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콰이어 US>의 재치있고도 현명한 질답 "우리는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할까?" | 에스콰이어코리아
LIFE

<에스콰이어 US>의 재치있고도 현명한 질답 "우리는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할까?"

오성윤 BY 오성윤 2022.07.27
 
자녀와 열정 중 하나를 택해야 할까? 
writer 제프 고디니어
로프 없이 암벽등반을 하며 삶을 쌓아 올려온 사람. 육아는 그 사람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다큐멘터리 〈프리 솔로〉의 주인공, 그리고 올해 2월 난생처음 아빠가 된 남자 알렉스 호놀드에게 물었다.
프리 솔로(로프 없이 혼자 하는 암벽등반)와 육아 중 뭐가 더 힘든가?
아직까지는 육아 능력이 더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다. 프리 솔로는 내가 오랫동안 해온 일이고, 육아 경험은 그에 비해 훨씬 더 적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육아의 모든 것을 거치며 세상 모든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아주 커졌다.
당신의 딸은 2월에 태어났는데, 이름은 준(June)으로 지었다.
그렇다. 헷갈릴 수 있다.
등반에 데려갈 계획도 있나?
우리는 이미 함께 스포츠 클라이밍을 많이 떠났다. 절벽까지 하이킹을 한 후 그 위에서 피크닉을 즐긴다. 물론 아이는 절벽에 올라가지 않는다. 주로 그냥 잔다. 이제 겨우 두 달 됐으니까. 아직 머리도 잘 못 가눈다. 하지만 걸음마를 하게 되면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할 것이다. 절벽 아래에는 큰 바위 같은, 아이들이 놀기 좋은 것이 많다. 움직일 수 있게 되는 즉시 바위 위에서 놀게 할 것이다.
만약 준이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내와 그 이야기도 했다. 우린 준이 무언가에 관심을 보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어쨌든 최소한 야외에서 자신감을 갖길 바라긴 한다. 준이 하이킹을 잘하고 황야를 편안하게 느꼈으면 좋겠다. 그리고 최소한 암벽등반의 기초 정도는 배우게 될 것이다. 자일을 매는 법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게 최소한이다. 라펠에 대해서도 알게 될 거고, 로프를 쓰는 여러 방법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어코 등반에 열정을 품지 않는다 해도 나는 괜찮다. 무엇이 되었든 준이 관심을 쏟는다면 나는 만족한다.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바보 취급을 당해도 괜찮은 걸까?  
writer 드류 매거리
나는 종종 가족들의 놀림거리가 되곤 한다. 아빠라는 이유로. 이를테면 내 티셔츠 중엔 약간 짧은 것들이 있어서, 전구를 갈려고 팔을 들면 털북숭이 배가 드러난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축구 연습장으로 데려다주면서 다른 운전자들의 형편없는 운전 습관에 대해 실시간으로 언급하곤 한다. (“저 BMW 모는 사람 좀 봐. 대체 무슨 생각이지?”) 나는 식사하며 휴지를 엄청나게 많이 쓰고, 지금도 데프 레퍼드의 곡을 들으며 열광한다. 나는 우리 집에 꾸준히 밈을 제공하는 셈이다. 기록으로 남겨 일종의 도표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한때는 그런 사실이 거슬렸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가끔은 거슬린다. 나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성장했다. 아버지가 강하고 능력 있고 과묵한 남성으로 규정되었던 축복받은 시대의 끝물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가정의 보안관이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려” 같은 식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가족 구성원들이 시비 걸지 않는 아버지. 나는 진지한 존재로 인식되고 싶었다. 하지만 진지한 존재로 인식되길 요구하는 남성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개자식’이다. 사소한 장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늘 복종을 요구하는 아빠가 정말 강한 아빠인가? 대체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건가? 좋은 아빠, 현대적인 아빠는 ‘멍청이 같은 아빠’에 대한 고정관념을 웃으며 받아들인다. 아빠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군말 없이 한다. 일하고, 청소하고, 요리하고, 운전하고, 카시트를 설치했다가 다시 뗀다. 그리고 그 일을 하는 동안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아빠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자신의 믿음에 푹 빠져 있다면 누구에게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빠란 무엇보다 도움이 되는 존재여야 한다. 웃고 싶거나, 높은 선반에 있는 걸 꺼내야 하거나, 집에 정말로 불이 났을 때 부를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러니 내가 엉덩이 골을 드러낸 채 천장 팬을 손볼 때는 마음껏 웃어라. 차에서 내가 고르는 음악을 듣고 키득거려라. 내가 립을 먹을 땐 귀를 막아라. 나는 드라마 〈모던 패밀리〉의 필 던피 같은 웃음거리, 혹은 그 이상을 제공하기 위해 있는 사람이다. 그게 내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래서 내가 이 역할을 잘하는 것이다.
-
드류 매거리는 작가로, 최근에 〈The Night the Lights Went Out: A Memoir of Life After Brain Damage〉를 출간했다. 





 
 
아빠도 섹시할 수 있을까? 
writer 앨리슨 P. 데이비스
아빠들은 섹시하다. 원래가 그렇다. 아빠라는 존재가 섹시하다는 건 진화생물학자와 사회심리학자, 그리고 나에 의해 입증되었다. 만약 당신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 정도의 정서 지능을 가진 남자를 내게 보여준다면, 나는 다른 건 보지도 않고 그냥 빠져버릴 것이다. 그러니 ‘아빠가 섹시하다’는 건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주제다. 다만 나는 좀 더 세분화해 이야기하고 싶다. 섹시한 아빠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최근 내가 찾아낸 타입은 개중에서도 최고인 것 같다. ‘사커 대드.’  미국 여자축구 국가대표 선수 메건 라피노의 뒤를 이을 게 분명한 내 조카는 일요일마다 8~10세 여자아이들과 어울려 축구를 한다. 그 아이들도 자신이 라피노의 뒤를 이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매주 그 현장에 참석하겠다고 자원한다. 물론 조카를 응원하러 가는 것이지만, 경기장 주위에서 나만의 ‘섹시 대드 월드컵’이 펼쳐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드라마 〈테드 래소〉(축구는 전혀 모르는 미국 미식축구팀 코치가 영국 축구팀 코치가 되는 내용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딸이 좋아하는 간식을 배낭 가득 챙겨 메고 온 아빠들, 따라온 형제자매들에게 보여줄 것이 가득한 아이패드와 그들 모두를 위한 담요까지 챙겨온 아빠들, 하이 포니테일로 딸 머리를 묶어줄 끈을 주머니에 넣어온 아빠들…. 나 같은 여성은 남성이 육아를 능숙하게 하는 걸 보면 그걸 ‘그냥 다들 하는 일’이 아니라 ‘남달리 섹시한 아빠의 특성’으로 느끼도록 사회적으로 훈련되어 있다.  나는 테드 래소가 아닌 로이 켄트(〈테드 래소〉 속 AFC 리치먼드의 주장)를 보러 경기장에 간다. 축구장이 마치 위험한 사냥터처럼 보이게 하는 남성들에게 가장 눈길이 간다. 못된 사람들. 성격이 더럽고 자기 통제력이 제로인 이기적인 사람들. 심판의 모든 판정에 시비를 걸고 싶어 하는 아빠들.
 
[첫아이를 낳은 부부의 성생활]
아이가 태어난 뒤 우리는 어떻게 할까?
- 출산 후 4주까지는 삽입, 자위, 쿤닐링구스를 했다는 커플이 드물다.
- 하지만 3분의 1은 구강 성교를 한다.
- 출산 후 12주 뒤에는 대부분의 커플이  섹스를 한다.
- 출산 후 12개월 뒤에는 대부분의 커플이 임신 전 수준으로 섹스를 한다.
 
상하의를 아디다스 트랙슈트로 갖춰 입고 나오는 아빠들. 매주 딸과 똑같은 헬멧, 똑같은 레이밴 선글라스를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아빠들. 부코치라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늘 자기 딸이 출전하게 하는 남자(이 글을 읽으면 그는 분명 나를 죽이려고 하겠지). 그리고 자기 딸의 발놀림에 대해 영국 억양으로 외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왕처럼 보이는 키 작은 남자. 그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다른 선수들의 부족한 기술을 험담할 때마다 나는 무심코 그의 왼손 넷째 손가락을 보게 된다. 아직 비어 있다. 잭팟.  사실 이런 충동적인 남자들이 나를 설레게 한다는 건 좀 언짢은 일이다. 그들은 날것 그대로의 열정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드러낸다. 별것 아닌 일에 지배욕을 드러내고 테스토스테론을 뿜어내는데, 솔직히 말해서 귀엽다. 내 약점이 그런 부분이다. 우두머리 수컷, 알파 메일의 야성적 모습을 가진 흥분 잘하는 사커 대디들은 늘 나를 사로잡는다. 그들의 그런 성격이 일으키는 많은 문제를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열성적인 축구 팬이 되었다.
-
앨리슨 P. 데이비스는 〈더 컷〉에 문화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 〈Horny〉가 곧 출간될 예정이다.





 


곁에 없는 아빠도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writer 잭 홈스
레이날도 페냐는 테네시주 클락스빌의 노스웨스트 고등학교 풋볼 코치다. 그는 13년 동안 미군으로 복무했고, 하사까지 진급했으며 이라크에 두 번 파병되었다. 현재 그는 37세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딸은 열두 살, 아들은 아홉 살이다. 그는 아주 멀리 떨어져서도 아이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단 당신이 왜 멀리 가 있어야 하는지부터 이해시켜야 한다고.
2007년 처음 이라크에 파병되었을 때, 아내는 임신 6개월 차였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만삭이 되었을 때 2주 휴가를 얻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양수가 터졌어.” 하루만 늦게 왔어도 아내는 혼자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 나는 ‘신은 참 신비한 방식으로 일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2주 뒤, 나는 이라크 북부로 돌아갔다.  전쟁에서 돌아오니 조정해야 할 것이 정말 많았다. 캔자스주 포트 라일리에 도착한 후에도, 5분 동안의 의식을 치른 후에야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딸은 내가 낯선 사람인 것처럼 반응했다. 그녀는 심지어 울기 시작했다. “난 네가 누군지 몰라” 하듯이.  나는 가족을 보게 된 것이 무척 기뻤지만, 솔직히 아주 힘들었다. 특히 흥분이 사라지고 난 뒤가 어려웠다. 가족들은 이미 자신들만의 리듬을 확립해놓았는데, 내가 그 스케줄 전체를 망쳐놓기 일쑤였던 것이다. 나는 딸과 가까워지려고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성과가 있었다. 지금의 딸은 정말 멋진 아이다. 하지만 그때 내게는 딸이 그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 시절을 기억하기에 딸은 너무 어렸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파병되었다. 딸은 그 부분을 기억한다. 힘들었다. 전화나 스카이프를 할 수 없는 날들도 있었다. 내가 괜찮은지 가족이 언제나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내가 집에서 떠나 있었던 시기를 돌이킨다. 내가 없었던 순간들이 많았다.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생일. 그날들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면, 아이들과 관계의 기반을 잘 다져놓는다면 그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을 때 당신에게 물어봐줄 것이다. “왜 떠났어야 했죠?” 젊은이들은 늘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아이들이 내 괴상한 면면을  좋아해줄까?  
writer 레이첼 사임
10년 전쯤, 위장 관련 외과 의사였던 나의 아버지 윌리엄 사임은 (현재는 은퇴했다) 언젠가 반드시 벤조(미국의 민속 악기)를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아버지는 50대 후반이었다. 국영 라디오로 듣는 포크송을 직접 배우겠다는 ‘로큰롤 세대 아저씨’의 막연한 충동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아메리카나(미국의 민요와 여타 장르가 섞인 음악 양식)의 복잡한 하모니를 좋아해서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저 감상만 하는 걸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했다. 꼭 경험해야만 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쉬지 않고 도전하는 성격에 영역을 가리지 않고 누비는 사람으로, 새로운 취미를 계속해 받아들이고 젊은 수녀가 가질 법한 열정과 헌신으로 매달렸다. 아버지는 여러 해에 걸쳐 스카 댄스(포크파이 해트와 그 움찔거리는 춤이라니), 록 클라이밍(카라비너가 지금도 사방에 널려 있다), 싱글 몰트위스키(글렌피딕과 라프로익을 너무 과장되게 발음하곤 했다)에 푹 빠졌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해 여름에는 직접 나무로 모형 비행기를 여러 대 만들어 동네 공원에서 날렸다. 이 시기에 대해서는 공들여 만든 비행기가 추락해 부서진 모습과 그때의 슬픔만큼 강력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리고 벤조가 등장했다. 벤조 연주를 익히는 사람 주위에 있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서바이벌 게임〉(1972년 영화로 벤조 연주 장면이 등장한다)을 배경으로 틀어놓고 치과 치료를 받는 느낌과 비슷하다. 우리는 모두 아버지가 잠시 그러다 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누군가와 협연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계속 벤조를 튕겼다. 가족들이 모두 어처구니없어 하며 ‘다음 취미는 또 뭘까’ 생각하는 동안 그는 혼자서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취미를 갖고 싶어 노력했던 것이다. 이제 아버지는 여름이면 캠프에 참석해 강이나 금광에 대한 옛 노래들을 연주하곤 한다.  보타이를 정갈하게 맨 채 빙글빙글 돌며 하이킥을 해서 결혼식 피로연 전체를 압도하는 아버지를 보며 내가 배운 것은 일종의 실용적 쾌락주의다. 취미에 너무 깊이 빠져드는 모습을 볼 때면 “아, 아빠 제발 좀”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지만, 온몸을 내던져 진심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자신의 열정에 몰입하는 게 어떤 건지 배우게 된다. 아버지는 내게 귀한 교훈을 준 것이다. 뭔가에 발을 들일 거라면 끝까지 가라. 충돌하기 직전까지 강하게 밀어붙여라. 때로는 비행기가 추락해 박살 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해라. 계속 새로운 것을 배워라. 단, 가족들에게 귀마개 주는 것을 잊지 말아라.
-
레이첼 사임은 〈뉴요커〉의 전속 기자다. 앨버커키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브루클린에 살고 있다. 





 
 
할아버지가 된다는 건 과연 사람들 말처럼 근사한 일일까?  
writer 가베 울라
“저는 신부의 아버지가 될 예정이에요. 그것도 세 번이나.” 배우 앤디 가르시아의 여름 계획이다. 그와 그의 아내 마리비의 네 자녀 중 두 명, 다니엘라와 도미닉이 결혼한다. 다니엘라는 최근에 딸도 낳았다. 다니엘라와 도미닉은 LA의 부모님 집 근처에 산다. 다른 딸 알레산드라는 뉴욕에, 아들 안드레스는 뉴올리언스에 산다. “마리비와 저는 다시 채소 퓌레와 과일 콤포트를 만들고 기저귀를 갈게 됐죠.” 가르시아가 말했다.  거기에 더해, 그는 최근 개봉한 〈신부의 아버지〉 리메이크 작품의 주연을 맡았다. 그가 맡은 캐릭터 빌리는 마이애미에 사는 건축가로 구식 가부장적 남성이다. 딸이 약혼자와 결혼하는 걸 강력히 반대하는데, 백만장자 상속자인 약혼자는 빌리가 보기에는 여러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데다가, 감히 자신의 허락을 먼저 구하지 않고 딸에게 청혼했다. 그건 빌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전 확실히 좀 더 현대적이고 개방적인 편이에요.” 가르시아는 빌리의 육아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알레산드라도 시사회에 와서 그랬어요. ‘아빠, 아빠는 저 사람이랑은 전혀 달라요’라고요.”  가르시아는 자신의 아버지를 롤 모델로 삼았다. 혁명 전의 아바나에서 저명한 변호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1960년대 초에 가족들과 함께 마이애미로 이주했고 향수 사업을 해  성공했다. “아버지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기 가족과 친구들을 지킬 사람이었어요. 저는 제 부모님과 같은 사람들이 가졌던 용감함의 산물이에요. 그들은 모든 것을 빼앗긴 다음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서 앞길을 개척해야 했죠.” 가르시아의 부모님은 육아의 핵심은 언행일치임을 가르쳐주었다. “아이들은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는 걸 절대 잊으면 안 돼요. 당신이 가르쳐주고 싶은 모든 가치를 말로 가르쳐줄 수는 있겠지만, 그게 진심으로 들리지 않으면 ‘나한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아빠’라는 답만 돌려받겠죠. 당신 아이들에게서.” 가르시아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가족들은 다니엘라의 브라이덜 샤워를 준비하고 있었다. 알레산드라는 LA에 와 있다. “이 집은 지금도 가끔씩 북적거리지만,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면 또다시 다들 가버리고 없다는 걸 깨달아요. 그러면 아주 조용해지죠.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요.” 가르시아의 말이다.
-
가베 울라는 데이비드 창의 베스트셀링 자서전 〈Eat a Peach〉의 공저자다. 뉴욕에 산다. 







 
아이가 내 기대와 다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  
writer 저스틴 커크랜드
나는 테네시에 사는 내 아버지를 사랑한다. 하지만 우리는 비슷한 성격의 두 사람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취향이 다르다. 나는 아버지에게 아빠가 된다는 것에 대한 기대에 대해, 그리고 ‘나’라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최근에 실제로 물어봤다.
아빠가 될 때 어떤 기대를 품으셨나요?
모든 아빠가 원하는 것 아니었을까 싶다. 나와 비슷하게 성장할 훌륭한 아이. 나보다 나아질 아이. 내가 자랄 때는 달랐지. 내 아빠는 어떤 아빠가 되면 안 되는지를 가르쳐주셨으니까. 나는 최대한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고, 너희가 최대한 잘 자라게 하고 싶었어.
사냥과 낚시가 우리를 묶어줄 방법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씀하셨죠.
그래. 시도는 해봤지만, 너랑은 맞지 않았어. 나는 최소한 네가 사슴을 잡을 때까지는 계속 해봤으면 했지. 그러면 네가 사냥을 즐기게 될지 궁금했어. 그게 내 인생의 목적지였다. 사냥하고, 낚시하고, 내가 사랑하는 일들을 즐기고. 그리고 너도 나처럼 그런 것에 빠져들길 바랐지. 그러면 우리가 가깝게 지낼 거라고 생각했어.
우리는 지금도 가깝게 지내잖아요. 그 대신에 발견한 건 뭐였나요?
네 성공. 만약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해도, 나는 네가 선택한 길을 다시 고르길 바란다. 내가 너를 숲속이나 호수 위 배에 묶어놨다면 지금 네가 이룬 것들은 없을 테니까.
우리 관계의 핵심적인 부분은 아빠가 저를 키우면서 보여준 TV와 들려준 음악을 통한 유대였던 것 같아요.
네 덕분에 나는 대학에 갔다. 성장하게 됐지. 너와 내가 서로 숙이고 들어간 것 같아. 나는 아델이 좋아. 너랑 같이 본 칙 플릭(젊은 여자들을 타깃으로 만든 영화) 중에도 마음에 드는 게 있었지. 네가 “아빠, 이건 보셔야 해요. 끝내줘요”라며 보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안 봤을 거야. 너는 내가 평생 갈 일이 없을 도시라고 생각했던 뉴욕에서 나를 데리고 뮤지컬 〈웨이트리스〉를 보러 갔지. 너한테는 그게 낚시하러 가는 거였던 거야. 너의 호수, 너의 숲으로 날 데려간 거지.
제가 게이라고 커밍아웃한 건 우리 관계를 큰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이었죠. 그 뒤로는 어떻게 달라지셨나요?
나는 네가 원하는 것 대신에 내 생각, 내가 네게서 원하는 것을 생각했어. 이기적이었지. 네가 행복한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거기서 내가 달라졌어. 나는 잠시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삶을 조종하면서 그 사람과 내가 다 행복해질 수는 없어.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야’라고 생각했지.
 
 

 
 
내 아이들은 아빠를 어떻게 기억할까?  
writer 브레이디 랭맨
내 아버지는 오래도록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고생하다 올해 3월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1998년에 머물러 있는 장례식장 홈페이지의 절차를 그대로 복사해 자신의 장례를 치른다는 걸 알면 마음 아파하거나 진저리를 낼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다음 날 아침, 나는 장례식장 담당자에게 내가 부고를 써도 되는지 물었다. 그는 내가 성가시게 굴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날 오후 안에는 전달해줘야 했다. 젠장, 끝내주는군. 나는 보통 정신과 의사 사무실 의자에 누워 수십 년 동안은 생각해야 할 질문에 대한 답을 몇 시간 내에 써내야 했다. 나는 내 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나는 카페에 가서 노트북 화면을 한참 노려보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것이 18시간 전이었다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준비가 잘되어 있었다고 해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다. 내 뇌는 비통함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 상태에서 몇 문단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려고 애쓴다는 건 즉석에서 〈대부〉의 플롯 최종 버전을 쓰려는 노력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형편없는 예시를 찾아 여남은 개 읽었다. 그리고 실존적으로 무시무시한 위키하우 엔트리까지 보기 시작했을 때, 이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저 아버지가 가장 훌륭했던 날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썼다. ‘아버지가 농담을 시작하기 전에 짓곤 하던 미소’에 대해 썼다. 만약 아버지와 하루를 보낸다면 어떤 것들을 하게 될지 적었다. 차를 타고 기다란 샌드위치를 사러 가기, 자동차 라디오로 아바 음악 듣기, 집에 도착해서 함께 영화를 보며 웃기…. 당시에 나는 만약 모르는 사람이 그 글을 읽고 우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면, 아버지가 분명 자랑스러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그 카페에서 넋이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 부고를 읽는 건 그 어떤 글을 읽는 것과도 다른 경험이다. 나한테서 나온 말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쓴 글 같지도 않다. 그건 아버지다. 아버지는 폴란드계 교회의 무덤보다도 더 형편없는 그 웹사이트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글을 읽고 또 읽는다. 아버지가 살아나서 나타날 때까지 계속 읽는다.
 
[아이를 가지면 수명이 늘어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은 아니다.
- 2년: 자녀를 둔 60세 남성의 평균 기대 증가 수명
- 74주: 딸이 있는 아버지의 평균 기대 증가 수명
- 0주: 아들이 있는 아버지의 평균 기대 증가 수명







 
가끔 내 아이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writer 제프 고디니어
“그게 뭐예요?” 재스퍼가 물었다. “치즈야!” 내가 대답했다. 내 마음은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우리는 스페인풍 음식을 주로 파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있었다. 재스퍼는 얇은 만체고 치즈 한 쪽을 흘낏거렸다. 어쩌면 이걸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재스퍼는 치즈를 씹다가 몸을 앞으로 하고 침이 잔뜩 묻은 치즈를 테이블에 뱉었다. 내 속에서 희망은 사라지고 혼란, 난처함, 소리 없는 분노의 속삭임이 자리 잡았다. 재스퍼와 나의 관계는 복잡하다. 재스퍼는 겨우 네 살이지만, 이 녀석은 나를 열받게 하는 방법을 안다. 아이들은 그런 면에서는 텔레파시라도 할 줄 아는 것 같다. 재스퍼의 시그너처 행동은 내가 세심하게 애정을 담아 만들어준 음식이 담긴 접시를 받은 다음 곧장 바닥에 쏟아버리는 것이다. 물론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그 광경을 보면 웃길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나는 다르다. 곧장 바깥으로 나가서 현관 계단에 선 채 심호흡을 스무 번 하고 나서야 돌아올 때도 있다. 나는 아이가 넷이다. 첫째는 열아홉 살, 막내는 네 살이다. 육아에 대해 배운 것이 있다. 당신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라고 믿든 간에, 아이들은 당신을 당황하게 하며 당신의 고정된 세계관을 흔든다. ‘부모가 당신을 망쳤다’던 영국 시인 필립 라킨은 절반만 옳았다. 아이들도 부모를 망친다.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음식에 대해 글을 쓰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맛의 축제를 찾는 끝없는 탐구를 해왔다. 그런데 내가 편식쟁이의 아빠가 되다니. 숟가락에 해초, 피클, 살사, 훈제 생선을 얹어 재스퍼의 쌍둥이인 웨슬리의 입에 넣어주면 웨슬리는 웃으며 기뻐서 춤을 춘다. 그러나 재스퍼의 입맛은 특색 없는 유제품에만 맞춰져 있다. 우유와 요거트를 좋아한다. 아메리칸 치즈를 좋아하지만, 그보다 향이 진한 건 싫어한다. 흰 빵에 차가운 버터를 발라 먹는 걸 좋아한다. 떼쓰는 걸 보고 싶을 때가 아니라면 나는 재스퍼에게 토스트조차 해주지 않는다. 나는 재스퍼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지만, 이런 행동을 보면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다. 고디니어 집안이라는 배경에 비춰봐도 그렇다. 우리에겐 맛이 중요하다. 맛은 세상을 이해하고 감사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데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갔다. 만다린에서 양상추로 만든 컵에 담은 다진 비둘기 새끼 고기를 경험하는 게 주목적이었다. 고디니어 가문에서 편식은 대죄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게 뭐예요?” 어느 날 재스퍼가 물었다. “페피타야.” 재스퍼의 손에 슥 쥐어준다. 재스퍼는 입에 넣더니, 마법의 단어를 말했다. “냠냠.” 자기 아이를 보고 완전히 좌절한 어떤 아버지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앞으로 여러 해 동안 재스퍼와 나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은 나의 몫이다. 어쩌면 그 다리는 호박씨 하나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겠다.
 
 

 
 
왜 어떤 아빠들은  아이를 계속 낳고 싶어 할까?  
writer J. G.
동년배들 대부분이 은퇴를 앞둔 나이에도 계속 아이를 가지려는 남성들이 있다. 그 이유는 뭘까? 4명의 여성에게서 7명의 자녀를 둔 남아공의 전설적인 셰프, 프랜시스 맬먼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자녀를 7명이나 둔 이유는 무엇인가?
함께 성장하는 기쁨이 있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손을 잡아주는 과정이랄까.  
아이들이 몇 살인가?
세 살부터 마흔두 살까지 있다.  
일곱 번째 아이를 둔 당신은 첫째를 맞이했을 때의 당신과는 다른 아빠인가?
다행히 나는 아직 너무 늙지는 않았다. 나는 진화하고 변화한다. 스물네 살 때의 나와는 다른 아빠다. 이제 나는 예순여섯이고, 아이들 모두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이들은 나의 기쁨, 내가 나아갈 길, 내 피, 내 가장 진실된 거울이다. 그들은 의심과 이해의 경계에서 꽃과 음악으로 내 마음을 가장 아름답게 침식해나간다.
아버지로서 성공한 부분이 있다면?
내 생각을 비교적 쉽게 받아들이게 한 것 같다.  
아버지로서 실패한 부분은?
아이들 자신의 생각을 편안히 받아들이게 해주지는 못한 것 같다.
자녀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기도 하는가?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적들만이 진실을 말한다.
 
- 30.9세: 첫아이가 태어날 때 아버지들의 평균 나이
- 3.2%: 45~54세에 새 자녀를 보는 아버지의 비율
- 0.3%: 55세 이상에 새 자녀를 보는 아버지의 비율
 
 

 
 
아이들은 왜 내 취향이 구리다고 생각할까?   
writer 카벨 월러스
동료 아빠들, 혹은 아빠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작은 부탁을 하고 싶다. 당신의 대중문화 취향을 아이들에게 물려주려는 시도는 그만 하자. 올해 트위터에서는 소동이 일었다. (물론 소셜미디어상의 잔학한 인신공격들 중에서는 사소한 축이었지만, 내가 말하려는 요점을 잘 보여주는 케이스다) 코미디언 스티브 마틴이 1978년에 한 ‘투탕카멘 왕’ 스킷 영상이 갑자기 다시 회자되었고, 그걸 본 Z세대들은 다들 이렇게 반응했다. “…음. 그래서?” 그러자 수많은 사람(주로 중년 남성들)이 젊은 세대가 진정한 천재 스티브 마틴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정말 슬프다면서 야단치고 흐느끼고 징징거렸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슬픈 일인가? 19세인 사람이 스티브 마틴이 재미없다고 생각한다는데, 왜 우리가 그걸 신경 써야 하나? 무례하게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스티브 마틴이 그것 때문에 밥을 굶을까? 아니다. 그는 1억4000만 달러 자산가다. 그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져 내릴까? 스티브 마틴의 1977년 앨범 〈Let’s Get Small〉이 나오기 전에도 세상은 30만 년 정도 버텨왔다. 만에 하나 지금 인류가 끝장난다고 해도, 틱토커들이 투탕카멘 왕 영상을 싫어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빠와 아빠 역할을 하는 이들이 화가 난 것은 아마 이런 이유일 테다. 젊은이들이 스티브 마틴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들도 높이 평가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지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우리와는 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보는 사람에게 너무 쉽게 위협을 느낀다. 당신과 당신 취향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가? 나는, 내 취향은? 나는 현재 47세고 19세와 16세 자녀를 두었다. 나는 사춘기를 세 번 겪었다는 뜻이다. 첫 번째는 1990년대에, 두 번째는 2010년대에 겪었다. 내가 배운 것은 우리 X세대들은 우리 아이들보다 더 낫지도, 그렇다고 못하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 우리가 만들어낸 것은 의미가 더 깊지도 얕지도 않다. 그리고 또 하나. 아버지로서 내 역할은 내 아이들이 어떤 세계에 살고 싶어 하는지 알아내고, 아이들이 그런 세상을 구현해낼 수 있도록 내 자신의 징징거림을 억누르는 것이다. 당신이 2003년에 태어난 Z세대라고 생각해보라. 지구온난화, 감시 국가, 수십 조의 부채, 빌어먹을 코미디언 캐럿 톱을 만들어낸 세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하지만 얘들아, 어쩌면 너희들이 조지 칼린(코미디언)의 이 영상은 좋아할지도 모르겠는데….
-
카벨 월러스는 오클랜드에 사는 작가이자 팟캐스터다.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세상에 아이를 낳는 게 도덕적일까?   
writer 마크 오코널
아빠가 된 이후 최초의 기억 중 하나는 산부인과 병실에서 잠든 아내와 막 태어난 아들이 잠든 옆에서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은 것이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공포와 허무의 엄청난 파노라마가 눈앞에 펼쳐졌다. 전쟁, 기아, 해체되어가는 정치 질서, 점점 심해지는 소득 불평등,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무서운, 코앞으로 다가와 점점 심해지고 있는 기후 위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저렇게 작고 나약한, 소중한 존재를 이런 끔찍한 세상에 데려오다니? 그날로부터 9년이 흐른 지금, 내가 그동안 내내 존재적 절망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내 아들과 그의 네 살 난 여동생에 대해 내가 주로 걱정하는 것은 시시하고 일상적인 내용이다. (딸이 설탕을 너무 많이 먹고 있나? 아들의 스크린 타임이 너무 긴가?) 하지만 가끔 나는 더 깊은 미래에 대해, 지구와 인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시 한번 내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싶어 다시 그 아찔한 공포를 느낀다. 올해 3월, 아들 생일 직전에 나는 남극대륙 동쪽에 위치한, LA 면적에 육박하는 크기의 콩어 빙상이 바다로 무너져 내렸다는 소식을 읽었다. 일주일 정도 뒤에 UN 사무총장은 새 기후 보고서와 함께 “폭포처럼 쏟아지는 불가역적 기후 영향”이 우리를 “생존할 수 없는 세계로 향하는 길로 확고히 올려놓았다”는 경고 메시지를 냈다. 문명 그 자체가 우리 아이들보다 오래 살아남길 바라는 것은 이제 줄어들 수도 사라질 수도 없는 육아 고민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걸까? 이렇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걱정스럽고 불확실한 순간에 아이를 낳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건 도덕적으로 어떤 확신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을까? 근본적으로 근시안적인 행동의 장기적인 결과를 생각하지 않겠다고 이기적으로 거부해버린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나도 때로는 스스로를 보며 그런 이기적인 사람으로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불확실한 상황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데려왔다는 걸 기억해낸다. 나는 2022년에 육아를 시도하는 게, 예를 들어 페니실린이 발명되기 전의 그 어느 때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본디 세상의 자비에 자기 전부를 맡기는 것이다. 분명 아이를 낳지 않을 훌륭한 이유는 차고 넘친다. 아이들이 ‘살 수 없는 세계’를 물려받을 가능성도 물론 그중 하나다. 하지만 절망에 미리 무릎 꿇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아이를 이 세상에 데려온다는 행동은 늘 희망의 제스처였다. 아이를 위해서도, 세계를 위해서도 그렇다. 그리고 희망이라는 것 자체가 불확실한 형식이다. 잘못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 아이들 없이 살고 싶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희망 없이 살고 싶지는 않다. →
-
마크 오코널은 작가다. 근작으로는 〈Notes from an Apocalypse〉가 있다.
 

Keyword

Credit

    PHOTOGRAPHER JEFFREY WESTBROOK
    PHOTO 게티이미지
    TRANSLATOR 이원열
    ART DESIGNER 김동희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