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전문기자 6인이 선정한 '돌아이' 감독들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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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전문기자 6인이 선정한 '돌아이' 감독들

가슴 떨리는 게임을 만들어내는 건 선수뿐만이 아니다. 선수처럼 눈에 띄지는 않지만, 경기장 밖에서 게임을 진두지휘하는 감독은 선수 이상의 역할을 한다. 개성 넘치는 선수만큼이나 그들을 이끄는 감독들 역시 독특한 리더십을 겸비한 경우가 다수다. 그중 일부는 그야말로 ‘또라이’ 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6인의 스포츠 전문 기자에게 물었다. 당신이 본 가장 ‘또라이’ 같은 감독은 누구였느냐고.

김현유 BY 김현유 2023.06.03
 
유교 국가의 어린 감독
TOMMI TIILIKAINEN

2021년 5월, 배구계는 잠시 술렁였다. V-리그 남자부,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이하 대한항공)가 파격적인 감독 인사를 단행한 것. 주인공은 핀란드 출신의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으로, 화제가 된 건 그의 나이였다. 무려 1987년생으로 당시 한국 나이는 서른다섯이었다. V-리그 역대 최연소 감독이 된 그보다 웬만한 베테랑 선수들이 나이가 많을 정도였다. 일단 같은 팀인 대한항공의 캡틴 한선수보다 세 살, 세터 유광우보다 두 살 어리다. V-리그 여자부로까지 넓히면 최고령인 한국도로공사 정대영과는 무려 여섯 살 차이였다. ‘유교 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지도자다.
이런 화제성을 등에 업고 틸리카이넨 감독은 V-리그에 오자마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팬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는 ‘호기심 있는 배구’를 보여주겠다며 2021-22 시즌 개막전에서 징계를 받아 나오지 못한 정지석 대신 두 명의 아포짓 임동혁과 링컨 윌리엄스를 동시 선발로 넣었다. 보통 윙 공격수는 아웃사이드 히터 두 명, 아포짓 한 명으로 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틸리카이넨 감독은 그런 원칙을 깨고 파격적인 전술을 선보였다. 결과는 기분 좋은 3:0 승리. 이후로도 빠른 스피드를 강조하는 전략으로 공격에 드는 소요 시간을 줄이고 중앙 파이프 공격 시도 및 성공률을 높이는 창의적인 전술로 그는 부임 첫해 정규리그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사실 그는 핀란드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이다. 유망한 선수였으나 허리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고 25세라는 어린 나이에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어린 나이부터 팀을 이끌어야 했기 때문일까, 그의 리더십은 여태껏 한국 배구계에서 볼 수 있었던 감독들의 모습과 달랐다. 한국 감독들은 전반적으로 무게감이 있는 편이다. 기분 좋은 득점을 얻었을 때 가벼운 세리머니를 펼치기도 하지만, 이는 드문 일이다. 그러나 틸리카이넨 감독은 득점을 올리면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열렬히 세리머니를 즐겼다. 팀이 경기에서 지고 있을 때는 웜업존으로 달려가 선수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코트 위 선수들을 응원했다. 그야말로 ‘친구 같은 리더십’이었다.
단기간에 성공적인 결과를 낼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절친 바이브’와 더불어 냉철한 전술 평가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구단에 훈련장 코트를 더 만들 것을 요구했다. 모든 선수가 실전 상황에 맞춰 함께 훈련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틸리카이넨 감독에 대해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언제나 배구 생각만 해요. 정확하게는, 어떻게 하면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고민하죠.”
실제로 그는 그런 사람이다. “우리는 더 퀄리티 높은 배구를 해야 합니다. 우리 것을 잘하면 유리한 순위는 저절로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대한항공에겐 불필요한 경기도, 대충 하는 경기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기가 있어서도 안 되죠.” 그가 내게 했던 말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4월,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승리하며 3연패를 확정했다. 그의 부임 이후 대한항공은 V-리그 남자부 역대 두 번째 통합 3연패 및 구단 사상 첫 트레블(컵대회, 정규리그, 챔프전 우승)을 달성했다. 젊은 나이가 발목을 잡지 않겠냐는 우려를 불식하고, 또래 젊은 선수들의 성장은 물론 구단 왕조 시대까지 연 것이다. 시상식과 우승 세리머니를 마친 뒤 열린 우승 축하연에서 틸리카이넨 감독은 편안한 모습으로 소주를 마시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다음 시즌에도 대한항공과 함께할 예정이다. 함께한 시즌만큼 나이는 들어가지만, 그의 ‘절친 리더십’은 계속된다.
- 이정원 (MK 스포츠 기자)
 
 
 
동수저 출신 축구 돌아이 
LEE JUNGHYO
 
시대가 변해도 한국이 유교 사회라는 건 변치 않는다. 선후배 규율이 확실한 스포츠계에서는 더 그렇다. 그런데 올해 K리그에는 이 분위기를 깨는 ‘메기’가 등장했다. 지난해 2부 리그에 있던 팀의 압도적 우승을 이끌며 팀을 1부에 올리는 걸로도 모자라 시즌 초반 돌풍을 이끌고 있는 광주FC(이하 광주)의 이정효 감독이다.
예산을 적게 쓰는 시민구단의 경우 2부에서 1부로 승격하더라도 다시 강등 후보가 되는 일이 많다. 때문에 시즌 시작 전부터 시민구단인 광주는 유력 강등 후보 1순위로 꼽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광주는 1라운드 로빈 11경기에서 4승을 수확하며 중위권에 안착했다.
성적보다 더 화제가 된 것은 이 감독의 쇼맨십이다.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장기 부상으로 팀에서 이탈한 이으뜸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유니폼을 거꾸로 입고 등장하는 한편, FC서울에 패한 후 “저렇게 축구 하는 팀에 져서 분하다”라는 폭탄 발언을 해 K리그의 모든 이슈를 스스로 흡수했다. 참고로 FC서울의 안익수 감독은 이 감독보다 정확히 열 살이 많다. 축구계에서 이 정도 나이 차이면 쳐다보기도 힘든 수준이니, 이후 상황은 짐작이 가능하다. 그나마 오픈 마인드인 관계자들은 “감독 대 감독으로 싸우니 저런 태도도 필요하다”고 옹호했지만, 대부분의 축구인은 “예의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위축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화끈하고 치열하게 팀을 지휘하고 선수들을 이끈다. 상대 벤치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 심판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분노를 표출하며, 경기에서 승리해도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수들을 노려보거나 인터뷰에서 ‘노빠꾸’ 저격을 날린다. 최근에는 밝은 조명 때문에 시야가 뿌옇다며 노란 렌즈의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등장했다. 선비처럼 점잖아야 하는 감독이 컬러 렌즈 선글라스를 끼고 “노란색이라 우리 유니폼(광주의 상징색은 노란색이다)이 더 잘 보인다”며 웃는 모습이라니.
단순히 기행 때문이라면 우스운 캐릭터가 되겠지만, 이 감독은 실력으로 무장한 지도자다. 2011년 아주대를 시작으로 전남 드래곤즈, 광주, 성남FC, 제주 유나이티드를 거치며 10년간 코치로 일한 그는 진정 ‘축구에 미친 인간’이다. 동계훈련 기간에는 24시간 카페에 새벽 2~3시까지 앉아 훈련 영상을 보며 선수들을 분석하고 전술을 구상한다. 해외 리그 경기도 챙겨 보는데, 단순히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새로운 전술을 시도하는 과정까지 도달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그렇게 누적된 시간은 그를 ‘생태계 파괴자’로 성장시켰다. 디펜딩 챔피언 울산 현대조차 광주를 만나면 쩔쩔맨다. 선수를 보는 눈과 전술 구축 능력, 여기에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동기부여까지 감독으로서 그는 다양한 매력을 뽐낸다.
선수 경력으로 따지면 이 감독은 ‘동수저’ 정도다. 부산 아이파크에서 10년을 뛴 그에게 국가대표 경력은 전무하다. 선수 시절의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선수 시절 국가대표로 뛰며 이름을 날린 스타 출신 ‘금수저’가 아닌, 이 감독 같은 ‘동수저’가 단 12팀뿐인 K리그 1부 구단의 감독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처럼 난도가 높다. 산전수전 다 겪고 직접 실력을 증명해야만 오를 수 있는 자리다. 이 감독은 기회를 잡은 것을 넘어 올 시즌 리그의 판을 뒤흔드는 메기 역할까지 제대로 해내고 있다.
최근 이 감독에게 “사람들이 감독님보고 ‘축구 돌아이’라고 하던데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좋은데. 축구인이 축구에 미치면 좋은 거지”라며 해맑게 웃었다.
- 정다워 (스포츠서울 기자)
 
 
 
영원한 스무 살
KIM JINYOUNG  
 
스포츠 선수들은 모두 같은 꿈을 꾼다. 올림픽 무대에 서는 것, 그리고 금메달을 따는 것. 이를 이룰 수 있는 건 극소수다. 한 선수가 있었다. 국내에서 촉망받았으나, 올림픽 진출에는 실패했다. 대신 그는 지도자가 되어 제자와 함께 그 꿈을 이루고자 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았다. 2021년, 그는 드디어 그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미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제자가 세계의 별이 되는 순간, 그는 하늘의 별이 되어 함께했다. 우즈베키스탄 최초의 태권도 금메달을 배출한 故 김진영 감독의 이야기다.
김 감독은 태권도 명문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인재였다. 은퇴 후 코치 생활을 시작한 그는 더 넓은 세계로 눈을 돌렸다.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시작으로 중국 산둥성과 톈진을 거쳐 모로코에서 코치 생활을 했다. 국제 대회에서 결과를 보이며 지도자로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도중에 가봉 대통령 경호실에서 경호원을 맡거나,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알 막툼 공주의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우즈벡에서는 태권도계 전반의 변화를 주도했다.
그는 확실히 특별한 지도자였다. 남다른 승부욕을 가진 김 감독은 국제 태권도 경기장에서 유명 인사였다. ‘악바리’ ‘괴짜’는 물론, ‘미친놈’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그는 그런 반응을 즐겼다.
‘태권도 지도자 김진영’이 얼마나 진심 어린 열정을 지녔는지는 우즈벡에서의 활동을 보면 알 수 있다. 2020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던 중,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선수촌은 문을 닫았고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모두가 갈수록 지쳐갔다. 그 와중에 올림픽 개최 유무도 불투명해졌다. 선수단 지원마저 끊겼다. 국제 지도자로 초청받은 김 감독 역시 어느 순간부터 급여를 받지 못했다. 고민하던 김 감독을 향해 주변에서는 귀국할 것을 권했지만, 청개구리 같은 성향의 김 감독은 역시나 잔류를 선택했다. 그리고 수중의 돈을 모두 털어 ‘풀빌라’로 이사했다. 선수촌 폐쇄로 훈련을 하지 못한 선수들을 위해서였다. 그의 풀빌라는 우즈벡 태권도 대표팀 선수촌이 됐다. 거실과 지하실 창고는 훈련장이 되었고, 수영장과 마당은 웨이트 및 서킷 트레이닝을 위해 쓰였다. 김 감독의 열정을 본 선수들은 더욱 열심히 훈련할 수밖에 없었다. 지도자의 진심 앞에 게을러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후 우즈벡은 자국 태권도 역사상 최초로 남녀 4체급의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획득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 감독이 ‘비밀 병기’로 키운 태권도 샛별, 19세의 울루그베크 라시토프가 남자 -68kg급에서 금메달 0순위였던 한국의 이대훈을 16강에서 꺾고 우즈벡 태권도 사상 최초의 금메달까지 따낸 것이다.
이를 위해 김 감독은 일대일 맞춤 훈련을 진행했다. 매일 이대훈을 비롯한 쟁쟁한 선수들을 입체적으로 분석 후, 그들의 특징을 살린 플레이를 선보이며 라시토프의 훈련 상대가 되어줬다. 그러나 라시토프가 금메달을 획득한 그 순간, 김 감독은 영광의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 그토록 고대했던 올림픽 직전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라시토프는 은메달을 확보한 순간 김 감독의 사진을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카메라에 비췄다. 금메달을 목에 건 뒤에는 “감독님께 바친다”며 은사를 향한 감사를 전했다.
생전 김 감독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스무 살”이라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항상 스무 살 때처럼 열정 가득한 마음으로 매사에 임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짧지만 강렬하게, 많은 이에게 꿈과 희망을 안겼던 김 감독의 열정은 하늘의 별이 되어서도 식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그의 명복을 빈다.
- 한혜진 (무술 전문매체 무카스 편집장)
 
 
리즈 시절을 재소환한 축구 광인
MARCELO BIELSA
 
‘전성기’와 뜻이 통하는 ‘리즈 시절’이라는 단어는 잉글랜드 축구팀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유래한 관용구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2005년, 팀 동료 앨런 스미스가 부진에 빠지자 국내 골수 팬들은 지식을 자랑할 겸 ‘스미스가 리즈에 있던 시절엔 대단했는데 안타깝다’는 댓글을 달았다. 문제는 갓 입문해 아무것도 모르던 신생 팬들이 ‘스미스 리즈 시절 후덜덜’을 운운하며 아는 척을 한 것. ‘고인 물’들은 그들을 비꼬기 위해 ‘호나우두 리즈 시절’ 등 리즈와 전혀 연관이 없는 스타들로 장난을 쳤고, 이는 인터넷 놀이 문화가 되어 ‘리즈 시절’은 ‘찬란했던 시기’를 뜻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올드 팬들이 기억하는 리즈의 ‘리즈 시절’은 2000-01 시즌이다. 당시 리즈는 UEFA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올랐지만, 이후 3부 리그까지 떨어졌다. 2부에 승격한 뒤에도 중위권을 전전했다. 리즈에 다시 ‘리즈 시절’을 안겨준 인물이 마르셀로 비엘사다. 2018년 지휘봉을 잡은 그는 2019-20 시즌 리즈의 2부 리그 우승을 이끌며 팀을 16년 만에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켰다. 비록 지난해 2월 팀을 떠났지만, 리즈 팬들에게 그는 여전히 최고의 감독 중 하나다. 실제 리즈 지역에는 ‘마르셀로 비엘사 웨이’도 있다.
비엘사는 리오넬 메시와 같은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출신이다. 1990년 아르헨티나 리그 뉴웰스 올드 보이스 사령탑으로 감독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90-91 시즌 우승을 차지하며 당시 보카 주니어스와 리베르 플라테가 양분하던 아르헨티나 리그에 큰 균열을 일으켰다. 그 영향력은 엄청났다. 현재 뉴웰스 올드 보이스의 홈구장 이름이 ‘마르셀로 비엘사 스타디움’일 정도로 말이다.
1998년 아르헨티나 사령탑에 오른 비엘사는 2004년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과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성과를 남기고 물러났다. 이후 칠레 대표팀에 부임하며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이듬해 스페인의 아틀레틱 빌바오 감독을 맡아 유럽 커리어를 시작했다.
사실 그는 성과 대비 부임 기간이 짧은 편인데, 이는 별명인 ‘El Loco(광인)’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빌바오 시절 그와 함께했던 공격수 이케르 무니아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종종 사람들이 ‘듣던 대로 비엘사는 축구에 미쳤던가요?’라고 묻는데, 그때마다 저는 ‘당신이 들은 것 이상으로 미쳤다’고 답하죠.” 또 다른 일화도 있다. 2016년, 비엘사 감독은 이탈리아 명문팀 라치오의 사령탑에 오른 지 단 이틀 만에 선수 영입이 마음에 안 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또 리즈의 감독으로 부임한 뒤엔 선수들에게 훈련장 주변 쓰레기를 3시간 동안 줍게 했다. 팬들이 경기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 일하는 시간만큼 청소를 하며 팬들의 간절한 마음을 느껴야 한다는 이유였다. 동시에 그는 훈련장에 자신의 거처를 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축구를 실현하기 위해 선수들을 극한으로 몰고 갔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광인’의 지도를 버티는 게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축구사에 획을 남긴 인물임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강력한 압박과 유기적인 위치 변경이 특징인 3-3-3-1 포메이션을 대중화했고, 축구 포메이션을 29가지로 규정했다. ‘축구 광인’의 분석은 축구계에서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펩 과르디올라와 디에고 시메오네 등 수많은 명장 역시 탁월한 전술가인 비엘사 감독을 향해 존경을 표한 바 있다.
비엘사는 지난 4월 우루과이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이번에 그는 어떤 축구를 피치 위에 그려낼 것인가? 올해 67세가 된 그의 지도자 인생은 현재 진행형이다.
- 장민석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Mad Maddon! 
JOE MADDON 
 
2015년 10월 22일, 미국 시카고 리글리 필드 클럽하우스에 영화 〈록키 발보아〉의 OST가 울려 퍼졌다. 당시 시카고 컵스를 이끌던 조 매든 감독의 선곡이었다.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내리 패하며 사기가 저하된 선수들을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안타깝게도 컵스는 3, 4차전도 내리 패했다. 하지만 이듬해, 컵스는 ‘염소의 저주’를 깨고 108년 만에 월드 시리즈 왕좌에 앉았다.
〈록키 발보아〉 OST 일화에서 엿볼 수 있듯, 매든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 ‘괴짜 중의 괴짜’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오죽하면 별명이 ‘Mad Maddon’, 미친 매든일까. 그의 기행은 처음 지휘봉을 잡은 탬파베이 레이스 때부터 도드라졌다.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트로피카나 돔 클럽하우스에 DJ와 마술사를 데려오고, 플로리다 수족관에 있던 펭귄 두 마리를 클럽하우스 주변에 풀어놓기도 했다. 펭귄뿐만 아니라 6m가량의 뱀까지 초대(?)했다. 본인은 앵무새를 어깨에 올린 채 공식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선수들이 머리를 모히칸 스타일로 바꾸자 이를 따라 했고, 선수단 전원의 ‘공항 패션’을 잠옷으로 통일하기도 했다. 오픈 마인드로 선수들과 대화를 즐겼던 그는 감독실을 와인 바로 만들어 문턱을 낮췄다. 이런 자유분방함에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함께하고 싶은 감독 1위로 그를 꼽았다.
다소 유별나고 과한 면이 있었지만, 당시 그의 실력은 확실했다. 그의 지휘 아래 동네북에 가까웠던 탬파베이는 만년 꼴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98년 메이저리그 합류 이후 2007년까지, 한 번을 제외하고 지구 꼴찌를 도맡았던 탬파베이는 매든 감독 취임 후 2008년 지구 1위에 올랐고, 팀 창단 10년 만에 월드 시리즈까지 진출했다.
그의 기상천외함은 그라운드 안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종종 아주 기발한 작전을 썼는데 대표적인 것이 경기 중반, 만루 위기 때 내린 고의 볼넷 지시다. 매든은 LA 에인절스 감독이던 지난해 4월,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4회 1사 만루 때 마운드의 투수 오스틴 워런에게 코리 시거를 상대로 고의 볼넷을 지시했다. 2-3으로 뒤지고 있는 와중에 장타를 맞는 대신 1점을 그냥 헌납하는 작전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만루 때 고의 볼넷 작전은 이전까지 두 차례밖에 나오지 않았던 터. 흥미로운 사실은 그중 하나인 2008년의 고의 볼넷 작전도 매든 감독이 탬파베이 사령탑 시절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08년과 2022년 경기 모두 매든의 팀이 승리했다는 점도 같다.
비단 고의 볼넷뿐만이 아니다. 매든 감독은 마운드 위 투수를 외야수로 잠깐 돌렸다가 다시 마운드로 올리기도 하고, 야수 자원을 아끼기 위해 투수를 대주자로 기용하기도 했다. 투수 어깨 보호를 위해 점수 차이가 크게 나는 경기 후반에는 야수를 투수로 쓰기도 했다. 이쯤 되면 ‘변칙 작전’의 대가라고 봐도 무방하다.
매든 감독의 선수 경력은 4년 정도, 최하위 리그인 마이너리그 싱글A에서 뛴 게 전부다. 하지만 지도자가 된 뒤 그는 꼴찌 팀에 희망을 심어주고, 저주에 갇혀 있던 팀을 해방시켰다. 사실 그가 기행적인 면모를 선보인 건, 팀이나 선수의 성적이 나지 않을 때 부정적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선수들의 투지를 살리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올해 69세가 된 매든 감독은 지난해 6월, 에인절스가 12연패를 거듭한 후 경질돼 현재는 무직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러브콜을 했지만, 아직까지는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그가 어서 복귀할 수 있길 바란다. 그가 없는 메이저리그는 조금 심심하다.
- 김양희 (한겨레 스포츠팀 팀장)
 
 
 
비운의 농구 과학자
MIKE D’ANTONI 


역사 속에는 비운의 과학자로 남은 이들이 있다. 훗날 인류를 위한 엄청난 발견을 했지만, 당대에는 구현이 불가능해 인정받지 못한 이들. 그 과실은 선구자의 시행착오를 지켜본 후발 주자의 몫이 되곤 한다. 현대 농구에도 비운의 과학자라 불릴 만한 지도자가 있었다. 바로 2000년대 중반과 2010년도 중후반, NBA에 ‘농구 혁명’을 일으켰던 마이크 댄토니 감독이다.
댄토니 감독은 여러모로 ‘비운의 농구인’이라는 평가가 어울리는 인물이다. 우선 커리어 자체가 비주류였다. 미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해외 리그에서 거둔 성공을 바탕으로 ‘역수입’된 사례는 대단히 드물다. NBA 현역 출신인 그는 이탈리아 리그로 적을 옮긴 후 선수와 감독으로 성공을 거두고 금의환향했다. 그의 복귀와 함께 1980년대 이후 NBA에서 사라진 ‘런앤건(Run-and-Gun)’ 시스템도 NBA에 역수입됐다. 이른바 ‘7 seconds or less’로 명명된 업-템포 공격은 다운-템포 운영에 익숙하던 리그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빠른 포제션 마무리로 수비 중심의 흐름에 반기를 든 것이다. 실제로 2004-05 시즌 당시 댄토니 감독이 이끌던 피닉스 선즈는 48분 환산 공격 기회를 의미하는 경기 페이스 수치가 95.9, 100번의 공격 기회 중 득점 기대치를 의미하는 오펜시브 레이팅(ORtg) 수치가 114.5에 달했다. 모두 리그 전체에서 압도적인 1위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댄토니 감독은 포인트가드 중심 픽&롤 플레이로 백코트 볼 핸들러가 득점원 역할을 한다는 개념을 제시했고, 전통적인 센터 포지션이 배제된 스몰 라인업을 꾸렸다. 이전의 농구에서 포인트가드는 픽&롤 플레이를 시도하더라도 빅맨(롤맨)의 움직임에 종속되는 성향이 짙었다. 그러나 댄토니 감독과 불세출의 포인트가드 스티브 내시가 함께했던 피닉스는 볼 핸들러 쪽에서 주도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빠른 체제 전환과 슈팅 범용성이 녹아든 스몰라인업 운영도 마찬가지다. 이전까지 빅맨의 얼리 오펜스 기반 3점 슛 시도는 여간해서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피닉스의 경우 5번 포지션에 배치된 선수도 거리낌 없이 3점 슛 시도에 나섰다. 유럽 농구의 ‘스트레치 빅맨’ 개념이 NBA에 이식된 것이다.
그는 휴스턴 로키츠 감독으로 재직하면서도 또 한 차례의 놀라운 혁명을 보여줬다. 리그 전반이 그의 과거 업적인 볼 핸들러 중심 픽&롤 플레이와 변형 모션 오펜스에 주력했던 상황에서, 오히려 ‘농구 도사’ 제임스 하든을 전면에 내세운 극단적인 아이솔레이션 플레이로 지각변동을 보인 것. 개인 전술 기반 득점원의 공격으로 파생되는 득점과 무제한 3점 슛이 골자로, 대단히 공격적인 플레이였다. 이는 기록이 보여준다. 2018-19 시즌 기준, 하든의 아이솔레이션 플레이 기반 득점은 1415점에 달했다. 해당 부문 리그 전체 2위 팀인 밀워키 브루어스가 767점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다. 3점 슛 역시 2위 대비 경기당 평균 무려 7.2개나 더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성공한 과학자가 되지 못했다. 전술은 훌륭했으나 이를 구현할 선수가 부족했다. 제한된 로테이션으로만 경기를 운영하다 보니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속출했다. 결국 그의 공격 농구는 중요한 순간마다 발목을 잡혔다.
댄토니 감독이 부르짖은 백코트 중심 공격과 얼리오펜스, 스몰라인업 등의 개념은 2010년대 중반 들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통해 상용화됐다. 선구자의 시행착오가 후발 주자의 성공을 낳은 것까지, 비운의 과학자들과 결을 같이한다. 그나마 현대 농구 발전의 밑바탕에 이름을 남겼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 염용근 (NBA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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