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이별하지 못하는 이유

새롭게 채우려면 비워야 하지만,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열두 명의 남자들에게 물었다. 몇 년째 이별하지 못하는 물건에 대하여.

프로필 by 성하영 2023.01.01
 
1_ SAINT LAURENT JACKET
소비는 왜 끝이 없을까. 런던 빈티지 숍에서 반짝이는 핑크색 생 로랑 재킷을 처음 봤을 때 다시 한번 생각했다. 충동구매는 그만해야겠다는 다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옷은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났다. 비슷한 재킷이 있는데도 기어코 다른 점을 찾아가며 꼭 사야 할 이유를 만들었다. 선뜻 사지 못한 이유는 딱 하나, 빈티지치고 비싼 가격뿐. 가게를 들락거리며 입어보고 내려놓기를 세 번이나 반복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숍을 방문했을 때 주인장의 눈초리가 매서워 못 이기는 척 구입했다. 아니 어쩌면 그런 핑계와 명분이 필요했던 걸지도 모른다. 평생 모를 일이다. 사실 이 재킷을 입는 일은 거의 없다. 평소에 입긴 조금 화려해서, 오래 입기엔 살짝 불편해서, 또 어떤 날은 너무 추워서. 이걸 입을 특별한 날이 있을 거라는 기대에 차마 버리지도, 팔지도 못한다. 그래도 괜찮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으니까. - 모델 박경진
 
2_ EVARIST BERTRAN BOOTS
유학을 준비하던 차에 코로나가 터졌다. 하늘길이 막히고, 오래도록 준비한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됐지만 슬퍼할 겨를 없이 생각했다. 이렇게 된 거, 좋아하는 것들이나 무작정 만들어보자고. 그 무렵 신발을 한 켤레 샀다. 앞코는 적당히 뾰족하고, 발목에서 발등으로 떨어지는 라인이 유려한 에바리스트 베르트랑의 부츠. 여성 신발이지만 이상한 기대감으로 제일 큰 사이즈를 주문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발을 구겨 넣어보았으나 실패. 한껏 오그라든 발을 보고 있자니 내가 만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졌다. 곧장 부츠를 든 채 전국의 신발 공장을 돌아다녔고, 그렇게 바트라초톡신의 가장 기본이 되는 라스트 4077과 4078이 세상에 나왔다. 실패로부터 얻은 추진력으로 여전히 신발을 만든다. 4077과 4078이 2077, 2078을 지나 001W, 001M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될 때까지 수많은 샘플은 수거 대상이 되었지만, 이 부츠는 늘 가장 돋보이는 자리에 둔다. 기준과 이유는 없다.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 - 바트라초톡신 디자이너 최성욱
 
3_ MOLESKIN FRENCH WORKWEAR SET-UP
편하게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이 좋다. 친한 컬렉터에게 사온 프렌치 워크웨어 셋업이 딱 그랬다. 패션을 업으로 삼은 뒤 유니클로의 기본 티셔츠를 제외하고 이렇게 심플하며 디테일이 없는 옷을 산 건 처음이었다. 몰스킨 프렌치 워크웨어는 블루가 기본인데 빈티지 마켓에서조차 매물을 찾기 힘든 블랙을 가졌으니 오히려 특별한가 싶기도 하고. 부드럽게 몸에 착 감기는 맛이 좋아서인지 이걸 입은 날엔 일도 더 잘 됐다. 이 옷과 함께한 지도 벌써 5년째. 도시를 옮기는 큰 이사를 세 번이나 치렀지만 다 해진 이 옷을 늘 첫 번째로 챙긴다. 찢어지고 해져도 상관없다. 워크웨어는 응당 그래야 맞으니까. 아주 가끔 희끗희끗 구겨져 널브러진 모습을 보고 있으면 벽에 부딪히며 일을 배우던 초년생의 나 같아 마음이 영 간지럽다. - 투모로우 쇼룸 밀란 시니어 아레아 매니저 데이비드
 
4_ MAISON MARTIN MARGIELA DENIM PANTS
어느 날 방에 들어갔더니 침대 위에 쇼핑백이 놓여 있었다. 엄마는 아들 생각이 나서 샀다고 했다. 아들의 쇠고집을 아는 엄마는 중학생 때 이후로 옷을 사다 주는 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사주고 싶은 옷. 허벅지와 무릎에 가죽을 덧댄 마르지엘라 데님 팬츠는 엄마에게 그런 옷이었다. 다행히 나는 이 바지를 무척 좋아했다. 친구를 만나거나 클럽에 갈 때, 여하튼 멋을 내고 싶은 날에는 무조건 입었다. 그게 벌써 10년 전 얘기다. 시간은 흘렀고, 야속하게도 살이 쪘다. 옷 정리를 할 때마다 장롱 깊숙이 구겨져 있는 이 데님 팬츠를 꺼낸다. 기어이 발을 밀어 넣어봐도 허리 단추는 잠기지 않고, 허벅지는 부풀어 오른 소시지처럼 그저 흉측할 뿐. 커피 자국인지 술을 흘린 건지 알 수 없는, 이젠 지워지지 않을 오염도 군데군데 있다. 그럼에도 이 바지를 버릴 수 없는 건 엄마가 사다 준 마지막 옷이기 때문에. 그리고 나를 보며 기뻐하던 엄마의 표정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 <에스콰이어> 패션 디렉터 윤웅희
 
5_ CRAIG GREEN SCUBA JACKET
이 스쿠버 재킷을 2017년 런던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처음 봤다. 매장을 가득 채운 옷들 사이에서 유난히 빛을 내던 옷. 홀린 듯 발걸음을 옮겨 가격표를 확인했지만, 당시로선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는 금액이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돌아섰다. 몇 년 후 라프 시몬스, 헬무트 랭과 함께 크레이그 그린의 아카이브가 재평가되기 시작할 즈음 이 스쿠버 재킷이 다시 떠올랐다. 바로 검색창을 두드렸다. 가격과 상태, 여러 가지 조건들을 따져봤을 때 내 기준에 꼭 맞는 매물은 없었고 마지막엔 발매가의 거의 두 배까지 시세가 올랐다. 그런데 별안간 블랙 컬러 재고가 하나 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 아까워서 잘 입지도 못하는 옷을 이렇게나마 자랑해본다. 이 재킷의 가치는 계속 오르겠지만, 가격이 몇 배로 뛰더라도 팔 생각은 없다. 내 자식이 입은 모습을 봐야겠으니까. - 스타일리스트 이종현 
 
6_ VINTAGE PINK SKI GLOVE & BAG
물건으로 둘러싸인 집을 물끄러미 본다. 모두 나름의 사연이 있어 버리지 못하지만 기능을 하는 건 거의 없다. 이 스키 장갑과 가방도 그렇다. 미국의 외딴 동네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파랑보다 핑크를 좋아하던 남자애에게 밥 먹고 공만 차는 시골 생활은 꽤나 고역이었다. 한 번 눈이 내리면 무릎까지 쌓이던 동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엄마 손을 잡고 시내 로터리를 걷다가 크리스마스 전구 옆으로 물건이 잔뜩 진열된 초라한 앤티크숍 쇼윈도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열한 살이 쓰기에 턱없이 큰 핑크색 장갑이 너무 반짝여서.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생떼를 써 결국 얻어낸 장갑은 이제야 내게 꼭 맞는다. 평소에 끼진 않지만 잘 보이는 곳에 고이 모셔둔다. 영국 시골 빈티지 마켓에서 산 가방 바로 옆에. 언젠가 멋진 노인이 되면 핑크색 장갑을 낀 손에 이 가방을 들어야지. 일본의 조용한 시골 마을이면 근사하겠다. - 프리랜스 프로젝트 매니저 류경진
 
7_ OVERRUN NBA JERSEY
NBA 매거진이며 어퍼덱 카드 따위를 미친 듯 사 모으던 중학생 시절을 지나 자연스레 힙합, 그리고 저지에 눈을 떴다. 반짝이는 광택과 볼드한 그래픽, 어떻게 입어도 스타일이 확 사는 힙합의 상징. 카드와 매거진을 수집하던 오타쿠 근성은 저지를 대할 때도 여전했다. NBA, MLB, NFL 같은 브랜드를 모두 섭렵했지만 성에 차지 않아 오버런(ODM과 OEM을 생산 납품하고 남은 재고)에 손을 대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어느 날 웬 아저씨가 트럭에서 물건을 열댓 봉지씩 꺼내 까는 광경을 보게 됐는데, 거기엔 슈프림과 도나카란, 더블탭스, 나이키가 가득했다. “장당 3000원, 봉지에 골라 담아 네 장에 1만원”. 그때 아저씨가 팔던 게 바로 오버런 제품이었다. 그걸 닥치는 대로 쓸어와 싸이월드 클럽에서 판매한 게 내 무역 인생의 시작이다. 무엇이든 오래 가지고 있지 못하는 내가 21년을 함께해온 옷.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저지를 가끔 꺼내 입어본다. 눈에 젊은 날의 치기가 어린다. - 꾸까 부대표 임주엽
 
8_ VANS GYM SACK
2019년 9월 6일, 런던 워털루에 있는 반스 스케이트 파크. 이 가방을 처음 만난 순간을 아주 또렷하게 기억한다. 친구 집에 머무르며 사귄 스케이터들과 하우스 오브 반스 이벤트에 방문한 날이었다. 파크에 들어서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뒤이어 반스의 산타클로스 ‘스티브 반 도렌’이 나타났다. 자기 몸집만 한 박스를 몇 개나 들고서. 이 짐색은 그에게 받은 9월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그날 이후 나는 여행을 마칠 때까지 거의 매일 이 가방을 들었다. 나무에 걸려 뜯어지고, 위스키에 흠뻑 젖고, 강아지 이빨 자국으로 엉망이 되어도 괜찮았다. 내가 좋아하는 바르셀로나 환타 뚜껑과 에스트레야 맥주 라벨로 잘 봉합하면 그만이니까. 런던과 바르셀로나, 파리, 낭트, 이스탄불, 쾰른, 코트디부아르에 이르는 여정과 추억이 깃든 가방. 더 고생시키면 정말로 이별해야 할 것 같아 이젠 들지 않지만 버릴 수도 없다. 그 험한 시간을 잘 버텨줘 감사할 따름이다. 아, 그리고 스티브 반 도렌에게도. - 아티스트, DJ 김한
 
9_ RICK OWENS HIGHTOP SNEAKERS
갓 패션에 눈을 떠 닥치는 대로 입어보던 때가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패션을 이해하고 싶어서. 그럼에도 쉽게 다가설 수 없는 난공불락의 브랜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릭 오웬스였다. 지금은 없어진 도산공원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옷걸이를 넘기며 ‘이런 옷은 대체 누가 입는 거야’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모든 피스가 어둡고 혼탁하고 기괴했다. 하지만 릭 오웬스는 이미 패션계에서 공고한 이름. 내가 모르는 곳에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투지를 더 불태웠다. 큰 결심으로 아이코닉한 배기팬츠를 사보았지만 내가 가진 옷들과 썩 어울리지 않아 하이톱 스니커즈도 구매했다. 여전히 뭔가 부족했다. 그래서 티셔츠를, 결국엔 재킷까지 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갖춰 입은 후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던 세계. 다른 신발은 다 버려도 릭 오웬스 스니커즈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 신발이 치열한 싸움의 트로피이기 때문이다. - 디지털 크리에이터 런업
 
10_ BATTENWEAR T-SHIRT
서핑에 죽고 서핑에 살던 한철이 있었다. 친구 외갓집이 양양 죽도해변 앞이라기에 바람을 쐬러 간 게 화근이었다. 여름 바다나 볼 생각으로 찾은 양양에서의 첫 서핑은 당시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처음인데 곧잘 타네?” 강사 형의 말을 듣고 ‘아무래도 서핑이 내 길인가 보다’ 싶어, 좋다는 롱보드와 웨트슈트를 산 다음 죽도해변 앞에 허름한 민박집 월세방을 구했다. 그리고 파도가 좋으면 씻지도 않고 달려나가 보드를 탔다. 파도가 좋지 않은 날에도 보드 위에 누워 둥둥 떠 있으면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그다음 달엔 발리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오로지 쇼트보드를 사기 위해서. 보드를 사고 나니 수중에 10만원이 남았는데, ‘Good surfing!’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눈치 빠른 직원은 그 티셔츠가 마지막 한 장 남은 거라고 했다. 쇼트보드와 티셔츠 한 장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길엔 배가 고픈 줄도 몰랐다. 어서 양양으로 가 파도를 탈 생각에. 선크림이 튀고, 바닷물에 젖고 마르기를 반복하며 나와 함께한 이 티셔츠는 스물다섯, 내 뜨거웠던 시간의 증인이다. - 포토그래퍼 이준경
 
11_ ACNE STUDIO SNEAKERS
2015년 즈음엔 슬림한 슬랙스에 큼지막한 상의를 입는 게 유행이었다. 신발은 물론 화이트 스니커즈. 전형적인 놈코어의 모습. 나는 여기에 약간의 변주를 더하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트리플로였다. 평소 같으면 아동용 운동화냐며 코웃음 쳤을 벨크로 디테일도 아크네 스니커즈에 붙어 있으니 괜히 쿨해 보였다. 문제는 가격. 그때까지만 해도 유명 브랜드 제품은 사본 적 없던 내게 60만원은 꽤 큰돈이었다. 조금이라도 아껴보자는 일념으로 중고 매물을 새로고침 하다 결국 보나파이드에서 상태 좋은 제품을 40만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거금을 투자한 만큼 최대한 본전을 뽑아보려 한동안은 매일같이 이 신발만 신었다. 하루라도 더 신기 위해 슈구도 꼼꼼히 발랐다. 이제는 많이 닳고 스타일도 바뀌어 세상 빛을 못 본 지 오래. 조금 손보면 다시 신을 수도 있겠지만 그대로 둔다. 하이엔드 브랜드를 첫 경험하던 설렘을, 어리숙했던 20대 중반의 추억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싶어서. - 옵스큐라 비주얼 디렉터 장정일
 
12_ VINTAGE GAKURAN
‘패션’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검색해본 열여덟 살, 스스로 옷을 사 입고 싶어 알바를 시작했다. 한 푼 두 푼 모은 쌈짓돈을 들고 시장으로 향하던 길과 한껏 들뜬 마음을 여전히 기억한다. 수중의 돈은 한없이 부족하고 사고 싶은 건 많던 내게 구제 시장은 거대한 보물창고나 다름 없었다. 그때부터 군대를 전역할 때까지 동묘와 광장시장을 밥 먹듯 들락거렸다. 가격을 흥정하는 스킬도 쌓여서 마지막 즈음엔 10만원에 여덟 벌을 사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때쯤 친했던 가게 형들에게 비싼 돈을 주고 샀던 이 가쿠란은 유독 특별하다. 이 옷을 입으면 왠지 스스로가 근사한 모델처럼 보였으니까. 더 이상 구제 시장에 가지도, 가쿠란을 꺼내 입지도 않지만 이 옷을 보면 모델 아카데미에 다니던 6년 전의 내가 떠오른다. 이 옷을 쉽게 버릴 수 없는 이유다. - 모델 고웅호

Credit

  • EDITOR 성하영
  • PHOTOGRAPHER 정우영
  • ART DESIGNER 주정화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