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훅 레코드의 정선이 말하는 '레이블의 조건'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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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훅 레코드의 정선이 말하는 '레이블의 조건'

정선은 그가 한때 몸담았던 ECM의 모든 앨범은 만프레트 아이허의 소닉 비전으로 관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정선이 레드 훅 레코드의 앨범들을 자신의 소닉 비전에 엮어낼 차례다.

ESQUIRE BY ESQUIRE 2022.11.30
 
정선은 지난 2020년 ECM의 프로듀서 자리를 그만두고 독립해 레드 훅 레코드를 설립했다. 팬데믹 시기를 겪으며 벌써 발표한 앨범이 두 장이다. 지난 10월 한국을 찾은 정선이 드림팩토리의 녹음실을 찾았다. 그는 콘솔 위에 놓인 렉시콘의 리모트 컨트롤러를 보고 “만프레트가 가장 좋아하던 것”이라 말했다.

정선은 지난 2020년 ECM의 프로듀서 자리를 그만두고 독립해 레드 훅 레코드를 설립했다. 팬데믹 시기를 겪으며 벌써 발표한 앨범이 두 장이다. 지난 10월 한국을 찾은 정선이 드림팩토리의 녹음실을 찾았다. 그는 콘솔 위에 놓인 렉시콘의 리모트 컨트롤러를 보고 “만프레트가 가장 좋아하던 것”이라 말했다.

성공한 프로듀서의 커리어를 안정적으로 이뤄가는 중이었는데, ECM을 나와 레이블 ‘레드 훅 레코드(Red Hook Records)’를 차린 이유는 뭔가?
앨범 제작에 뛰어들 때부터 나만의 레이블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셰프들이 ‘나만의 레스토랑’을 꿈꾸듯 말이다. 어느 순간 더 많은 창작의 자유가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고, 아이디어가 많아지고, 더 많은 프로젝트를 맡고 싶어졌다. 2020년은 ECM에 입사한 지 10년째 되는 해였고, 결국 나만의 것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레이블이 있다. 그 레이블들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나.
레코드 레이블은 소리의 정체성, 즉 소닉 아이덴티티(Sonic Identity)를 가져야 한다. ECM은 만프레트 아이허의 레이블이고 인도, 브라질, 재즈, 클래식, 합창 등 매우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만들지만, 이 음악들은 모두를 아이허의 소닉 비전, 혹은 소닉 아이덴티티로 관통해 묶을 수 있다. 레드 훅 레코드가 다른 레이블과 다른 점은 바로 나의 소닉 아이덴티티가 있다는 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모든 음반사가 이를 가진 것은 아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레코드 레이블은 아티스트들이 녹음은 물론 믹싱에 마스터링까지 끝내고 가져온  CD를 골라서 내주거나 라이선싱한다. ECM에서 우리는 스튜디오 녹음을 시작하기 1~2년 전부터 뮤지션들과 사전 제작 기간을 갖는다. 데모를 녹음해보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계속 음악을 발전시킨다. ECM이 그렇게 했고, 나 역시 레드 훅 레코드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이런 작업 방식을 고수해야만 소닉 아이덴티티가 생긴다.
당신의 소닉 아이덴티티와 만프레트 아이허의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이 가능할까?
내가 하고자 하는 건 음악가들을 한데 모아 스타일을 초월하는 그룹을 만드는 일이다. 재즈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일렉트로닉 뮤지션이 있고, 반대로 전자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재즈 음악가가 있다면, 또 이 두 뮤지션이 모두 충분히 훌륭한 리스너라면 서로의 스타일을 제쳐두고 서로의 음악에 반응하며 어우러지는 음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카심 나크비(Qasim Naqvi)와 두 명의 대가가 함께한 〈Two Centuries〉라는 앨범이 그런 방식으로 만든 음악이다. 카심은 젊은 전자음악가이고 트럼페터 와다다 레오 스미스(Wadada Leo Smith)와 드럼 연주자인 앤드루 시릴(Andrew Cyrille)은 재즈를 베이스로 하는 즉흥 연주자다. 이 앨범은 마스터 레벨의 두 연주자가 카심 나크비의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어떻게 대답하는지, 또 그에 따라 카심의 연주는 어떻게 응답하는지를 녹음한 것이다. 이런 프로젝트는 이들이 ‘대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재즈의 달인이지만, 그들은 특정 스타일을 초월해 그 너머를 볼 줄 알고 진짜 음악을 만들 줄 안다. 나는 ‘장르’라는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는 당신을 상자 안에 넣고 그 안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이 상자를 넘어서고 부수는 음악가들을 모아 작업하고 싶다. 카심은 1990년대에는 앤드루에게, 2000년대에는 와다다에게 음악을 배운 적이 있다. 이들의 관계가 두 ‘세기’에 걸쳐 있어 〈Two Centuries〉라는 이름을 지었다.
지금 진행 중인 다른 프로젝트가 있나?
발칸(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지역 출신 5명으로 구성된 여성 합창단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원래는 아카펠라 그룹인데, 이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오르간이나 색소폰을 추가하면 어떻게 들릴지 궁금했고,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2025년까지 10개 이상 프로덕션으로 일정이 꽉 차 있다.
당신의 인생에는 어떤 스승이 있었고,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하다.
이 얘기를 하려면 레이블의 이름을 ‘레드 훅’으로 지은 이유부터 설명해야 한다. 20대 후반에 나는 뉴욕 브루클린의 ‘레드 훅’이라는 동네에서 살았다. 당시 내가 레드 훅으로 이사한 이유는 단 하나였는데, 바로 레드 훅에 사는 베이시스트인 벤 스트리트와 가깝게 지내며 그에게서 뭔가를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집에선 다양한 음악가들이 한곳에 둘러앉아 음악을 듣고 음악에 관해 토론하며 내추럴 와인을 마셨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상대의 내공을 시험해보기도 했고, 서로의 취향을 확인해보기도 했다. 레드 훅에 살면서 나는 적어도 일주일에 서너 번 벤의 집을 찾았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리스너로서, 또 프로듀서로서 내 음악적 정체성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그 시기에 대한 헌정의 의미로 ‘레드 훅’ 레코드라고 이름을 붙였다.
누구나 살면서 그런 폭발적인 시기가 필요한 것 같다. 파리 아티스트들의 예술성이 폭발하던 시절 그 중심엔 살롱이 있고, 거트루드 스타인처럼 이들을 모으는 사람이 있었다.
맞다. 벤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 시절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하는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따던 때니까 그리 어린 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벤의 아파트에서 배운 것들에 비하면 내가 학교에서 배운 건 아무것도 아닌 듯 느껴진다.
벤을 어디서 만났나?
뉴스쿨(New School)에서 공부할 때 만났다.
그것으로 학비는 충분히 뽑은 게 아닐까?
어쩌면 학비를 낸 유일한 이유인지도….(웃음)
또 다른 스승이 있다면?
ECM의 만프레트 아이허다. ECM에서 일한 경험이 없었더라도 지금처럼 할 수는 있을 것 같지만, 프로듀서로서의 성장은 훨씬 더 느렸을 것이다. 만프레트가 어떻게 일하고, 음악가와 소통하고, 프로젝트를 기획하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뮤지션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방황하고 있을 때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배웠다.
전 세계에서 그의 바로 옆에서 일해본 사람은 10명이 안 될 것이다. 정말 운이 좋았다.
인정한다. 재밌는 건 만프레트를 내게 소개해준 이도 벤이라는 점이다.
이 정도면 뉴스쿨에 학비를 낸 보람이 있는 것 아닌가?(웃음)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웃음)
앤드루 시릴과 와다다 레오 스미스는 ECM시절의 역작 중 하나인 〈Lebroba〉에서도 함께했다.
앤드루와는 꽤 자주 음악을 만들었다. 사이드맨 혹은 리더로서 예닐곱 장의 앨범을 나와 같이 냈을 거다. 그중 하나가 〈Lebroba〉다. 와다다와는 〈Lebroba〉 이후 〈Two Centuries〉가 처음이며 앞으로 하나가 더 나올 예정이다.  
레드 훅이 낸 첫 앨범은 레전드인 마사부미 키쿠치(Masabumi Kikuchi)의 유작이다. 대체 어떻게 녹음했나?
그와는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Village Vanguard)에서 처음 만났다. 마사부미가 드럼 연주자인 폴 모티안(Paul Motian)과 함께 공연 중이었는데, 듣고 너무 놀랐다. 결국 콘서트가 끝나고 쫓아가 인사를 나눴고, 그 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정말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때가….
2010년쯤, 그가 죽기 5년 전이었다. 그는 매우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나도 고집이 센데, 아마 그래서 잘 지냈나 싶다.(웃음) 그는 폐암에서 한 번 살아남았던 사람이다. 돌보기 위해 그의 집에 자주 방문하고,  식료품도 사다 주고, 식당에도 같이 다니며 우정을 쌓았다. 당시 나는 ECM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그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 개별적으로 녹음을 진행했다. 뉴욕에 있는 스타인웨이&선즈의 피아노들을 리빌딩하는 공방 클라비에 하우스에서 정말 아름답고 놀라운 피아노 한 대를 발견했다. 이 공방에서 운영하는 작은 스튜디오에 마사부미를 데리고 가서 녹음을 했다.
쉽지 않았을 텐데.
그는 항상 고통스러워했고, 기억력도 그다지 좋지 않았으며, 예민한 뮤지션 특유의 칭얼거림이 있었다.  코냑을 좀 사달라거나 집에 두고 온 피아노 슈즈를 가져다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그가 피아노 앞에 앉으면 마술이 펼쳐졌다. 삶이 끝날 무렵의 그는 이미 매우 전위적이고 무조적인 연주를 하는 추상파 음악가가 되어 있었다. 당시 이 녹음 세션은 잘 알려진 기존 곡들의 요소에 그의 추상성을 결합하려는 것이었다.
나 역시 그 앨범에서 그런 점이 너무 좋았다. 추상적인 음들이 이어지다가 마치 해안선 위로 태양이 떠오르듯이 선명한 클래식 멜로디가 모습을 드러낸다.
맞다. 마사부미 역시 녹음 후에 내게 전화로 이 음반이 정말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이 음반이 발매되기 전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슬프다. 이 음반이 특별한 이유는 수록된 음악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우리 둘의 우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사부미가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마지막 음반이 레드 훅의 첫 프로젝트라 더욱 특별하고 아름답다.  
제목인 〈Hanamichi〉는 일본어로는 ‘꽃길’이란 의미지만, 다른 뜻도 있다.
일본과 이탈리아 혼혈이자 인류학자이기도 한 지인 이 제목을 제안했는데, 가부키 극장의 뒤쪽에서 무대까지 이어진 길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 중의가 앨범과 꼭 들어맞았다. 실물 음반에 포함된 라이너 노트에 제목에 대한 모든 내용이 들어 있다. 요즘은 모두가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기 때문에 이런 디테일을 놓치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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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박세회
    PHOTOGRAPHER 김성룡
    TRANSLATOR 김재현
    LOCATION 드림팩토리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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