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순이 카페 '롱플레이'와 인생의 풍요에 대해 남긴 말들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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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순이 카페 '롱플레이'와 인생의 풍요에 대해 남긴 말들

제주 구좌읍에 있는 이상순의 롱플레이를 찾았다. 그가 트는 음악을 듣고, 그가 내린 커피를 마시며, 우린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했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2.10.04
 
커피 맛있네요. 저도 요새 발효된 커피에 좀 빠져 살아요.
요즘에는 참 많죠. 발효뿐 아니라 원두가 거치는 프로세싱에 따라 종류가 수없이 갈리니까요. 내추럴이냐 워시드냐에 따라 갈리기도 하고, 발효 방식도 여러 가지가 있지요. 요새는 가향을 하기도 하고요. 저희 집도 리치 향이 나는 커피를 낸 적이 있는데 정말 신기해요.
그런 커피의 프로세싱 과정들이 와인의 제조 공정에서 많이들 따온다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무산소 발효 공법 등이 그렇죠. 커피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 중에 소믈리에나 와인 전문가가 많은 이유기도 하고요. 그게 결국은 섬세한 결을 읽는 취향의 문제니까요.
저희 세대 때는 보통 강배전 커피를 처음 접하면서 빠지곤 했어요.
그렇죠. 바리스타들이 막 생겨나던 초창기엔 강배전 스타일이 유행했죠. 지금은 옛날 스타일이 되었지만요. 여러 사람들이 진하고 구수하고 다크한 초콜릿 향이 나는 그 맛에 빠지기 시작했지요. 지금은 저도 그렇지만, 많은 분들이 산미를 찾아요. 산미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이 많은데 긍정적인 산미들이 있거든요. 아까 우리가 얘기한 생두의 발효법이 다양해지면서 생긴 산미들이 정말 다채로워요.
롱플레이는 정말 조그만 카페다. 예약으로만 손님을 받지만, 여전히 워크인 손님들이 문을 두드리곤 한다. 카페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바로 해변이 나온다.

롱플레이는 정말 조그만 카페다. 예약으로만 손님을 받지만, 여전히 워크인 손님들이 문을 두드리곤 한다. 카페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바로 해변이 나온다.

로스팅을 직접 하지는 않지요?
네. 아직 로스팅을 직접 하지는 않고 육지에 있는, 주로 서울에 있는 좋은 로스터들의 스페셜티 커피를 제주에 소개하고 있어요. 사실 제주는 카페가 정말 많은 곳이에요. 작년에만 제주에 400개의 카페가 생겼대요. 그런데 그중에서 비율로 따지면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는 곳은 상대적으로 적어요. 성수동에 가면 코너 돌면 스페셜티 커피 가게가 하나씩 있잖아요. 스페셜티 커피에 맛을 들인 분들이 제주에 와서도 스페셜티 커피를 드실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마음도 있는 거고요.
저도 얼마 전부터 싱글오리진 커피에 빠졌거든요. 그전까진 제가 이럴 줄 몰랐는데, 관광지에 가서도 꼭 스페셜티 혹은 싱글오리진 커피를 찾게 되더라고요. 누가 보면 정말 꼴값이죠.
맞아요. 한번 빠지면 그렇게 된다니까요. 지방 가면 그 동네 스페셜티 커피 가게를 검색해요. 물론 스타벅스 등의 대형 커피 체인도 나름대로 훌륭한 점이 있고, 또 스페셜티를 다루기는 하지만, 뭐랄까… 취향의 문제라고 할까요? 그런 곳을 찾아다니다가 괜찮은 커피를 만나면 또 기분이 좋거든요.
해외에 가도 커피를 찾지요.
팬데믹 전에는 해외에도 자주 나갔어요. 그런데 해외에서도 커피 가게를 검색해요.(웃음) 이제는 해외에 나가봐도 정말 우리나라만큼 드립을 잘하는 나라가 드물어요.
커피 취향이 음악이랑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려서는 AC/DC, 건즈 앤 로지즈 등의 하드록에 푹 빠졌던 사람의 취향도 언젠가는 점점 부드러워지며 섬세한 음악으로 귀결되기 마련이죠. 저도 비슷했고요.
그게 다른 분야, 예를 들면 음악에 깊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커피에 발을 들이게 되면 결국 커피에서도 확고한 취향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은 대중적인 카페를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 ‘이건 나만 아는 음악이야’라며 음악을 골라 듣는 분들은 커피도 스페셜티에 빠지는 경우가 많고요.
디제잉도 마찬가지죠.
똑같죠.(웃음)
남들이 보기엔 두 시간 동안 똑같은 음악만 트는 것 같을지 몰라도, 그 미세한 결을 읽어내면 그게 또 그렇게 즐겁잖아요.
또 그런 취향을 같이 공유하는 즐거움도 있죠. 전 그 기쁨이 커요. 제 아내한테도 소개해주고, 주위 사람들한테 소개해주고. 나랑 같은 취향에 빠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그러다가 결국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조금씩 모이게 되기도 하고요. 전 살면서 항상 그런 걸 추구해왔던 거 같아요.
그렇게 살면 인생이 풍요로워져요.
맞아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공동의 취미가 계속 생기면서 언제나 재밌죠.(웃음)
그런데 저도 비슷하게 느꼈지만, 어째서 한국에서 드립커피가 발달한 걸까요?
문화적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저희가 아침에 일어나서 국밥을 먹듯이 서양 사람들은 빈속에 커피를 마시죠.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셔야 하니까, 아침 7시면 커피숍들이 문을 열어요. 미국도 유럽의 여러 도시도 그렇죠. 커피 문화가 오래돼서 로스팅이든 블렌딩이든 실력은 굉장히 좋겠지요. 하지만 우리처럼 스페셜티를 섬세하게 내려 마실 시간은 없는 거예요. 대중은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를 마시죠. 정말 커피를 잘 다루는 로스터리라도 대중의 입맛에 맞춰야 하는 이유인 거예요. 일본도 드립을 잘하는 카페가 정말 많기는 한데, 강배전으로 천천히 드립하는 좀 옛날 스타일이 많아요.
맞아요. 일본은 생두의 가공이나 로스팅 자체보다는 드리핑이라는 쇼잉에 집중하는 곳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요즘에는 일본에도 좋은 로스터리가 많아졌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드립커피는 북유럽 쪽도 되게 강해요. 산미가 섬세한 약배전 원두를 쓰지요. 호주가 우리나라랑 되게 비슷하고요.
아까 제가 마신 커피는 프릳츠였어요. 지금은 프릳츠, 로우키, 센터커피 이렇게 세 개를 다루지요?
맞아요. 정말 잘하는 집들이에요.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즐거워요. 커피뿐 아니라 음악 등 다른 취향의 영역에 대해서도요.
지금 거의 한 30분 동안 커피 얘기만 했네요. 마음가짐은 거의 제주에 온 커피 선교사 수준인 것 같아요.
하하하.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런 걸 되게 좋아해요. 음악도 좋은 게 있으면 남들한테 막 알려주고, 들려주고 싶어요. 사실 제주에는 관광객들이 찾는 카페가 참 많아요. 쉬는 날이 많고 자유롭고 히피스럽거나 제주스러운 그런 카페들이 많죠. 그런데 성수동 카페 같은 도민들이 가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좋은 카페는 별로 없거든요. 도민들이 즐겨 찾는 카페는 제주스러울 필요는 없고, 오히려 서울에서 경험할 만한 커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전 이름도 참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했어요. 롱플레이(LP)라는 매체가 생겨나면서 8곡 45분 내외라는 ‘앨범’의 개념이 정립됐지요. 하나의 완성된 아이디어를 담는 형식을 결정했다고 할까요?
참 좋은 생각인데(웃음), 저는 그냥 LP 음반을 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롱플레이라고 지었어요. 해석이 더 좋았네요. 그런데 사실 LP가 롱플레이의 약자라는 걸 아는 사람도 거의 없더라고요. ‘오래 놀자’라는 의미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많고요.(웃음)  
카페에서 음악은 정말 중요하지요?
그럼요. 음악 취향이 안 맞는 카페에는 오래 있을 수가 없지요.
어떤 조건이 있으세요?
음악도 중요하지만, 음질도 중요해요. 음악이 대화나 커피 감상을 방해하면 안 되거든요. 그런데 그러려면 그 공간을 채우는 음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떤 점에서죠?
일단 공간 자체에 울림이 없어야 해요. 그래야 음악이 나와도 대화를 방해하지 않아요. 그런데 또 대화 도중에 ‘지금 나오는 음악이 뭐지?’라고 생각해서 음악을 좀 들어보려고 한다면, 음악도 들려야 해요. 근데 울림이 있으면 그게 힘들어요. 이 카페의 인테리어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바로 울림 없는 벽이에요. 보통 카페에 가면 창이 굉장히 크게 나 있는데, 유리는 소리를 튕겨서 울리게 해요. 또 요새 카페들은 층고가 높아서 시원한 느낌인데, 소리 측면에서 보면 역시나 너무 울리게 되죠. 이 공간은 층고도 낮고, 창도 작고, 벽의 재질도 매트하게 울리지 않는 것들로 마무리했어요.
스피커는요?
좋은 걸 써야죠. 지금 쓰는 건 모니터 스피커로 정평이 나 있는 앰피온에서 만든 아르곤 3S라는 하이파이 모델이에요. 하이파이 스피커지만 모니터링용 스피커를 잘 만드는 곳에서 만들어서 그런지 소리가 깔끔하고 밸런스가 좋아요. 드라마틱한 음향을 내려고 저음이나 고음이 강조된 스피커들과는 다르게 어느 영역대에서도 부스트 되는 구간이 없어요. 보통 하이파이 스피커들은 콘서트홀에서 듣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하다 보니 음장에 변형이 좀 생기거든요. 결과적으로 아까 말한 것처럼 소리를 작게 해도 균일하게 잘 들리고, 커도 부담스럽지 않아요.
연주도, 디제잉도, 감상도 마찬가지로 장비가 주는 흥분이 있지요.
그렇죠.(웃음)
커피에도 그런 게 있나요?
저야 뭐 다른 건 없고… 최고의 장비들로 다 준비해놨습니다.(웃음) 그런데 커피든 음악이든 장비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내리느냐, 즉 바리스타의 영역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게 좀 재미가 있죠. 음악도 안 좋은 장비로 훌륭하게 연주하는 연주자가 있잖아요. 그보다 제가 중점을 둔 건 저희 바리스타들이 일할 때 편한 장비인가였어요. 바리스타들이 하루 종일 커피를 내리는데, 동선이 꼬이거나 장비가 너무 복잡해서 다루기 힘들고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면, 오히려 커피 맛이 나빠질 수 있거든요.
그렇죠. 힘들면 세심함이 떨어지죠.
항상 바리스타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죠.
장비 얘기를 하다 보니 롤러코스터 1집이 떠오르네요. 방 안에서 문 닫아걸고 홈리코딩 한 앨범인데 명작이잖아요.
맞아요. 반지하 원룸이었죠.
‘윈도우 98’로요.
1999년이라 XP가 안 나왔을 때였으니 그건 당연하죠.(웃음) 그런데 그때는 오히려 모든 걸 컴퓨터로 하는 게 아니라 가능했어요. 리코더와 믹서 등의 하드웨어 장비들이 따로 있었고, 컴퓨터는 그저 그 녹음 파일을 정리하는 (시퀀싱의) 용도로만 썼으니까요. EQ를 만진다거나 컴프레서를 건다거나 등의 사운드에 관한 부분은 하드웨어로 다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작년에 발표한 앨범 〈Leesangsoon〉은 후배 가수들에게 극찬을 받기도 했어요. 특히 선우정아와 함께한 ‘네가 종일 내려’는 아주 사랑스러웠죠.
그랬나요? 누가 무슨 리뷰를 하고 피드백을 줬는지 살펴보질 않아서 몰랐어요.
음악을 들으면서 일부러 좀 더디게 작업을 하시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기술적으로 만들어내는 멜로디가 아닌 느낌이랄까요?
그렇죠. 더디게 작업을 해요. 전문 작곡가들처럼 작업을 빨리빨리 해낼 수 있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뭔가 와야 쓰는군요?
오랫동안. 준비 과정이 좀 길어요. 어떤 작업을 해야겠다 싶으면 내가 하고 싶은 스타일의 음악들을 조사도 좀 하고 계속 들어보면서 모드도 좀 바꾸고요. 음악도 들어보고 기타도 좀 쳐보고, 그렇게 좀 쌓이고 쌓이다 보면, 그때부터 만들기 시작하죠.
소설가 같아요. 소설가들을 인터뷰할 때면 소설을 쓸 수 있는 몸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거든요.
몸을 만드는 것도 그렇고, 정말 내가 원하고 하고 싶은 것, 내가 쓰고 싶은 곡이 뭔지를 찾아가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본격적인 장비들이 갖춰진 디제잉 부스. 테크닉스 턴테이블 두 대를 두고 음악을 트는 커피숍은 그리 흔하지 않다. 이상순의 뒤쪽으로 그가 세심하게 선택한 앰피온의 아르곤 3S 스피커가 보인다.

본격적인 장비들이 갖춰진 디제잉 부스. 테크닉스 턴테이블 두 대를 두고 음악을 트는 커피숍은 그리 흔하지 않다. 이상순의 뒤쪽으로 그가 세심하게 선택한 앰피온의 아르곤 3S 스피커가 보인다.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는 ‘대중적으로 만들었다’라고 간단하게 표현하기보다는 복잡한 터치와 복잡한 화음을 생략해서 이해하기 쉽게, 그러나 그 본질은 변하지 않게 청자를 배려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음악을 하면서 너무 어렵게 들리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소위 ‘있어 보이고 싶지’ 않다는 거죠. 어렵게 들려주고 싶지 않다, 사실 아까 우리가 얘기한 남미 음악들, 예를 들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주앙 지우베르투도 자세히 분석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게 코드 진행이 복잡해요. 그런데 아까 에디터님이 말한 대로 우리나라 카페에 계속 흘러나올 만큼 편하게 들리죠. 그런 걸 해보고 싶었어요. 그 앨범을 만들면서 그런 고민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비틀스도, 비치보이스도 그렇죠.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더욱 그렇네요. 아주 어려운 경지, 엄청 복잡하고 어려운데 편하게 들리는 경지에 성공하신 것 같아요.
어쨌든… 이렇게 됐습니다.(웃음)
참 부러워요. 커피도 그렇고, 디제잉도 그렇고, 특히 음악도 그렇고. 계속 새로운 걸 찾고 거기서 큰 기쁨을 얻는 것 같아요.
세상엔 음악이 너무 많아요. 음악을 찾아 듣는 기쁨은 제 삶에서 정말 큰 영역이에요. 요새는 디제잉 때문에 테크노 LP를 사면서 팝이나 기타 장르의 판도 계속 사거든요. LP로 사서 음악을 들으면서 예전에 어릴 때 느꼈던 기분을 다시 느끼고 있어요. ‘야, 이것도 못 듣고 죽을 뻔했구나’라는 생각도 하고요. (웃음) 살면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좋은 경험이 있잖아요. 언제 느껴봤어요?
어! 제가 다음번에 물어보려던 질문인데, 제가 받았군요. 전 어떤날 1집을 들으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고 소름이 돋고 그래요.
음악을 듣고 그럴 때가 많아요. 보통 사람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래서 제가 음악을 하고 음악을 듣고 디제잉을 해요. 그런 기분을 못 잊어서요. 삶의 풍요는 그런 데서 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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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박세회
    PHOTOGRAPHER 김성룡
    ASSISTANT 송채연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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