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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지 못한, 얕아 보이지만 심오한 세상의 연구 7

프로필 by 김현유 2023.12.31
 
썸타기와 어장관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
정기고와 소유가 녹을 듯한 목소리로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를 함께 불렀던 게 약 10여 년 전의 일이다. 이제 ‘본격적인 연인 관계로 발전하기 이전 단계의 애매한 남녀관계’를 뭉뚱그려 표현한 ‘썸을 탄다’는 말은 사실상 표준어다. 그러나 ‘썸’ 자체가 ‘관계를 확실하게 정의하지 않는 관계’이다 보니, 이에 대한 의견은 개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A는 ‘서로 확실하게 좋아하지만 아직 사귀지는 않는 상태’를 썸이라고 부르지만, B는 ‘미묘한 감정이 살짝 느껴지는 사이’를 썸이라고 칭할 수도 있는 것이다.
논문은 이런 배경을 설명하며 시작된다. 저자는 “썸탄다는 활동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배경하에서 학술적으로 ‘썸탄다’는 의미를 분석했다. 논문은 ‘썸타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상대방에 대한 이성적 호감을 지닌 두 남녀가 새롭게 만남을 시작하며 자신들의 ‘의지적 불확정성’에 대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 그런데 ‘의지적 불확정성’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를 결정하지 못하는 이의 불확실성, 자신의 자아가 어떤 의지로 채워져야 할지를 판단하지 못하는 이의 불확실성에 대해 저자가 편의상 이름 붙인 것이다.
이를 파헤치기 위해 저자는 해리 프랑크푸르트의 ‘의지 이론’을 끌어온다. 자꾸만 상대방에게 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납득하고 수용해야 할지, 아니면 침입자로 간주해 끊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는 ‘미결정성’이 썸에 내재한 불확실성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지적 불확정성’을 양쪽 모두가 경험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 바로 ‘썸타기’이다. 저자는 썸을 ‘탐색형 썸타기’와 ‘쾌락형 썸타기’의 두 부류로 구분하고, 각각의 상황을 설명하며 ‘어장관리’까지 고찰의 영역을 넓힌다. 여기서 넘어가 연애가 시작되면,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의지적 불확정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가 되어 서로와의 만남을 이어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장점이라면, 최근의 개념을 분석했기에 여타 논문과 달리 여성지 기사나 ‘나무위키’ 등을 인용해 쉽게 읽히는 편이다. 참고로 논문의 영문 제목은 <When There is Something Between You and Me>다.
 
[ DBpia Comment ]
“무엇보다 이 논문은 DBpia 최고 인기 논문이다.인기에는 이유가 있다. 요약문을 읽어봐도 알 듯 말 듯 싶기 때문에, 읽어볼 수밖에 없다. 어려운 것 같지만 또 술술 읽히는 게 매력이다.” 


 

한국 오타쿠에 관한 용어와 의미 고찰
2010년 1월 방영된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는 후일 ‘오덕 페이트’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20대 초반의 남성이 출연했다. 그는 방송에서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의 등장인물 ‘페이트 테스타로사’가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주장하며 해당 캐릭터가 그려진 대형 베개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고 피자집을 방문하며 데이트를 즐겼다. 방송 후, 지금껏 해외 토픽에서만 봐 왔던 리얼한 ‘오타쿠’가 한국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에 인터넷은 뒤집어졌다. 한국형 오타쿠를 지칭하는 ‘오덕’, ‘덕후’ 같은 단어가 양지에 퍼진 계기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까지 한국의 오타쿠에 대해 학술적으로 정의한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오타쿠를 주제로 한 서적이나 논문은 그 수가 다양하나, 한국의 오타쿠 문화에 대해 언급한 것은 거의 전무”했다는 논문의 설명이 이를 뒷받침한다. 논문은 ‘오덕 페이트’를 통해 오타쿠라는 개념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일본과는 또 다른 한국만의 오타쿠 문화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오타쿠란 무엇인가’라는 자기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타쿠’를 넘어 ‘덕후’ 같은 단어가 표준어처럼 쓰이는 지금 돌아보면 굉장히 시의적절한 때에 나온 논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 편>을 통해 1990년대에 처음 한국에 전해진 ‘오타쿠’라는 단어는 2000년대를 지나며 ‘폐인’과 혼용되며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가 되었다. 2000년대 중반 들어 ‘오덕후’라는 한국식 표현이 디시인사이드를 중심으로 생겨났고, 여기서 파생된 ‘덕’이라는 접미어는 오덕후와는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오덕후’처럼 음침한 마니아라는 느낌보다는 ‘밀덕’이나 ‘축덕’ 등 한 가지 취미에 열심인 사람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일본의 ‘오타쿠’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으로 발전한 셈이다.
논문은 “한국에 오타쿠라는 집단이 나타난 지 아직 2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며 “이들이 사회의 주역이 되었을 때는 오타쿠가 지닌 특성과 현상들이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라고 마무리된다. 논문이 나온 지 만 1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맞힌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지만, 어쨌든 ‘한국형 오타쿠’를 처음 학술적으로 정의한 논문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깊다.
 
[ DBpia Comment ]
“한국과 일본에서 쓰이는 ‘오타쿠’는 그 뉘앙스가 다르다. 이 논문은 그런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초창기, 오타쿠라는 용어를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다 읽고 나면 2000년대 한국 인터넷 문화사 흐름이 어느 정도 이해될 것이다.” 


 

직장인의 점심 식사 결정 요인들의 상대적 중요도
<SNL 코리아>의 ‘MZ 오피스’ 시리즈는 한 직장 내 이른바 MZ세대와 기성세대 사이 세대 차이를 극적으로 표현해 큰 인기를 끌었다. 한 예로, 부장의 점심 식사 제안을 젊은 직원들은 ‘다이어트 중’이라거나 ‘요가 수업을 간다’며 태연하게 거절한다. 이후 장면은 담배 연기로 가득 찬 1990년대의 사무실 풍경으로 바뀌는데, 담배를 물고선 짜장면을 먹자는 부장의 한 마디에 만삭의 임신부를 포함한 모든 직원은 바로 의견을 통일한다. 논문은 이처럼 ‘직장인의 점심시간’을 둘러싼 세대간 인식 차이에서 시작해 점심시간과 같은 휴게 시간에 이루어지는 비공식적 소통이 조직문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폈다.
점심시간에 고민해야 할 것은 메뉴만이 아니다. 누구와, 어디서, 무슨 대화를 하면서 먹어야 할지, 식사 후 결제는 누가 해야 할지, 매 순간이 고민의 연속이다. 물론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친한 동료와 즐겁게 대화하며 먹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실제 논문의 결과도 그렇게 나타났다. 세대를 불문하고 직장인들은 ‘누구와 무슨 대화를 하는가’를 ‘어디서 무엇을 먹는가’보다 중요하게 여겼으며, 식사를 하는 동안 업무와 직장에 관한 대화 대신 세상사에 대해 편하게 잡담하는 것을 선호했다. 물론 약간의 세대별 차이는 있었다. 기성세대는 상사나 협력업체와의 소통을 상대적으로 중시한 반면 MZ세대는 동료와의 대화를 더 중시한 것이다. 식사 중 자유로운 대화를 원하는 것은 같지만, 수직적 조직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식사 상대를 고를 때 조금 더 목적성을 두고 선택하며 MZ세대는 수평적 소통을 중시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다. 그러나 논문의 존재 의의는 당연한 사실을 객관적 근거와 함께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1990년생 이전과 이후로 기성세대와 MZ세대를 나눈 세대 구분은 다소 애매한 면이 있으며, 대기업 직원만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전국의 직장인을 모두 포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직장인이라면 이 논문을 통해 점심시간을 둘러싼 다양한 선택의 층위를 짚어보며 공감할 만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 DBpia Comment ]
거래처 담당자와 마주앉아 업무 이야기만 나누는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산해진미를 맛봐도 돌덩이 씹는 기분이 들 것이다. 만약 그게 친한 직장 동료와 먹는 컵라면보다 낫다고 느낀다면, 당신은기성세대일 확률이 높다. 이 논문이 증명한다. 





‘우리 마누라’, ‘우리의 마누라’, 그리고 마누라 공유 공동체
최성호 교수는 아무래도 DBpia에서 사랑하는 저자임에 틀림없다. 썸타기 논문에 이어 이번 논문도 굉장히 흥미롭다. 그렇다. ‘우리 마누라’라니, 곱씹어보면 이상한 표현이다. 너의 마누라도, 나의 마누라도 아닌 ‘우리’ 마누라.
사실 이 주제를 두고 몇 차례의 선행 연구가 있었다.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정대현 교수의 <‘우리 마누라’의 문법>(2009)과 서울대학교 철학과 강진호 교수의 <‘우리 마누라’의 의미>(2010) 등이다. 이처럼 ‘우리 마누라’를 둘러싼 철학자들의 연구가 지속된 건, ‘우리 마누라’라는 표현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가 엄격한 혼인제도로 자리 잡은 한국 사회에서, 화자가 독점적으로 관계를 맺는 개체에 대해 단수 일인칭 표현인 ‘내’가 아니라 복수 일인칭 표현인 ‘우리’가 폭넓게 사용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언어현상”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도 이전 논문인 <‘우리 마누라’와 험티덤티 문제>(2016)에서 “어떻게 한국어를 사용하는 유부남들이 ‘우리 마누라’를 사용하여 자신의 부인을 가리킬 수 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이 요구된다”며 정 교수의 설명과 강 교수의 반대 논변 모두를 비판적 시각에서 검토한 바 있다.
이 논문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두 가지 논제를 제시한다. 우선 일인칭 복수 대명사 ‘우리’를 포함하는 소유격 구문 ‘우리의 마누라’가 ‘우리 마누라’와 같은 의미라는 ‘동의어 논제’이고, ‘X가 우리의 마누라이다’라는 문장이 참이기 위해서는 X를 공유하는 ‘마누라 공유 공동체’가 존재해야 한다는 ‘공동체 논제’다. 저자는 두 논제 중 하나는 거짓이라고 볼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과거 ‘우리 마누라’를 둘러싸고 진행된 논의들을 짚었다. 그러면서 동의어 논제를 수용해 ‘우리 마누라’의 표준적 용법을 설명하고자 시도했던 정 교수와 강 교수의 접근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고 지적했다.
‘우리 마누라’와 ‘우리의 마누라’ 사이 게슈탈트 붕괴 현상을 일으키고, 단어 하나를 두고 왜 이렇게까지 장황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지 혼란을 유발하는 이 논문은 사실 ‘우리 마누라’라는 흥미로운 표현을 둘러싼 철학자들 사이 수준 높은 ‘디스전’의 산물이다. 그러니 이해하고자 애를 쓰면서 읽을 필요가 없다. 철학자들이 어떤 단어를 사용해 서로의 연구 속 오류를 지적하는지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우니까.
 
[ DBpia Comment ]
“아무 생각 없이 쓰는 말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상한 말들이 있다. ‘우리 마누라’ ‘우리의 마누라’ 역시 그런 단어다. 이 논문은 사실 읽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읽고 나면 무심코 사용했던 우리말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니체와 프롬의 철학으로 되짚어 본 EXO의 <으르렁>
그룹 엑소의 ‘으르렁’은 공개 직후 신드롬을 일으키며 2010년대 아이돌계의 판도를 바꿨다. ‘으르렁’이 수록된 앨범은 2010년대 첫 밀리언셀러에 올랐고, 엑소는 ‘으르렁’ 이후 3세대의 톱 아이돌로 등극했다. 대중뿐 아니라 평론가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철학자에게도 이 곡은, 그리고 가사는 범상치 않았던 모양이다. 단순히 아름다운 여성에게 반한 남성의 구애처럼 들리지만, 저자는 이것이 철학적으로 ‘매우 위험한(so dangerous)’ 가사이며 젊은 세대에게 이 노래가 큰 인기를 끈 배경에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저자에 따르면, ‘결국엔 강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믿음 때문에 으르렁대는 화자는 마치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짐승과도 같다. 와중에 다른 남자들은 모두 경쟁 대상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폭력적이며 배타적인, 능력주의에 뿌리를 둔 무한경쟁 심리를 읽어낸다. 그 심리의 기저에는 빈부 양극화와 청년 실업이라는 사회구조적 원인이 있다. 이에 저자는 ‘으르렁’ 속 젊은 세대가 무한경쟁 심리를 갖게 된 철학적 까닭과 해법을 프리드리히 니체의 ‘시기와 긍정’ 그리고 에리히 프롬의 ‘소유와 존재’를 통해 살폈다.
니체에 따르면 무한경쟁 심리의 원인은 타자를 부정하는 시기심이며, 자기를 긍정하는 자긍심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또 프롬에 따르면 이는 소유를 지향하는 마음가짐 때문으로, 소유보단 존재 자체를 지향하는 마음가짐으로 해결할 수 있다.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한 차별 의식과 시기심, 소유욕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소유에 집착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의 존재를 지향하면 남을 시기하지 않게 되고, 남보다 못해도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게 된다. 자긍심이 생기면 남을 시기하거나 무시하지 않게 되니, 더 이상 ‘으르렁’대지도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제목만 봐서는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남성의 마음을 니체와 프롬의 철학으로 되짚어보는 내용인 것 같지만, 이 논문은 그 이면에 있는 젊은 세대의 불안함과 경쟁심을 지적하고 해결책까지 내놓는다는 점에서 반전을 준다. 어떤 것도 논문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기도 하다.
 
[ DBpia Comment ]
“현대의 창의성은 백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정보를 새롭게 조합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 논문은 눈에 띄게 창의적이다. 한때 우리가 흥얼거리던 노래를 이렇게 깊게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리그 오브 레전드> 트롤링의 유형과 발생 원인에 대한 인식: 사용자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 
‘트롤링(trolling)’이란 온라인 게임에서 다른 사용자들의 화를 부추기는 행동을 의도적으로 행해 실제 반응을 이끌어내는 반사회적 행동을 가리킨다. 얼핏 설명만 봤을 때는 논란이 될 만한 제목과 내용의 글을 올리고 부정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어그로’와 비슷해 보인다. 트롤링은 정확하게 어떤 행위일까? 정말 ‘어그로’와 같은 의미일까?
논문은 라이엇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 즉 ‘롤’을 배경 삼아 트롤링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했다. 플레이밍(flaming, 언어폭력), 그리핑(griefing, 고의적 패배 유발), 게임 지식 부족 그리고 사용자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일반적으로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게임 내 비매너 플레이와 관련해 가장 먼저 ‘플레이밍’을 떠올린다. 게임 내에서 말도 안 되는 욕설을 한 유저가 형사처벌을 받게 됐다는 보도가 종종 나오기도 하니 말이다. 실제 게임 개발사와 기존 연구에서도 ‘플레이밍’을 가장 심각하고 만연한 트롤링으로 여겼다. 하지만 20대 게임 유저 20명을 심층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연구한 이 논문에서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는데, 인터뷰이들은 트롤링의 대표적인 행동 유형으로 플레이밍을 꼽았으나 플레이밍보다 그리핑을 더 악의적인 행동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자신의 정상적인 플레이를 방해하고 결국 게임을 패배로 이끈다는 점에서였다. 또 트롤링이라기보다는 ‘트롤링 유발’ 행위에 가까울 것 같은 게임 지식 및 사용자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자체도 트롤링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논문은 롤이 ‘트롤링’이라는 개념을 국내에 퍼트린 게임이라고 분석했다. 트롤링을 하는 유저, 즉 트롤을 여타 게임에서 만날 확률은 10%인데 롤에서는 33%에 달한다는 것이다. 왜 유독 롤에서 트롤링이 빈번한 걸까? 인터뷰이들은 지나치게 긴 게임 시간의 압박과 높은 익명성, 팀플레이 강요 등 게임 자체의 메커니즘적 요인으로 인해 트롤링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게임사에서 ‘매너 플레이 시스템’을 강조하더라도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없으며, 결국 게임의 구조적인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DBpia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소개된 후 7000개가 넘는 ‘좋아요’와 300개에 가까운 댓글을 받았다. 댓글을 단 사람들은 대부분이 롤 유저로 추정되는데, ‘트롤링을 경험해본 유저라면 읽어봐야 한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이 논문이 나온 지 8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으나 롤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트롤링’은 게이머들 사이 핫한 화두로 남아 있다.
 
[ DBpia Comment ]
“트롤링의 원인을 게이머가 아닌 게임 자체의 메커니즘적 요인에서 찾는다니, 트롤링은 너의 탓이 아니라고 따뜻하게 말해주는 듯하다. 한 번이라도 실력 부족으로 의도치 않은 트롤링을 유발해본 사람이라면 눈시울이 붉어질 만한 논문이다.” 





한국 이갈이 환자의 성격 유형 검사(MBTI) 
1944년 개발된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즉 MBTI는 느닷없이 2010년대 후반 들어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 그 화력이 더욱 강해진 MBTI 열풍은 이제 단순히 스스로를 파악하는 성격 검사 테스트를 뛰어넘어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자리에서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한 소재로 이만한 게 없으니 말이다. 물론 인기만큼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애초에 과학적 근거를 두고 분류된 성격 유형이 아닐뿐더러, 자신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답변으로 구성된 유사 심리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MBTI가 유의미한 학문적 성과를 보여준 적이 없기에 학계에서는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그래서 이 논문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MBTI를 활용했는데 주제가 심리, 대중문화, 커뮤니케이션 따위가 아니라 ‘이갈이’다. 게다가 무려 2008년에 나왔다. 2008년 1~12월 사이 ‘MBTI’라는 단어를 품고 발행된 뉴스를 살펴보면 ‘문화의 거리에서 진로직업상담과 성격유형검사(MBTI, 애니어그램 등)를 받을 수 있다’는 등 지역지의 청소년 행사 알림 기사뿐이다. 지금만큼 대중적이지는 않았다는 방증이다.
물론 아무런 근거 없이 이런 연구를 시도했을 리는 없다. 이갈이는 심인성 질환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갈이 환자와 대조군인 비이갈이 환자의 성격 유형은 지표별 차이가 있으리라는 가설에서 출발한 것이다. 논문은 심리적 요인이 이갈이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증거는 없으나 여러 보고에서 이갈이와의 연관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만성 이갈이 환자 중 ‘A형 성격’이 많다는 힉스와 챈슬러의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검증은 요즘의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외향성(E)-내향성(I), 감각형(S)-직관형(N), 사고형(T)-감정형(F), 판단형(J)-인식형(P) 간의 차이를 비교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이에 따르면 이갈이 환자에서는 I 비율이 70%로 30%인 E에 비해 높았으며, T 비율이 80%로 20%인 F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논문은 은둔, 비밀, 사생활이 보호되는 것을 좋아하는 내향성은 외향성에 비해 스트레스 발산에 둔감할 수 있으므로 이갈이를 더 많이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의사결정 시에 원리, 논리, 원칙에 따르고 객관적 진실에 중요성을 갖는 사고형이 감성형보다 심인성 스트레스가 커 이갈이를 할 확률이 높다고 추정했다. 다만 MBTI의 비과학성이 널리 알려진 지금 와서 읽기에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 DBpia Comment ]
“온갖 유형의 MBTI 분류를 봤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도, 이갈이와 MBTI를 연결한 연구를 본 적은 없을 것이다. 만약 당신의 MBTI에 I, S, T가 있다면 이갈이를 하는지 확인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PHOTOGRAPHER 정우영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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