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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로 고민하고 있다면, '탈모 샴푸'는 내려놓아야 하는 이유
설마 탈모 샴푸로 인생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지금 당장 그 생각을 버려라. 식약처가 ‘탈모 샴푸’의 기준을 낮춘 것은 오히려 탈모 샴푸로는 예방이나 치료가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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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만도 하다. 탈모는 놀림의 대상이 되는 몇 안 되는 질병이다. 미국의 한 어린아이가 대머리 삼촌에게 썼다는 레딧에 올라온 시구를 보자. “장미는 붉고, 바이올렛은 푸르고, 삼촌은 여전히 대머리 그리고 그건 절대 바뀌지 않아!” 물론 레딧발이니 주작 글일 가능성이 높다. 주작일지라도 대머리를 놀린다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온 한국인이 분노했던 가나와의 조별 리그 2차전을 떠올려보자. 한국 대표팀이 후반 추가 시간을 얻은 코너킥 찬스를 활용하기 전, 앤서니 테일러 주심은 휘슬을 불어 경기를 끝내버렸다. 모두가 앤서니 주심에게 욕을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건 그가 ‘대머리’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어느 사회에서고 대머리는 본능적으로 조롱을 받는다. 과도한 조롱의 발단은 어쩌면 자기비하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탈모 인구는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병적 탈모증’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24만3609명이었다. ‘병적 탈모’는 피부염이나 흉터로 인한 탈모로,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다. 문제는 이런 원인 없이 머리가 빠지는 경우다. 보통 노화나 유전이 원인인데, 보험 적용도 안 되고 병원을 찾지도 않기 때문에 숫자 파악이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증상이 심하지 않거나 잠재 가능성이 큰 모든 탈모인의 숫자를 전부 합치면 1000만 명에 달한다는 추정이 나온다. 국민 5명 중 1명꼴이다. ‘대머리’에 대한 조롱이 커지는 한편에는 어쩌면 불안함과 간절함이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탈모 초심자들이 빠지는 함정이다. 증상이 심하지 않은 탈모 환자의 대부분은 병원 찾기를 꺼린다. 대신 탈모 증상을 완화해준다는 제품에 의존한다. 특히 20~30대가 그렇다. “티가 날 정도는 아닌데, 최근 들어 좀 많이 빠지긴 했거든요.” 얼마 전 탈모 샴푸를 구입했다는 직장인 김정완 씨의 말이다. 그는 겉보기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만이 알 수 있는 탈모의 징후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불안하긴 한데, 그래도 왠지 병원 가서 치료 받거나 약 처방 받는 건 부담스러워서요.”
정완 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대한모발학회가 공개한 ‘탈모 관련 정보습득현황’ 조사에 따르면 탈모 증상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이들의 78.1%가 탈모증상 완화 제품을 사용해봤으며, 이 중 가장 많이 사용한 제품은 ‘샴푸’였다. 덕분에 탈모 샴푸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 업계는 탈모 관련 국내 시장 규모를 4조원대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중 탈모 샴푸 시장만 8000억원대에 달한다. 제품군은 엄청나게 늘어났고, 과거와는 달리 소위 ‘톱급’ 연예인이 제품 광고를 찍기도 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탈모 샴푸의 효능은 어느 정도일까? 아주 손톱만치라도 효과가 있을까? 탈모 인구가 지금보다 적었던 2011년의 <연합뉴스> 기사를 보게 됐다. 당시 대한피부과학회 총무이사였던 강동경희대병원 심우영 교수의 탈모를 주제로 한 인터뷰였는데, 심 교수는 탈모의 가장 큰 원인은 ‘유전’이며 부모나 조부모에게 탈모 증상이 없었어도 발현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와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참을 어려운 호르몬과 약제를 주제로 대화가 진전되다가, 인터뷰 말미에 탈모 방지 샴푸 관련 질문이 나왔다. 심 교수의 답변은 짧고 굵었다. “그런 제품이 유전자의 진행을 막진 못합니다.”
11년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분명 탈모 인구가 늘었고, 탈모 관련 제품 시장이 늘어난 만큼 기술도 발달했을 테니 달라진 게 있을지도 모른다. 줄기세포 배양액이나 뽕나무 등 각종 좋은 성분이 함유됐다는 제품도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몇 년 전 탈모 기능성 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에서 일했던 A씨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그의 이야기는 내 생각과는 달랐다. “사실 특정 성분이 일정 이상 들어가기만 하면 ‘탈모 샴푸’라는 이름을 쓸 수가 있어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식약처에서 고시한 탈모 방지 기능성 성분 6개를 정해진 함량에 맞춰 제조할 경우 별도의 임상 절차 없이도 ‘탈모 증상 완화 기능성 샴푸’라는 이름을 달고 제품을 출시할 수 있다. 식약처의 고시 기준은 덱스판테놀 0.1%, 살리실릭애시드 0.25%, 엘-멘톨 0.3%를 함께 함유한 샴푸, 또는 덱스판테놀 0.5%, 나이아신아마이드 0.3%, 비오틴 0.05%, 징크리피치온액 2%를 함유한 샴푸다.
너무나 어려운 용어인 건 둘째치고, 기준 함량이 지나치게 적으니 불신이 앞섰다. 랍스타 함유량이 0.003%이면서 ‘랍스타칩’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과자를 접한 뒤 생긴 피해의식 때문일까? “아뇨. 적게 들어간 게 맞아요. 사실 이 정도면 ‘물 반, 계면활성제 반’이라고 봐야 하는 거죠.” A씨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능성 화장품은 전 성분 표시가 의무다. 일반적으로 함량이 많은 순서부터 기재하는데, 대부분의 탈모 샴푸 구성 성분은 ‘정제수’와 ‘계면활성제’로 시작한다. 실제 기능성 성분은 중간 이후, 혹은 아주 뒤쪽에 표시돼 있다. 게다가 이 성분들 또한 탈모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뒤통수를 또 한 번 친다. 탈모 샴푸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위해 들어가야 하는 성분들의 효과는 ‘보습 작용’ ‘비듬 및 가려움증을 덜어줌’ ‘피지를 녹이고 각질 제거에 효능’ ‘피부 장벽 강화 효과’다. 쉽게 얘기하면 머리카락이 자라는 토양인 두피를 건강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성분이지, 그 땅에 머리카락이 자라게 해주는 성분은 아니라는 얘기다. 밭을 잘 간다고 파뿌리가 솟아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결국 탈모 증상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탈모 증상 완화에마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성분을 기준량 이상 섞기만 하면 ‘탈모 샴푸’라는 이름을 붙여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식약처는 왜 이런 헐렁한 기준을 둬서 탈모 샴푸 춘추전국시대가 열리도록 한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탈모 샴푸’ 자체가 효능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식약처는 ‘탈모증상완화에 도움을 주는 탈모 샴푸의 기능성 평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의약외품으로 분류되던 탈모 샴푸를 기능성 화장품으로 분류했다. 또한 A씨의 말처럼 고시된 성분과 함량을 지킬 경우 제품 허가를 내주도록 바꿨다. 탈모 샴푸가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는’ 제품일 뿐, 의약품이나 의약외품처럼 해당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 수단이 되지는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생각해보면 샴푸는 약제처럼 바르는 게 아니라 씻어내는 것이라서 성분이 두피에 오래 묻어 있기 힘들다. 게다가 두피 역시 외부 물질이 쉽게 통과할 수 없는 ‘피부’다. “아무리 좋은 성분이라도 씻겨 나가면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일정 부분 효과는 있겠지만 큰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고요.” 서울대학교병원 피부과 권오상 교수의 말이다. 바르는 연고와 씻어내는 샴푸는 다르다. 샴푸로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볼 수가 없다.
몇 년 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광고 페이지에서 접한 영상이 떠올랐다. 나라 잃은 표정의 대머리 남성이 며칠 샴푸를 쓰곤 갑자기 ‘풍성충’이 되어 자부심 가득한 미소를 짓는 내용이었다. 영상만 있는 건 아니다. ‘구매 일주일 만에 효과가 나타났어요!’라며 빈약한 비포 사진과 풍성한 애프터 사진을 비교한 리뷰 버전의 광고도 뜨곤 한다. ‘설마 이 정도겠어’ 싶으면서도 혹하는 것이 탈모인의 마음이다. 마음이 약해진 사람은 작은 유혹에도 발을 헛디딘다.
당연히 이런 광고는 규제 대상이다. ‘탈모 치료’ ‘탈모 방지’ ‘모발 두께 증가’ 같은 표현도 써서는 안 된다는 게 식약처의 입장이다. 하지만 쉽게 ‘탈모 샴푸’라는 이름을 따낸 업계는 이런 규제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9월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유통되는 53개 탈모 샴푸 제품 모두 허위·과대 광고를 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47%는 ‘탈락 모발 수 감소’라는 표현을 썼고, 38%는 ‘증모, 발모, 양모, 모발성장, 생장촉진, 밀도증가’ 같은 변칙 표현을 사용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또 SNS에서 접할 수 있듯, 체험 후기를 리뷰처럼 활용해 광고한 제품도 많았다. 이런 방식의 과대광고를 소규모 기업만 한 것은 아니다. 기능성 샴푸 업계의 눈먼 돈을 노리고 진출한 몇몇 대기업 제품도 여기에 해당됐다. 식약처는 2018년부터 매년 탈모 샴푸의 허위 및 과대광고를 적발해 조치를 취했으나 눈에 보이게 개선되진 않고 있다.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행정처분을 받은 탈모 샴푸 업체는 7곳 수준이다.
A씨는 자신이 일을 그만둔 것은 이런 상황에 ‘현타’가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말이라는 건 교묘하게 쓸 수 있는 거잖아요.” 그의 말대로, 식약처 규정에 따라 ‘탈모 치료’ ‘탈모 방지’ 같은 단어는 못 써도 ‘탈모 관리’ ‘탈모 케어’라는 표현은 쓸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효능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건데, SNS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는 것처럼 홍보를 했어요. 처음에는 판매량이 늘어나니까 신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렇게 돈을 버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식약처가 탈모 샴푸를 기능성 화장품으로 분류하고 과대광고를 적발하기 시작한 게 이미 2018년의 일이다. 앞서 언급했듯, 2011년부터도 전문가들은 탈모 샴푸에는 별다른 효능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럼에도 탈모 샴푸 시장은 해가 갈수록 더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과대과장 광고만의 힘은 아니다. 1000만 명의 간절함을 노린 시장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아직 약하게 탈모가 진행 중이거나 미리 예방하고 싶어 병원을 찾기는 애매한 소비자는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탈모 샴푸를 구매하는 길밖에 없는 걸까? 나름 긍정적인 소식이 있긴 하다. 한국에서 개발된 탈모 샴푸 제품이 해외 연구소를 통해 6개월간 임상실험을 진행한 결과 탈모 증상을 완화하는 수준이 아니라 탈모를 줄이고 모발을 성장시키는 효능을 입증받았다는 것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기능성 화장품’이 아니라 의약품에 버금가는 효과다. 하지만 해당 제품은 식약처로부터 의약외품은커녕 ‘기능성 화장품’ 분류도 받지 못했다. 식약처가 고시한 6개 성분이 아닌 독자 성분을 넣었기 때문이다. 6개 고시 성분이 아닌 새로운 성분을 넣어 기능성 화장품 허가를 받으려면 ‘인체적용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무척이나 까다롭다.
결국 고비용을 투자해 긴 연구 끝에 개발한 샴푸는 오히려 식약처 고시 성분만 겨우 충족해 출시된 제품보다 ‘탈모 샴푸’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식약처의 까다로운 규제 때문에 오늘도 탈모인의 머리카락이 빠진다며 화를 내야 할까? 아니다. 이런 아이러니한 기준을 고집하는 식약처에는 더욱 정당한 이유가 있다. “발모 기능이 추가된 샴푸는 의약품으로도 초기 단계인데, 화장품은 의약품보다 안전성을 더 고려해야 합니다.” 즉 의약품보다 쉽게 구입이 쉬운 기능성 화장품의 경우 유효성도 고려해야 하지만 안전성을 매우 신중하게 입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탈모 샴푸는 의약외품으로 분류할 수 없으니, 새로운 성분을 담은 제품은 구체적으로 안전성을 입증한 다음에야 기능성 화장품 등록을 해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한 탈모 샴푸의 경우 의약외품이나 일반의약품으로도 등록이 가능하다. 중국의 경우 지난 2021년까지 탈모를 막아준다는 온갖 상품이 떠돌아다녔으나 당국의 신규 법령 공포로 더 이상 쉽게 ‘탈모 샴푸’라는 표현을 쓸 수 없게 됐다. 당국이 지정한 인증 시험기관에서 평가를 받은 뒤 한 차례 더 심의를 완료해야 탈모 샴푸라는 표현을 쓸 수 있도록 엄격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식약처가 애초에 모든 탈모 샴푸를 의약외품에서 제외하고, 기능성 화장품에 ‘탈모 샴푸’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한 것은 이 세상에 머리카락이 나게 만드는 샴푸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그런 샴푸가 등장한다면? 식약처의 기준 자체에 오류가 생길 수 있다. 이럴 바에는 해외처럼 차라리 다시 의약외품 분류를 만들고, 당국이 인정한 임상기관을 설치해 관련 산업과 소비자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줘야 한다는 의견이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이 글을 읽는 탈모인들은 식약처로부터 거부당한 그 업체가 어디인지부터 궁금해질 것이다. 하지만 해당 업체의 주장도 100% 신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의 탈모 샴푸 임상은 제조사나 개발자가 직접 의뢰한 사설 임상 기관에서 시행되므로 그 결과에 대한 신뢰도에 문제가 있을 여지가 다분하다. 실제로 지난 9월 해당 업체는 식약처로부터 ‘과장광고’를 이유로 광고업무정지 3개월의 처분을 받았다.
새로운 물질과 기술을 결합한 탈모 샴푸가 등장하고 있기는 하나, 개중엔 과장광고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제품이 절대 다수다. 만약 진짜 탈모 샴푸가 등장한다면 전 세계가 떠들썩하게 외칠 테니 걱정하지 마시길. 기자 중에도 대머리는 비슷한 비율로 있으니, 모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알게 될 게 분명하다. 시장도, 관련 부처의 규제도, 1000만 탈모인에게 반가운 소식은 아직 전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불신한 채 머리카락을 놓아버릴 필요는 없다. 샴푸는 당신의 머리카락을 배신했을지 몰라도, 세상은 아직 당신을 버리지 않았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PHOTO 게티이미지코리아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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