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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하면 속이 불편하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촬영이 있는 날엔 주로 죽을 드신다고요.
어떻게 아셨어요? 맞아요. 오늘도 호박죽 먹고 왔습니다.(웃음) 긴장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네요. 다른 분들 보면 화보 촬영을 능숙하게 잘하던데 저는 아직도 너무 쑥스러워요. 같은 카메라 앞이지만 연기할 때랑 화보 촬영은 정말 다른 것 같아요.
〈헌트〉에서 불도저같이 뚝심 있게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완수하는 안기부 요원 장철성 역을 맡은 것과 대조적이네요. 영화만 봤을 땐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보였다면 다행이죠. 역할에 충실했다는 뜻이니까요. 그렇지만 평상시에 제 모습은 카리스마랑 거리가 멀어요. 오히려 지질하고 쪼잔한 쪽에 가깝죠. 근엄한 역할보단 생활감 넘치는 연기를 할 때 마음이 더 편해요. 근데 저에게도 불도저 같은 부분이 하나 있긴 있어요. 뒤늦게 꿈을 찾아 배우의 길로 들어섰던 거요.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하고 배우를 해야겠다 다짐한 계기가 있나요?
원대한 꿈이 있었다기보단, 그냥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게 좋았어요. 잘 알지 못했지만 제 몸 안에 끼가 조금은 숨어 있었나 봐요.(웃음) 매니저와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이야기하는 거지만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건 순전히 운이 좋았던 덕입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나가는 것밖에는 없어요.
겸손하게 말씀하셨지만, 요즘 많은 인기를 끌고 있잖아요. 지난해 〈오징어 게임〉에 이어 올해 초에는 〈SNL〉에 출연해 코카인 댄스를 선보여 MZ세대에게 큰 관심을 받았죠.
실감하지 못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과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헌트〉 제작발표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저는 진심으로 제가 어떻게 이정재, 정우성 같은 대선배님들과 나란히 서게 됐는지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촬영 전 두 분 사이에서 메이크업을 받는데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습니다. 〈헌트〉를 촬영하는 내내 가슴이 정말 벅찼어요.
앞서 영상 인터뷰를 촬영할 때 눈물을 보인 것도 그래서인가요?
〈헌트〉 예고편을 재생하는 순간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고생하며 작업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가면서 울컥했어요. 내내 ‘작품에 누를 끼치지만 말자’는 마음가짐이었죠. 영화 내용상 정우성 선배님이 안기부 국내팀 차장, 제가 팀원이라 같이 촬영할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저를 많이 배려해줬어요.
〈헌트〉는 총격신이 많아요. 권총뿐만 아니라 소총도 사용했죠. 한번은 제가 촬영에 집중한 나머지 옆에 누가 서 있는지도 모르고 M16 방아쇠를 연달아 당긴 적이 있어요. 오케이 사인을 받고 나서야 옆에 정우성 선배가 있었다는 걸 알았죠.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탄피가 굉장히 뜨거운데 제 연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걸 계속 맞으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던 거예요. 다 끝나고 나서야 “탄피가 좀 아프더라” 한마디 하더라고요. 그때 느꼈던 죄송한 마음이랑 감사한 마음이 예고편을 보면서 올라왔어요.
〈헌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를 꼽는다면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세탁소를 배경으로 총격전을 벌이는 대목이요. 진짜 세탁소는 아니고 세트에서 촬영했는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배우와 감독은 물론 미술팀, 소품팀, 무술팀, 특수효과팀까지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신이었어요.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촬영이었죠. 해당 신 역시 정우성 선배와 같이 찍었는데 이정재 감독님이랑 같이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직접 체크하고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저는 제 연기에 집중하기도 벅찬데 두 분 머릿속엔 이미 영화 한 편이 들어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NG 없이 한 번에 갔어야 하는데 제가 NG를 내서 쥐구멍에 숨고 싶었죠. 〈오징어 게임〉 이후라 정우성 선배가 ‘허성태 탈락’이라고 농담을 했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결과적으로 다친 사람 없이 멋진 장면을 얻어서 천만다행이에요. 촬영장에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쳤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장철성은 악역이라고 보긴 조금 애매해요. 보는 관점에 따라 악역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 스스로는 악역이라 생각하고 촬영에 임하진 않았어요. 간첩을 잡기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는 안기부 요원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고민했죠. ‘이건 조금 과한 것 아닌가?’ 싶을 때마다 이정재 감독님은 오히려 더 표독스러운 연기를 주문했어요. 그래야만 박평호와 김정도라는 두 인물 사이에서 장철성의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요. 저는 그저 믿고 따랐을 뿐입니다.(웃음)
〈오징어 게임〉의 배우 이정재와 〈헌트〉의 감독 이정재는 어떻게 달랐나요?
〈오징어 게임〉 때와는 달리 아주 디테일한 연기 지도를 받았어요.(웃음) 이정재와 정우성 사이에서 허성태가 빛을 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머리를 맞대고 여러 번 의논했고요. 감독님의 머릿속에 있는 장철성을 온전히 구현하기 위해 15kg 정도 감량한 것 외에도 사소한 말투와 걸음걸이까지 신경 썼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인연이 〈헌트〉까지 이어진 셈이네요.
정우성 선배가 제작자로 참여한 〈고요한 바다〉도 제가 출연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시기적으로 보면 〈오징어 게임〉과 〈고요한 바다〉를 찍을 때 이미 〈헌트〉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었어요. 전혀 기대하지 못했는데 두 분 다 흔쾌히 제게 장철성 역을 제안해서 저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재킷 에스티유. 데님 재킷 아이엠아이. 티셔츠 토니웩.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장르나 배역은 어떤 게 있나요?
멜로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장르라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고 지금이 아니면 앞으론 영영 못할 것 같아서요. 제가 생각해도 어떤 그림이 나올지 잘 감이 오질 않지만, 도전하는 마음가짐으로 해보고 싶어요. 사실 저는 장르 불문하고 힘 닿는 대로 되도록 자주 관객과 시청자를 만나고 싶어요. 올 하반기랑 내년에도 다양한 작품으로 찾아뵐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사이코패스 다이어리〉에서 보여준 코믹 연기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웃기려고 하지 않는데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는 능청스러운 표정 같은 것들이요.
원래 어떤 역할을 연기해도 일상에 지장을 줄 만큼 푹 빠지는 스타일은 아닌데 코믹 연기를 했을 땐 조금 달랐어요.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카메라가 돌지 않을 때도 자꾸 농담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비중이 높진 않았지만, 애착이 많이 남는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얼마 전 드라마 〈붉은 단심〉이 끝났고 지금은 〈인사이더〉가 방영되고 있어요. 7월 말엔 〈아다마스〉 방영이 예정되어 있고요. 영화 촬영도 병행하고 있는데 지친다는 느낌이 들진 않나요?
걱정해주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그렇게 정신없을 정도로 바쁘진 않아요. 〈인사이더〉는 올 초에 촬영이 끝난 작품이거든요. 〈붉은 단심〉에선 딸 바보였고 곧 시작하는 〈아다마스〉에선 자세한 내용을 말할 순 없지만, 굉장히 멋진 역할을 맡았어요. 작품 하나하나가 저에겐 귀중한 경험이자 배움이기 때문에 촬영을 할수록 오히려 힘을 얻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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