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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배우 김남희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남희는 스스로가 원래의 자신 같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는 건 싫다고 했다. 근사해 보이든, 따뜻한 사람으로 비쳐지든. 그에게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해달라고 한 후 사진을 찍었고, 작품들과 연기에 대한 온갖 솔직한 생각을 그대로 옮겼다.

프로필 by 오성윤 2023.06.23
 
셔츠 루드 by 지 스트리트 494 옴므 플러스. 팬츠 라프시몬스 by 지 스트리트 494 옴므 플러스. 슈즈 에임레온도르. 벨트 타이거 오브 스웨덴. 워치 까르띠에 by 빈티크. 네크리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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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 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하나 꼽는다면 뭘 말할 수 있을까요?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요. ‘재미’인 것 같아요. 예능에 나가는 것도, 오늘 화보 촬영을 하기로 한 것도 사실 그런 이유죠. 주변에서나 회사에서나 화보 촬영을 권유한 지는 오래됐는데, 제 기준에서 그건 제가 하면 안 되는 거였거든요. 너무 부끄러운 거, 내가 감히 할 수 없는 거. 제가 사진을 촬영할 때 바보가 된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으니까요. 제가 사실 저라는 사람의 바운더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서 그걸 벗어나는 거에 큰 거부감을 가지는 편이에요. 그런데도 그걸 한 번씩 깨기도 하는데, 그게 바로 새로운 시도에서 오는 재미 때문이죠. 안 해보면 제가 그걸 재미있어하는지 어떤지 모르잖아요. 연기에서도 제일 많이 생각하는 게 그 부분이고요.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을까, 어떤 작품이 더 재미있을까….
(말을 받으며) 어떤 캐릭터가 더 재미있을까.
맞아요. 제가 솔직히 성실한 배우는 못 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캐릭터한테 도움을 받기도 하는 거죠. 속된 말로 ‘눈 돌아간다’고 그러잖아요. 예를 들어 난생처음 이성 친구에게 빠지면 돈이고 시간이고 모든 걸 다 바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캐릭터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재미있는 캐릭터를 만나면 저절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게 되죠.
재미가 가장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하겠네요.
사실 제가 요즘 연기에서 얻는 재미가 많이 떨어졌어요. 연기를 오래도록 해오신 선배님들이 이런 얘기를 들으면 건방지다고 할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냥 요즘 제 상태를 말하자면 그래요. ‘연기가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내가 열심히 안 해서 그런가’ ‘예전의 그 간절했던 초심을 잃어서 그런가’ 여러 생각을 하죠. 그건 사실 배우에게 큰 위기인 거잖아요. 연기가 재미없으면 살아 있는 영혼이 연기 위로 나오기가 힘들어질 테고, 점점 더 매너리즘에 빠진 연기가 나올 테니까요. 요즘은 그걸 타개하기 위해 뭘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찾은 가장 근접한 답은 뭐예요?
친구들하고 술 마실 때 제가 요즘 그런 말을 많이 해요. 생태계를 좀 파괴하고 싶다고.
(웃음) 이렇게 과격한 답이 나올 줄은 예상 못 했는데요.
(웃음) 제가 배우로서 이 분야에 형성된 일종의 고정관념을 벗어난 길을 가면 좋겠다는 얘기인 거죠. 지금껏 일을 해오면서, 배우들이 가는 길이 몇 갈래로 정해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작품에서 메인이 되는 플롯의 주연을 주로 맡는 배우들이 있고, 그들이 해야 하는 종류의 연기와 대외 활동이 있고, 반면에 서브 플롯의 주연이 해야 하는 연기와 그들이 소화해야 할 부분들이 있고. 조연도 마찬지고요.
암묵적인 분류가 있고 그에 따라 특정한 스타일의 연기가 요구된다고 느꼈다는 얘기군요.
그럼 나는 그 안에서 어떤 배우일까, 생각해본 거죠.  조연인가? 아니면 서브 플롯을 주로 소화하는 주조연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주연이 하는 연기도 섞여 있는 것 같고, 조연의 특성도, 주조연의 특성도 섞여 있는 것 같고…. 스스로가 좀 혼종 같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저는 정말로 아예 대사도 없는 단역부터 시작했으니까. 그래서 이제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자문했을 때, 그럼 그냥 이대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 생태계에 내 걸로 그냥 한번 부딪혀보자. 배우들의 위치와 그 포지션에 따라 해줘야 할 것들, 정형화된 인식을 파괴해보자. 그게 제가 추구하는 ‘재미’의 최종 목적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사적인 동남아>에서는 재미있게 놀다가도 ‘저는 (배우로서) 이게 끝 아닐까요’ 하면서 내면의 불안을 내비치는 순간들이 있었고, 예전 인터뷰에서도 특정 작품 속 스스로의 연기에 대해 ‘배우로서 실패한 것 같다’는 평을 하며 낙담하기도 했어요. 오늘은 호기로워 보여서 좋은데, 불안과 패기의 주기 같은 게 있는 걸까요?
불안함은 언제나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이 어떻게 불안함이 없겠어요. 그런데 그 안에서도 재미있는 게 있으니까, 재미있게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다가 끝나면 되는 거죠. 그때는 <재벌집 막내아들> 촬영이 막 끝난 때였기 때문에 좀 더 심했던 것 같고요. 지금도 저는 진성준(<재벌집 막내아들> 속 김남희의 배역)으로서 제 연기가 실패했다고 보거든요. 그 실패를 다른 배우들과 감독님이 다 살려주신 거지.
어떤 지점에서 실패했으려나요?
제 자신을 객관화해서 보는 시선이 좀 떨어졌던 것 같아요. ‘이렇게 저렇게 해서 가면 되겠구나’ 하고 저 혼자 만든 좁은 시야에 갇혔던 거죠. 그게 결과적으로는 어떤 영향을 끼치냐 하면, 힘이 들어가 보이고 딱딱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제가 한 연기를 볼 수가 없더라고요. 못 참겠어서 채널을 돌리기도 하고, 나중에는 아예 안 보기도 하고. 그런데 시청률은 계속 올랐잖아요. 그러니까 기분이 이상한 거예요. 엄청나게 이슈가 되고 관심을 많이 받으니까 좋기도 한데, 또 한편으로는 그럴수록 더 속상하기도 하고요.
연기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스스로 진성준이라는 캐릭터에 갖는 애정은 컸던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박하게 평가했던 건 아닐까요?
그랬을 수도 있죠. 정말 애착이 컸으니까. 예를 들어 제가 화가라면,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뭔가를 열심히 그렸는데 사람들이 그게 예쁘지 않다고 하는 거예요. 또 누구는 너무 예쁘다 그러고. 제가 만약 정말 아티스트라면 ‘네가 뭘 알아, 꺼져’ 그랬겠죠. 그런데 결국 저는 아티스트까지는 안 되는 거예요. 사람들의 평가를 어떻게 무시하겠어요, 제가.
 
셔츠, 팬츠 모두 제냐. 벨트 누마레. 플립플롭, 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츠, 팬츠 모두 제냐. 벨트 누마레. 플립플롭, 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남희 씨의 진성준 연기에 대한 혹평이 있었나요? 놀랍다는 칭찬 일색이었던 것 같은데.
혹평도 있었죠. 주변에 연기를 하는 친구들이 솔직하게 얘기를 해주기도 하고요. 제 연기 스승님도 얘기를 해주시고. 그런데 사실 실패한 연기는 제가 하면서도 알아요. 감정이 안 잡히는데 억지로 뭔가를 하려 하고, 그러면 다시 하고 싶다고 부탁드리지만 몇 번을 다시 해봐도 안 될 때는 포기하는 거예요. <재벌집 막내아들> 때도 (윤)제문 선배님이랑 찍는 신에서 제 연기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부탁을 드린 적이 있거든요. 그 신을 다른 날 다시 해보면 안 되겠느냐고. 선배님 스케줄이 안 되면 저만 따로 찍어서 붙여주시는 건 어떻겠냐고. 감독님은 그 장면 괜찮았다고 걱정할 만한 수준 아니라고 계속 그러는데, 저는 이게 정말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다시 해보는 쪽으로 얘기가 됐는데, 결국 그 장면에서 착용했던 의상을 구하는 게 어려워서 포기하게 됐죠.
스스로를 성실하지 못한 배우라고 평하셨는데, 대신 고집과 애착은 엄청난 것 같네요.
맞아요. 아주 웃긴 거죠.(웃음) 그게 그렇게 저한테도 선명하게 대비될 때마다 괴로운 것 같아요. 성실해야 한다는 걸 아는데 도무지 성실하지가 않아. 아, 여기서 미치는 거죠 맨날.
최근 종영한 드라마 <패밀리>에서는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많았던 아역 신수아 배우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고 했어요.
아역들은 연기를 할 때 생각이 그렇게 많지 않더라고요. 순수하게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는 그대로 연기하죠. ‘이걸 어떻게 해야겠다’ 하는 정형화된 생각이 없어요. 그런데 사실 처음 연기를 배울 때는 다들 그렇게 하거든요. 크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면서도 순수하게, 조금 촌스러워도 진실하게 연기하는 게 진짜 좋은 연기인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이제는 정형화되고 뻔한 연기를 계속하게 되는 거죠. 이제 제가 그렇게 순수하게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좀 더 부지런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마음을 더 비워야 하니까. 그런 부분을 배웠어요.
얼마 전에 인터뷰한 다른 배우도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최근에 젊은 배우들과 함께 작업했는데 그들이 연기를 굉장히 편하고 자연스럽게 대하는 걸 보면서 큰 자극이 됐다는 얘기였죠. ‘내가 연기를 너무 어렵고 대단하고 숭고한 것으로 생각한 것 아닐까’ 돌아보게 됐다고.
(생각에 잠겼다가) 그런데 그건 표현에 따라 조금 달라지는 얘기 같아요. 순수하게 하는 연기와 그냥 편하게 하는 연기는 또 다른 거죠. 저는 그분이 원래 갖고 있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해요. 연기는 정말 어렵고, 대단하고, 숭고한 것일 수 있죠. 그래서 정말 작은 부분 하나까지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야 하고, 현장에 가서는 수아처럼 순수하게 풀어내는 거고요. 저는 그게 정말 좋은 연기라고 생각해요.
제가 아까 화보 촬영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고 했잖아요. 그게 그런 부분이었어요. 순식간에 사회적 가면이 사라지고 아주 원초적인 몸짓이 나오니까, 보는 입장에서 순간적으로 다른 세계로 떨어진 듯한 착각이 일더라고요. 이게 ‘순수한 연기를 하는 배우’와 연결이 되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웃음) 변덕스러운 배우죠.
하하하. 오늘 처음 뵀지만 그건 저도 동의할 수 있는 표현인 것 같은데요.
얼마나 변덕스러워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열심히 하고, 돈은 벌어야 하니까 이것저것 다 하는 아주 변덕스럽고 기회주의적인 배우죠.(웃음) 그래도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상업적으로 히트를 칠 수 있는 작품을 하면서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같은 작품을 같이 하기도 하고, 그런 면은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기도 해요. 배우가 새로운 시도를 안 하면 영역이 자꾸 줄어드는 거잖아요. 자꾸 도전을 하니까 굳어가던 것들이 그나마 풀리고 있지 않나 싶고요. 곧 선보일 작품들, 지금 촬영하고 있는 작품들을 택한 이유도 다 달라요. 다 다른 매력을 가진 작품들이죠. 그러니까 뷔페 가서 마음에 드는 것 골라 먹듯이 그렇게 지켜봐주시면 좋겠습니다.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이규원
  • STYLIST 박선용
  • HAIR & MAKEUP 이소연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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