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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아무 이유 없이 슈트를 꺼내 입어보는 이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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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코로나19의 영향이 굉장히 컸죠.” 슈트를 입을 일이 점점 사라져간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패션 칼럼니스트 박세진이 처음 꺼내놓은 답변은 이랬다. 물론 그도 코로나 이전부터 슈트가 사라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섬유산업연합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 6조8668억원을 기록했던 국내 남성 정장의 시장 규모는 2014년 이후 내내 4조원대에 머물고 있다. 박세진은 최근 저서 <패션의 시대>를 통해 우리가 가진 패션이라는 관념이 아주 특이한 구간을 지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다소 간편하게 축약하면,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의 온갖 실험적 시도, 전유, 포섭으로 인해 최근 우리가 전과는 좀 다른 논리로 옷을 입게 되었다는 것이다. ‘좋은 소재로 테일러링 전통에 따라 잘 만든 옷’이 좋은 옷이라는 발상은 전례 없이 느슨해졌고, 격식이 아닌 편의성과 실용성이 세련미의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두 변화 모두 사실상 슈트라는 복식의 대척점에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다는 박세진의 말은, 해당 추세를 팬데믹과 재택근무의 유행이 폭발적으로 앞당겼다는 뜻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관성적으로 슈트를 입던 개인과 사회가 그 모든 걸 멈추고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유니클로의 야나이 타다시 회장도 그런 이야기를 했잖아요. 코로나19 때문에 10년 분량의 변화가 1년 만에 불어닥치면서 슈트와 일상 사이의 연결고리가 없어졌다고요. 남성복 매장이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고도 했죠.” 그의 생각에 국내의 경우에는 산업구조의 재편도 큰 요인이었다. 사실 국내에서 슈트 판매를 견인해온 가장 큰 부분은 기업들의 복장 지침이었으니까. 그간 슈트가 일종의 ‘유니폼’처럼 기능해왔다는 뜻인데, IT 업체가 산업의 중심이 되면서 확실히 전례 없이 유연해진 부분이 있다.
그러고 보면 내게도 코로나19의 위력을 실감할 만한 경험이 있었다. 나는 2020년 중순에 한 번, 2022년 가을에 한 번 대학 동기들의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신랑 하객이 거의 비슷한 무리였다는 뜻인데, 코로나19 초기만 해도 슈트를 입은 남자들이 바글거렸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캐주얼 일색이었다. 슈트를 입은 몇 남자들이 마치 파티장을 잘못 찾은 사람들인 양 어색해 보였을 정도로. 사르토리아 나폴레타나 인 서울의 전병하 테일러는 그 얘기에 금세 수긍했다. “맞아요. 최근에는 장례식장에 슈트를 입고 가야 한다는 관념도 무너졌죠.” 관혼상제는 기업문화만큼이나 한국의 슈트 문화를 유지해온 커다란 주춧돌이었을 것이다. 국내 1세대 유학파 사르토(재단사)로서 비스포크 하우스인 사르토리아 나폴레타나 인 서울과 기성복 슈트 브랜드 사르토리아 준을 운영하고 있는 전병하 테일러는 국제적 추세와 슈트의 다양한 층위에 두루 눈이 밝은 사람이다. 이를 테면 ‘슈트의 위기’라는 대충 뭉뚱그린 표현을 국내 기성복 슈트 시장과 테일러링 슈트 시장, 이탈리아와 영국의 상황으로 나눠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감식안의 결론은, 안타깝게도 슈트의 쇠퇴는 세계적 흐름이며 속도는 다를지라도 전방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슈트가 아예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어쨌든 수요가 있으니까. 하지만 시대가 지금의 슈트를 원하지 않으니까 형태가 바뀌든, 기술적인 부분이 바뀌든, 뭔가 변화가 생기겠죠.” 그는 지금이 과도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몇 백 년 동안 계속 베토벤, 모차르트 같은 낭만주의 클래식만 들어왔는데, 지금은 아닐지라도 시간이 좀 더 흐르면 클래식에서 이미 이룩해 놓은 새로운 음악도 듣지 않을까 한다는 것이다. “제 생각은 그래요. 모르죠. 아예 안 들을 수도 있고.” 그러고는 괜히 사족도 달았다.
슈트의 형태가 변화할 것이라는 예견은 그뿐만 아니라 슈트 문화를 애호하는 모두가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다. 가장 가까운 예는 ‘맨즈웨어’로 스스로의 범주를 확장하는 슈트 명가들이다. 심지어 슈트 문화의 출발점이자 성지인 런던 새빌로에서도 최근 유서 깊은 테일러 숍들이 문을 닫은 자리에 남성복을 폭넓게 다루는 매장이 들어오고 있다. 작년 말에는 드레익스도 새빌로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는데, 홈페이지만 봐도 이 브랜드가 슈트 브랜드라고 할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다. 첫 문단에서 언급했던 ‘비즈니스 캐주얼’이라면 모를까. 이 위기 속에서 인기를 구가하는 소수의 슈트 브랜드들도 마찬가지로 슈트라는 전통을 유연하게 변주하고 있다. “파리의 허즈번드 파리나 뉴욕의 스토파 같은 브랜드가 요즘 각광을 받는 브랜드죠. 어떤 거냐면, 테일러링을 강조하면서도 그 안에서 좀 더 마니악한 취향이 두드러진 장르를 추구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캐주얼과 섞어 입어도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고요.” <에스콰이어> 디지털팀 임일웅 에디터의 귀띔이다. 소수지만 슈트가 가까운 미래에 재림할 거라 믿는 낙관적 전망도 있다. 스트리트부터 아웃도어까지 넓은 범주를 두루 탐구해온 패션이 최근 컬렉션에서 다시 테일러링 전통으로 회귀하는 조짐을 보인다거나, 이미 오래전에 슈트라는 범주를 탈피한 유서 깊은 슈트 브랜드들이 다시 슈트에 관심을 보인다는 등의 이야기를 단서로. 하지만 이때 중요한 건, 여기서 지칭하는 슈트는 우리가 아는 그 슈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근본주의자처럼 까다롭게 굴려는 게 아니다. 슈트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강요’가 사라지고 그 옷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뀐 상황에서, ‘위아래가 같은 옷감으로 만들어진 옷’이라는 사전적 정의만 남겨두는 정도로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고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입게 만들기가 힘들 것이다.
솔직히 나는 5년 전 처음 슈트를 살 때에도 이런 흐름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사놔도 이런 걸 입을 일이 없다고, 한 번 입으려고 구매하기에는 돈이 아깝다고 지인 여럿에게 토로했었으니까. 친구들은 ‘산 김에 많이 입으면 되지’ 했는데, 실제로 구매 후 지금까지 정확히 6번 입었다. 그리고 그중 3번이 이번 기사를 기획하는 동안 혼자 방 안에서 입어본 것이다. 슈트를 입는다는 게 어떤 느낌이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아서였다. 갑자기 기품을 얻는다거나 당당해지는 효과 같은 걸 살짝 기대하기도 했으나 거울에 비친 모습은 그냥 문상객 같았다. 넥타이가 없어서 그러나 싶어 넥타이를 맸더니 법원 출두 명령을 받은 사람 같았다. 미국 매체 <복스(VOX)>는 이미 5년 전에 페이스북 대표 마크 저커버그가 국회에 불려 나왔을 때 이례적으로 슈트를 입었던 걸 지적하며 ‘어떻게 힘의 상징이었던 슈트는 나쁜 상황에 처한 사람의 상징이 되었는가’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칼럼을 낸 바 있다.
그런데 왜 두번이나 더 입었냐고 묻는다면 그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고 할 수밖에. 아무튼 슈트는 몸을 감싸는 느낌이 참 매력적인 옷이며, 곧 어딘가 좋은 곳으로 가게 될 것만 같은 묘하게 들뜨는 기분을 선사한다. 그러니까, 철없는 부장님처럼 정말로 그 옷을 입고 어디 좋은 곳에 놀러 가고 싶은가 하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로 말이다.
오성윤은 <에스콰이어 코리아>의 피처 에디터다. 책 <짧은 휴가>를 썼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오성윤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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