의 상처조차 자유롭게 다룰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상황은 조금 재미있게 변했다. 오히려 진보 진영이 창작의 자유에 반기를 드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실 거기에는 시대적 이유가 있다. 우리는 각자의 가장 깊은 심연을 익명으로 토해낼 수 있는 플랫폼을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손바닥 안에 소유할 수 있게 된 세대다. 혐오 표현과 역사를 왜곡하는 가짜 뉴스는 점점 거칠어진다. 진보가 표현의 자유라는 근원적인 의제 앞에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과잉 표현 시대의 대처법을 궁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순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보다 나를 더 골치 아프게 만든 건 ‘시대적 고민 없는 대학생’이라는 부분이었다. 〈설강화〉를 조금 ‘부드럽게’ 공격하는 진보적 매체들이 유독 집중적으로 공략한 부분도 거기다. 많은 매체는 독재와 전대협 출범 시대에 사는 대학생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순진한 캐릭터들이 ‘탈정치적’이어서 무려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이 쏟아지는 비판들을 보며 잠깐 내 가슴이 서늘해졌던(사실은 ‘발끈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그렇다. 내가 바로 그 ‘시대적 고민 없는 대학생’ 카테고리에 훌륭하게 귀속되는 인간이었던 탓이다.
 
물론 나의 시대는 〈설강화〉의 시대와는 조금 달랐다. 대학에 입학한 1990년대 중반은 학생운동이 끝나가던 시기였다. 첫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소비에트 연방과 공산권은 몰락했다. 대학생들은 운동으로부터 점점 관심을 잃어갔다. 1997년 결정적인 사건 두 건이 발생했다. 학생운동단체인 한총련 남부지부 ‘남총련’의 간부들이 전남대학교에서 학생 행세를 하고 다니던 스물다섯 살 이종권을 경찰 프락치로 의심하고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 같은 해 한총련 간부들은 한양대학교에서 스물세 살 선반기능공 이석을 경찰 프락치로 지목해 고문, 폭행한 뒤 사망하게 했다. 그 뉴스들은 운동권이 자신이 혐오하던 폭력적 권력을 닮아간다는 증거였다.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어가는 사람들의 거울이었다. 두 사건은 학생운동으로부터 대학생들의 등을 결정적으로 돌려놓는 계기가 됐다. 인간이란 자신이 경험한 삶의 지평선에서 세계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건 아마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운동권’은 어쩔 도리 없이 놀라운 공과 치명적인 과를 모두 움켜쥔 단어다.
 
그렇다. 나는 지금 〈설강화〉에 쏟아지는 수많은 비난 중 대학생들을 시대적 고민 없는 존재들로 탈색시켰다는 비난에 동의할 수 없다는 매우 개인적인 이유를 말하는 중이다. 나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기숙사의 인테리어가 놀랄 정도로 식민지적인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변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 대학생들의 옷에 달린 프릴의 개수를 변호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떤 특정 시대의 젊은이들을 오로지 정치적 존재로서만 그려야 한다는 강박에는 일종의 운동권적 프로파간다 정신이 숨어 있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그런 캐릭터를 본 적이 있다. 영화 〈1987〉에서 김태리가 연기하는 여대생 캐릭터는 개별적 인물이라기보다는 ‘시대적 고민이 없다가 뒤늦게 각성하는 민중’이라는 개념의 집합체에 가까운 캐릭터였다. 나는 그런 기능적 캐릭터가 그 영화의 톤 앤 매너에는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시절을 다루는 모든 픽션 속 대학생들이 계속해서 〈1987〉의 각성하는 여대생이 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이 글을 두고 시대를 바꾼 운동권 선배들과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 대한 겸허가 없는 글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자들의 우상을 타파하기 위해 우상을 빚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모두가 운동을 하지는 않았다. 모두가 시대적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운동을 하지 않고 시대적 고민을 하지 않은 사람들 역시 함께 시대를 만들었다. 대학 시절에는 도서관에 박혀 “최루탄 냄새 때문에 공부를 못 하겠다”고 불평하던 사람들도 넥타이를 매고 높은 구두를 신고 사무실을 뛰쳐나와 1987년의 광장에 섰을 것이다. 그들 모두 삶의 어떤 지점에서는 각자의 운동을 하고 있었다. 각자의 운동이 모여서 세상을 바꾸었다. 심상정을 비롯한 진보주의자들의 지적은 오히려 그 역사를 살며 각자의 운동을 한 수많은 개인을 두 개의 정치적 계급으로 나누어버린다. 각성했니, 안 했니? 이걸 나는 진보적 선민주의라고 불러도 괜찮을지 고민 중이다.
물론 〈설강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설강화〉가 결국 시대적 고민이 전혀 없던 여대생이(‘왜 항상 여대생인가!’라는 부차적 의문은 게으른 멜로 드라마적 법칙에 사로잡힌 결과라고 이해하고 넘어가자) 각성해서 시대적 고민을 하게 되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분명 그럴 테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지막 장면에서는 지수가 시대적 고민을 하는 당당한 여성의 모습으로 “우리 사랑은 불장난”이라고 노래하는 장면을 넣으면 어떨까 싶다. 마침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덕분에 ‘멀티버스’가 유행이니 시기도 딱 좋다. 그렇게 끝낸다면 〈설강화〉는 시대적 고민을 가진 젊은이의 각성을 다룬 뮤직비디오의 기나긴 프롤로그로서 훨씬 부드럽게 소비될 것이다.
 

 
Who's the writer?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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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김현유
    Illustrator VERANDA STUDIO
    WRITER 김도훈
    DIGITAL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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