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X도쿄 다르고도 닮은 두 도시 이야기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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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X도쿄 다르고도 닮은 두 도시 이야기

김영준은 일제강점기 서울의 확장에 대해 연구하며 도쿄와 서울의 모습을 수집한다. 그가 보내온 닮고 다른 서울과 도쿄의 모습은 도시 경관의 변모가 얼마나 유기적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3.04.01
 

1. 고가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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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연장 300km를 훌쩍 넘기는 도시철도가 종횡무진하는 서울이지만, 이 중에서 ‘고가철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적다. 한강을 건너는 교량을 제외하면 시가지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고가철도는 1, 2, 4, 7호선 그리고 경의중앙선의 일부 구간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의 도시철도는 1호선 일부의 지상 성토구간(흙을 쌓아 올린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 서울이 이렇게 지하철 위주의 도시가 된 데에는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도시철도망 건설이 시작되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기존 간선철도망의 도시철도화를 추진했던 일본의 선진 대도시들은 장거리 및 화물열차와 통근열차를 별도로 분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시가지를 관통하는 고가철도를 만들었고 다수가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같은 시기 일제강점기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던 서울에서는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없었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인구가 300만을 넘어서 400만을 돌파한 시점에 대대적인 도시철도망 확장이 이뤄지기 시작했지만, 이미 폭발적으로 확장된 서울의 시가지에서는 지형적 제약이 있는 구간이나 말단부를 제외하고는 지하철 시공이 불가피했다. 1960년대 이후 선진국에서 환경권과 결부되어 논의되기 시작한 고가 반대론 또한 지하화에 무시 못 할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많지 않은 서울의 고가철도는 그저 도시철도를 받쳐내기 위한 구조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물론 하부에 도로가 통과하거나 창고 및 일부 공공 공간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다수 고가는 일상과는 먼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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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도쿄에 가면 시내를 종횡무진하는 고가철도에 놀라곤 한다. 도쿄 시내 최초로 고가철도가 들어선 것은 1908년이며, 이후 1920~1930년대 사설 철도(private railway) 회사들의 대규모 사세 확장에 따라 도쿄 시내 전역에서 고가 위를 달리는 전철을 쉽게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외곽으로 갈수록 도시화와 고가철도 부설이 거의 동시에 진행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가철도와 주변 시가지 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형성되었으며 이는 고가 하부 공간의 활용으로 이어졌다. 도쿄 도심 한복판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규격화된 벽돌조 고가철도 특유의 아치는 상업 공간으로 활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도심 한복판이라는 거대한 수요에 부응하듯이 아치 하부에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자카야, 라멘, 일본식 중화요릿집 등이 무수히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이는 곧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고가 밑 먹자골목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도쿄 여행에 어느 정도 익숙한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신바시(新橋)나 유라쿠초(有樂町) 인근의 벽돌조 아치 밑 이자카야에서 도쿄의 직장인들과 부대끼며 야키토리와 맥주를 먹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퇴근길에 집 근처 역 아래에서 간단하게 식사와 반주를 곁들이는 일본 대도시인들의 일상은 바로 이런 고가철도에서 유래한 것일 수도 있다.  
 

 

2.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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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편의점은 규모가 다양하다. 대형 매장의 경우 중형 슈퍼마켓과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의 넓이를 자랑하지만, 주택가 골목길에 위치한 소규모 매장은 20세기의 구멍가게와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라면 20평이 넘는 매장과, 10평이 될까 말까 한 매장이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서울시의 통계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서울 시내에서만 약 3만 곳 이상의 구멍가게가 편의점으로 전환되었으며, 2021년 기준 서울의 편의점 개수는 총 8493개로 인구 1000명당 1개소 수준에 이른다. 사진 속 편의점 또한 골목길 구멍가게에서 전환된 점포이다. 이마저도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3%가량 감소한 수치라고 하니, 2020년대 서울 사람들은 편의점의 도시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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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편의점은 서울과 비교하면 일단 대부분이 더 크다. 일본 대도시 여행을 처음 가본 이라면 ‘일본의 편의점은 왜 이렇게 커?’라는 의문을 많이 가져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아무리 작은 점포라도 30평 이상의 넓이인 경우가 절대다수이며, 한국 같은 구멍가게 수준의 10평 내외 매장은 전철역 구내 혹은 오피스 빌딩에 세 들어 입점한 경우에 한정된다. 그래서인지 도쿄의 편의점은 서울의 편의점과 다르게 대로변에 폭 5~10m에 이르는 거대한 간판을 내걸고 존재감을 과시하는 경우가 많다. 2020년대에 준공된 도심의 초대형 오피스 빌딩 1층에도 고급스러운 외관의 편의점이 입점한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더불어 교외가 아닌 도쿄 시내 한복판임에도 미국의 편의점같이 널찍한 주차장을 보유한 독립 점포 형태의 편의점 또한 도쿄에서는 비교적 자주 눈에 띈다. 이렇게 최소 요구 면적이 서울보다 훨씬 넓기 때문인지 도쿄 23구 지역의 편의점 개수는 5000곳이 채 되지 않는다. 참고로 서울은 8000곳이 넘는다.
 

 

3. 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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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드넓기 그지없는 한강공원 고수부지와 강가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빌딩들이 이루는 스카이라인이 떠오른다. 하상계수(연간 최소 유량과 최대 유량의 차)가 엄청나게 큰 한강은 예부터 드넓은 모래톱이 강가에 형성되어 있었다. 겨울이 되면 강물이 마르고 여름이 되면 범람하기를 반복하던 한강은 1980년대 중반, 88 서울올림픽을 대비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났다. 고수부지(floodplain)는 말 그대로 물에 잠기도록 계획된 땅이다. 아름다운 강변 풍경은 서울의 명소로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만, 6~8월의 장마 및 태풍철이 되면 흔적조차 남지 않고 잠겨버리는 고수부지의 모습 또한 서울의 여름을 상징하는 정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한강변의 풍경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경관 요소가 있으니, 바로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이 둘 사이를 가르는 거대한 교각들 그리고 그 위를 달리는 그칠 줄 모르는 자동차의 흐름이다. 1960년대 후반, 강변도로가 처음 개통된 이래 1986년 올림픽대로 1차 개통, 1990년대 중후반 확장 개통을 거치면서 서울 시계 내 한강변에는 단 1m도 빼놓지 않고 왕복 8차로의 도시고속도로가 들어서게 되었다. 한강공원 구간에서는 고수부지의 거대한 녹음에 가려져 그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 강변도로지만, 교량 구간에서는 마치 인위와 자연을 가르는 거대한 결계와도 같은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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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강과 가장 유사한 입지와 지위를 가진 도쿄 스미다(墨田) 강변의 첫인상은 ‘잔잔함’이다. 드넓은 고수부지도, 왕복 8차로의 거대한 고가도로도 스미다 강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수도고속도로라는 이름의 도시고속도로가 강의 동안(東岸)을 지나가지만, 왕복 4차로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 어느 도시에서나 볼 법한 평범한 고가도로의 인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1980년대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한강과 다르게, 스미다강은 1923년에 발생한 관동대지진 이후의 부흥사업을 통해 교량 및 강변 공원이 정비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부흥사업 과정에서 스미다강의 강가는 1~3m 높이의 난간 겸 야트막한 제방으로 둘러싸이게 되었는데, 이는 여름철의 범람을 막는 용도뿐만 아니라 지진 발생 시 쓰나미로부터 시가지를 지키는 역할도 한다. 해발 0m 지대가 도심까지 펼쳐지는 도쿄의 지형적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스미다강의 산책로는 조금만 발을 바깥으로 내딛으면 강물에 닿을 정도로 강가에 인접해 있다. 중소 규모의 빌딩들이 빼곡하게 바싹 붙어 들어선 스미다강의 풍경은 태생적으로 고수부지를 품을 수밖에 없었던 한강의 풍경과 완전히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더불어 최소 6차로, 넓게는 왕복 12차로에 달하는 한강의 교량과는 달리, 넓어야 왕복 5차로 규모로 아담한 인상마저 주는 스미다강의 그것 또한 강변의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4. 노신사 빌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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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스카이라인이 지금처럼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다. 10층을 넘는 빌딩이 아직 없었던 1950년대와는 달리 1969년 한 해에만 10층 이상 빌딩이 10채 넘게 사용승인을 받았다. 우리가 아는 빌딩숲 서울의 모습은 이 시기부터 탄생하기 시작했다. 이후 1970~1980년대의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최초로 대규모 도심 재개발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고, 이 과정에서 들어선 15~30층 규모의 초창기 중·대형 오피스 빌딩 중 많은 수가 2020년대까지 살아남아 현역으로 쓰이고 있다. 1990년대 이후에 건축된 오피스 빌딩들과 달리 1970~1980년대에 지어진 빌딩들은 유리 커튼월보다는 단순한 페인트 도장이나 타일로 외벽 마감이 이뤄진 경우가 많아서 건축에 문외한일지라도 첫인상으로 대략적인 연대를 추측할 수 있기도 하다. 여기에 재건축이나 재개발의 물결을 피해 지금까지 살아남은 빌딩들은 여간해선 외벽 관리가 잘되어 있는 터라 말끔히 차려입은 ‘노신사’ 같은 인상을 준다. 사진 속 하나로빌딩은 1970년대 후반 서울도심재개발사업으로 들어선 전형적인 1세대 ‘노신사’ 재개발 빌딩으로, 지어질 당시의 외관과 내장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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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이른 시기부터 임대 오피스 빌딩이 들어선 도쿄에는 이른바 ‘노신사’ 빌딩의 개체수가 서울보다 훨씬 많지만, 그만큼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빌딩들 또한 도처에 존재한다. 도쿄의 ‘노신사’ 빌딩들이 서울과 다른 점은 철거 후 재건축·재개발의 명확한 사유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내진 대비’가 그것이다. 이미 도쿄에서는 1970년대 초반부터 20~50층에 이르는 매머드급 오피스 빌딩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이 빌딩들은 1980년대 이후 개정된 내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 처음부터 200m급의 초고층으로 지어졌다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해가면서 내진 대비 및 리노베이션을 하는 편이 저렴하겠으나, 그보다 작은 규모의 빌딩들이라면 차라리 완전히 철거해버리고 재건축을 하는 편이 여러모로 비용 면에서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결론이 도출되는 듯하다. 사진 속의 나카노 선플라자(1972년 준공, 지상 20층, 높이 92m) 또한 지금 보아도 손색없는 세련된 외관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2023년 하반기 내로 철거되어 새로운 초고층 빌딩으로 재건축될 예정이다.
 

 

5. 고층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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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서울의 전체 주택 중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59%로 조사되었다. 법적으로는 연면적 660㎡ 초과, 층수 5층 이상인 모든 공동주택은 아파트로 분류되지만, 우리의 일상 속에서 ‘아파트’ 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한 채에 100세대 미만, 적어도 10층 이상의 늘씬한 주거동 여러 채가 한데 모여 있는 아파트 ‘단지’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아파트 단지는 서울의 경관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물론 서울 도심, 특히 중구 일대와 같이 아파트보다 상업용 건축물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곳도 존재하지만, 시선을 동북과 동남쪽으로 돌려보면 아파트 단지로 가득 찬 서울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아파트를 서울의 도시 경관 그 자체라고 불러도 손색없게 된 상황이다 보니, 최근에 지어지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들은 도시계획위원회의 경관심의 의무 대상이 되거나,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사례와 같이 도시의 랜드마크로 인식되어 국제설계 현상공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시도들은 앞으로 지어질 아파트에 적용되는 것인 만큼 이미 지어진 아파트들에는 소급 적용될 수 없으며 덕분에 오늘도 한강변에 서면 1970년대부터 2020년대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아파트 박물관’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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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주거 형태 중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높다. 2020년 기준 약 28%에 달한다. 일본에서는 우리의 아파트에 해당하는 거주 형태를 일괄적으로 ‘맨션’이라 칭하며 ‘아파트’는 목조 다세대 주택을 뜻하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우리의 옛 주공에 해당하는 일본주택공단이 지어서 분양한 고층 공공주택 단지는 우리와 똑같이 ‘아파트’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며, 지자체가 지어서 분양하는 시영주택 등의 경우에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영아파트’라 불리는 경우가 흔하다. 다만 한국의 브랜드 아파트에 해당하는 고급 아파트는 거의 무조건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맨션’이라 불리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타워맨션’이다. 한국에서도 한 층에 6~10세대 이상이 거주하는 매머드급 아파트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일본 수도권의 타워맨션은 차원이 다른 덩치를 자랑한다. 도쿄만이 내려다보이는 워터프런트 지역에 들어선 타워맨션들은 한 층에 20세대, 높이 40~50층으로 한 동에 자그마치 800세대에서 1000세대가 입주하는 경우가 왕왕 존재한다. 아파트 단지의 왕도(王都)나 다름없는 서울에서도 1500~2000세대가 넘어가면 제법 큰 아파트 단지로 인지하는 마당에 도쿄의 타워맨션은 단 두 동의 주거동만으로 단숨에 이 규모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이런 아파트들이 호당 1억 엔(10억원)을 호가하며 2010년대 이후 도쿄의 아파트 값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6. 지하철의 공공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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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메트로의 지하철역에서 흔히 접하는 공공디자인의 큰 틀은 1980년대 이래로 크게 변하지 않았다. 노선 색을 반영하여 벽에 부착된 긴 환승띠, 가로로 긴 타원 안에 다소곳하게 자리 잡은 노선 번호와 역명판은 1980년대 중반 규격화된 이래로 서체 변경과 새로운 도시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도입되는 와중에도 꿋꿋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서울 지하철의 공공디자인은 승강장뿐만 아니라 지상으로 통하는 출입구에서도 일관되게 관찰되며, 어느 역이든 반드시 하나 이상의 세로로 긴 폴 사인(pole sign) 또한 관찰된다. 과거에는 열차가 들어오는 선로 쪽 기둥 혹은 벽면에도 정성스럽게 안내판이 설치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 완전 밀폐형 스크린도어가 보급되면서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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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메트로의 공공디자인은 얼핏 보기엔 서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지만, 보면 볼수록 다른 점이 눈에 들어온다. 지하철역 내외부에서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통일된 서체가 사용되는 서울지하철과 다르게, 도쿄메트로의 출입구에는 비교적 각양각색의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승강장의 역명판에는 고딕체가 사용되지만, 이외의 장소에서는 보다 얇은 산세리프 서체가 반영된 안내판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도쿄메트로와 서울지하철의 또 다른 차이점은 역 번호가 비교적 늦게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본래 도쿄메트로는 노선 안내에서 런던 지하철을 연상케 하는 도넛 모양 심벌을 사용해오고 있었는데, 2004년 4월부터 역 번호 체계를 도입하면서 심벌 내부에 역 번호를 넣는 간단한 수정을 통해 디자인의 큰 변경 없이 안내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WHO’S THE WRITER?  
도쿄대학 공학계연구과 도시공학전공 박사과정 재학. 일제강점기 서울의 확장에 대해 연구 중이다. 서울의 근·현대 도시 공간을 기록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instagram.com/journey.to.modern.seoul)’를 운영하고 있다. 독립출판 사진집 〈서울의 사라진 건축들〉 등을 출간했으며,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와 서울〉 기획에 필진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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