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해외에 번역되었으면 하는 올해의 한국 책 10
한국의 책 전문가 10인에게 물었다. 2023년에 한국인에 의해 한국어로 쓰인 책 중 해외에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면 하는 책이 무엇이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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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는 사랑>
아이돌 그룹 멤버 A의 학폭 논란이 사실로 밝혀지면 그의 팬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A를 두둔하며 외롭게 덕질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배신의 아픔을 무기 삼아 더 맹렬하게 비난할 것인가. 그런데 궁금하다. 해외 팬들은 자신이 사랑한 아이돌을 두고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이 ‘논란’을 어떻게 이해할까? 그들에게 ‘scandal’이라는 번역어로, ‘논란’이란 말에 담긴 온갖 양상을 다 전달할 수 있을까? 문화인류학을 공부한 작가는 한국 아이돌 산업과 K-팝 팬덤을 주된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관심 경제와 캔슬 컬처, 팬덤이 지닌 관심의 실제와 이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공론장 등을 탐구한다. 또 거기서 그치지 않고 무언가에 매혹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우리가 딛고 서 있는 공통의 지반 전체로 나아간다. 작가는 결국 ‘논란’이란 “행복할 자격 그리고 사랑의 자격을 두고 벌어지는 일종의 도덕 논쟁”이라고 말한다. 아이돌 산업은 ‘사랑을 주면 행복으로 보답한다’는 원리로 움직이지만, 사람은 완전한 상품이 될 수 없기에 ‘도덕적 문제가 있는 이에게 사랑을 줘도 괜찮은지’ ‘대중은 행복이란 대가를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지’ 등 난감한 질문이 이어진다. 이 난감함을 전부 A의 책임으로 몰아 A를 제거하는 문제로 단순화하는 것이 ‘캔슬 컬처’의 핵심이다. 책은 이런 손쉬운 해법을 따를 수 없어 망설이는 마음, ‘아티스트를 상품이 아니라 고유한 인간으로 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마음이 가진 가능성에 주목한다. 국외에 번역된다면, 집단적 도덕주의가 유난히 강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어쩔 수 없이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다.
최원형(<한겨레> 책지성팀 팀장)
<기획하는 일 만드는 일>
얼마 전 만난 일본인 친구는 요즘 한국 예능에 푹 빠졌다고 했다. 팬데믹 이후 자주 들은 이야기다.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OTT 서비스의 확대와 코로나19를 기회 삼아 K-콘텐츠는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수많은 콘텐츠 중에서도 유독 빛나는 것들이 있다. 이를 만들어낸 건 어떤 사람들일까? 콘텐츠야말로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화두를 던지고 감동을 주는 존재임에도 그것들을 만든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할 자리가 없다고 판단한 저자는 팟캐스트 <보면 뭐하니>를 시작해 40명이 넘는 PD, 작가들을 만나 콘텐츠에 대한 대담을 나눴다. 책은 그중 열 편의 프로그램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다룬다. 이른 데뷔로 공부 시기를 놓쳐 지식에 목말라 있던 홍진경의 공부 이야기를 다룬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가수 뒤에만 존재하던 댄서들의 판을 대담하게 짜낸 <스트릿 우먼 파이터> 등 모두 기획안 한 장으로 시작해 종이에 누워 있던 활자를 살아 숨 쉬게 했다. 프레임 밖에 있던 이들에게 주목해 집요하게 파고들어 새로운 포맷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읽는 동안 눈물이 터져 나오려는 걸 여러 번 참아야만 했다. 단편적인 성공담을 넘어 기어코 맡은 일을 해내고 마는 끈기와 애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했다”고 말하지만, 그 사이에는 ‘치열하게’ ‘전에 없던 생명력을 만들어내고’ ‘경험을 확장시키며’ ‘용감하게’ 같은 단어들이 숨어 있다.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들려오지 않았던 그들의 이야기가 더 멀리 나아갔으면 좋겠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K-콘텐츠는 이들의 삶과 꿈과 노력이 담긴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으니까.
서하나(번역가)
<연결된 고통>
의사이자 인류학자이기도 한 이기병은 3년간 거의 매일 외국인노동자를 봐왔고 그 이야기를 <연결된 고통>에 담았다. 그에게 온 환자들은 진료실에 들어서면서 대개 미안해했고 한국어 혹은 영어가 서툴러 자신의 아픔을 설명할 줄 몰랐다. 저출산과 고령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외국인노동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인력이 부족한 산업군에는 이미 많은 외국인이 존재한다. 한국만 해도 공식적인 외국인노동자 수가 80만 명을 넘었다. 일본은 약 200만 명, 미국은 약 2100만 명이다. 미국의 경우 2022년 전체 노동인구가 약 1억 7000만 명이니 외국인노동자 비율이 10%가 넘는 셈이다. 그들 대다수는 아프면 일단 참고, 진통제 몇 알로 버티다 그래도 안 되면 말이 안 통하는 낯선 진료실에 불안하게 앉아 있을 것이다. <연결된 고통>이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닌 건 그래서다. 10개국이 넘는 문화권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진료환경을 제공하려는 저자는 이들이 받는 차별과 부당한 낙인 그리고 불합리한 노동환경을 질병과 연결 짓는 인류사회학적 연구까지 시도한다. 이 책을 읽고 집요하게 캐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혹시 ‘코리안 드림’ 또는 ‘아메리칸 드림’을 볼모로 사회가 타인의 고통을 방관하고 있는 건 아니냐고, 외국인노동자의 질병이 정말 그들만의 잘못이냐고 말이다. 이런 수많은 물음을 타고 고통이 연결될 수 있길 바란다.
조은혜(모로 출판사 대표)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녀를 잃는 것보다 더 큰 상실이 있을까? 그런데 고통이라는 측면에서 이보다 더 큰 아픔이 있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날마다 싸우는 자식을 지켜볼 때다. 이는 엄마이자 의사인 저자에게 닥친 현실이다. 딸은 가끔 우울한 기색을 보였지만, 부모는 으레 그 나이대가 겪는 성장통이라 생각했다. 성인이 되고서도 잘 지내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딸의 몸 곳곳이 자해 흔적으로 덮여 있었다. 병원에 갔다. 양극성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때부터 저자는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살기 위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정신질환에 관해 공부하고, 병원을 알아보고, 딸을 이해하려는 노력했다. 저자는 딸의 투병 과정을 통해 뇌에 대한 현대 의학의 한계, 의료 시스템의 모순, 돌봄 노동의 지난함 등을 깨닫는다. 책은 정신질환자 가족의 기록인 동시에 의료인으로서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기도 하다. 이 책이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은 의료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다. 정상성에 대한 의문, 돌봄 노동의 중요함 등은 로이 리처드 그린커의 <정상은 없다>나 더 케어 콜렉티브의 <돌봄 선언>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세계적으로 긴요한 과제다. 두 주제를 아우르는 이 책에서 저자는 정신질환자를 향한 편견과 혐오를 거두자고 제안한다. 현대 의학도, 국가도 정신질환자를 완전히 품지 못한다. 결국 가족이 정신질환자의 돌봄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서, 저자의 제언처럼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정신질환자이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간 된 도리일 것이다.
손민규(YES24 MD)
<서사의 위기>
전 세계적으로 ‘쇼츠’와 ‘릴스’ 그리고 ‘틱톡’을 위시한 짧고 자극적인 정보들이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 SNS에 올라탄 새로운 뉴스는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지고 새로운 트렌드 또한 하루아침에 뜨고 지기를 반복한다. 그것들을 실생활에 활용하고 적용하는 법을 다루는 책은 흔하다. 디지털 세계로의 편중을 경계하며 자제를 권하는 책 역시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출판계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책처럼 기술 발전의 이면을 인문학적 성찰로 연결해 풀어낸 책은 드물다. 전작 <피로 사회>에서 다루는 ‘성과지향주의’가 결국 대한민국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듯, <서사의 위기> 역시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정보와 자극만을 좇는 전 세계적 흐름을 꼬집는다는 점에서 해외 독자에게도 의미를 지닌다. 저자이자 재독 철학자인 한병철 교수는 수많은 정보를 휴대폰 안에 넣고 다니며 사소한 정보 하나도 놓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유용한 도구로 인해 되레 사람들은 서사를 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시간이다. 사유하는 자세로 차분히 머무는 시간을 따로 갖고 그 시간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맥락과 방향성 있는 이야기를 완성하라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에만 쏠린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서사로 전환되기를 기대하며 책을 권한다.
이의성(프리랜스 에디터)
<우주 여행자를 위한 한국살이 가이드북>
우주를 여행하는 외계인 혹은 정체불명의 생명체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태로 쓰인 이 책은 한국에 살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을 제안하는 ‘가이드북’을 표방한다. 그러나 한국의 볼거리나 먹을거리 같은 일반적인 정보를 담았을 거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한국 사회에서 튀지 않고 잘 적응하기 위한 팁부터 시작해 시종일관 우리 사회의 치부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학벌주의, 서울 중심주의, 장애인과 성소수자 혐오, 노키즈존 등 폭넓은 사회적 이슈를 건드리는데 때론 조금 멀찍한 시선으로 ‘맞아, 그런 사람들 정말 나쁘지’라고 생각하다가도 어떤 장에서는 ‘어쩜 나도 그랬을 수 있겠다’라며 반성하기 일쑤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 특정해 글을 써 내려갔지만, 그런 불합리하고 왜곡된 사회현상이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책은 해외 독자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팬데믹 이후 더욱 불거진 기후 위기와 동물권의 재조명, 전쟁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상식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하는 요즘의 국제 정세를 비추어본다면 이 책은 ‘한국살이 가이드북’을 넘어 ‘지구살이 가이드북’으로도 읽힐 수 있겠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독자들이 이 책에 등장하는 풍자를 단순히 혀를 차며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뜻을 되짚으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실천의 밑거름으로 삼기를 바란다.
김예진(북다마스 대표)
<베테랑의 몸>
<불쉿 잡>이나 <가짜 노동>처럼 직업과 노동에 관한 책이 문화권을 막론하고 공감을 얻고 있다. 일하는 시간에 비례해 자신이 무의미해진다고 느끼는 이들이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는 말이다. 세상사는 작용과 반작용의 반복. 일의 무의미에 대한 회의감이 짙어질수록 직업인의 자부심에 대한 갈망도 커지고 있을 것이다. 일에서 소외되는 경험을 한 이들은 ‘진짜 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서로 다른 연령, 성별, 분야의 베테랑 12인을 인터뷰하고 관찰하여 써낸 이 책을 이런 맥락에서 추천한다. 베테랑들의 직업은 세공사, 조리사, 로프공, 어부, 안마사, 세신사 등이다. 미디어에서 주로 약자로서 처한 상황만 주목받은 직업들이지만, 저자는 이들을 프로페셔널한 직업인으로 조망한다. 같은 자세로, 같은 태도로 긴 시간 일해온 사람들. 이들이 쌓아온 기술과 노력, 내 일만큼은 내가 확실하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자부심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투박한 말 사이에 삐죽 솟아난 진심과 진실 같은 것들을 예리하게 잡아내며 이들의 직업관과 태도를 매끄러운 언어로 다듬었다. 인터뷰이에 대한 존중과 별개로, 저자는 ‘인터뷰 후기’를 통해 이들의 일과 관련된 동물의 복지, 사회제도적 차별, 혐오에 대한 우려 등도 남겨놓았다. 또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슬쩍 짓밟고 지나가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말이다. 덕분에 독자는 사회적 맥락에서 분리된 공허한 칭찬이나 찜찜한 격려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하며 찬사와 고민을 동시에 하게 하는 책. 마음에 걸리는 구석 없이 세계 어디에나 환한 표정으로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김경영(알라딘 MD)

<마주>
‘사회적 거리두기’는 한때 정언 명령으로 우리를 지배했으나 벌써 기억 에서 흐려지고 있다. 그런데 정말 완전히 지나간 것일까? 최은미의 장편 <마주>는 지속되는 팬데믹 시간에 대해 끊임없이 새롭게 덧붙여지는 기억처럼 순간순간을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신발에 발을 넣어본 적이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2020년, 팬데믹 한복판에서 서로를 ‘마주’ 보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마주 보기 위한 시간을 견뎌내는지 치열하게 그린다. 등장인물 ‘나리’와 ‘수미’는 비슷한 또래의 딸을 둔 두 여성으로, 너무 가까워서 멀기도 한 사이다. 특히 수미가 코로나19에 감염돼 격리 입원을 거치며 불가피하게 거리를 두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이 밀접한 마음의 문제가 이들 사이를 연결한다. 팬데믹 시기, 우리에게 감염의 위험성을 알고 있음에도 밀접한 관계가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들이 있었듯, 책은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외로움과 두려움의 사회적 증상이 보편화된 상황에서조차 우리가 타자와의 접촉과 연결, 의존과 돌봄에 대한 갈망을 포기할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소설은 잠복결핵 진단을 받은 나리가 만조 아줌마의 존재를 떠올리고, 수미와 함께 ‘딴산’을 방문해 사과 농장과 양조장을 운영하는 결핵 환자 공동체를 만나는 과정을 통해 위태롭지만 서로를 지탱하는 사람들의 온도를 강조한다. 만약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의 온도가 세계적인 증상이라면, 해외의 수많은 독자에게도 최은미의 <마주>가 제공하는 문학적 처방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박인성(문학평론가)
<프롬 투>
한국은 물류가 번개처럼 빠른 나라다. 한 전자상거래 업체의 ‘로켓 배송’이라는 표현처럼 말이다.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오늘 주문하면 내일 새벽에 문 앞에 물건이 배송된다. 이렇게 빠른 배송이 가능한 건 넓지 않은 국토와 업체 간 배송 속도 경쟁, 또 ‘빨리빨리’ 유전자의 영향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물류 시스템이 잘 발달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비자 입장의 물류 서비스 측면에서 보면 아마도 한국은 세계 최강국에 속할 것이다. 빠른 속도만이 물류의 전부를 가리는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 의한 보호무역 추세의 가속화, 연이은 전쟁의 여파로 인한 공급망 위기 그리고 금리 인상 및 기후 위기와 맞물린 물가 폭등은 일상 속 원활한 물류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한다. 물류는 단지 상품의 공급망 관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세계 정세부터 정치, 법, 경제, 정보 기술, 소비자의 여가와 라이프스타일 등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분야인 것이다. 물류는 시간과 비용의 과학이다. 보다 빠르고 저렴하게, 정확하고 안전하게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비즈니스다. 물류는 교통수단의 발달과 정보기술(IT), 냉장·냉동·표준화를 비롯한 보관 기술, 국제 무역과 국내 판매망, 소비자의 구매력 등 다양한 사회적 기반의 진화를 바탕으로 현대인의 풍요로운 삶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뒷받침하고 있다. 세계에서 물류가 가장 빠른 나라의 물류 전문가가 쓴 이 책이 전 세계 물류 관계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해본다.
백원근(책과사회연구소 대표)
<고통 구경하는 사회>
고통이 콘텐츠가 된 세상이다. 머나먼 타국의 전쟁부터 소셜미디어 속 범람하는 사건 사고들까지, 타인의 고통은 어느새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그리고 우리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것 틈바구니에 끼여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고통의 구경꾼이자 방관자인 우리는 고통을 어떻게 응시해야 하는가? 책은 타인의 고통을 재현하는 딜레마에서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한다. “우리는 어떤 고통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하고 응시를 참아내야 하는가? 고통은 얼마나 보여주고, 또 가려야 하는가?” 질문들은 20년 전 수전 손택의 명저 <타인의 고통>과 맞닿아 있고 오늘날 미국에서 독립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김인정 작가의 시선에서 다시금 그 논의를 잇는다. 서점에서 일하며 넘쳐나는 사회 이슈 중 수치로 잘 계량될 도서만을 큐레이션하는 무력한 한국인, 짓눌린 자유에 분노하며 트위터에 의견을 게시하고 리트윗하는 홍콩인, 마약에 스러져 몰락하는 도시를 연민하며 체념한 미국인까지, 모두 고통을 구경하고 전시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건 책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연민과 분노에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의심하며 주제 의식을 공론장으로 끌고 오는 일일 테다. 그 공론장에서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다. 고통의 언어는 보편의 언어로 세상과 작용한다. 책에 쓰인 아름다운 문장들과 빛나는 고민들이 온전히 전 세계로 전해질 수 있다면, 인종과 언어 계급을 뛰어넘어 더 많은 사람이 타인의 고통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한재국(교보문고 MD)
Credit
- EDITOR 김현유/박호준
- PHOTOGRAPHER 정우영
- ART DESIGNER 김동희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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