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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배우 신혜선이 <웰컴투 삼달리>를 택한 건 조금은 개인적인 이유라고 했다
신혜선은 아직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딱히 답을 찾아낼 생각도 없어 보였다. 조용하게, 시끄럽게, 냉철하게, 상냥하게,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열심히 하며 살 수 있다면 그걸로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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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유, 촬영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신년 계획이나 소망 같은 거 생각하는 편이에요?
저요? 딱히 그렇지는 않아요. 새해도 그냥 날짜 지나가는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죠. 그 전날이나 다음 날이나 마찬가지로.
어디 가서 일출을 본다거나 이런 스타일도 아니시겠군요.
네. 저는 근데 새해뿐만 아니라 다 그런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도 그렇고, 생일도 마찬가지고. 어릴 때는 그런 날 어른들의 분위기나 TV 틀면 느껴지는 설렘 같은 게 있었는데, 이제는 ‘특별한 날’이라고 하는 감흥이 별로 없어요.
그럼 요즘은 제일 설레는 날이 언제예요?
글쎄요. 딱히… (오래 생각하다가) 제가 요즘 이게 문제예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설레는 일이 줄어드는 거예요.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저에게 큰 설렘을 줄 만한 것들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요즘 복싱도 배우고 있고 이것저것 다른 것도 하지만 그것들이 딱히 저한테 설렘을 주는 건 아니거든요. 찾아보고 있긴 한데 없어요 아직. 그래서 일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작품이 생길 때, 내가 맡게 될 캐릭터가 너무 마음에 들 때, 그런 때가 사실은 인생의 모든 순간 중에 제일 설레거든요. 출연 결정된 작품이 촬영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날들도 그렇고요.
연기라는 게 워낙 감정적 역치가 높은 작업이라 그럴 수도 있겠죠. 상대적으로 일상생활에 대한 감각이 점점 무뎌져간다는 배우를 몇 분 봤어요.
그러니까 이게 균형이 너무 안 맞아요. 일을 하고 있을 때의 나와 안 하고 있을 때의 내가.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의 저는 뭘 하면 좋을지도 모르겠고, 스스로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도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일을 하는 제가 제일 좋습니다.
신년 목표가 있었다고 해도 분명 일 관련 주제였겠군요.
네. 다른 거 없어요. 그냥 ‘뭐 큰 사건만 안 생겼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있고, 그다음은 일이죠. ‘다음 작품 재미있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연기가 잘됐으면 좋겠다’ ‘작품 잘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그런 생각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또 표정은, 일 얘기를 하실 때 좀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아뇨. 창피해서 그래요.(웃음) 얘기하다 보니까 좀 오글거려서.

블랙 코트 보테가 베네타. 셔츠 더로우 by 네타포르테. 튜브톱 육스. 진 메종 마르지엘라 by 육스.
멋있는 거 아닌가요? 이렇게까지 자기 일에 몰입해 있다는 게?
제가 신인이거나 원숙한 배우라면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제 연차는 좀 어중간하잖아요. 이 일에 익숙해졌다고 자신하기에는 너무 짧은 세월 동안 연기를 했고, 잘 모른다고 하기엔 그래도 긴 세월 동안 연기를 했고. 그런 사람이 ‘이 일이 내 인생의 전부야’ 하는 뉘앙스로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좀 오만한 느낌이 드는 거죠.
열망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스스로의 열망에 대해 늘어놓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 거군요.
저는 일을 정말 사랑해요. 솔직한 마음으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나는 이 일을 너무 사랑해.” 하지만 그걸 실제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사랑하는 척하는 것 같아서? 멋있는 척하는 것 같아서?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제가 인터뷰마다 너무 일 얘기만 하니까 좀 오글거리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또 평소 일 생각밖에 안 하니까 일 말고 다른 얘기를 하라고 해도 할 말이 없고.(웃음)
그런데 혜선 씨 연기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런 이야기가 ‘척’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웰컴투 삼달리>의 어제 방영본에서도, 괜찮냐고 묻는 옛 연인의 말에 조삼달(신혜선의 극 중 배역)이 짧은 순간 서러운 듯 반가운 듯 미묘한 표정을 짓다가 금방 가다듬고 돌아서서 괜찮다고 하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제가 그 장면을 몇 번 돌려 봤어요. ‘스치듯 지나가는 이런 장면도 상투적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아 하는구나’ 싶어서요. 10년을 넘게 한 가지 일을 해온 사람이 여전히 그 일의 모든 부분을 일일이 고민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버거운 일이죠.
말씀 감사합니다. 맞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작은 부분까지 계속 다 잘하고 싶어 하면 진짜, 확실히 힘들긴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예전에 비하면 이미 많이 내려놨고요. 제가 완벽주의자였다는 말은 아니고, 그냥 내 욕심에 찰 때까지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마음을 조금 양보하기로 한 거죠. 사실 제가 혼자 느꼈을 때는 차이가 있을 것 같지만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이러나저러나 똑같이 보이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결국 연기라는 건 누군가 봐줘야 완성되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고. 그런데 그렇다고 일이 저한테 버겁게 다가온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일일이 체감하면서 10년을 보낸 게 아니라 그냥 그때그때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까 10년이 지나버린 거라서요.
그럼 지금 배우 신혜선을 가장 곤란하게 하는 건 뭐예요?
다양한 캐릭터를 맡아도 그 안에는 제 특유의 느낌이 어느 정도 녹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요. 저한테는 아무리 새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역할을 한다고 해도 그전에 했던 것과 결이 비슷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한 사람이 표현하는 거니까. 그런 게 좀 힘들어요. 갈수록 더 그렇겠죠. 작품이 몇 개 없을 때는 ‘얘가 이런 것도 했네’ ‘이런 모습도 있네’ 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내가 그 모든 것을 이미 다 보여줬다면? 사람들이 ‘상반된 역할’이라고 하는 것도 다 했다면? 이제 더 이상 뭘 보여줘야 하지? 그게 제일 고민이에요. 더 세게 변신을 해보거나, 아니면 제가 제일 잘하는 걸 찾아야겠죠.

블랙 튜브톱 드레스 보테가 베네타. 실버 뮬 지미추. 글리터 삭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최근에 개봉한 <타겟>이나 <용감한 시민> 같은 영화는 혜선 씨의 필모그래피에서 장르나 캐릭터의 확장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는 ‘신혜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작품’으로 돌아온 거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저는 좀 다르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저는 제가 그전에 한동안 맡았던 캐릭터들에 판타지적인 요소가 강하다고 느꼈거든요. 비현실적으로 엄청 멋있거나, 아니면 캐릭터가 확실해서 아예 그 캐릭터의 매력으로 작품이 전개되거나. 그런 캐릭터들이 좋아서 택했던 거지만 연달아 하다 보니까 좀 질렸던 거죠. 그래서 그냥 평범한 애를 하고 싶었어요. 그때 <웰컴투 삼달리>가 들어왔고요. 물론 조삼달도 좀 멋있는 구석이 있는 친구인데, 막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상으로 멋있는 게 아니잖아요. 약점과 단점을 골고루 가진 평범한 사람이지만 멋진 구석이 있는 거죠.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아요. 드라마 자체가 가진 이야기도 무한경쟁 사회와 캔슬 컬처 같은 세태에 지친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자 하는 부분이 있죠.
저도 처음 대본을 받아서 읽을 때 힐링이 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지쳐 있었구나’ 하고. 딱히 무슨 일이 있어서 고민한다거나 이런 부분이 전혀 없어서 몰랐는데, 읽고 보니 제가 많이 소진되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뭔가 계속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열심히 하는지도 사실 모르겠고, 그냥 멍하게 살고 있었던 거죠. 그걸 매너리즘이라고 해야 할지, 번아웃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요. 대본 읽는 동안 위안을 받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큰 사건 없이 소소하게 마음 편하게 흘러가는 전개도 좋았고요.
세상에는 실제 경험이 없다면 가늠하기 어려운 마음도 있잖아요. 아이를 낳아서 길러본 사람의 마음이라든가, 고향이라는 곳을 가진 사람의 마음이라든가. 서울 태생이신데, 캐릭터나 플롯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운 부분은 없었어요?
맞아요. 그런 감정들은 경험이 없으면 알기가 어렵죠. 제가 지금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저는 저희 옆 호에 어떤 분이 사는지 얼굴도 모르거든요. <전원일기>처럼 동네 사람들 전체가 서로 다 알고, 친하고, 반찬 나눠 먹고, 그런 커뮤니티를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거예요. 늘 로망만 있었던 거죠. 그런데 땅도 고향이지만, 사람도 고향이잖아요. 처음에는 읽으면서 ‘아 삼달이 부럽다’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네’ 하는 생각만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나한테도 이런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제가 친구가 많은 건 아니지만 스무 살 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있고, 가족도 있고. 그때 확신이 들었어요. 이 드라마 해야겠다고.
필모그래피에 대한 고려보다 개인적인 영감이 크게 작용했던 거군요.
네. 삼달이 캐릭터도 매력 있고 드라마 자체나 다른 캐릭터들도 매력적이었지만 사실 그런 부분들이 1순위는 아니었어요. 연기자로서 일을 잘 해내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사람 신혜선이 이 드라마를 하면서 내용 속에 녹아들어 치유를 받고 싶다는 마음이 컸죠. 댓글을 봐도 지금은 삼달이를 부러워하는 반응이 많던데, 그게 결국은 각자의 위안으로 연결이 됐으면 좋겠어요.
혜선 씨가 그랬던 것처럼, 끝에 가서는 ‘그래 내게도 저런 사람들이 있어’ 하고 떠올릴 수 있게 되면 좋겠네요.
그럼 좋죠. 그렇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죠. 드라마나 영화나 특정한 이야기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인 매체잖아요. 꼭 <웰컴투 삼달리>가 아니라도, 요즘 콘텐츠가 워낙 많으니까 다들 자기 상황과 마음에 딱 맞는 작품을 찾아서 위안을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새해도 됐고 하니 덕담 아닌 덕담입니다.(웃음)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최문혁
- STYLIST 최자영
- HAIR 백흥권
- MAKEUP 김수빈
- ASSISTANT 신동주
- ART DESIGNER 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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