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배정훈 PD를 〈그것이 알고 싶다〉 PD로만 알고 있었는데, 인터뷰 준비하면서 보니 15년 경력 동안 꽤 다양한 프로그램을 해오셨더라고요. 시사 교양 프로그램인 〈당신이 혹하는 사이에〉라거나, 다큐멘터리인 〈남겨진 미래, 남극〉이라거나.
SBS 안에서는 그때부터 교양과 예능이라는 경계가 좀 많이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인적 교류도 있었고, 한동안 통합도 됐었고요. 그런 게 어떻게 보면 지금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친 것도 같아요. 〈국가수사본부〉는 경찰 수사 현장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지만 ‘시사교양이다’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잖아요. 진지한 사건이고 분노도 하게 되는데, 한 에피소드 안에서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는 부분도 있고. 사실 세상만사가 다 그렇잖아요. 저는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다 담아내는 게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어떤 마음으로 일하셨을까 궁금했어요. 여타 PD 업무보다 좀 많은 걸 요구하는 프로그램이잖아요. 감춰진 진실을 집요하게 파헤쳐야 하고, 아무 기약도 없이 무작정 이 사람 저 사람 찾아가 몇 번이나 취재 요청을 해야 하고, 위해나 고소의 가능성도 무릅써야 하니까요. 그렇게 몇 개월을 파헤쳐도 방송을 할 수 있는 결과물이 만들어질지 확신할 수도 없고.
사실 결과물을 못 만드는 프로젝트가 더 많죠. 저도 지금 돌이켜보면 다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고 느껴요. 그때는 저도 젊고 체력도 좋았고 화도 많았으니까. 불혹을 넘기고 나니 이제 다시 그렇게 하라고 하면 솔직히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해요. 사실 얼마 전에 SBS 인사권자에게 〈그것이 알고 싶다〉에 다시 가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때 제가 분노했거든요. “차라리 휴직을 하겠다”라고요. 그러니까 “그래, 너는 그런 말 할 만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적성 측면에서 보자면 그래도 배정훈 PD는 잘 맞는 편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힘든 프로그램을 5년 넘게 하고 팀장까지 맡으셨으니까.
제가 그만둘 때쯤 지인들도 그랬어요. 제가 〈궁금한 이야기 Y〉부터 치면 거의 8년을 그런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해왔으니 잘 맞는 편 아니냐고요. 그런데 사실 저와는 정말 안 맞는 일인데 그걸 꾹 참고 해온 거거든요. 그에 비하면 〈국가수사본부〉는 정말 잘 맞는 편이죠. 〈그것이 알고 싶다〉 때는 늘 낯선 사람 집에 가서 노크해야 하고, 불편해할 거란 게 뻔한 질문들을 해야 하고… 생각해보면 그런 게 적성에 맞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것이 알고 싶다〉 PD들, 지금 하고 있는 후배들도 참 대단하죠.
지난 인터뷰들 보면서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쉴 때도 사건 생각을 떨칠 수가 없고 밤잠을 설칠 날이 많겠구나. 말 그대로 ‘헌신’을 해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겠구나.’
저는 제가 상당히 유순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부모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너는 늘 뭐가 이렇게 그냥 넘어가는 법 없이 자꾸 따지고 드냐고. 〈그것이 알고 싶다〉를 하면서 사람이 좀 예민해진 구석이 있겠죠. 원래는 제가 착한 사람인데.(웃음) 26세에 이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배정훈과 지금의 저는 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어디 지방 같은 데 놀러 가도 저는 늘 그 지역의 사건 사고가 먼저 떠오르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여행을 하면 그 지역의 맛집, 멋진 풍경, 그런 얘기부터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늘 여기서 무슨 사건이 벌어졌는지, 그런 얘기만 하니까 여자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이제 좀 거기서 나오라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즐거운 생각도 좀 하고, 이제 이 공간들도 좋은 기억으로 다시 채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죠. 저도 오랜만에 고등학교, 대학교 때 친구들 만나서 주말에 캠핑이라도 하고 있으면 기분이 묘해요. 다들 화목하게 살고 있는 걸 보면 ‘아 내가 잘 가고 있는 게 맞나’ 싶고… 제가 갑자기 인생 상담을 하고 있네요.(웃음)
이야기를 들으면서 〈국가수사본부〉 3화 마지막 부분이 스쳤어요. 엔딩 크레디트에 평택경찰서 강력2팀 형사분이 아내와 통화하는 음성이 나오잖아요. 아이들 자냐고, 오늘 들어가자마자 뻗을 것 같다고, 지금 씻고 싶어 죽겠다고. 그분들도 사실 좀 더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길을 택하신 거니까요.
형사님들과 일하면서 실제로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그쪽도 우리도 참 인생이 쉽지 않다고.(웃음) ‘저 사람 인생도 참 힘들겠다’ 하고 서로를 좀 측은하게 보는, 응원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어요.
제 느낌인지 모르겠는데, 요즘 인터넷 댓글을 보면 경찰의 능력과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국가수사본부〉를 보면서 배정훈 PD는 그게 좀 아쉬웠던 것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요.
정확합니다. 사실 뭐 공권력이니까 국민으로부터 감시받아야 하고 공정성을 의심받아야 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죠. 비판도 받을 수 있고요. 그런데 그게 일종의 여론이 됐고, 저도 그런 여론을 형성하는 데 일조한 것 같다는 아쉬움, 혹은 자기반성 같은 게 있어요.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항상 경찰관이 잘못하는 것만 보도하고 그런 이야기만 담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들여다보면 경찰관들이 어떤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해결하는 케이스가 훨씬 많잖아요. 국가 권력을 칭찬한다 그러면 좀 이상한 일이 되겠지만 적어도 저분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있는 그대로 다뤄보자, 그렇게 시작하게 된 거죠.
〈궁금한 이야기 Y〉 하시던 때는 취재를 하다가 오히려 경찰서에서 취조도 당하고 쫓겨나기도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신뢰를 바탕으로 협업을 할 정도가 됐어요.
진짜 재미있는 게, 그 에피소드 ‘원주 사랑의 집’ 취재할 때 가택침입으로 저를 취조하셨던 경찰관이 〈국가수사본부〉에 나와요. 강릉경찰서에 가니까 형사과장으로 계시더라고요. ‘아 저 사람 내가 어디서 봤는데’ 했더니 그분이 먼저 그래요. 나 기억 안 나냐고. 너 그때 나한테 조사받지 않았느냐고.(웃음)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만난 난관 중에 경찰 섭외가 쉽지 않은 부분도 있었는데, 강릉경찰서는 흔쾌히 문을 열어주셨죠. 이번에는 조사받을 일 없게 사고 치지 말고 잘 제작하라는 얘기를 하시면서.
〈국가수사본부〉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사건 재연 일절 없이 형사들의 수사 과정을 바로 보여준다는 점이었어요. 물론 시놉시스에 그렇게 쓰여 있긴 했지만, 그렇게 카메라가 형사들을 비집고 집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사건 현장일 줄은 예상 못했던 거죠.
쉽지 않았어요. 방금 말했다시피 일단은 경찰 쪽과 협의가 되어야 하고, 타이밍 문제도 있었죠. 사건이 벌어져도 프로그램 성격상 저희가 다른 지역에 있으면 촬영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여러 팀으로 나누어서 사건들, 주인공이 될 경찰관분들을 찾아서 전국을 헤매고 다녔죠. 사실 저희 제작진의 가장 큰 고충은 우리나라 경찰들이 너무 사건을 금방 해결한다는 거였어요. 사건이 발생하면 보통 몇 시간 안에 다 잡아내니까 만들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좀 천천히 잡아달라고 할 수도 없고.(웃음) 그래서 지금 만들어진 회차들은 그런 조건이 다 맞는 소수의 사건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시놉시스를 읽고 막연히 미국의 〈Live PD〉 같은 경찰 보디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상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보니까 현장감을 추구하면서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게 하는 오락적 프로그램으로 소비되는 것에는 선을 그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OTT인 웨이브에서 프로그램을 한다고 했을 때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TV에서 만들 때보다 훨씬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런데 결국 저는 오히려 더 가리는 쪽을 택했죠. 피해자의 마지막 모습 같은 걸 보여주는 게 이 다큐멘터리의 목적이 아니었으니까요. 그게 없어도 충분히 상황 설명이 되고 상상할 수 있다면 보여줄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사실 ‘이게 무슨 장면이지?’ 의아할 정도로 가리게 된 부분도 있어요. 뭔가를 모자이크해서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TV 프로그램이었다면 그냥 큰 고민 없이 해오던 대로 했을 수도 있는데, 역설적으로 OTT라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함께 토론할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모자이크도 많지 않고 ‘비프(beep, 욕설이나 실명을 가리는 ‘삐’ 소리 처리)’도 잘 쓰지 않았더라고요. 오히려 ‘뮤트(mute, 음소거)’를 썼죠.
사실 거기에 대해 저희가 세운 규칙이 있었어요. ‘피의자와 관련된 건 비프를 넣고, 그 외의 것들은 뮤트 처리를 하자.’ 물론 비프와 뮤트가 어떤 의미를 갖느냐에 대해서는 제작자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그랬거든요. 피의자의 욕설 같은 걸 가리는 데 사용됐던 부정적 신호를 피해자의 이름에 동일하게 사용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막도 다르게 처리했고요. 피의자와 관련된 건 위에 테이핑을 하고, 피해자와 관련된 정보는 지우는 식으로. 그게 사실 보는 사람이 딱 인지하지는 못하더라도 무의식에 쌓이거든요. 물론 누군가는 그게 뭐 중요하다고 그런 고민까지 하는가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저한테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A부터 Z까지 하나하나 다 다시 생각해보고 토론해볼 수 있었으니까. 정보를 요약해 제공하는 자막, 소위 ‘예능형 자막’ 같은 요소도 그 결과로 다 뺐고요.
저는 정보를 요약하는 자막이 없다는 점이 굉장히 좋았어요. 현장에 도착한 형사들과 동일한 인지 상황에서 시작해 수사의 진척에 따라 사건의 전모를 알아나가게 되니까요. 적절한 전달에 대한 고민이 오히려 프로그램을 새롭고 재미있게 만든 측면이었네요.
맞아요. 내레이션도 빼고 그냥 들리는 오디오에 대한 자막만 입혔죠. 그건 청각장애인도 프로그램을 충분히 볼 수 있게끔 하기 위한 부분이었고요. 제가 ‘배리어-프리’라는 형식에 관심이 생긴 건 몇 해 안 됐지만, 그 표현 그대로 그분들도 장벽 없이 이 프로그램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각 지역 형사들의 방언 같은 것도 가급적 어투 그대로 넣으려고 했죠.
특히 3화가 재미있었던 게, 처음에는 강도 상해 사건인 줄 알았던 게 점점 마약 유통망과 지역 조직폭력배 검거로까지 번지잖아요. 사건의 규모가 미리 뉘앙스 정도로도 제시되지 않으니까 무심코 당긴 줄기에서 고구마가 끝도 없이 나오는 것처럼 감탄하게 되는 측면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어떨 때 보면, 현실이 더 영화 같아요. 사건이 실제로 그렇게 전개됐고 저희는 그걸 충실히 기록하기만 했는데 이야기가 만들어진 거잖아요. 물론 그런 이야기를 만나는 데까지 시간이 좀 많이 걸리긴 하지만요.
내레이션이나 자막 같은 요소를 통해 제작자의 주관대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식으로 편집됐다면 그런 재미가 없었겠죠. 아, ‘재미’라는 말이 〈국가수사본부〉 같은 프로그램에는 좀 부적절한 표현이려나요.
그러게요.(웃음) 분명히 이 프로그램이 주는 감흥이 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도 무의식적으로 재미있다, 흥미롭다 식으로 말을 해요. 그러다가 번뜩 그렇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죠. 저희 프로그램 매 회차 시작 부분에 자막으로 고지하듯이 모든 것이 실제 상황이니까요. 피해자들과 피해자들의 유가족이 존재하고, 저희가 그들과 만나서 대화도 하고 공감도 하고 그랬던 사건들이니까. 그래서 저는 아직도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찾아주세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