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CH
이탈리아의 소도시 '모데나'에 슈퍼카들이 잔뜩 모인 이유
페라리, 람보르기니, 파가니, 달라라, 두카티로 이어지는 ‘모터 밸리’의 중심에 모데나가 있다. 이 모데나보다 더 슈퍼카적인 도시는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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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진실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농사보다는 농기계에 더 관심이 많았던 1916년생 페루초 람보르기니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남겨진 공장을 인수해 농기계 회사 ‘람보르기니 트라토리’를 차렸고, 1960년대에는 공조냉동 설비를 다루는 회사를 차려 생산직 150명과 서비스직 2000명을 뒀을 만큼 크게 성공했다. 당시 그는 알파 로메오, 재규어, 마세라티, 메르세데스-벤츠 그리고 페라리의 자동차를 이미 소유하고 있었으니, 그는 이미 자동차를 만들 준비가 되어 있었던 셈이다. 람보르기니 쪽에서 주장하는 이 자동차 신화는 사실 당시 선발 주자였던 페라리의 아성을 빌려 후발 주자인 람보르기니를 널리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페루초 람보르기니의 근거지도 또 그가 클러치를 고치기 위해 여러 번 왕복했다고 주장하는 마라넬로도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모데나와 볼로냐 주변이라는 사실이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뿐 아니라 마세라티, 파가니, 달라라 그리고 두카티 등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모터 브랜드들이 전부 에밀리아로마냐 주에 있어요. 우리가 모데나와 인근 도시를 중심으로 ‘모터 밸리 페스티벌’을 여는 이유죠.” 우리를 가이드했던 사라 만토바니가 말했다.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여러 도시들, 예를 들면 모데나는 발사믹, 파르마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볼로냐는 토르텔리니로 유명하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건 바로 자동차예요. 에밀리아로마냐 주가 이탈리아에서 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이유는 이 지역에 자동차 공장이 잔뜩 있기 때문이죠. 그것도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슈퍼카 공장들이요.” 에밀리아로마냐의 공보관 페데리카 코르테치의 말이다.

파가니의 박물관은 아틀리에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뜰리에에선 사진 촬영 금지. 그곳에서 만드는 차들은 이미 누군가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직원 3000명이 근무하고, 25만m²에 달하는 슈퍼카의 상징인 페라리의 공장만큼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대적으로 작은 파가니의 뮤지엄과 아틀리에였다. 지금 머릿속에 역사적인 파가니의 모델 ‘존다’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역사상 가장 ‘볼드’한 모델 중 하나인 이 존다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Form Does not Follow Function.”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의 이 말을 ‘형태는 기능을 따르지 않는다’라고 모범적으로 옮길 수도 있겠으나 존다, 와이라, 유토피아 등 역사적인 파가니의 모델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에서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라고 번역해도 정확하게 들어맞을 것만 같았다. 전시관을 지나 실제로 파가니가 주문 생산하는 아틀리에에 들어서자 이들이 어째서 이 공간을 ‘공장’이 아닌 ‘아틀리에’라고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독일의 AMG에서 수입해오는 엔진을 뺀 나머지 7000개의 부품이 이곳에서 수작업으로 만들어집니다. 심지어 기계도 잘 사용하지 않죠.” 우리를 인도한 가이드가 기어 시프트 조립에 들어가는 부품 하나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나는 그 부품의 무게와 유려한 곡선을 살펴보고 “이건 마치 조각 같다”고 말했다. 가이드가 대답했다. “맞아요. 우리는 절대 몰드에 넣고 구워내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알루미늄 덩어리를 깎아내듯 세공해서 만들죠.”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의 라이벌 관계만큼 유명한 설화가 바로 호라치오 파가니가 람보르기니에서 뛰쳐나온 이야기다. 카본 파이버가 이제 막 자동차에 사용되던 시절 파가니는 람보르기니의 엔지니어로 근무 중이었다. 당시 그는 탄소섬유가 자동차의 미래가 될 것이라 예측했는데, 람보르기니의 경영진은 호라치오 파가니의 의견을 무시하다시피 했다. 그 길로 뛰쳐나와 카본으로 외관을 바르다시피 한 파가니의 첫 역사적 모델 존다를 만들었다.
당신이 만약 모터 밸리 페스티벌을 찾는다면 잊지 말고 찾아야 할 뮤지엄이 세 개 더 있다. 하나는 파르마 인근에 있는 달라라 아카데미다. 페라리의 아성을 꺾겠다는 각오로 자동차업계에 출사표를 던진 페루초 람보르기니가 첫 모델을 출시하던 당시 수석디자이너로 뽑은 사람이 바로 파르마 출신의 디자이너 지암파올로 달라라이며, 그가 재임 당시 디자인한 모델이 자동차의 역사에 남을 미우라다. 달라라 아카데미는 그가 람보르기니와 결별한 뒤 ‘달라라 오토모빌리’라는 회사를 세우고 레이싱카를 디자인하며 버텨온 족적을 그대로 전시하고 기록해둔 곳이다. 람보르기니 자동차 박물관 역시 이왕 모터 밸리를 찾았다면 절대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달라라가 재임 시절 디자인된 미우라를 비롯해 쿤타치, 우라칸, 아벤타도르, 센테나리오 등 람보르기니 역사의 분기점을 찍은 거의 모든 모델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빛나는 박물관은 숨겨져 있다. 1900년에 창립되어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초기 자동차 경주 시대의 황금기에 경주용 자동차를 생산해 온 ‘스탕글리니 자동차’(Automobili Stanguellini)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보관 중인 스탕글리니 박물관이 그 주인공이다. 스탕글리니 박물관에는 스탕글리니 자동차에서 생산한 레이싱용 차량뿐 아니라 수많은 동시대 다른 브랜드의 범용 클래식 차량 컬렉션도 만나볼 수 있다.
모데나는 ‘두오모 디 모데나’를 중심으로 오각형 모양의 시가지가 발달했다. 지난 5월 2일부터 5일 사이 이 모데나의 두오모 앞에 있는 ‘피아차 그란데’에선 모데나 대학교, 레지오 에밀리아 대학교, 피사 대학교, 파비아 대학교 학생들이 디자인한 포뮬러 SAE(학생들이 디자인한 소형 레이싱 자동차) 모델들이 한창 전시되고 있었고, 이탈리아 군사학교가 있는 옛 ‘팔라초 두칼레 디 모데나’에선 모터 밸리의 브랜드들,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두카티 그리고 달라라의 자동차들이 아름다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만약 자동차의 도시를 하나 정해야 한다면 그건 모데나죠. 여기선 모든 게 자동차와 연관되니까요.” 처음 모터 밸리에 도착했을 때 사라 만토바니가 한 말이 떠올랐다. 만약 당신이 자동차를 사랑한다면? 모데나에 가는 걸 망설일 이유가 없다. 참고로 2025년의 모터 밸리 페스티벌은 5월 22일부터 25일이다.

페라리 팩토리의 정문. 저 작아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면 25개 동으로 이뤄진 거대한 페라리 세계가 나온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 Nacchio Brothers / 박세회
- ART DESIGNER 주정화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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