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칵테일 애호가들이 꼽은 '새 시대의 클래식'이라 할 만한 서울의 창작 칵테일 6.
자타 공인 칵테일 애호가 6인에게 물었다. “당신이 최근 마셔본 서울의 창작 칵테일 중 가히 ‘새로운 클래식’이라 할 수 있을 만한 게 있었는가?” 여섯 바의 여섯 칵테일 이름을 답으로 돌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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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칵테일 중에서도 진토닉을 좋아한다. 심플함, 직선적인 맛, 그리고 특유의 청량감. 어떤 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이 미묘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섬세한 맛의 차이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크다. 바꿔 말해, 바텐더의 이해나 작은 선택들이 결과에 개입할 여지가 많은 칵테일이랄까. 개인적으로 고전이 영원히 사랑받는 이유는 새로운 창조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진토닉은 그에 딱 좋은 예다.
Z&T 역시 기본적으로 진토닉이라고 할 수 있는 칵테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제스트가 ‘제로 웨이스트’를 표방하며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바라는 것이다.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진을 증류하고 토닉워터도 직접 만든다. 시대에 대한 통찰이자, 바의 매력이 되는 지향점이랄까. 이를테면 Z&T의 뼈대가 되는 기주는 계절마다 변화한다. 앞서 말했듯 제스트는 증류기를 구비해두고 진을 다양한 재료와 재증류해 자기들만의 색다른 진을 만들어내는데, 봄에는 한라봉과 오미자·토종 박하, 여름에는 참외와 레몬버베나, 가을에는 사과와 타임, 겨울에는 딸기·세이지· 통카빈을 넣는 식이다. 초여름부터 선보이는 버전에는 참외의 부드럽고 달콤한 풍미와 레몬버베나의 시트러스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바라는 공간이 지난 시대의 유산을 존중하면서도 얼마나 감각적이고 급진적인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진정한 '뉴 클래식'의 맛이다. 김아름(칼럼니스트)

새로운 클래식이라 부를 수 있는 창작 칵테일을 찾기 전에, 먼저 ‘빼어난 칵테일의 조건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균형 잡힌 맛과 향은 기본 중의 기본. 창작 칵테일을 두루 접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는 번뜩이지만 맛의 완성도에서 아쉬운 칵테일을 만날 때가 많다. 다른 곳과 구별되는 독창성, 담아내는 방식과 서빙할 때 보여주는 리추얼의 아름다움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고전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범용성이라는 측면도 중요하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 연습을 하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칵테일이어야 클래식 자리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
이런 조건들을 두루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칵테일이 바로 파인앤코의 누룩(Nuruk)이었다. 위스키를 베이스로 보리, 누룩을 비율에 맞춰 잘 섞고 약간의 당분을 넣어 맑게 걸러낸 후, 탄산을 주입해 만든 하이볼 스타일의 칵테일. 전통주 발효에 사용되는 누룩이 들어갔다는 점이 매우 독특한데 이 칵테일에서는 칵테일에 산미를 더해 밸런스를 맞추는 역할을 한다. 누룩을 발효에 사용하는 대신 식재료로 활용해 마치 전통 식초처럼 특유의 감칠맛이 도는 신맛을 더한 것이다.
칵테일을 내는 방식도 독특하다. 커다란 뚝배기 같은 사기그릇 바닥에 코스터(컵받침) 역할을 하는 구운 보리를 깔고, 이 보리 위에 칵테일 잔을 담아서 서빙한다. 구운 보리는 칵테일 잔을 담아 내기 바로 전에 불을 붙여 구운 보리의 고소한 향을 최대한 이끌어낸다. 그걸 받아 든 손님은 마치 국밥의 국물을 들이켜듯, 혹은 대접에 담긴 탁배기를 마시듯 대접을 양손으로 잡고 들이마시면 된다. 칵테일의 풍미와 코스터 격으로 깔린 구운 보리의 고소한 향기가 한데 섞여 맛과 향을 동시에 즐기는 재미가 있다. 앞서 열거한 ‘빼어난 칵테일의 조건’에서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배대원 (윌리엄그랜트앤선즈 코리아 브랜드 앰배서더)

농익은 붉은 과일 아로마, 고소한 땅콩 풍미, 온화한 산미와 함께 쌉쌀한 듯 달콤함이 밀려오는 한잔. 알코올 도수가 꽤 무게 있게 다가오는 칵테일로, 초저녁보다는 깊은 밤과 잘 어울린다. 잔 위에 동동 떠 있는 얼음처럼 달이 중천에 걸렸을 때라면 더할 나위 없다. 마침 칵테일 이름도 새벽을 여는 음료를 뜻하는 던 오프너(Dawn Opener) 아니던가. 과거 우리나라에서 아침을 열기 전에 ‘미수’를 마시던 문화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미수는 설탕이나 꿀물에 미숫가루를 탄 음료인데, 칵테일에서는 땅콩버터를 워싱한 다크 럼이 그 풍미를 대체한다. 이토록 한국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지만 재료는 전 세계 어느 바에서나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페드로 히메네스 셰리, 엘더 플라워 리큐어, 체리 리큐어. 얼음에 쌀뜨물과 조청을 사용하지만 그 역시 어렵지 않게 구하거나 대체가 가능한 재료다. 전 세계 바에서 만들 수 있는 평범한 재료로 구현한 한국적인 스토리와 맛. 뉴욕 한복판의 바에서 맨해튼이 아닌 던 오프너를 주문하는 상상이 가능한 이유다. 장새별(푸드 콘텐츠 그룹 스타&비트 리더)

임병진 바텐더가 만든 바는 어디든 믿고 간다. 특히 바 참은 매장과 메뉴 전반에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애정이 물씬 드러나, 지향점이 비슷한 사업가로서 더욱 마음을 주게 되는 곳이다. 메뉴 구성에서는 해가 더할수록 한국적인 색채가 더 뚜렷해지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내가 가장 자주 마시는 칵테일은 그런 흐름 속에서 끝내 살아남은 ‘이국적’ 창작 칵테일, 굿바이 새드니스(Tristeze)다. 동명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이 칵테일은 브라질에서 행진곡으로 자주 쓰이는 맑은 멜로디에 슬픈 가사가 붙은 원곡처럼 이질적 대비를 갖고 있다. 패션프루츠와 라임의 청량함으로 시작해 헤이즐넛, 피넛버터의 고소함과 달콤함으로 끝나는 게 아주 드라마틱하달까. 사탕수수 원액을 발효해 만든 브라질 전통주 카샤사 특유의 맛도 아주 훌륭하게 어우러진다.
굿바이 새드니스는 현재 바 참의 메뉴판 ‘사랑받아온 편안한 길’ 페이지에 자리해 있다. 이 칵테일을 오래도록 꾸준히 시켜 먹은 게 나뿐만은 아니라는 뜻. 개인적으로 커피든 칵테일이든 오래도록 사랑받기 위해서는 ‘익숙한 가운데 새로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친숙한 재료들을 사용해 독특한 밸런스를 만들어낸 솜씨, 열대지방 음식에서나 느낄 수 있었던 땅콩의 고소함과 산미가 어우러진 맛을 칵테일로 풀어낸 창의성이야말로 이 새로운 칵테일을 클래식으로 만든 주인공이 아닐까 한다. 김병기(프릳츠 컴퍼니 대표)

19세기 후반, 유럽 전역의 포도나무를 황폐화했던 필록세라(포도나무 뿌리 진딧물)를 생각한다. 필록세라는 당시 사람들로 하여금 와인 대신 맥주를 마시게 하고, 브랜디 대신 위스키를 소비하게 했다. 역사의 어떤 순간들은 우리 삶의 양식을 단숨에 변화시키고, 전환점을 맞게 한다.
경리단길 골목에 혼자만 알고 싶은 산장 같은 바 반창고가 있다. 페스트(Pest)는 이곳의 창고지기가 팬데믹이 한창이던 무렵 만든 칵테일로, 죽음의 공포와 미래의 불확실성을 담아낸 것이다. ‘흑사병’이라는 뜻, 피트 위스키, 스파이스드 럼, 진저, 하바네로 비터 등이 들어가는 레시피, 다소 충격적인 첫인상과 달리 그 맛은 금방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매캐한 듯 스모키하지만 적절한 산미가 밸런스를 잘 잡아주고, 생강과 하바네로의 알싸한 피니시로 마무리된다. 금주법 이전 레시피를 살린 칵테일 라스트 워드와 2006년 캐리 존슨의 저서에 소개된 칵테일 백 년 묵은 시가 사이 어디쯤 있는 듯한 맛이다.
페스트라는 발음은 언뜻 ‘과거’를 의미하는 단어 패스트(past)로 들리기도 한다. 과거에게 죽음을 준다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클래식은 영원히 회자와 죽음을 반복하며 그 정신을 계승한 채 계속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다. 나는 페스트가 미래의 사람들에게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역사와 더불어 기억되며 새롭게 트위스트될 칵테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서윤(티앤프루프 바텐더)

바 기슭에서는 추억의 칵테일을 여럿 만날 수 있다. 미도리 사워, 블루 하와이, 하비 월뱅어. ‘이런 이름들을 칵테일 바의 메뉴판에서 만난 게 얼마 만이지?’ 싶은 것들. 하지만 추억이나 곱씹어볼 요량으로 그중 하나를 시킨다면 깜짝 놀라게 될 테다. 미도리 사워에는 아일라 싱글 몰트 위스키와 프로슈토가 올라가고, 하비 월뱅어는 베이스가 진으로 바뀐 데다 우유까지 첨가된다. 기슭에서 클래식 칵테일의 이름을 붙인 많은 메뉴가 실상 창작 칵테일이라는 뜻이다. 마치 왕년의 스타가 딱 맞는 배역을 만나 스크린에 다시 돌아온 것 같은, 반갑고도 생경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달까.
특히 가장 인상적인 칵테일은 하비월뱅어다. 한 모금 들이켜면 풍성한 오렌지 향으로 시작해 입안을 감싸는 실키한 텍스처를 느낄 수 있다. 우유를 첨가했는데, 그것도 그냥 쓰지 않고 유청을 분리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복합적인 허브 향과 달콤 상큼한 맛의 기분 좋은 변주가 이어진다. 하비 월뱅어에는 갈리아노라는 술이 들어가는데, 사실 많은 사람이 이 칵테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특유의 아니스 향 때문이다. 하지만 기슭의 칵테일에는 갈리아노가 입맛을 돋우는 허브 향 정도로 쓰이도록 자연스럽게 스며 있어, 오히려 몇 잔이고 연달아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클래식 칵테일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완전히 비튼 기슭의 하비 웰뱅어. 그야말로 ‘뉴 클래식’이라고 부르고 싶은 한 잔이다. 김호(일러스트레이터, <칵테일탐구생활> 저자)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박기훈
- ART DESIGNER 최지훈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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