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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법조인이 대신 판결을 내려주는 시대가 올까?

프로필 by 김현유 2023.12.08
 
인공지능(AI)이 법조인을 대신해 법률 서비스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기사를 볼 때마다,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순간 긴장하게 된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아직 멀었어!”라고 호기롭게 외쳐보고 싶지만 가슴 한구석에 우려가 밀려드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실제 AI는 법률 서비스 분야의 문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이미 AI를 활용한 법률용어 설명, 하급심 판례 수집, 판례 분석, 계약 플랫폼, AI 상담봇 등이 계속 나오고 있다.
나는 이른바 ‘도제식’ 법조인의 마지막 세대다. 선배에게 혼나가면서 일을 배우고, 사건을 맡은 경험을 통해 노하우를 쌓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지식의 상당 부분은 구닥다리가 되었거나, 인터넷에 공개되고 말았다. 세상은 이처럼 빠르게 변한다. 이제 AI까지 등장했다고 하니, 근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경험치와 지식이 자신의 몸값으로 여겨졌다. 비단 법조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일반 회사에서도 말단 사원부터 대리, 과장, 부장,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쌓아온 노하우가 나의 가치로 인정받았다. 법조계에서는 특정한 분야의 소송, 다양한 상황에서 겪어본 판결, 수사에 대한 경험 등과 그 과정에서 쌓이는 노하우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주목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네이버를 비롯한 검색 포털이 등장하고 많은 노하우가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판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한 번도 안 해본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다양한 간접경험을 크롤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전 같으면 오랜 기간 법조인으로 일해야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쉽게 입수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도제식 교육으로 터득하던 지식이 상당 부분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비슷한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한국의 법률 관련 서비스는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디지털화되어 왔다.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인터넷으로 등기부등본을 발급하거나 소송 서류를 주고받을 수 있으며, 화상 재판이 가능한 나라는 많지 않다. 이런 급속한 디지털화 과정에서 법조계는 한 차례 큰 변화를 겪었다. 예를 들어 전자소송, 전자등기의 도입 뒤 많은 변호사 사무실의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예전에는 변호사 1명당 최소 2~3인의 보조직원이 필요했다면, 현재는 변호사 여러 명이 보조직원을 1명만 채용하거나, 아예 변호사 혼자서만 일하는 사무실도 생겨났다.
AI 법률 서비스 이야기를 하면서 과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AI가 본격적으로 도입될 경우 이런 인력 대체가 좀 더 광범위하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AI를 활용한 법률 서비스 기능은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기본적이고 간단한 업무를 처리하는 프로그램이 등장한 뒤, 이를 토대로 한 단계씩 발전해온 것이다. 지금까지 이뤄진 법률 서비스의 디지털화가 단순 업무자를 대체하는 효과를 가져왔다면, AI는 그 위 단계 레벨의 작업자를 대체할 수 있다. AI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기존과 동일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투입되는 인력과 시간은 줄 것이고,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의 수준은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시간을 들여 쌓은 직접경험과 노하우는 이제 의미가 없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아직은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최근 나는 AI를 통한 기업과 인물의 평판 관리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AI가 평판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그 내용을 단계별 혹은 목적에 맞게 분류하여 필요한 것은 활용하고 나쁜 것은 삭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개발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은 결국 AI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AI가 좋은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게끔 필요한 키워드를 투입해 자료 수집 조건을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의 일이다. 이 과정이 능숙할수록 AI가 뽑아내는 결과물의 질은 높아졌다.
결국 AI 시대의 인간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또 중요한 능력은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오류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다.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AI를 다루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이 하는 일은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오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AI 법률 서비스의 오류와 관련해 눈에 띄는 사건이 벌어졌다. 래퍼 프라스 미셸(Pras Michel)의 사건이다. 지난 10월 미셸은 형사 재판에서 자신의 변호사가 AI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바람에 재판을 망치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며, 법원에 다시 재판을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그에 따르면 미셸의 전 변호사는 AI 프로그램을 사용해 최후 변론 초안을 작성하면서 기소된 내용을 혼동해놓고, 며칠씩 걸리는 법률 작업을 AI를 통해 단 몇 초 만에 해결했다며 공개적으로 자랑했다고 한다. 전 변호사와 해당 AI 프로그램은 재정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단 사소하지만, 챗GPT가 조사해준 가짜 판례를 법원에 제출했다가 망신당한 변호사도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싶지만, 인간이 다루는 AI를 사용한다면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인간이 어디선가 만들어낸 오류까지도 AI가 정리해서 수정하는 시대가 오겠지만, 지금은 그전까지는 해당 프로세스를 전체적으로 장악해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두 번째는 정보를 조율하고 소통하는 능력이다. AI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간접경험은 더욱 정교해질 전망이다. 검색 포털이나 SNS를 통해 해보지 않은 것을 크롤링하는 것이 지금도 가능하듯 말이다. 그러나 간접경험이 직접경험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인터넷에 법률 관련 지식 대부분이 공개되어 있는 이 시점에, 개개 법조인의 실력이 동등해졌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결코 아니다. 법률 지식과 경험이 공유된다고 해서 그것이 모든 법조인을 같은 레벨로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결국 AI를 통해 수집된 간접경험과 지식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사이트와 조율해 직접경험과 동일한 수준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자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는 법조계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경험치와 지식이 자신의 몸값으로 여겨지던 시기를 지나, AI의 오류를 찾아 제어하고 정보와 인사이트를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진 시대에 접어든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저성과자, 단순 업무를 하던 직원에 대한 수요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AI를 통해 효율적인 성과를 내는 이들이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AI를 통해 간접경험을 습득하고, 이를 토대로 남들이 오랜 시간 걸려서 갖게 된 노하우를 이른 시일 안에 갖게 된 자들이 주역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현재의 기술로는 AI가 판결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다만, 손해배상 소송과 같이 기계적인 판단이나 단순 대여금 사건처럼 결론을 도식화할 수 있는 영역은 머지않아 대체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판단이 필요한 영역, 증거의 가치를 판단하고 거짓된 진술을 솎아내야 하는 영역에서는 여전히 대체가 어렵다. 이 점은 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증거를 수집하고 피의자를 신문하여 유죄를 입증할 자료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AI로 대체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특히 변호사는 검사와 같은 강제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의뢰인과 직접 접촉해 신뢰를 형성하고, 의뢰인에게서 증거, 사실 관계 등 소송이나 자문에 필요한 것들을 효율적으로 얻어내야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마치 의사와 환자의 관계와 비슷한데, 이런 과정은 아직 AI가 전면적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인터넷에는 오늘도 ‘AI 판사를 도입하라’는 주장이 쏟아져 나온다. 당장은 아니라고 보지만 기술은 발전하고 있고, 언젠가는 법률 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AI로 대체될지도 모른다. 흔히들 판사, 검사, 변호사를 법조 삼륜(三輪)이라고 한다. 만약 이들이 AI로 대체된다면, 변호사는 가장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고윤기는 변호사다. 유튜브 채널 <법률꿀팁>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고윤기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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