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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한선화 "나를 기대해"

<교토에서 온 편지>에선 섬세한 감정의 표현을, <술꾼도시여자들>에선 기막힌 캐릭터 창조의 능력을 보여준 한선화가 말했다. 곧 <놀아주는 여자>와 <파일럿>에서 보여줄 새로운 모습들을 기대하라고.

프로필 by 박세회 2024.05.22
오버사이즈 블랙 컬러 재킷 레하, 부츠 찰스앤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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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들었겠지만, <술꾼도시여자들>(이하 <술도녀>)는 인생 작품이죠?
실은 그전까지만 해도 사실 누군가를 짝사랑하거나, 외면받거나 범죄 장르물의 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딱 그때쯤에 ‘다음에는 꼭 밝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거든요. 코미디 연기는 사실 <술도녀>의 지연이가 처음이라 한 캐릭터를 제 손으로 살려서 맛깔나게 표현해낸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미션이었죠. 누군가를 즐겁게 한다는 일이 참 어려운 거더라고요. 많은 분이 즐겁게 재밌게 봐주셨다니까 반은 성공한 것 같긴 해요.
방금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말을 했잖아요.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지연이가 너무 어려운 역할이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우리가 본 지연이는 마치 살아 있는 친구처럼 생생했는데, 처음엔 그저 대본에 써 있는 글자였을 거 아녜요.
그렇죠. 텍스트로 그냥 써 있죠. 지연이는 뭐랄까요, 시안이 없는 캐릭터였어요. 저 역시 살면서 그렇게 텐션이 높은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고, 다른 극에서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캐릭터를 본 적도 없었거든요.
확실히 <술도녀> 이후 코미디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느낌이에요. 또 그때 보고서는 ‘왜 이렇게 잘하지’라며 놀랐지만, 예능에서 오래전에 보여줬던 캐릭터를 생각해보면 그 연기력이 갑작스럽지 않고 설득력이 있게 느껴져요.
감독님도 비슷한 예상을 하셨더라고요. 전 사실 그 역할 처음에 들어왔을 때, 그동안의 연기 커리어랑 다른데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밝은 역할을 주실 생각을 했는지, 감독님한테 여쭤봤어요. 감독님께선 그간 제가 활동해오며 예능에서 보여줬던 밝은 모습을 보고, ‘왠지 한선화라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대요. 제가 그때 정말 무릎을 쳤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저는 ‘내가 예능에 너무 많이 나가면 나한테 어떤 이미지가 덧씌워져 연기를 하기 힘든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정극을 하는 중인데,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으면 어떻게 하지? 뭐 그런 걱정이요. 그때 오히려 ‘결국 내가 해오던 나의 모든 행보가 하나도 헛된 게 없구나’라며 무릎을 쳤었죠.
연기를 하다 막힐 때면, 누구와 대화를 해요?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선생님이 계셨어요. 대본을 받으면 항상 찾아가서 함께 어떻게 연기할지를 고민하고 배우죠. 배우 동료 중에선 조승우 선배가 주연을 맡았던 <신의 선물-14일>에 함께 출연한 연제욱 배우와 지금까지 계속 인연을 이어오고 있어요. 제욱 선배의 연기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터라 많이 의지하고 조언을 자주 구해요.
연제욱 선배 같은 사람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럼요. 인생도 친구 없이 못 사는 것처럼 연기도 동료가 필요해요. 사실 제가 가진 개인적인 연기에 대한 고충을 누군가와 나누는 일이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제욱 선배한테는 정말 부끄러움이 없어요. 솔직하게 터놓을 때마다 진짜 힘이 돼요.
그런 사람 만나기 쉽지 않은데, 정말 좋은 인연이네요.
선배가 저를 놓지 않고 후배로 인정해줘서 너무 고마워요.(웃음)
실제로는 술을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좋아는 하는데, 제가 드라마와는 달리 소주를 잘 못 마시고, 와인을 좋아해요. 와인은 정말 좋아해요. 어제도 한 잔 마시고 잤을 정도로요.
와인 중에선 어떤 와인을 좋아해요?
피노 누아를 좋아해요. 제가 와인을 처음 마실 때 피노 누아를 마셨거든요.
아… 비싸고 힘든 길로 가셨군요.
다들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비싼 와인들만 있는 품종이라고요. 그런데 가성비 좋은 피노 누아도 많아요. 미국 피노 누아, 캘리포니아 피노 누아도 개성 있어서 좋더라고요. 데일리 와인으로는 약간 스트로베리 잼 같은 향이 나는 중저가의 피노 누아도 좋아하고,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다르게 마셔요. 프랑스 피노 누아도 물론 좋아하지만, 가격이 있잖아요. 작년 겨울에 샌타바버라에 갔다가 또 캘리포니아 해안 쪽 와인들에 푹 빠졌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내퍼 쪽 와인들은 한국에 많지만, 캘리포니아 그 외 다른 지역의 와인들은 아직 많이 안 들어와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에스콰이어>의 와인 담당이기도 한데요, 굉장히 섬세한 와인을 좋아하시는군요?
제가 미각이 좀 예민한가 봐요. 첫 향에서 무슨 맛이 나고, 마지막엔 어떤 맛이 남고. 그런 테이스팅 노트를 하면 꽤나 그럴싸하게 맞히는 경향이 있어요.
스파클링은요?
제가 그전까지는 샴페인을 많이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탄산을 별로 안 좋아해서요. 그런데 얼마 전 정말 맛있는 샴페인을 마셨어요. 그전에 마셨던 샴페인이랑은 달리 기포가 팡팡 터지며 올라오지 않고, 자글자글하고 부드럽게 올라오더라고요.
위험하네요. 취향이 자꾸 고급으로 가는 것 같아요. 기포가 작아지려면 숙성을 오래 해야 하고, 그러려면 가격이 비싸지거든요.
(웃음) 아직 위험할 수준은 아녜요. 샴페인도 가격 대비 훌륭한 것들이 많더라고요. 위험하다면, 너무 훅 취해서 위험할 뿐?
언밸런스 레더 소재 톱, 롱 스커트 모두 릭오웬스.

언밸런스 레더 소재 톱, 롱 스커트 모두 릭오웬스.

<놀아주는 여자> 말고도 기다리는 작품이 하나 더 있죠?
영화 <파일럿>이 7월 31일 개봉합니다. 조정석 선배님, 신승호·이주명 배우님들이랑 같이한 코미디 작품이에요. 제가 조정석 선배가 맡은 한정우의 동생 한정미로 나오고, 이제 영화 티저 영상이 막 공개됐어요.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서 정우가 여장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그걸 보고 또 함께 연기하는 현장이 무척 즐거웠어요. 정말 그 선배는 천재인 것 같아요. 존경해요.
조정석 씨의 코미디 연기는 따라갈 수가 없죠.
첫 촬영 하고 나서 선배님이 너무 부러워서 자책을 했어요. 왜 나는 아직 부족한가. 부족한 거야 당연하겠지만, 그 재능들이 탐나더라고요. 대본을 정말 미친 듯이 봤어요. 그런 사람이랑 연기를 하는데, 좋은 케미를 만들어야 하잖아요.
부담도 됐겠어요.
전 부담보다도 너무 즐거웠어요. 선배님이랑 티키타카를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 자체가 너무 즐거웠어요. 그리고 뒤처지고 싶지 않더라고요. 선배님의 재밌는 어떤 연기에 제가 나란히 함께하고 싶지, 뒤처지고 싶진 않더라고요.
와! 결과는 어때요?
그건 영화를 보시고 평가해주세요.(웃음) 제 입으로 잘했다 못했다 말하진 못하겠고,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판단해주시겠죠? 이렇게 말할 순 있겠어요. 즐거운 호흡이었다.
즐거운 호흡이었다…. 너무 기대되는데요?
저도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현장을 생각하면 재밌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런 와중에 또 한선화의 색다른 필모그래피가 있었죠. 전 <교토에서 온 편지>에서 한 연기가 너무 좋았어요. 인물의 배경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한 것처럼 보였어요.
제가 연기한 혜영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다시 부산의 엄마에게 내려가는 캐릭터잖아요. 저도 고향이 부산이고, 어려서부터 서울에 와서 사회생활을 했죠. 제가 고스란히 느꼈던 감정들이 있어서 잘 담겼던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제 개인적인 것 말고 다른 요인이 있어요. 아까 우리 ‘지연이는 시안이 없었던 캐릭터’라는 말을 했잖아요. <교토에서 온 편지>에 등장하는 세 자매 중 제가 맡은 혜영이 감독님 본인의 영화적 캐릭터거든요. 저는 너무 쉬웠죠. 부산말은 네이티브인 데다가 시안이 감독님이셨으니까요. 제가 유일하게 해야 하는 일은 감독님을 인터뷰하는 거였어요. 그때 무슨 기분이었어요, 고향에 다시 내려간다는 것 자체가 그래도 위안이었죠, 등등 수많은 질문을 감독님께 던졌죠.
독립영화 쪽에는 어떻게 연이 닿은 건가요?
제가 그전에도 독립영화를 몇 편 더 했어요. <영화의 거리> <창밖은 겨울>이라는 작품인데, 전부 경상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었어요. 부산이랑 진해가 배경이었고요. 둘 다 제가 경상도 사투리를 잘하다 보니 우연치 않은 기회로 감독님들이 캐스팅해주신 케이스였는데, <교토에서 온 편지>의 김민주 감독님이 <창밖은 겨울>을 보고 연락을 주셨어요.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또 독립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아무래도 티비나 대형 펀딩이 들어가는 영화에서는 만나보기 힘든 소박한 이야기들을 독립영화에선 많이 만나볼 수 있으니까요.
그 영화 보면서 배우 한선화를 너무 몰랐다는 생각을 했어요. 벌써 12년 차고, 코미디와 드라마에 능하고, 작은 이야기들도 섬세하게 표현해내고, 심지어 서울말과 경상도 말 바이링구얼인 배우 한선화에 대해서요.
(웃음) 이번 기회에 더 알아주셨잖아요. 전 사람들이 이미 많이 알기 때문에 지금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보다 전 이제 제가 하는 행보를 사람들이 기대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번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기대하게 되는 배우요.

Credit

  • PHOTOGRAPHER 류경윤
  • STYLIST 문승희
  • HAIR 조미연
  • MAKEUP 박차경
  • ASSISTANT 신동주
  • ART DESIGNER 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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