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빅토리아 시크릿을 사랑하는 이유는 야한 속옷이기 때문은 아니다. 지상 최대의 쇼를 만드는 브랜드여서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1995년부터 ‘앤젤’들이 출연하는 지상 최대의 패션쇼를 진행했다. 클라우디아 시퍼, 지젤 번천, 하이디 클룸, 타이라 뱅크스, 카롤리나 쿠르코바 같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슈퍼모델들이 커다란 날개를 달고 ‘앤젤’이 되어 출연하는 그들의 패션쇼는 당대 글래머의 모든 것이었다. 나는 ‘글래머’라는 단어를 여성의 몸을 표현하기 위해 쓴 건 아니다. 지나치게 화려하고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모든 것을 우리는 글래머라고 부른다.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는 글래머 그 자체였다.
빅토리아 시크릿 쇼가 대중문화의 중심에 위치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였다. 슈퍼모델의 시대는 끝났지만 앤젤의 시대는 저물지 않았다. 아드리아나 리마, 미란다 커, 알레산드라 암브로지우 등 새로운 시대의 모델들이 날개를 달았다. 빅토리아 시크릿 쇼는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펼치는 무대로도 유명했다. 스팅, 리키 마틴, 저스틴 팀버레이크, 스파이스 걸스, 카니예 웨스트, 리한나, 저스틴 비버, 테일러 스위프트, 레이디 가가…. 출연 가수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2000년대 이후 팝의 역사를 짚을 수 있을 것이다. 빅토리아 시크릿 쇼에 서는 건 모델에게도 가수들에게도 영광이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추락이 시작된 건 2010년대 후반부터다. 판매량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지나치게 섹시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크릿을 속옷 제국으로 만든 섹시함은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그리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작부터 빅토리아 시크릿은 섹시함을 강조하는 브랜드였다. 당연히 그 섹시함이란 어느 정도는 남성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창립자인 로이 레이먼드는 아내에게 속옷을 선물하러 속옷 가게에 가기가 부끄러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1977년 빅토리아 시크릿을 창립했다. 시작부터 여성에게 속옷을 선물하려는 남자들을 위한 브랜드였던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은 빅토리아 시크릿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몸을 가장 섹시하게 보이도록 제작된 빅토리아 시크릿은 더는 신규 고객을 잡지 못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몸매 긍정 운동’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브랜드들은 다양한 몸을 긍정하며 살자는 이 운동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지나치게 마른 모델들이 퇴출되고 플러스사이즈 모델이 런웨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몸매 긍정 시대에 빅토리아 시크릿 쇼는 논쟁의 한가운데 섰다. 20~30대 여성들은 마른 모델들이 지나치게 섹시한 속옷을 입고 등장하는 쇼를 보이콧하기 시작했다.
지상 최대 쇼였던 빅토리아 시크릿 쇼는 시청률 폭락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국 2019년에 폐지됐다. 주가도 폭락했다. 2021년 빅토리아 시크릿은 리브랜딩 계획을 발표했다. 앤젤로 활동하던 모델들은 모두 계약을 해지당했다. 경영진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대 변화를 읽지 못했다”며 “이제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들이 원하는 속옷에 집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주가는 다시 뛰었다. 그리고 빅토리아 시크릿은 올해 3월에 패션쇼를 부활시킨다고 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새로운 빅토리아 시크릿 쇼에는 플러스사이즈 모델을 비롯해 다양한 인종과 젠더의 모델이 등장할 예정이다.
지금 나의 미학과 윤리 사이에서는 작은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오해 마시라. 나는 몸매 긍정 운동을 지지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몸이 있다. 다양한 육체적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운동은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에도 일종의 가이드라인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보통의 키에 100kg가 넘어가는 몸을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런 몸을 우리는 ‘고도비만’이라고 불러왔다. 고도비만은 질병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비만을 질병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됐다. 고도비만의 몸을 건강하지 못한 몸이라고 소셜미디어에서 말하는 순간 당신은 많은 비난과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내가 몸매 긍정 운동이 조금 괴상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사건은 지난달에 벌어졌다. 136kg 플러스사이즈 모델인 테스 홀리데이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배우 귀네스 팰트로에게 비난을 쏟아낸 것이다. 앞서 귀네스 팰트로는 오후 6시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다음 날 정오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는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으며, 식사 메뉴는 주로 사골 국물과 채소라고 말한 바 있다. 테스 홀리데이는 귀네스 팰트로의 다이어트 방식이 “정상적이지 않다”며 공격했다. 이건 온당한 공격인가? 우리는 좀 더 포용적(inclusive)이어야 한다며 모든 몸을 긍정하자는 운동을 받아들였다. 테스 홀리데이가 모델로 활동하며 패션 잡지의 커버에 오르게 된 것은 포용의 결과다. 포용은 ‘테스 홀리데이의 몸도 아름답고, 팰트로의 몸도 아름답고, 모든 몸은 아름답다’여야 한다. 관대한 세상을 만들자던 사람들이 오히려 관대함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아이러니다.
세상에는 마른 몸을 지닌 사람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마른 몸과 마르지 않은 몸을 모두 사랑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몸매 긍정이다. 나는 플러스사이즈 모델을 긍정하지만 케이트 모스의 마른 몸도 여전히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포용의 세상은 테스 홀리데이와 귀네스 팰트로가 같은 런웨이에서 서로의 글램을 뽐내는 모습이지 않을까? 테스 홀리데이의 몸은 아름답고 아드리아나 리마의 몸이 지닌 굴곡이 매혹적이라고 생각해선 안 되는 세상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어쩌면 당신은 나의 여성의 몸에 대한 개인적 심미관이 억압적인 사회적 가스라이팅의 결과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가스라이팅이라면 마른 모델의 몸과,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비난하는 것 역시 일종의 가스라이팅일 것이다. 혹시 우리는 가스라이팅을 멈추고 다른 방식의 가스라이팅을 하며 그것이 정치적으로 공정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걸까?
나는 새로운 빅토리아 시크릿 쇼가 어떻게 흘러갈지 잘 알고 있다. 플러스사이즈 모델이 덜 섹시한 속옷을 입고 무대를 가로지르는 동안, 예전에는 아드리아나 리마의 몸과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가린 속옷을 보며 박수를 쳤던 관중들이 똑같은 박수를 칠 것이다. 그것은 미학적 박수일까 윤리적 박수일까. 지금 나는 이 글을 한글 맞춤법 검사기에 돌려서 교열을 보고 있다. 맞춤법 검사기는 ‘플러스사이즈 모델’을 ‘뚱뚱한 모델’로 고치라고 끊임없이 잔소리 중이다. 도대체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 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