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에밀리아 로마냐에서 마시모 보투라를 만나다

볼로네제 파스타, 발사믹 식초,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그리고 마시모 보투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프로필 by 박세회 2024.07.16
발사믹을 시향 중인 마시모 보투라의 모습. 그는 모데나에서도 유명한 ‘모데나 근본주의자’로 모데나에서 만든 발사믹만이 진짜라고 믿는다.

발사믹을 시향 중인 마시모 보투라의 모습. 그는 모데나에서도 유명한 ‘모데나 근본주의자’로 모데나에서 만든 발사믹만이 진짜라고 믿는다.

- Scene # 1 -
나는 아직도 모데나에서 마시모 보투라를 처음 만난 순간의 공기, 온도, 습도 그 무엇 하나 잊을 수가 없다.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초대로 영국, 미국, 아랍에미리트에서 온 우리 미디어 일행은 보투라가 최근에 문을 열었다는 레스토랑 ‘알 가토 베르데’에서 저녁 식사를 기다리며, 정원에서 칵테일을 즐기고 있었다. 참고로 설명하자면, 마시모 보투라에게는 모데나에만 5개의 레스토랑이 있다. 1995년에 오픈해 ‘월드 레스토랑 50’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1위에 두 차례 이름을 올린 레전드 오브 레전드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가 그의 본체다. 당연히 미쉐린의 별 세 개를 받은 이 레스토랑은 모데나 시내 한복판에 있으며 근처에는 서브 브랜드인 비스트로 ‘프란체스케타58’(Franceschetta58)이 있다. 지난 2019년 보투라는 18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을 사들인 후 이를 개조해 일종의 미식 여행자를 위한 B&B ‘카사 마리아 루이지아’를 세웠다.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D&B(Dinner & Bed)라고 해야 할 듯하다. 카사 마리아 루이지아에 딸린 ‘프란체스카나 마리아 루이지아’(이곳도 미쉐린 3스타를 땄다)에서 경험하는 환상적인 저녁 식사가 이 숙박업소의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이다. 이 카사 마리아 루이지아의 바로 옆에 모데나 스타일의 바비큐를 중심으로 하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알 가토 베르데’와 ‘아체타이아 마리아 루이지아’가 있다. 거기에 페라리 팩토리 바로 앞에 있는 ‘리스토란테 카발리노’까지 합하면 모데나에만 5개의 레스토랑과 1개의 아체타이아 그리고 1개의 숙박업소를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모데나에 가본다면 당신은 그와 그의 레스토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모데나의 인구는 고작 18만 명이고, 도심 지역을 한 바퀴 도는 데는 러닝으로 20분이면 충분하다. 한국으로 따지면 경기도 구리시 인구가 18만 명 정도인데, 그 도시에 한 셰프가 운영하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이 2개나 있다는 건 그 셰프가 미친놈이거나 그 도시가 이상한 게 아닐까? 참고로 대한민국 전체에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이 현재 1개뿐이다. 그만큼 마시모 보투라의 모데나와 미식에 대한 열정이 엄청나다는 얘기다.
하여튼 그 남자, 미식계의 전설 같은 남자가 알 가토 베르데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저 멀리서부터 미친 사람처럼 뛰어오더니 급하게 우리와 악수를 나누고는 “제가 만든 발사믹 창고 좀 보실래요?”라며 우리를 어두컴컴한 곳으로 끌고 들어갔다. 아체타이아(발사믹 식초를 만드는 곳의 명칭)를 너무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미국 사람도 잘 못 알아들을 정도의 빠른 영어로 발사믹 식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며칠 전부터 모데나에서 발사믹 식초에 관한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있던 터였다. 모데나에서 발사믹은 종갓집의 장 같은 것이다. 전날 우리는 모데나 근처에 있는 ‘오페라02’라는 아체타이아 겸 레스토랑에서 발사믹 식초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들었다. 아주 큰 통부터 점점 작은 통으로 옮겨가며 최소 12년을 숙성해야 ‘아체토 발사미코 트라디치오날레 디 모데나’라 부를 수 있다는 얘기였다. 당시 우리에게 설명해준 ‘오페라02’의 발사믹 창고에도 몇십 년이나 묵은 발사믹들이 숙성 중이었는데, 보투라는 아예 건물 하나를 발사믹 식초 저장고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식초가 익어가는 그 건물에서 만난 미술품들이다. 마치 태양을 형상화한 듯한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작품 ‘Eye See You’가 방문객이 오지 않는 한 아무도 볼 리 없는 아체타이아의 벽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는 2002년 카사 마리아 루이지아를 확장하면서 인근에 있는 1969년에 세워진 ‘아체타이아’를 사들였다. 그 당시 해당 아체타이아에는 1900년대부터 담그기 시작한 발사믹 식초를 포함해 1200배럴의 발사믹이 있었다고 한다. “자 손등을 내밀어보세요.” 보투라가 말하며 내 손등 위에 식초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이게 바로 100년을 숙성한 발사믹 식초입니다. 향을 맡아보고 입에 넣어보세요.” 그 발사믹에선 우리가 아주 오래된 와인에서 기대하는 엄청나게 말리고 응축한 과실들의 향이 풍겨져 나왔으니, 주니퍼베리, 딜, 구스베리 등 파릇하고 강한 향들마저 풍겼다. 나는 그 발사믹 식초를 먹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1200배럴의 발사믹 와인들이 잠들어 있는 아체테이아 마리아 루이지아에는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1200배럴의 발사믹 와인들이 잠들어 있는 아체테이아 마리아 루이지아에는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 Scene # 2 -
에밀리아로마냐의 주도인 볼로냐에는 ‘그랜드 호텔 마제스틱 지아 발리오니’라는 5성급 호텔이 있다. 18세기에 건축되었고 1944년 공습으로 4층 객실이 붕괴되는 등의 사건을 겪었음에도 아직 옛날 모습 그대로 영업 중이다. 이 호텔에 있는 ‘이 카라치’라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중 나는 무심코 ‘볼로네제 스파게티’라는 말을 입 밖에 내고 말았다. 당시 우리를 가이드하던 사라 만토바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볼로네제 스파게티는 없다”며 아주 옅은 실망감을 내비쳤다. 그러니까 ‘볼로네제’는 볼로냐식 라구 소스를 말하고, 볼로냐에서 라구 소스와 함께 먹는 파스타는 반드시 탈리아텔레처럼 넓적한 달걀 면이어야 한다. 그러나 ‘볼로냐식 파스타’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먹어봐야 할 것은 라구 소스의 탈리아텔레가 아니다. 맑은 고기 육수에 담긴 토르텔리니를 먼저 시켜보길 바란다. “어린 시절 명절 때면 식구들이 전부 모여 반죽을 치대고 밀대로 밀고 얇게 편 반죽을 자르고 그 안에 소를 넣어 토르텔리니를 빚었죠.” 사라 만토바니가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볼로냐를 상징하는 맛이라는 게 사라의 설명이었다. “잘 삶은 토르텔리니에 맑은 육수를 곁들여 내는 것이 전통 방식이지만 요즘은 파르메산 치즈 크림을 곁들이는 토르텔리니도 있어요. 그것 역시 볼로네제라고 할 만큼 저희 지방의 색을 잘 담고 있지요.” 그녀가 말했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것은 라자냐다. 시금치가 들어간 얇게 편 파스타, 라구 볼로네제 소스(고간 소기 소스), 베샤멜 소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로 겹겹이 맛의 레이어를 쌓아 올린 전통 볼로냐식 라자냐는 내가 지금까지 다른 모든 곳에서 먹었던 라자냐의 맛을 초월했다. 볼로냐에 간다면 토르텔리니, 탈리아텔레, 라자냐를 시킬 것. 물론 모두 전통 방식으로.
모데나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든 발사믹 식초는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병 모양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다. 둥근 원형 상부에서 아래쪽이 직육면체처럼 이어지는 이와 같은 병에 든 것만이 모데나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든 발사믹 식초다.

모데나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든 발사믹 식초는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병 모양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다. 둥근 원형 상부에서 아래쪽이 직육면체처럼 이어지는 이와 같은 병에 든 것만이 모데나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든 발사믹 식초다.

- Scene # 3 -
잠시 우리가 돌아다닌 도시들을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에밀리아로마냐에서 가장 큰 도시인 볼로냐에서 첫날을 보냈다. 세계 역사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지금도 이탈리아는 물론 세계적인 명문 대학이다)이 있는 대학 도시의 분위기를 한껏 즐기며, 토르텔리니를 배 터지게 먹었다. 이후 우리는 우리를 초대한 에밀리아로마냐주가 홍보하고 싶어 하는 ‘모터 밸리 페스티벌’의 중심 도시 모데나로 입성했다. 모데나에서 우리는 발사믹 식초에 푹 빠졌다. 특히 와인을 사랑하는 나는 심각했다. 제대로 만든 모데나의 발사믹 식초는 우리가 아는 ‘발사믹 비네거’처럼 묽지 않았고 꿀처럼 끈적했다. 당도도 산도도 어마어마하게 높은데도, 계속 먹고 싶었던 이유는 감칠맛과 그 외의 모든 다양한 복합미가 밸런스가 튀지 않도록 잘 맞춰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 파르마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의 마법에 또다시 빠졌다. 심지어 저녁 식사를 마쳐갈 때쯤, 배가 불러 더는 먹을 수 없다고 느끼고 있을 때 거칠게 자른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에 발사믹 식초를 뿌린 안주가 나왔다. ‘치즈에 식초를 뿌린다고?’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전혀 다른 맛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적당한 온도의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덩어리들은 입안에서 부드럽게 부서졌고 ‘아그작’ 하고 향그러운 결정들이 씹혔다. 거기에 말린 살구와 자두의 향이 폭발하는 듯한 발사믹을 뿌렸으니 그 맛은 정말이지 한국인의 입맛이 가진 맛의 언어로는 설명하기가 힘들다. 신기한 건 발사믹 식초의 단맛과 감칠맛이(그 주된 맛은 절대 신맛이 아니다) 와인의 맛을 배가시켜줬다는 점이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 Nacchio Brothers / 박세회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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