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사이다 썰'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나, 예민한가요? | 에스콰이어코리아
LIFE

'참교육∙사이다 썰'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나, 예민한가요?

없던 윤리가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에스콰이어 코리아>는 지금까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최첨단 윤리의 쟁점을 철학자와 함께 고민해보려 한다.

김현유 BY 김현유 2022.01.29
 
Q.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면, “나를 함부로 대하는 친구에게 ‘사이다’를 시전했다”거나 “주차 엉망으로 한 주차 빌런 참교육 시켰다”는 등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지켜야 할 선을 넘는 사람에게 물리적, 금전적, 법적 방식 등으로 제재를 가했다는 내용들이 많아요. 이른바 ‘사이다 썰’입니다. 개념이 없거나 악한 사람은 반드시 비참한 결말을 맞이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에, 댓글에는 박수가 달립니다. 그러나 저는 개념이 없는 사람보다 개념 없는 사람을 단죄하고 그 내용을 인터넷에 올리며 박수 받고 싶어 하는 행동이 더 기괴하게 느껴져요. 제가 지나치게 예민한 걸까요?
 
이 질문에는 복수에 열광하는 대중의 욕망과 그에 편승해 영웅처럼 박수를 받고 싶어 하는 개인의 과시행동에 대한 비판이 포함돼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군중심리의 발현입니다. 국가나 사법기관이 정의를 실현하는 것보다 내가 영웅이 되어 개념이 없는 사람을 직접 응징하고 ‘참교육’ 하며 칭송을 받고 미화하려는 병리적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죠.
 
‘복수’는 오랜 시간 다양한 예술 작품과 이야기 소재로 이용돼왔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DNA에는 복수에 열광하는 심리가 내재하고 있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원숭이 등의 영장류도 인간의 복수와 비슷한 행동을 합니다. 스티븐 파인먼의 〈복수의 심리학〉에는 동료 원숭이를 차로 치고 달아난 운전자에게 돌을 던지며 공격한 비비 원숭이의 사례가 나오죠.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복수는 생존을 돕기 위한 적응 행동의 일종입니다. 집단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칙을 지키고, 필요한 것을 공정하게 나누는 게 중요하죠. 여기서 일탈을 일으키는 부류는 결국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게 될 것이고요. 상부상조를 강조하고 배신을 경계해야 집단이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복수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에 열광하고 지지하는 심리를 갖게 됐습니다. 트로이전쟁의 영웅이지만 아내와 정부에게 살해당하고, 결국 그 복수를 딸인 엘렉트라가 대신한 아가멤논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지요. 복수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현대에도 흥행합니다. 〈뮌헨〉(1972), 〈복수는 나의 것〉(2002), 〈킬빌〉(2003), 〈레버넌트〉(2016) 등 복수를 소재로 삼은 영화도 꾸준히 사랑을 받습니다.
 
이처럼 복수 행위와 이를 은근히 묵인한 역사는 항상 있었습니다. 그러나 SNS가 발달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오늘날에는, 복수에 끌리는 심리가 과거보다 한층 복잡해졌습니다. 모든 것이 구경거리가 된 현재, 악당(?)에 대한 응징에는 집단성의 보존을 위한 유전적 필요도 작동하지만 동시에 악을 박멸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자 하는 과장된 영웅심리도 깔려 있죠. 자신이 직접 사회 정의의 상징적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응징자의 태도나, 이런 행동에 열렬히 박수를 보내는 대중의 모습은 ‘군중행동’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군중행동〉을 쓴 미국 사회심리학자 에버릿 마틴에 따르면 군중이란 ‘개인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이며, 영웅을 숭배하는 것에는 자기에 대한 사랑과 숭배를 투영하는 나르시시즘의 심리가 깔려 있습니다.
 
나르시시즘은 원래 자기 자신을 마치 성적 대상처럼 사랑하는 성적 도착심리지만, 감정적으로는 자신을 이상화하는 숭배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공격성과 혐오, 집단의식이 뒤섞여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군중심리는 때로 통제할 수 없으며 사회적 대의에 감정적으로 휩쓸리기도 하죠. 이런 일체감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 ‘영웅’입니다. 대중은 영웅의 행동에 열광하면서, 그를 통해 억압되었던 여러 콤플렉스와 공격적 충동을 해소합니다. 그렇기에 때로 비이성적으로 영웅을 따르고 흉내 내기도 하죠. 하나의 예를 들어볼까요? 지난해 12월, 아동 성폭력 가해자로 악명이 높은 조두순을 습격한 한 청년의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조두순의 집에 침입해 둔기로 그의 머리를 수차례 내리쳐 다치게 했는데, 경찰에 따르면 “조두순을 응징하면 내 삶에 가치가 있을 것 같다”고 발언했다고 하죠. 표면적 이유는 ‘사회 정의 실현’이었지만, 이미 사법적 판단을 받은 사람을 사적으로 단죄하고 더 강도 높게 처벌하려고 한 데에는 자신이 대중을 대신해 악을 응징하면서 동시에 주목받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군중심리’가 작동했을 겁니다.
 
인류가 진화하면서 사적인 복수는 법을 집행하는 국가나 사법 당국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개인 간 선악 판단은 자의적이고, 사적 복수가 허용됐을 때 벌어질 사회 혼란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일 겁니다. 몇몇 이슬람 국가에서 전통처럼 시행되는 ‘명예살인’을 문화의 특수성으로 보지 않고 비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사회가 다변화하고 있는 오늘날, 선과 악의 기준은 점점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주관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다 보면 분쟁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다수입니다. 본인이 마치 배트맨이라도 된 것처럼 복수를 대신하고 대중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겠다는 심리는 병리적 나르시시즘 현상입니다. 더욱 강화된 사회 정의와 사회를 더 합리적으로 만들려는 노력만이 답일 것입니다.
 

 
Who's the writer?
김석은 건국대학교 철학과 교수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을 거쳐 파리8대학 철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에크리,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프로이트 & 라캉, 무의식의 초대〉 〈자아, 친숙한 이방인〉 〈프로이트 꿈의 해석〉 등을 썼다.

Keyword

Credit

    EDITOR 김현유
    WRITER 김석
    Illustrator 양승희
    DIGITAL DESIGNER 김희진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