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아프리카 트럭킹이 인생여행인 까닭은?

마음껏 씻을 수도 없고 매일 텐트에서 자야 하는 고생스러운 여행인데도,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트러킹이 인생 여행이라 입을 모은다.

프로필 by 박호준 2022.02.27
 
 
‘트러킹(Trucking)’의 정식 명칭은 ‘오버랜드 트러킹 투어(Overland Trucking Tour)’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간 트럭을 타고 아프리카를 누비는 패키지 여행의 일종. 분명 버스처럼 생겼는데 트럭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막과 초원의 비포장도로를 달리기 위해 지상고가 높고 힘이 좋은 트럭을 버스처럼 개조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국적의 남녀노소 15~20명이 그룹을 이루어 여행 내내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쌓이는 친분은 이 여행의 양념이다. 수십 개의 트러킹 코스가 있지만 가장 인기가 많은 건 나미비아에서 시작해 보츠와나, 짐바브웨, 잠비아를 거치는 루트다. 에토샤 국립공원, 듄 45, 빅토리아 폭포 등 유명 관광 명소를 두루 방문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트러킹을 다녀온 5명에게 트러킹의 추억에 대해 들었다.
 
움직이는 집이다. 각종 조리도구와 테이블, 생필품이 가득하다. 길게는 12시간 이상 트럭을 타고 이동한다.

움직이는 집이다. 각종 조리도구와 테이블, 생필품이 가득하다. 길게는 12시간 이상 트럭을 타고 이동한다.

 
사랑의 힘이 나를 구원했다
15분 걸렸다. 5분 만에 뚝딱 완성하는 친구도 있지만, 여행 첫날 밤 30분 넘게 낑낑거리던 걸 생각하면 꽤 능숙해진 편이다. 텐트 이야기다. 드넓은 초원과 사막을 횡단하는 트러킹 여행의 특성상 번듯한 숙소는 기대하기 어렵다. 트럭에 올라 8시간 넘게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나면 3.3㎡(1평) 남짓한 텐트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텐트를 설치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침낭이 너무 얇다는 데에 있었다. 옷을 겹겹이 입어도 몸이 덜덜 떨렸다. 아프리카는 일교차가 심한 편이라 낮엔 피부가 익을 것처럼 뜨겁지만 밤엔 침낭 없이 잠들기 힘들 만큼 춥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얼어 죽는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캠핑 한 번 해보지 않고 무작정 트러킹에 도전할 때부터 예견된 고생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쏟아날 구멍이 있는 법. 사랑의 힘이 날 구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젊은 남녀들이 18박 19일 동안 붙어 있다 보면 자연스레 그윽하고 은밀한 눈빛이 오가기 마련인데, 독일에서 온 남자와 오스트리아에서 온 여자가 그랬다. 여행 초반부터 자주 붙어 다니는 걸 보고 심상치 않다 싶더니 이내 같은 텐트를 쓰기 시작했다. 하나의 침낭에 둘이 들어가는 건지 둘의 체온이 텐트를 채우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내가 추워 보인다며 자신의 침낭을 빌려줬다. 그 후로 둘의 사랑이 여행 내내 지속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잠을 청하기 전까진 주로 모닥불 주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둘 모여 앉아 ‘불멍’을 즐겼는데 자본주의, 의료보험, 기후변화 등 사뭇 진지한 주제의 대화가 오간다. 특히 의료보험 이야기가 나왔을 땐 UN총회에 대한민국 대표로 선 것처럼 질문 세례를 받았다. 이따금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땐 물웅덩이(워터홀)를 찾아온 동물들을 바라봤다. 코끼리 가족이 첨벙거릴 때마다 물에 비친 석양이 일렁이는 광경은 트러킹 여행 중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자 힘들 때마다 떠올리며 웃음 지을 수 있는 삶의 원동력이다. -박미소(18박 19일)

 
트러킹은 멤버 구성이 중요하다. 하루 종일 떼쓰는 어린아이가 없길 기도하는 편이 좋다.

트러킹은 멤버 구성이 중요하다. 하루 종일 떼쓰는 어린아이가 없길 기도하는 편이 좋다.

 
잠 못 이루던 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맞다. 30년 넘도록 땅을 일구며 살다 보니 지구 반대편에서도 자꾸 땅만 보인다. 예상과 달리 아프리카엔 대규모 ‘기업농’이 많다. 트럭을 타고 1시간 내내 달렸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는 농장 규모를 보며 아프리카 대륙이 미국과 중국을 합친 것보다 크다는 현지 가이드의 말을 실감했다. 야생동물 역시 기대를 뛰어넘는다. 우리나라 산에도 별별 들짐승이 많지만, 아프리카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백미는 에토샤 국립공원이었다. 에토샤 국립공원에 대해 잠시 설명하자면, 아프리카 3대 국립공원으로 꼽히는 곳으로 면적이 강원도보다 넓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할수록 초목이 울창하다. 풀이 우거진다는 건 동물들도 많다는 뜻이다. ‘Big 5’라고 부르는 사자, 치타, 코끼리, 버펄로, 코뿔소를 보기 위해 ‘게임 드라이브’(사면이 뻥 뚫린 차를 타고 야생동물을 찾아 돌아다니는 투어 프로그램)를 즐길 수 있다. 이때 한 가지 팁은 물을 찾는 것이다. 뜨거운 해를 피해 그늘에 누워 있던 사자나 치타가 거의 유일하게 움직이는 순간이 물웅덩이에서 목을 축일 때다. 휴전협정이라도 한 것처럼 여러 동물들이 나란히 물을 먹는 모습이 생경하다. 물론 공원 내 캠프 사이트에서도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 캠프 사이트에는 텐트를 치는 공간뿐 아니라 수영장, 매점, 식당 등 여러 편의시설이 위치한다. 어슬렁거리며 하품만 하던 사자는 밤이 되자 돌변했다. 깊은 밤 불현듯 사자 울음소리가 텐트를 덮쳤다. 지금 생각해도 텐트 바로 옆에 사자가 있는 것처럼 그 소리가 생생하다. 더욱 간담이 서늘했던 건, 포효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점이다. 고압 전류가 흐르는 높은 철조망이 캠프 사이트를 두르고 있었지만, 밤새 신경이 곤두서고 식은땀이 흘렀다. 사자 외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동물들의 앙칼진 울부짖음이 밤새 이어졌다. -김용우(21박 22일)

 
물웅덩이 근처가 명당이다. 온갖 동물들이 물을 찾아 몰려온다.

물웅덩이 근처가 명당이다. 온갖 동물들이 물을 찾아 몰려온다.

 
아프리카 타임!
그땐 커플이었고 지금은 부부다. 둘 다 아프리카에 너무 가고 싶어 휴가를 ‘영끌’해 직장인으로선 기적에 가까운 13박 16일 일정을 꾸렸다. 처음엔 차를 렌트해 돌아다닐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도로가 험해 전복 위험이 있고 이동 거리가 길어 지치기 십상이니 트러킹을 선택했다. 더러 커플이 함께 여행을 떠나면 싸우지 않느냐고 묻는데 우린 여행 내내 한 번도 다투지 않았다. 아름다운 아프리카 대자연에 정신이 팔려 싸울 틈조차 없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평소 먹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일부러 다양한 아프리카 요리에 도전했다. 그중 멧돼지고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데 맛이 독특해서가 아니라 먹다가 가이드에게 혼나서 그렇다. 아직 뼈에 살이 많이 남아 있는데 왜 벌써 내려놓냐며 꾸중을 들었다.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음식이 귀한 아프리카이다 보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군소리 없이 깔끔하게 먹었다. 얼룩말고기를 먹을 기회도 있었는데 주변의 우려와 달리 질기거나 잡내가 느껴지지 않는 돼지고기 같은 맛이다. 사실 하루 종일 아프리카의 더위와 씨름하고 나면 어지간해선 다 맛있다. 트러킹을 통해 낯선 아프리카 환경과 음식 외에 남자 친구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여권이 든 가방을 화장실에서 잃어버렸을 때 마냥 침착한 성격인 줄만 알았던 남자 친구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여권이라도 찾고 싶어 근처 쓰레기통을 전부 뒤졌지만 허탕이었다. 숙소 호스트의 지인이 경찰이어서 그의 도움으로 여권과 신용카드를 찾아 다행이었다. 자기 일이 아닌데도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려는 나미비아 사람들을 보며 한국도 아프리카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후 무언가 조급한 마음이 들 때마다 서로 “아프리카 타임!”을 외친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생각하자는 우리만의 암호다. -김기동·정소라 부부(13박 16일)

 
먹을 물이 귀한 아프리카지만 캠프 사이트엔 대부분 수영장이 있다. 말그대도 오아시스가 따로 없다.

먹을 물이 귀한 아프리카지만 캠프 사이트엔 대부분 수영장이 있다. 말그대도 오아시스가 따로 없다.

 
인류애 목도의 현장
누군가 “부쉬! 부쉬!”를 외쳤다. 그러자 심드렁하게 창밖을 보던 미국인도, 끊임없이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던 프랑스 친구도 덩달아 부쉬 행렬에 동참한다. 꾸벅꾸벅 졸던 남편은 갑자기 터져 나오는 부쉬 타령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트러킹 여행 중 ‘부쉬 부쉬’는 화장실을 가고 싶으니 잠시 차를 세워달라는 뜻이다. 아마도 덤불을 뜻하는 영어 단어 ‘Bush’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시끄럽게 덜컹거리는 탓에 행여 드라이버가 듣지 못했을까 봐 여행객 모두가 큰 목소리로 외쳐주는 게 미덕이다. 비상 상황(?)에 국적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며 ‘이런 게 인류애인가?’ 싶었다. 인류애 에피소드는 하나 더 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망망대해 같은 초원을 달리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경찰이 나타나 트럭을 멈춰 세웠다. 그러곤 과속을 했으니 벌금 200달러를 내기 전까진 출발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누가 봐도 돈을 노린 부정한 단속이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럴 경우 여행 회사 방침상 드라이버가 책임져야 하는데 월급의 절반을 벌금으로 날릴 처지에 놓인 그를 위해 트러킹 멤버들이 십시일반 돈을 걷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던 드라이버가 연신 고맙다며 우리 손을 붙잡았을 땐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국경을 넘을 때 경험했던 ‘신발 소독’도 기억에 남는다. 커다란 표지판이 없었으면 국경인지 결코 알아채지 못했을 만큼 휑한 길 한가운데서 진행됐다. 입국 관리소 직원이 “다른 나라의 오염물질이 유입되면 안 되니 신발을 소독해야 한다”고 엄중한 목소리로 말하길래 ‘방역에 꽤 철저하네’라고 생각하며 트럭에서 내렸지만 그들이 말하는 신발 소독은 젖은 수건 위를 두세 걸음 밟고 지나가는 게 전부였다. ‘엥? 이게 뭐야?’라는 표정을 짓다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외국인 친구와 눈이 마주쳐 웃음이 터졌다. -김택수·안혜림 부부(19박 20일)

 
술 한잔 걸치고 나면 댄스파티가 벌어질 때도 있다.

술 한잔 걸치고 나면 댄스파티가 벌어질 때도 있다.

 
트럭은 그저 이동 수단일 뿐
정신 차려보니 8000피트 상공이었다. 파일럿을 포함해 겨우 7명이 탔을 뿐인데 비좁을 만큼 작은 비행기였다. 프로펠러 소리와 바람 소리가 어찌나 거센지 바로 옆 사람과 말할 때도 소리를 질러야 할 정도였다. 처음 사막 스카이다이빙 체험에 대한 안내를 받았을 땐 ‘돈 주고 저런 짓을 왜 하나’ 싶은 마음에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조카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신청서를 집어 들었다. “삼촌.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 그 말에 홀딱 넘어갔다. 긴장한 탓인지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막상 뛰어내리고 나니 끝없이 펼쳐진 사막 위를 나는 독수리가 된 듯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자랑하기 바빴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평생 안줏거리가 또 하나 추가될 줄 누가 알았겠나. 스카이다이빙 외에도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사막 드라이빙, 와이너리 테이스팅, 전통 부족 방문 등 트러킹 중 즐길 수 있는 ‘투어 속 투어’가 다양하다. 액티비티를 하고 싶지 않을 땐 텐트 주변에서 수영을 하거나 낮잠을 자며 쉬면 된다. 스카이다이빙이 짜릿한 즐거움이라면, 듄 45에서 바라본 일출은 뭉클한 감동이다. 듄 45는 ‘가장 오래된 사막’이라 불리는 나미브 사막에 있는 모래언덕 중 하나다. 세 발자국 오르면 한 발자국은 다시 미끄러져 내려올 정도로 모래 알갱이가 작고 곱다. 해가 조금씩 떠오를 때마다 시시각각 빨강, 주황, 노랑으로 변하는 사막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장관이다’라는 말과 함께 탄성이 절로 나온다. 국립공원을 지나던 중 새끼를 낳는 아프리카 영양을 1시간 넘게 지켜본 것도 잊을 수 없다. 갓 태어난 새끼가 일어서지 못하고 여러 번 넘어지다가 결국 걷기 시작했을 땐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어느 책에 “여행의 끝은 아프리카다”라고 쓰여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그가 어떤 의도로 그렇게 말했는지 알 수 없지만, 깊이 동감한다. 트러킹은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이종태 (19박 20일)

 
하마를 보러 보트 투어를 갔다가 노을만 보고 왔다.

하마를 보러 보트 투어를 갔다가 노을만 보고 왔다.

Credit

  • PHOTO 김기동/정소라/박미소/@specialpark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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