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해지는 고즈넉한 거리, 사람 냄새 나는 소담한 마을. 서울에서 오래된 동네 중 하나인 서촌에 이솝의 새로운 스토어가 들어섰다. 이번 스토어는 건축가 서승모가 이끄는 사무소 효자동과 협업으로 완성되었는데, 지역 배경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이솝의 철학을 반영하듯 이 매장 역시 서촌 거리 안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이솝 서촌 스토어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특징. 한국의 전통적 미감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하얀 건물 회벽과 1m 깊이의 처마는 담담하지만 분명하게 존재를 드러낸다. 또 스토어 전면부에는 폴딩 도어를 설치하고 외부의 화강암 바닥을 매장 안쪽까지 끌어들여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었다. 한여름이나 겨울을 제외하면 이 문은 활짝 열려 있을 터, 지나가던 행인들은 바람을 타고 실려오는 이솝의 아로마에 이끌려 스토어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폴딩 도어에 반투명한 메탈 패브릭을 적용해 문이 닫힌 상태에서도 채광을 깊숙이까지 끌어들인 점도 인상적이다.
한국적인 정서를 모던하게 살린 이솝 서촌 스토어의 모습.
이솝 스토어의 시그너처라고도 할 수 있는 싱크는 재활용 목재와 에이징 코퍼로 제작했다.
스토어 한켠에는 이솝의 다양한 향수를 경험할 수 있는 프래그런스 아르무아가 있다.
창고이자 주방, 컨설턴트들의 휴식처로 사용되는 BOH 공간. 툇마루와 한지를 바른 문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디자인 콘셉트는 스토어 내부로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거리를 향해 있는 석재는 화강암 바닥과 어우러지며 디스플레이 유닛 역할을 하고, 이솝의 다양한 향수를 경험할 수 있는 프래그런스 아르무아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목재와 구리로 따뜻한 무드를 더한다. 전통 한지로 마감한 새하얀 벽도 눈에 띄는 디자인 요소. 한지의 미세한 요철 위에 맺힌 빛은 그림자의 경계를 부드럽게 만드는데, 먹이 한지에 스며들어 포근한 분위기를 내는 것처럼 공간에 한국적인 정서를 덧씌운다. 게다가 이솝은 스태프의 휴식 공간과 주방 및 회의실로 쓰이는 BOH 공간도 세심하게 신경 썼다. 재활용 목재로 만든 툇마루, 한지를 곱게 바른 문과 주물로 만든 듯한 동그란 문고리 또한 한국 전통 가옥의 양식을 차용한 디테일이다. 곳곳에 놓인 가구와 오브제 역시 돌, 나무, 황동의 질감으로 선별했다. 플라스틱이나 페인트같이 화학적으로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태어난 미학의 일부. 여기에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음악과 이솝 티, 가지런히 배열된 제품과 컨설턴트들의 다정한 응대까지. 서촌 스토어의 모든 것은 우리가 서촌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 한결같은 언어, 지역 및 공동체와 공유하는 유대감, 오랜 시간 증명해온 진정성…. 이솝과 서촌을 아름답게 만드는 공통분모들이 이솝 서촌 스토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솝 서촌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36
02-733-1987
11:00 ~ 21:00
MARIANNE LARDILLEUX 이솝의 스토어 디자인 책임자 마리안 라르디외(Marianne Lardilleux)를 서울에서 만났다. 이솝은 스토어 디자인뿐 아니라 제품부터 패키징, 광고 비주얼까지 공통된 콘셉트를 유지한다. 이솝에게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이솝의 디자인 비전은 진정성에 초점을 맞춘다. 디자인 그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솝 그 자체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고객이 간결하고 명확하게 이솝을 느낄 수 있도록 다가가는 것이다.
이솝의 스토어 디자인은 다른 스토어 디자인과 어떻게 다른가?
이솝 스토어가 특별한 이유는 각각의 특성과 콘셉트가 있기 때문이다. 이솝의 창립자인 데니스 파피티스가 지키고자 하는 약속, 이솝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데니스는 브랜드 자체를 내세우기보다는 공간 속에서 함께 어울리고 오래도록 머물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선 스토어가 속한 지역의 특수성과 환경에 맞춰 조화롭게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각 스토어의 디자인은 지역 문화를 반영해 고객들에게 다가간다. 스토어를 방문하는 고객들은 이런 방식으로 이솝이 전하고자 하는 가치를 체감하게 된다. 지역 고객과 공동체 그리고 브랜드 사이의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 대놓고 보여지는 직관적인 느낌보다는 그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배경과 분위기가 묻어날 수 있도록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솝 스토어는 편안한 느낌을 준다. 주변 공간과 분리되지 않고, 지역과 이솝이라는 브랜드 사이의 거리를 최소화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흔히 스킨케어 제품은 피부에 제일 먼저 닿고 매일 바르는 것인 만큼, 효과를 느끼기까지 친밀감을 쌓는 작업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피부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파악해 나만의 맞춤형 스킨케어 루틴을 갖게 되는 것처럼. 이솝 스토어 역시 매장을 찾는 고객에게 집처럼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전 세계 고객에게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은 있다. 어디에서든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와 환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초석을 단단히 세우고 뼈대를 잡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가의 역할 또한 이 프로세스 안에 해당되며, 이 기초 작업을 다지는 데 건축가가 이솝과 같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후에 건축가는 공간과 영역에 대한 본인의 느낌을 더해 공간의 건축 구성 요소를 자유롭게 제안한다. 물론 브랜드와 건축 디자이너가 같은 방향을 지향하도록 관계를 형성하기까지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단계와 토론이 이어진다.
공통적으로 유지하는 디자인 요소도 있을 거다.
가장 핵심인 싱크를 들 수 있다. 이솝의 어느 매장이든 싱크는 빠지지 않는다. 싱크를 통해 제품을 더욱 진실되고 편안하게 체험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제품과 교류하며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제품 디스플레이 방식도 마찬가지다. 스토어 디자인은 다를지라도 제품이 디스플레이되는 방식을 통일해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이솝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솝 스토어 디자인은 소재에 집중한 느낌이다. 스토어마다 다른 소재가 있는 반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소재도 있다.
소재는 영감의 원천이다. 이솝은 기존의 것을 최대치로 재활용하고 재사용하는 자원 순환 과정에 일조하며, 지속가능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스토어마다 지역 고유의 색이 묻어나도록 만드는 것은 그 지역에서만 찾을 수 있는 특별함을 담고 싶기 때문이다. 제주 스토어의 경우 해녀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납 벨트, 부유 기구, 고무 잠수복과 같은 도구들을 재활용했다. 부산 스토어도 그 지역에서 나온 폐기와를 주재료로 사용했으며 다른 재사용 소재도 다양하게 썼다. 지역을 이해하고 그 장소만이 가진 고유한 요소를 더하는 이러한 활동이 이솝이 가진 영감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이를 재활용한다면 지역과 어울리는 공간이 완성되고 그 감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재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이솝 스토어는 ‘고객 경험’에도 많은 신경을 쓴 티가 난다.
스토어 디자이너로서 진정한 고객 경험을 위해 매장을 설계하고 디자인한다. 싱크를 어디에 위치시킬 것인지, 각각의 구조물과 요소를 어디에 배치하면 좋을지, 그리고 이솝의 컨설턴트가 제품을 소개하고 공간을 사용할 때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같은 것들이다. 스토어 디자인과 이 모든 것이 상호작용을 한다.
고객 기반을 위해 한국에서만 적용된 스토어 디자인이 있을까?
스토어 디자인의 첫 번째 테스트는 대부분 한국에서 진행한다. 실제로, 프래그런스 캐비닛이라고도 부르는 프래그런스 아르무아를 처음 선보인 것이 한국이었다. 프래그런스에 대한 경험을 확장하고 싶었는데 싱크에서 선보이는 스킨케어 서비스만큼이나 구체적인 프래그런스 서비스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이후 프래그런스 캐비닛은 각 매장에 적합한 방식으로 변주되어 적용되고 있다. 이번 서촌 스토어에서도 서촌의 방식으로 해석한 프래그런스 아르무아를 만날 수 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디자인을 처음 적용한 것도 성수 스토어다. 한국은 혁신적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호기심과 관심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나라다.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 한국은 이를 항상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환대한다.
서촌 스토어의 디자인은 어디에 중점을 두었나?
이번에 서촌 스토어를 통해 사무소 효자동 건축사무소와 협업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20년 가까이 서울에서 일해왔고 사무소 또한 서촌에 자리하고 있다. 서촌 스토어를 디자인하는 데 그보다 알맞은 적임자는 없다고 생각했다. 서촌 스토어 디자인의 영감은 전통 한국 주택에서부터 나왔다. 단순히 전통 가옥의 모양을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매우 영리한 방식으로 이를 실현시켰다. 서촌에서 보존되고 있는 역사적 유산과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서촌 스토어가 원래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과 같은, 서촌과 이솝 간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것 같다.
물론이다. 사전에 건축가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고 작업을 진행했다. 스토어를 구상하는 데 고려되는 요소와 방향이 디자인에 확실히 담길 수 있도록 말이다. 애초에 서촌 스토어를 사무소 효자동에 맡긴 이유도 명확했다.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을 첫 번째 시안에 바로 제안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어제 북촌과 서촌을 오가며 아름다운 경관과 산책을 즐겼다. 청와대 앞도 거닐었다. 언덕과 작은 골목길이 이어진 곳에서 한국의 전통 가옥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산을 좋아하는데 도시 안에 이런 산이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바쁜 도심 일상에서 빠르게 탈출할 수 있으니까. 서울은 넓은 도로와 같이 현대적인 면과 역사가 공존하는 도시의 생동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