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브레스티드 재킷, 시스루 톱, 와이드 팬츠 모두 드리스 반 노튼. 로퍼 사카이.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살짝 걱정했어요. 보니까 지환 씨가 입이 터진 날은 말을 많이 하는데, 또 말이 안 나오는 날은 지독하게 말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저를 되게 잘 아는 제작자가 한번은 이런 얘기를 한 적도 있어요. “너는 극명하게 다른 두 개의 MBTI를 가진 사람”이라고요.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둘 중 뭐가 언제 나올지는 지환 씨도 알 수가 없는 건가요?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그렇게 들어서 그렇게 말하고 다닐 뿐인 거죠. 사실 MBTI 같은 걸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거든요.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해졌을까 생각해보면 그냥 우리가 상대를 과도하게 알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출발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나는 더 가르쳐주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웃음) 혈액형도 마찬가지고.
딱 한 번 해보긴 했어요. 회사에서 계속 부탁하는데, 제가 또 회사를 대단히 좋아하는 애사심이 있는 배우거든요. 그때 뭐 나왔더라? INFP가 나왔던 것 같은데, 그게 어떤 건지는 사실 아직도 잘 몰라요.
그렇군요. 아무튼 오늘은 얘기가 잘 나오시는 날인 것 같고, 이미 밤 11시가 넘었으니 인터뷰를 빠르게 한번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11시밖에 안 됐어요? 너무 이른 시간인데요? 사실 제가 내일 아침부터 드라마 촬영 스케줄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방금 전에 들으니까 그게 취소됐다고 하더라고요. 오늘도 아침부터 촬영이 있어 어제 대본 보느라 밤을 거의 꼬박 새웠고, 내일도 촬영이 있는 줄 알고 오늘 화보 촬영하면서 중간중간 계속 대본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그게 갑자기 없어졌다고 해서 속으로 ‘나이스’ 했죠. 그래서 저는 몇 시간이라도 인터뷰할 수 있습니다. 기사를 잘 만드실 수만 있다면.
내일 아침에 촬영한다고 생각하고 딱 준비해뒀는데 미뤄지거나 하면 맥이 빠지지는 않나요?
지금같이 일정이 타이트한 날은 다행이라는 마음이 크죠. 사실 배우들은 몸 컨디션이 아무리 안 좋아도 현장에서 일하는 데에는 큰 영향이 없거든요. 일의 특성 때문에. 이런 말도 있어요. ‘배우는 집에서 하는 고민을 절대 밖에 갖고 나가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틀 푹 자고 나온 것처럼 할 수 있죠.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각자의 사정으로 들어가면 다들 피곤하긴 피곤한 거예요.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내일 한 2시간만 더 자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고요.
듣고 보니 배우들은 스케줄과 현장의 무수한 요인과 제약 안에서 연기를 하는 건데, 시청자는 그 결과물 중 선택된 한 단면만 보고 ‘저 사람 연기 잘한다’ ‘못한다’ 가리게 되겠군요.
하지만 굳이 시청자가 감안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죠. 그게 우리가 살면서 서로를 바라볼 때 생기는 슬픈 지점이지만, 그런데 또 그 무수한 요인과 제약의 차이를 갖고 노는 게 ‘일’이잖아요. 상황을 핑계 삼아 이야기하는 게 스스로에게 위안은 될 수 있겠지만 어쨌든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걸 넘어선 이야기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간극에 대해 따지고 보자면, 사실 냉정하게 말해서 제가 어떻게 연기를 해도 관객은 보고 싶은 대로 볼 수밖에 없거든요. 제가 어떻게 살아도 타인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저를 바라보는 것처럼요. 그 간극을 가지고 어떻게 채우느냐가 연기일 수 있는 거죠. 모든 진심은 정확히 전달되지 않아요. 하지만 그래서 연기가 재미있는 거고요.
글쎄요. 과거와 비교하자면 제 주변의 누군가가 ‘현재 스코어 2 대 0으로 지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도 어떤 부분을 묻느냐에 따라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고. 하지만 다 떠나서, 무엇보다 저는 연기를 하면서 정말 행복했던 것 같아요. 연기는 제 최고의 친구죠. 가장 좋은 선배였고, 가장 좋은 동네였고, 가장 좋은 안식처였고, 가장 좋은 계절이었고요. 제가 가장 외로울 때도 제 옆에 있었고, 가장 슬펐을 때도, 가장 죽고 싶었을 때도 제 옆에 있었으니까요. 가장 환희에 찼던 순간에도 제 옆에 있었고. 바꿔 말하면 그 모든 걸 걔가 만들어준 거죠. 걔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그 모든 걸 경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20대 후반쯤 ‘나는 햄릿을 할 수 없는 배우구나’ 깨달았다는 말씀이 생각나네요. 어린 시절 문학 작품을 읽으며 동화되었던 인물들의 배역을 맡지 못한 데에 대한 얘기였고, 그걸 인정하는 게 한편으론 통쾌하면서도 굉장히 슬펐다고 했죠.
깨달았다기보다 이해한 거죠. 사실 제가 뭐 유난히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랬던 게 아니라 무수한 선배들, 동료들도 같은 생각을 했을 거거든요. 저도 그 나이에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 그걸 이해했던 거고요. 이미 수많은 선배의 슬픔을 봤고, 도달할 수 없는 꿈을 꾼 배우들도 많이 만나본 상태였죠.
레더 팬츠 어네스트 W. 베이커. 카디건, 셔츠, 부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우울했다는 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데, 통쾌했다는 건 정확히 어떤 의미였을까요?
인정하고 길을 정했으니 이제 그 길을 가면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런 것도 있었죠. 제가 좋은 동료들, 좋은 선후배를 뒀다는 사실. 저를 연기와 연극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 집어넣지 않았던 동료들이 있었고, 가난한 삶을 고백한 선후배 동료들과 수많은 밤을 새우며 한 이야기들이 있기에 제가 그런 순간을 받아들인 거잖아요. ‘그래도 끝까지 해보겠느냐’ ‘그래도 연기라는 걸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마음을 만들어준 거죠.
그 괴로움이란 게, 어떻게 보면 뼈가 자라는 아픔인 거죠. 그냥 크는 나무는 없잖아요. 나무도 다 제 살이 찢어지면서 크듯이, 배우도 뼈가 자라고 살이 붙고 근육이 붙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 거예요. 그게 재미없고 너무 힘들면 안 하면 되는데, 보면 연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들 그 고통을 좋아해요. 고통이 찾아오지 않으면 불안해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더 밀어붙이기도 할 정도로요. 사실 비단 연기뿐 아니라 어느 분야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 그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고요.
연기에서 스스로를 더 밀어붙인다는 건 예를 들면 어떤 과정일까요?
예를 들어서, 저는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하면서 세상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는 걸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이게 되게 조심스러운 말인데, 대본들을 보잖아요. 그러면 그 안에는 좋은 상황이 쓰여 있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어둡고, 패배하고, 힘든 상황에 빠져서 혼란스러워하거나 선택을 강요받는 인물들이 있죠. 자신의 선택으로 상황이 나아지기도 하고, 혹은 더 나빠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가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렇게 부족한 인물을 맡으면 저도 모르게 그럴듯하고 정직한 인물로 바꿔서 연기를 했던 거예요. 저도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됐죠. ‘왜 내 연기는 매력이 없고 재미가 없을까.’ 포장을 하니까 그런 거죠. 제가 이 인물을 멋대로 반성시키고, 이 캐릭터는 가면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데 제가 가면을 씌워버리고. 그러니까 관객이 볼 때는 이 인물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동화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누구에게도 이해를 받지 못할 인물이라도 배우 그 자신은 깊이 이해하고 동화되어야 연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것과는 달라요. 내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남을 이해하려 하다 보니까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하는 거예요. 더 오픈하고, 저도 모르게 포장지가 입혀지면 자꾸 그 포장지 밖으로 내보내고, 원하지 않는 옷을 입으려고 하고, 그런 과정에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동료들을 보며 느낀 거죠. 제가 좋아하는 동료들을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