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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25년 이력을 '버텨왔다'는 배우 하승리는 요즘 연기가 재미있다고 했다

25년 차 배우 하승리는 스스로의 지난 시간을 돌이켜 ‘버텼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제야 연기가 재미있다는 걸 알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당신도 버텼으면 좋겠다고, 누군가에게 건네듯 덧붙이기도 했다.

프로필 by 오성윤 2024.03.22
 
예전에 120부가 넘는 일일연속극도 해본 적 있지 않나요?
(웃음) 네. <내일도 맑음>은 정말 정신력으로 했던 작품이에요. 그게 하루에 몇십 개의 신을 몰아서 찍고, 거의 쉬는 날도 없이 매일 촬영하는데 새벽에 나왔다 들어가고 그랬거든요. 나중에는 정말로 기계가 된 기분이더라고요. 오히려 그래서 <고려거란전쟁>을 두고 고민을 한 거죠. 긴 호흡의 작품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니까.
사극에서 요구하는 연기가 좀 다른 지점이 있는 것처럼, 일일연속극이 요구하는 연기도 좀 다른 지점이 있죠?
일일연속극은 왜 어머님들이 다른 일 하시면서 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어디 갔다가 와도 스토리를 파악하는 데에 문제가 없게 써야 하고, 연기해야 하죠. 감정을 확실하게 표현해줘야 하고, 엔딩 표정 같은 것도 약간은 정해진 공식 같은 게 있고요. 그래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게 “승리 씨, 그래도 일일드라마니까 엔딩은 이렇게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하는 디렉팅을 한 번 받았거든요. 의식하지 못했는데 듣고 보니 제가 저도 모르게 제 방식을 고집하고 있었던 거죠. 분명히 각 장르에 맞춰서 가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말이에요. 그때 크게 각성한 것 같아요.
저희는 여러 결과물 중 한 갈래를 볼 뿐이지만, 배우는 촬영장의 정말 다양한 요소, 다양한 관계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에서 영향을 받겠네요.
맞아요. 제가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인데, 아무래도 현장에서 스태프분들이나 배우분들과 어색할 때, 편해졌을 때 제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다를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변하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낯가림을 이겨내려고 하고,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요. 실제로 저는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해요. 이젠 어느 정도 스몰토크도 가능한 정도가 됐으니까요.
스몰토크 어떻게 시작해요?
음, 그냥 좀 이렇게 “쉴 때는 뭐 하세요?” 한다든가.(웃음) “오늘 어떻게 오셨어요?” 한다든가. “최근에 영화 뭐 보셨어요?”도 있고요. 좀 정해져 있는 것 같긴 한데….
승리 씨는 쉴 때 뭐 해요?
저요? 저는 집에 누워 있습니다.
(웃음) 본인이 얘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주제를 꺼내셔야죠.
아니, 그런데 그건 제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저는 누워만 있으니까 다른 분들은 쉴 때 뭘 하시나 진심으로 궁금해서요.(웃음)
원피스 YCH. 타이핀 데어링달링. 네크리스, 이어링, 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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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리에 나가든 데뷔작인 <청춘의 덫>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꼭 하시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얘기는 이제 좀 지겨우시겠죠?  
괜찮아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것도 다 저의 과거고, 저의 이야기니까요. 그냥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꾸준히 열심히 하다 보면 그걸 뛰어넘을 수 있는 작품이나 캐릭터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큰 스트레스는 없어요.
하긴 그러네요. 요새는 <청춘의 덫> ‘혜림이’보다 <지금 우리 학교는> ‘양궁 선배’로 더 많이 거론되죠?
맞아요. 그러니까 계속하다 보면 또 언젠가는 <지금 우리 학교는>을 뛰어넘는 작품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다섯 살 때 연기를 시작해서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았잖아요. 지난 25년을 어떻게 기억해요?
글쎄요. 일단 저는 학생 때는 연기나 배우 일에 대해서 큰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여태까지 해온 거니까 미래에도 당연히 그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 스무 살이 되고 나서야 한 번에 크게 뭐가 찾아오더라고요. 친구들은 다 대학에 가고 일찍 취업을 하는데, 그러니까 다들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 있는데 저만 그 소속감이 없어졌잖아요. 그때 고민을 많이 했죠.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서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된 거군요.
사실 저는 일단 성향부터가 주목받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연기를 시작한 것도 제가 너무 내성적이라 어머니가 한 번 배우게 해 본 거였거든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손발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내려앉을 것처럼 느껴요. 그런 사람이 배우를 하는 거니까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내가 정말로 이 길을 가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을.
결국 이 길이 맞다고 생각하게 해준 건 뭐였을까요? 연기라는 일의 재미?
저한테 재미는 이후의 문제였고요. 일단은 주변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요. 다들 저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니까 1차적으로 ‘내가 이걸 계속해봐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금씩 멘털을 찾으면서 그게 ‘그래, 내가 이걸 20년 했는데 아깝잖아’ ‘아직 제대로 끝까지 해보지 않았는데 버텨봐야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변해갔고요. 버티려면 제가 이 일에서 어떻게든 재미를 찾아야겠더라고요. 최대한 다양한 현장과 캐릭터를 시도해보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죠.
성공적인 것 같아요?
네. 다양한 캐릭터를 해보니까 재미도 있고, 오늘 한 화보 촬영만 해도 사실 이렇게 예쁜 옷 입고 재미있는 콘셉트로 사진 찍어볼 수 있다는 게 배우라는 직업이 가진 특성이잖아요. 현장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고요. 물론 처음엔 어색하고 힘들지만 다양한 사람을 경험하고 인연이 쌓여간다는 부분이 좋은 거죠. 그런데 사실 그렇다고 해도, 제 안에서 연기는 재미라기보다는 ‘버텨야지’ 하는 분야인 것 같아요.
재킷, 스커트 모두 가니 by 비이커. 슈즈 찰스앤키스. 네크리스 포트레이트 리포트. 이어링, 링 모두 아진코. 장갑, 삭스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 스커트 모두 가니 by 비이커. 슈즈 찰스앤키스. 네크리스 포트레이트 리포트. 이어링, 링 모두 아진코. 장갑, 삭스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버텨야지’.
사실 제가 어릴 때부터 붙임성이 없어서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지도 못했고, 성인이 되고 나서야 그나마 또래 친구들이 좀 생겼거든요. 연기하는 친구들. 그중에는 너무 연기가 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어서 펼치질 못하는 친구들도 많았죠. 그 친구들 마음이 무너져가는 걸 볼 때 가장 마음이 아픈 것 같아요. 그때의 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안타까운 것도 아니고. 한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는데, 그냥 그 친구들이 계속 버텨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 친구들 옆에 계속 같이 있어주고 싶거든요. 이 바닥은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니까.
스스로의 고충보다 친구들의 사정이 가슴에 더 크게 남는군요.
제가 스스로에게는 그런 면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뭐 어떡해 힘든 거 견뎌야지’ 하는 태도. 당근보다는 채찍을 많이 주는 편이라서, 저에 대해서는 누가 뭐라고 하든 그냥 결국은 이겨내는 것 같거든요. 인터넷에서 외모 지적을 봤다. 그래도 ‘이렇게 생긴 걸 어떡해’ 하면서 넘기고. 연기 못한다는 지적을 봤다. (잠깐 말을 멈췄다가) 그래도 ‘오케이’.
그런 지적에는 시간이 좀 걸리는군요.
(웃음) 오케이. 살짝, 사알짝 상처받았는데 오케이. 이겨내야지. 그렇게 다 견뎌내는 편인 것 같아요.
저도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좀 신기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목소리 데시벨도 낮고 조심스럽고, 언뜻 보면 여린 사람 같은데 듣다 보면 되게 단단한 사람 같아서요.
이번 현장에서도 그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참 단단한 애다” “얘 정말 단단하지 않니?” 하고.(웃음) 말이 좀 이상하긴 한데, 아무튼 감사해요. 최근에 맡는 역할들이 하나같이 좀 단단한 구석이 있는 것도 그런 부분 때문이 아닌가 싶거든요. 요즘 그래도 재미있어요. 예전에 비해 다양한 캐릭터를 맡게 되고, 좀 더 주체적으로 고민을 하고 감독님이나 작가님과 소통하면서 캐릭터를 구축해나가다 보니까. 제가 제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편인데요. 그래도 제가 지금껏 찾은 연기의 재미를 말하라면, 이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이규원
  • STYLIST 박선용
  • HAIR & MAKEUP 이소연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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