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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와 소로로빵 모두 멜론에게 지다

참외와 소로로빵 모두 멜론에게 지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4.07.20
여름이 다가오면, 일본 최대의 한인타운인 도쿄 신오쿠보의 한국 식자재점 매장에 참외가 진열되기 시작한다. 반가움에 손을 뻗다가도 움찔하게 되는 이유는 가격이다. 1개에 대략 500엔. 현재 환율로 치면 한화로 4300원 정도. 규돈(소고기덮밥) 한 그릇보다 비싸다. 한국에서 냉장 컨테이너로 운송되는 비용, 중간에 손상되어 폐기 처분되는 상품들의 비용을 가격에 계상하다 보니 아무래도 비쌀 수밖에 없다. 결국 참외도 바다를 건너오면 고급 과일이 되는 것이다. 다른 흔한 것들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소보로빵이다. 최근 신오쿠보에서는 소보로빵을 전문으로 하는 베이커리 카페가 생겼다. 심지어 ‘다음번 한류 디저트는 소보로’라는 식의 ‘트렌드 디저트’로 주목받고 있다. 이것도 1개에 500엔. 블랙 코코아 치즈 맛, 땅콩백앙금 맛 등 다종이 준비되어 있어 한국의 제과점에서 파는 단순한 소보로빵과는 물론 다르지만, 그래도 1개에 500엔이라니, 무척 고가의 빵인 셈이다. 종종 ‘이 돈이면 차라리 한국에 가서 사 먹을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요즘은 항공권 가격이며 호텔 숙박비까지 만만치 않게 고가라, 쉬운 일은 아니다. 사물의 왕래도, 사람의 왕래도 마찬가지. 참외와 소보로빵을 쉽게 집어 들지 못하는 데서 오는 짜증은 일본의 엔저나 한국의 고물가 탓이라고만 생각하다가 의외의 곳에서 근본적인 원흉을 발견하고 말았으니, 바로 멜론이다. 내 저주가 가닿아야 할 대상은 멜론이었다.
‘참외’는 일본어로 ‘마쿠와우리’(真桑瓜)다. 여기서 ‘마쿠와’(真桑)는 일본 중부지방 기후현에 위치한 ‘마쿠와무라’(지금의 모토스시)에서 따왔고, ‘우리’(瓜)는 참외·멜론·오이 등의 박과 식물을 총칭하는 말이다. 풀어 쓰면 ‘마쿠와에서 난 박’인데, 마쿠와가 참외가 유행하던 시절 가장 유명한 산지여서 붙은 이름이다. 일본의 참외 역사는 길다. 나라현에 있는 약 2000년 전 유적인 ‘가라코·가기’ 유적지에서 발굴된 토기에서 참외의 종자가 발견됐을 정도다. 기원후 7~8세기에 편찬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 <만엽집>에도 참외에 대해 읊은 노래가 있다. 참외를 먹으면 아이 생각이 절로 난다는 노래로, 달콤한 과일을 먹으며 기뻐하는 아이의 미소와 그것을 떠올리는 부모의 애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참외는 아주 오래전부터 일본에서 사랑받은 과일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일본에서 참외는 사라졌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 식료품점이 아니면 찾기 힘들다. 지방에 따라 자질구레하게 조금씩 재배되고 있는 것 같지만, 슈퍼마켓 매대에서 일상적으로 보는 일은 없다. 언제부터 일본에서 참외가 사라졌을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 중엔 어릴 때 참외를 먹어본 기억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란 40대 후반인 나는 한국에 와서야 참외를 처음 봤고 그전까지는 먹어본 적이 없다. 대체 왜 참외는 일본 마켓 역사에서 사라진 것일까? 찾아보니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맞다. 바로 멜론 때문이다. 멜론은 서양에서 들어온 신품종으로 19세기 후반부터 재배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온실에서 재배하는 고급 과일이었으나 1962년 노지 재배가 가능한 ‘프린스멜론’(그 이름도 고급스럽다)이 개발되자 가격이 훨씬 저렴해지면서 보통의 슈퍼마켓까지 보급되기 시작했다. 멜론의 정체는 애초에 참외와 같은 박과 식물인 데다가, 프린스멜론은 뉴멜론과 참외를 교배한 품종이라 시장에서 참외는 멜론에 계속 비교당할 수밖에 없었다. 참외와 비교해 훨씬 달콤하고 식감이 부드러운 멜론은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품종 개량을 거듭해 결국 ‘박과 과일’ 시장을 석권했다. 멜론의 열풍 속에 참외는 재배가 감소하고 쇠퇴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참외의 주적은 멜론이었던 셈이다.
소보로빵도 한때는 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역사의 흔적이다. 소보로는 그 자체가 일본어에서 왔다. 거친 형태로 잘게 덩어리져 있는 음식을 뜻하는 ‘粗朧’(소오보로)를 어원으로 한다. 예를 들면 다진 고기를 간장과 미림으로 매콤달콤하게 볶은 것을 ‘고기 소보로’라 하고, 이런 것을 밥에 올려 ‘소보로 덮밥’으로 먹는다. 볶은 달걀과 시금치 등 채소를 곁들인 ‘삼색소보로덮밥’도 가정에서 주로 해 먹는 요리다. 소보로는 일본어지만 소보로‘빵’의 뿌리는 독일이다. 밀가루, 버터, 설탕 등을 섞은 반죽을 구워낸 뒤 잘게 부숴 빵, 과자, 케이크 등에 토핑처럼 올리는 ‘슈트로이젤’이 일본에 들어올 때 그 모양이 울퉁불퉁하고 거칠다 보니 ‘소보로’로 번역된 것이 그 시작이다. 일본 음식인 ‘고기 소보로’와 구분하기 위해 제과제빵 용어로 쓸 때는 ‘버터소보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920~30년대에 서적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 흔적들이 잘 남아 전해진다. 예를 들면, 1929년에 도쿄 우에노에서 개최된 시판 빵의 심사회에는 ‘소보로 번즈’라는 품명의 빵이 출품된 바 있다. 번즈(buns)는 롤빵의 일종으로 1869년에 창업한 도쿄 긴자의 노포 베이커리 ‘긴자 기무라야’에서는 아직도 ‘버터소보로 번즈’라는 이름으로 소보로빵을 팔고 있다. 한국에 전해진 경위는 확실치 않으나, 일제강점기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시기에 전파된 단팥빵 등과 함께 소보로빵은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일본에서는 일부 베이커리를 제외하면 ‘소보로빵’을 파는 곳이 매우 적다. 그렇다. 소보로빵이 사라진 이유 역시 멜론이다. 멜론이 고급 과일로 보급되면서 일본에서는 번 위에 쿠키 크러스트 반죽을 입힌 소보로 모양의 빵이 점점 사라지고, 같은 쿠키 크러스트의 표면을 마치 멜론의 그물 모양처럼 줄을 그어 꾸민 멜론빵이 대세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제조법과 식감, 맛 모든 것이 소보로빵과 같지만 아무래도 거친 볶음요리를 뜻하는 ‘소보로’빵보다는 박과 과일의 프린스인 ‘멜론’빵 쪽이 훨씬 고급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니 소로보빵을 도태시킨 것 역시 멜론인 셈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일본에서는 그렇게 참외도, 소보로빵도 서양의 고급 과일인 멜론에게 졌다. 내가 느끼기에 신기한 것은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소보로도 참외도 현역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국민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인기를 끌고 있지 않은가? 한국에선 어떻게 멜론에게 지지 않고 살아남았을까? 나는 그 이유가 식감에 있다고 본다. 흔히 한국 음식과 일본 음식 중 회를 먹는 방법을 비교하곤 한다. 일본에서는 감칠맛을 내기 위해 숙성시킨 부드러운 회를 선호하고, 한국에서는 식감을 살리는 활어회를 선호한다. 멜론에는 없는 참외의 아삭한 식감, 멜론빵엔 없는 소보로빵의 겉면이 가진 거친 바삭함이 매력이었던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스테디셀러 아이스케이크인 ‘메로나’를 처음 먹었을 때, 그 쫀득쫀득한 식감이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고급스럽고 달콤하고 향긋한 멜론의 맛이라도 그 정도로 식감을 강화하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일본에서 참외와 소보로빵을 못 먹는 화를 멜론에게 내보려 했지만, 멜론도 한국 시장에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라는 생각을 해보며 화를 삭인다.

핫타 야스시(八田 靖史)는 한국에서 유학하던 중 한국 음식의 매력에 빠진 푸드 칼럼니스트다. 일본에 한국 음식을 알리기 위해 2001년부터 잡지, 신문, 웹 등에서 집필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는 토크쇼, 강연, 기업 어드바이저, 한국 미식여행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핫타 야스시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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