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포기하고 제주에서 반려마를 기르는 여자 | 에스콰이어코리아
LIFE

도시를 포기하고 제주에서 반려마를 기르는 여자

개나 고양이를 기르듯 반려마(馬)와 함께하는 삶을 위해 도시를 팽개치고 제주로 내려간 여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

박세회 BY 박세회 2022.07.25
내겐 4년 전부터 제주도에 사는 부부 친구가 있다. 아내 유진(가명, 41)과는 대학 때부터 친했고, 남편 창현(가명, 40)과도 15년쯤 알고 지냈다. 그러나 우리는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고, 종종 꽤 오랜 기간 얼굴을 보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난 3월쯤 창현이 오랜만에 일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을 때, 우리는 만났다. 제주도에 내려갔다는 소식만 들었던 터라 궁금한 게 많았다.
“갑자기 제주도엔 왜 내려간 건가요?”
질문을 던지면서 여러 대답을 예상했다.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우고 싶어서, 여유로운 삶이 좋아서, 경쟁이 덜한 환경에서 살고 싶어서. 나의 예상은 전부 틀렸다.
“유진이가 말을 키워야 해서요.”
나는 그 말을 듣긴 했는데, 그 의미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말을 키우기 위해 제주도로 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뭔가 문학적인 메타포일까? 메타포라면 어떤 의미일까? 유진이 이사를 하면서까지 키우고 싶어 하는 말이란 대체 뭘까? 말(言)을 얘기하는 걸까? 아하! 문학작품을 쓰려는 거구나! 여기까지 생각이 뻗쳤을 때 창현이 말했다.
“그냥 말이요. 뛰어다니고 히힝 하는 말을 키우려고 제주도로 이사했어요.”
내가 별말은 하지 않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자신을 계속 쳐다보자 창현은 답답했는지 얼마 전에 준공을 마쳤다는 제주도 주택을 보여주기 위해 휴대전화에 있는 CCTV 앱을 켰다. 그 영상에는 2층짜리 집과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울타리가 보였다.
“땅도 사고, 집도 지었어요.”
창현의 목소리에선 운명적인 무언가에 휘둘릴 때 느끼는 피로가 느껴졌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불행하게 들리지는 않았으며 어떤 점에선 오히려 건강하다고 느꼈다. 유진이라는 롤러코스터에 타고 있는데, 좀 피곤하긴 하지만, 재미도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런데 말을 왜 키워요?”
내가 물었다. 창현은 아내인 유진이 말을 키우고 싶어 해서 키운다고 말했다. 타고 싶어서, 승마를 취미로 하려고 키우는 것인지 다시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답했다. 자신들이 키우는 말들은 쉽게 기를 수 없는 말들이고, 불쌍한 말들이라고. 아내인 유진은 그 말들을 개나 고양이처럼 반려동물을 기르듯 보살핀다고 말했다. 타기 위해서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개나 고양이처럼 말을 기른다. 그런 얘기는 한국에선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날 나는 언젠가 유진과 창현의 제주도 집에 가서 반드시 유진의 입으로 말을 기르게 된 사연에 대해 들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고향이, 비올라, 유니스, 지나가 지내는 마장의 모습. 유진은 두 아이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가 있는 낮 시간을 거의 대부분 마장에서 보내느라 얼굴이 새까맣게 탔다.

고향이, 비올라, 유니스, 지나가 지내는 마장의 모습. 유진은 두 아이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가 있는 낮 시간을 거의 대부분 마장에서 보내느라 얼굴이 새까맣게 탔다.

막상 유진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던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제주를 찾은 건 올 장마가 막 시작될 때였다. 제주 시내는 햇살이 쨍하게 내리쬘 정도로 맑았는데, 애월을 넘어서자 안덕 쪽에 안개라기보다는 낮은 구름이라 불러야 더 정확할 것들이 짙게 깔려 있었다. 유진이 알려준 주소를 향해 차를 몰자 도로 양쪽으로 스코틀랜드를 연상케 하는 목초지가 펼쳐졌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포토그래퍼에게 “우리가 지금 가는 데가 저런 곳은 아니겠지?”라고 물었다. 포토그래퍼는 “설마”라고 답하면서도 “저런 곳이면 사진 하나는 정말 잘 나오겠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에 찍힌 주소에 도착했을 때 우리 눈앞에는 ‘설마’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런 경관이 펼쳐졌다.
유진과 창현은 서울에 있을 때는 외곽에 있는 꽤 멋들어진 타운하우스에서 살았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찾은 집이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게 당연해요. 보통은 목적을 가지고 말을 기르니까요. 말을 그저 좋아하는 거면 그냥 승마장에서 일할 수도 있는데 왜 제주도까지 와서 말을 기르는지 이해하기 힘들죠. 그런데 제겐 또 긴 이야기가 있어요.”
유진이 마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련해둔 나무 덱에 앉아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첫딸이 다섯 살 되었을 때 유진은 삶이 작은 기점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유아원에 다니기 시작하며 5년 만에 처음으로 자기만의 시간이라는 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도 놀랄 만큼 육아에 집중하며 모든 시간을 아이에게 쏟았고, 그러면서도 고등교육을 받은 자신의 사회생활이 그렇게 끝나간다는 사실에 옅은 불안과 짙은 허망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가 외부 교육기관에 다니며 생긴 자유 시간은 무척 낯설고 또 소중했다.
“아이를 키우다가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 아마 많은 엄마가 그런 생각을 할 거예요. 그런 와중에 막상 시간이 생기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막상 시간이 생기자, 구체적인 계획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집 근처 승마장의 구인 광고를 본 것은 운명 같은 일이었다. 당시 승마장에서 찾는 사람의 업무는 유치원 아이들을 조랑말에 태우고 고삐를 끌어주는 일이었고, 정말로 그 정도의 일만 하면 끝인 줄 알았다. 막상 가보니 조랑말에게 물과 건초를 이고 지고 날라다 주는 등의 모든 관리 업무가 그녀의 차지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침이면 온몸에 몸살 비슷한 통증이 올라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진은 그럼에도 이 일이 즐겁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말이 좋았어요. 아이들도 좋았고요. 힘들면 언제든 그만두면 되는데도, 이 일이 즐거우니 매일 아침 지친 몸을 이끌고 승마장을 향했던 거죠. 그러다 일한 지 2주가 넘어갈 무렵, 인수인계가 다 끝났을 때쯤 그 아이들을 처음으로 봤어요.”
그녀에게 인수인계를 해주던 마사학과 학생인 직원이 승마장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마장의 뒤쪽 골목으로 미로처럼 꺾이고 꺾인 길을 따라 유진 씨를 데려갔다.
“거기에는 볕이 들지 않는 작은 마방들이 있었고, 그 안에는 사람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마방의 구석으로 도망가 사람 쪽으로 엉덩이를 돌리고는 숨을 몰아쉬는 부적응 말들이 모여 있었어요.”
몇몇 말들은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어떤 말들의 등엔 상처가 깊었고, 또 어떤 말의 등엔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유진 씨가 일했던 포니팀엔 총 15마리의 말이 등록되어 있었는데, 그중 아홉 마리가 뒷방에 이런 식으로 갇혀 있었다. 사람을 등에 태울 줄 알고, 사람을 봐도 난리를 치지 않는 나머지 여섯 마리만이 햇빛을 보고 살아온 셈이다. 다른 방에는 큰 말들도 있었으며, 개중엔 품종마도 있었다. 그곳에서 태어나 한 번도 마방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아이들도 있다는 말에 가슴 한편이 저려왔다. 주변에 아무리 물어봐도 그 말들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를 아는 직원은 없었다. 다만 그중 한 직원이 “하도 사람을 무서워해서 밖에 나오면 사고를 치는 애들을 모아둔 거예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중에 알아본 바로는 미국 등지에서 말을 수입할 때 컨테이너 단위로 수입하다 보니, 개중 사람과 잘 지내지 못하는 말들을 골라내 이런 식으로 가둬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진은 그날 갇혀 있던 말 중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큰 연민을 느꼈다.
“꽂혀버렸다고 해야 할까요? 그 말의 눈빛이 가슴에 박혔다고 할까요?”
말들은 갇혀 자라서는 안 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밖에 나가 가까운 것도 보고 먼 곳도 보며 시력을 발달시켜야 하며, 무리 생활을 통해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또 위험한 소리와 위험하지 않은 소리를 구분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런 걸 배우지 못하고 자란 말들은 사람으로 따지면 사회화가 되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저는 조랑말을 다루는 포니팀이었는데, 제가 본 뒷방의 말들 중에는 웜블러드 품종도 있었어요. 도로시(가명)와 앨리스(가명)라는 아이들이었죠. 태어나자마자 관리 인력 부족으로 그곳에 거의 갇히다시피 되어서 18개월 동안 한 주일에 주말 30분 정도만 볕을 보고 자랐죠.”
도로시는 굴레를 씌우고 끌면 따라올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앨리스는 사람의 손길을 완강히 거부하는 아이였다. 앨리스는 심지어 자기 마방 앞으로 사람이 지나가기만 해도 발굽을 구르며 자신의 방에 들어오면 당장 날뛸 수 있게 준비를 시작했다.
지나가 카메라를 든 포토그래퍼 앞으로 다가와 코를 들이밀었다. 동물들에게 이건 첫인사나 다름없다.

지나가 카메라를 든 포토그래퍼 앞으로 다가와 코를 들이밀었다. 동물들에게 이건 첫인사나 다름없다.

그날이 지난 후 유진은 우리나라보다 말 훈련에 있어서는 한참 선진국인 미국에서 어떤 식으로 말들을 길들이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을 영어권에서 보내며 익힌 언어가 큰 도움이 됐다. 미국의 트레이너 과정 중 그린 호스(green horse, 교육받지 않은 말) 세 마리를 사람이 탈 수 있는 말로 길들이면 수료증이 나오는 과정이 있었고 영상 등을 통해 원격으로 진행이 가능했다. 유진은 그 과정에 등록했다. 일개 알바생이 트레이너 과정에 지원한 셈이다. 점심시간을 쪼개가며 트레이닝에 몰두했지만, 순탄치 않았다. 말에 대한 거대한 애정과 순탄치 않은 훈련 과정이 유진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진의 인생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두 번째 계기다.
“그때쯤 처음으로 남편에게 앨리스를 사야겠다고 말했죠. 앨리스를 훈련 중이었으니까요. 훈련 중에 말이 팔려가지 않도록 사서 마방비(말 한 마리당 내는 관리세)를 내며 관리하기로 한 거죠.”
여러 가지 사건이 유진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그해 가을 앨리스가 뇌척수염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 다른 승마장에서 데려온 중형마 토마스(가명)가 기회가 날 때마다 마방에서 도망쳤다는 사실, 승마장 원장이 도로시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렸다는 사실. 그 기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쓰는 건 꽤나 지난한 기록일 것이다. 중요한 건 유진이 미국 트레이너들의 학습 방법을 그대로 익혀가며 말들을 길들이려 했으나 그 변화가 무척 더뎠다는 점이다. 유진은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모습을 찍어 보내면 미국 트레이너 인스트럭터들이 ‘당신의 말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답을 해왔어요. 하루에 제가 트레이닝하는 시간은 불과 1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다시 폐쇄적인 마방에서 나머지 시간을 온전히 보내는 거죠. 그 시간 동안 1시간의 트레이닝에서 익힌 교육 효과는 다 날아가는 거예요.”
유진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이미 그때쯤엔 말과 함께하지 않으면 죽을 만큼 말에 매료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회사 발령지 중 하나인 제주도가 유진의 눈에 띈 것도 그때쯤이다.
“제주도로 가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유진의 남편 창현이 말했다. 유진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근무를 마친 창현은 일찍 귀가해 우리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조용히 듣고 있었다. 아내가 제주도로 떠나겠다고 말했을 때 창현은 이미 그녀의 마음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친구들은 아내 유진이 가끔 파격적이고 종종 충동적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틀린 얘기다. 겉으로 보기에 충동적으로 보이는 유진의 결정들은 사실 그녀 내적으로는 모든 논리를 꼼꼼하게 따져본 후 내놓은 차분한 결론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창현은 늘 뜬금없이 결론부터 얘기하는 아내의 말하는 방식이 충동적으로 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아내의 결정들은 충동적으로 내려져서 문제인 게 아니었다. 그 결정들이 현실과 잘 타협하지 못했던 이유는 결정의 바탕이 지나치게 이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유진이 먼저 홀로 두 아이와 말 한 마리를 데리고 제주로 향했다. 당연히 실패가 있었다. 너무 좁거나 집과 멀거나 등등의 이유로 2년 사이 두 번이나 자리를 옮겼다. 지금 자리를 잡은 곳이 세 번째 땅. 처음엔 약 2600m²(약 800평)의 대지를 구입했고, 그 뒤에 1000m²를 더 사들였다. 지금은 3600m²(1100평)의 대지 중 주택이 있는 땅을 제외하고 3개의 구획으로 나눠 조랑말 한 마리를 포함한 네 마리의 말이 갑갑해하지 않고 뛰어놀 수 있을 만한 공간을 만들었다. 티모시, 라이그라스, 알팔파 세 종류의 수입 건초를 수입 사료와 함께 섞여 먹이며, 직접 기른 생초도 간혹 먹게 한다. 그렇게 들어가는 사료 비용은 한 달에 대략 80만원 정도다.
“제주도에 온 건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녜요. 남편의 직장과 제 생활권을 생각해 경기도 쪽도 알아봤는데, 저희 재산 규모로 말을 기를 정도의 땅은 도저히 살 수가 없더라고요.”
유진은 제주도에 온 게 낭만적인 선택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데리고 온 토마스는 두 번째 땅을 팔 때 땅 구입자에게 넘겼다. 호주에서 왔다는 구매자가 말을 너무 키우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딱히 큰 문제가 없는 아이라기보다는 지능이 너무 높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승마장을 탈출하는 말괄량이 재주꾼이라 좋은 구매자를 만난다면 제주에서 행복하게 살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 있는 아이들은 고향이(가명), 비올라(가명), 유니스(가명), 지나(가명)다. 고향이와 비올라는 그린 호스다. 생마로 유진네 집에 와서 아주 천천히 인간과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 무섭지 않다는 걸 익히고 주변에 아는 소리 중 위협적인 것을 구분하는 훈련을 받고 있다. 유니스는 유진이 미국과 호주의 선진 마장마술 트레이닝에 도전하기 위해 들인 웜블러드의 그린 호스다. 신마 상태로 유진에게 온 유니스지만, 이미 유진과 함께 기초 동작 등은 탄탄하게 마스터했다. 가장 마지막에 이 집에 온 건 하얀 말 지나다. 지나가 지금처럼 순해진 건 거의 기적에 가깝다. 지나는 외승(승마장 밖에 있는 산과 도로를 달리는 것)을 하는 승마장에서 데려왔다. 지나는 더는 사람을 안 태우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승마장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아이였다. 처음 봤을 때 다리에 상처가 있었고 심지어 그 상처가 낫지 않아 겉에 염증이 생겨 덧나 있었다. 피골이 상접해 뱃가죽이 거의 등에 붙을 만큼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 때문에 상처가 낫지 않았을 수도 늙어서 낫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나에겐 안장 안에 있는 보형물의 모양 그대로 등 근육이 함몰되어 있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은 상처도 다 나았고, 살도 많이 붙었다. 여전히 늑골이 거죽 바깥으로 다 드러나 보이지만, 예전에 비하면 뚱뚱보다. 지나가 처음 왔을 때는 성인 남성을 겁냈다. 성인 남성이 다가오면 겁에 질려 도망치거나 뒷발로 차려는 모양새를 보이며 위협하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그 사람을 태워야 한다는 공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포토그래퍼가 유진과 지나의 사진을 찍기 위해 다가갔을 때, 지나는 전혀 겁을 내지 않았다. 세상에 나쁜 말은 없다.
“말은 정말 과묵한 동물이에요. 어딘가를 다치면 개들은 깨갱거리고 끙끙거리며 난리가 나죠. 반려인이 빨리 처치해주길 원해요. 말은 달라요. 말은 살이 파여도 아무 말 하지 않고 눈만 끔뻑일 뿐이에요. 통점이 없는 게 아닙니다. 야생에서는 아픈 걸 들키는 순간 포식자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상처가 난 사실을 숨기는 방향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아픈 말이 눈을 끔벅이며 고통을 참는 걸 보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어요.”
이렇게 지나가 변해온 모습과 과정이 유진이 말과 함께하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다.
“여기 제주도엔 말을 기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대부분은 타기 위해 기르죠. 말을 사고는 빨리 훈련시켜서 타려고 해요. 그렇다 보니 말과의 교감보다는 아직까지는 몽골식으로 때려잡듯이 순치시키는 훈련법을 쓰는 일부 사람들이 있어요. 교감을 중요시하는 미국식 훈련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니 빨리 말을 탈 수 있는 방법을 쓰는 거죠.”
물론 유진의 말이 모두 맞는 건 아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지만, 세상엔 똑같은 개도 없듯이 말을 기르는 데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창현은 유진이 간혹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곤 한다고 말했다. 제주도에는 말을 기르는 사람들이 많고 이들 사이에는 커뮤니티가 있다. 그런 커뮤니티에서 유진은 과도하게 강압적인 방식으로 말을 길들이거나, 지나치게 달리도록 강요하는 마주들에게 꼭 따가운 댓글을 단다.
“누군가가 듣기에는 유진이 하는 이야기들이 이상주의자의 몽상처럼 들릴 수도 있어요. 사납고 힘 좋고 잘 달리는 말을 교감만으로 순치할 수는 없는 거지요. 또 순치가 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방법은 아니고요.”
유진이 처음 제주도에 말을 기르러 내려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웃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녀의 성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주에 와서 들은 자세한 내막은 전혀 웃기지 않았다. 유진은 말을 키웠지만, 말이 유진을 키우기도 했다. 제주로 옮겨 둥지를 트는 동안 유진과 창현에겐 말하지 못할 수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그 모든 일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건, 두 사람이 말을 키웠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이야기가 아직 중반 정도 흘렀을 때, 살짝 낀 안개 사이로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포토그래퍼가 당장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진이 마장 너머로 지나를 끌고 갔다. 옅은 안개의 포말이 햇살에 부딪혀 금빛으로 부서질 때 운 좋게 둘의 모습을 건졌다. 내가 그날 유진과 창현의 집에서 받은 느낌이 이 사진에 매우 근사하게 드러나 있다. 
고향이를 쓰다듬는 유진의 모습. 그린 호스 상태로 왔지만 이제는 인간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향이를 쓰다듬는 유진의 모습. 그린 호스 상태로 왔지만 이제는 인간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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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박세회
    PHOTOGRAPHER 김성룡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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