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추천하는 2월의 책

프로필 by 김현유 2024.02.01

공생을 향하여

다나카 히로시, 나카무라 일성 / 생각의 힘
자이니치 조선인 2세인 박종석은 1970년 히타치소프트웨어 도츠카 공장에 일본식 통명으로 입사 지원서를 써 합격했으나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취소 통보를 받았다. 그는 싸웠고, 승리했으며, 지난 2011년 히타치소프트웨어에서 정년퇴직했다. 김경득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법률을 공부해 1976년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으나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으면 일본 사법연수원에 들어갈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싸웠고, 승리했으며, 1979년 최초로 한국 국적의 일본인 변호사가 되었다. 손진두는 1945년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했으나 일본의 ‘원폭 피해자 치료 등에 관한 법률’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한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로 원폭 치료 및 지원 등을 받을 권리를 주장한 끝에 승리해 일본에 체류하며 치료와 지원을 받았다. 책의 인터뷰이 다나카 히로시는 이들의 곁에서 함께 싸운 일본-아시아 관계사를 가르치는 일본인 교수다.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나카무라 일성 씨가 다나카 히로시와의 대화에서 이끌어낸 말들은 자이니치 인권 투쟁 역사의 생생한 현장감을 제시한다. 박세회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 웅진지식하우스
책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첫 출근하는 경비원의 시선에서 출발한다. 선임의 말투에서부터 업무의 구조, 세계적 유명 작품의 자태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을 세심히 되짚던 글은 이내 신입 경비원의 추억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이 미술관에 왔던 열한 살 때로. 그리고 그 추억이 흐르면서, 곧 우리는 이 남자가 <뉴요커>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다 친형의 사망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미술관 경비원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내가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일자리에 지원했다.” 패트릭 브링리는 이후로 10년 동안 그 일을 했다. 책의 모든 챕터가 미술관의 요소요소를 매개로 그의 개인사나 순간적 상념을 다루고 있는데, 도시와 삶, 성공과 상실, 직무와 인간관계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미술사와 만나 빚어내는 효과가 꽤 놀랍다. 지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아름다우며, 무엇보다 바쁘게 인증 사진을 남기느라 우리가 어느새 잃어버린 관조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오성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포푸라샤 편집부 / 포레스트북스
몇 달 전 한 영상이 SNS를 강타했다. 93세의 틱토커 릴 드로니악의 ‘전남친 평가하기’ 영상에 한국어 자막을 붙인 것이었다. “빌은 별로였지만 장례식이 재미있었으니 특별 점수를 줄게요. 조지는 정말 잘생겼었는데 죽었어요. 하늘에서도 핫 가이이길….” 덤덤한 말투가 웃음 포인트다. 일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가 매년 노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실버 센류 공모전’의 출품작들을 담아낸 이 책에도 비슷한 정서가 담겨 있다. 일본의 정형시 ‘센류’는 17개 음으로 된 짧은 시로, 풍자적인 느낌이 강하다. 짧은 만큼 가볍게 읽히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지나온 삶의 묵직함이 느껴져 곱씹어보게 되는 맛이 있다. ‘영정 사진/너무 웃었다고/퇴짜 맞았다’는 웃음이 나지만, ‘분위기 보고/노망난 척해서/위기 넘긴다’ ‘이 나이쯤 되면/재채기 한 번에도/목숨을 건다’ 같은 작품은 마냥 웃기게만 다가오진 않는다. 익살스럽게 표현할 수 있기까지 분명 함축된 고충이 있었을 것이겠거니, 한다. 긴 세월의 풍파를 거쳐온 노인들의 유머러스한 신세한탄을 보며, 깔깔 웃어도 좋고 공감의 눈물을 흘려도 좋다. 혹은, 웃으며 울어도 좋을 것이다. 김현유 
 

 

좋은 물건 고르는 법 

박찬용 / 유유
학창 시절엔 누나를 둔 친구가 부러웠다. 그 친구들을 보면 옷 스타일이 어딘가 세련되어 보이는 느낌이 감돌았다. 어디서 샀냐고 물어봐도 “몰라. 누나가 그냥 이거 입으래”라는 답이 전부였다. 누나는커녕 형도 없던 나는 동대문과 지마켓과 지하상가를 전투하듯 돌아다니며 옷 고르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얻어낸 요령이라고 해봐야 ‘소재를 꼭 확인할 것’ ‘바지는 반드시 입어보고 살 것’ 수준이지만 말이다. 책을 읽고 ‘아, 나도 주변에 이런 말을 해주는 형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했던 이유다. 오랫동안 패션&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에디터로 활약중인 저자는 후디, 백팩, 스니커즈 등 누구나 쉽게 자주 구매하는 아이템들의 구매 노하우를 책에 꾹꾹 눌러 담았다. 손톱깎이를 예로 들면, 손톱깎이에 쓰이는 소재와 구조의 차이를 짚은 후 5만원이 넘는 비싼 손톱깎이는 과연 무엇이 다른지 분석하는 식이다. 20년 전 옷가게의 무서운 형들처럼 “그냥 이거 사!”라고 들이미는 게 아니라, “이걸 내가 좀 써봤는데 이런 면에서 이렇게 다르더라” 정도의 바이브다. 그래서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다. 박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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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PHOTO 생각의힘/웅진지식하우스/포레스트북스/유유
  •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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