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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so coloful?' 와인의 색이 이렇게나 달라진 자세한 이유

넌 왜 그리 컬러풀하니? 그 물음에 대한 답에는 자신이 목적하는 향기와 풍미를 정확하게 구현하려는 와인메이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색이 다른 데는 다 각자의 사연이 있다는 뜻이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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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의 품종인 모작(Mauzac) 85%에 2016년 빈티지의 샤르도네 스틸 와인을 블렌딩한 르 플뤼(Le Pelut)의 ‘브항장그 2021+2016’은 내추럴 화이트 와인의 클래식이다. 포도를 목적에 맞는 방식으로 발효하기 위해서는 수확 후 이산화황을 뿌려 포도 겉면에 자연적으로 붙어 있는 효모를 모두 죽인 뒤, 양조 목적에 맞게 선별한 배양 효모를 첨가해 발효를 일으키는 것이 일반적인 양조의 기법이다. 반면 랑그도크 지역 르 플뤼의 내추럴 와인 장인인 피에르 후스는 이산화황을 사용하지 않고 포도를 압착한 후 토착 효모에 의해 자연 발효시킨 뒤 1년의 숙성을 거쳐 여과 없이 이런 색상의 와인을 뽑아냈다. 이런 제조 과정을 떠올려보면 이 와인이 가진 색의 청명함은 장인 정신의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2016년 빈티지의 숙성 샤르도네를 블렌딩해 어린 모작의 향미에 성숙함과 깊이를 더하며 흥미롭고 즐거운 조합을 만들냈어요.” 이 와인을 수입한 아부아와인 클레멍 토마쌍 대표의 말이다. 단단한 자두, 천도복숭아, 구스베리의 신선함들 사이에 언뜻 매실청, 모과잼과 같은 오랜 숙성의 뉘앙스가 느껴지는 것은 바로 샤르도네 블렌딩의 힘일 것이다. 특히 치즈와 머스크를 감각하게 하는 2차 풍미와 아주 옅지만 존재감 있는 쌉쌀한 허브향이 복합미의 정점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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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치아 산 조르조’(Abbazia San Giorgio)가 만든 이 와인의 빛깔을 보고 감탄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벌꿀색과 오렌지색 사이 어딘가에서 병 전체가 영롱하게 빛난다. 이 와인을 수입한 카보드 와인의 마티아스 코헨 대표는 “시칠리아 화산 토양에서 자란 지비보(Zibibbo) 품종의 포도를 20일 이상 스킨 컨택트한 채로 발효한 와인이다. 20일이면 컨택트가 매우 긴 편인데, 침용 과정에서 이런 아름다운 오렌지 컬러가 뽑혔다”라며 “첨가물이나 이산화황을 전혀 넣지 않았고, 스테인리스스틸과 밤나무 오크 통에서 6개월간 숙성한 와인을 일정한 비율로 블렌딩해 병입했다”고 말했다. “제주도를 떠올리게 하는 화산 토양의 미네랄리티가 인상적”이라며, 마티아스 코헨은 “제주도를 떠올리면 한라봉이 떠오르고 이 와인이 마치 그 빛깔 같아서 한국에서 만약 와인을 만들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상상했다”고 밝혔다. 코끝과 입안에서 복합미가 폭발한다. 청사과, 천도복숭아, 살구 넥타, 요구르트, 카다몬, 재스민, 캐머마일, 페퍼, 시나몬, 진저의 다양한 향들이 훌륭하게 어우러져 오렌지빛으로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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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건주의 윌라멧 밸리에서 ‘와인 성자’로 불리는 ‘더 마리니’(The Marigny)의 와인메이커 앤드루 레지날드(a.k.a ‘세인트 레지날드’)는 2016년부터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피노 그리 로제를 만들고 있다. 레드 와인을 만들 때 타닌을 과도하게 추출하지 않고 풍부한 과실향과 아름다운 색만을 뽑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탄산 침용 방식을 ‘피노 그리’ 품종에 활용해 그 어떤 와인보다 아름다운 가넷빛을 뽑아낸 것. 이산화탄소로 가득 찬 스틸 탱크에 포도를 송이째 가득 채우면 포도 송이 내에서는 효모 발효와는 전혀 다른 세포 내 발효가 일어나고, 포도 내의 알코올 농도가 2%에 달하면 자연적으로 포도 껍질들이 내부의 압력에 의해 벗겨지게 된다. “이후 포도 껍질을 다 걸러낸 뒤 자연 발효를 시키는데, 중요한 건 이 과정에서 붉은 색소인 안토시아닌은 추출되지만 타닌은 추출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사실 특유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포틀랜드가 미국 내의 내추럴 와인 신의 중심지 역할을 해내고 있는데, 특히 이 와인은 미국 내추럴 오렌지 와인의 교과서 격으로 불려요.” 포틀랜드의 내추럴 와인을 수입하는 ‘p.o.t. 프로젝트’의 강미셸 대표의 말이다. 말린 살구와 자두, 아주 옅은 패션프루츠, 이제 막 익기 시작한 복숭아의 과실향 사이로 막 우려낸 발효 찻잎의 씁쓸함이 흐르며 복합미를 끄집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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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핫한 와인 지역인 독일 팔츠의 내추럴 와인 생산자 ‘스벤 라이너’가 마일스 데이비스를 좋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자신의 와인에 그의 노래 제목인 ‘Bitches Brew’를 붙였으니까. 보시다시피 이 아름다운 레몬 골드 컬러는 논필터드 스킨 컨택트 와인의 모범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소비냑, 케르너, 실바너, 쇼이레베 네 품종을 섞고, 그 3분의 1은 줄기를 골라내지 않은 채 포도송이 전체를 씨째로 침용해, 3분의 1은 포도를 압착해 서늘한 저온에서, 3분의 1은 압착한 뒤 상온에서 발효시켰다. 그렇게 블렌딩된 베이스 와인을 첨가물 없이 2차 발효(스파클링 와인에서 기포를 생성하고 효모 풍미를 더하는 과정) 시켰다. “줄기와 씨를 같이 침용했으니 타닌이 거의 없다시피 한 다른 화이트 펫낫과는 달리 기분 좋을 정도의 타닌이 스며들어 있지요.” 이 와인을 수입한 부떼이와인의 김혜랑 대표가 말했다. 복숭아, 살구, 구스베리, 오렌지 껍질, 청사과와 꿀, 딜 등 다양한 향기가 복합미를 끌어올린다. 특히 아주 살짝 스며들어 있는 생강의 느낌이 청량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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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유명 산지 루아르 밸리의 내추럴 와인 장인으로 불리는 ‘티에리 에노’(Thierry Hesnault)의 ‘54/55 세이벨’은 포도 품종의 선택에서부터 특별하다. 과학적으로 개량된 하이브리드 품종 ‘플란테’(Plantet)를 베이스로 하기 때문이다. “이 품종은 필록세라 유행기에 병충해에 강한 품종으로 개량되어 잠시 유행했다가 도태되다시피 했죠. 그러나 에노는 살충제 등의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오래된 이 품종의 묘목을 골라 심었어요.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품종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에노는 50~60년 수령의 올드바인에서만 수확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죠.” 이 와인을 수입한 윈비노의 석진영 대표의 말이다. 이와 같은 옅은 루비색을 내는 펫낫을 양조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레드 품종의 포도에서 옅은 붉은색이 빠져나올 때까지만 껍질을 침용하는 방식, 화이트 와인을 베이스로 원하는 색이 날 정도의 레드 와인만 블렌딩하는 방식이다. 올해 출시된 세이벨은 이 두 방식 모두를 사용했다. 플란테의 껍질에서 어느 정도의 색을 뽑아낸 후 슈냉 블랑을 섞었다. 붉은색의 와인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레몬과 라임의 산미, 피노 종을 연상케 하는 레드 체리와 딸기의 신성한 향들 사이로 혀를 찌르르하게 간질이는 말린 살구와 매실청의 맛들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참고로 54/55는 각 플란테의 클론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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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계 와인메이커 알라나 라감바가 이끄는 ‘뱅 드 라감바’(Vin de LaGamba)의 이 로제 와인은 사실상 독일에서 만든 람부르스코(이탈리아의 발포성 레드 와인)라 해도 좋을 것이다. 알라나는 화이트 품종인 리슬링, 레드 품종인 돈펠더는 직접 압착 방식으로 주스를 짜낸 뒤 자연 발효를, 레드 품종인 시거레베(Siegerrebe), 화이트 품종인 요하니터(Johanniter)는 포도를 짧게 탄산 침용시킨 뒤 자연 발표시키는 ‘세미 카본 매서레이션’ 방식으로 발효시켰다. 그렇게 만든 4개의 베이스 와인을 중성 오크 통(오래된 거대한 오크 통)에서 숙성한 뒤 단 9g만의 당을 첨가한 후 병입해 탄산을 만들어내는 2차 발효를 진행했다. 참고로 우리에게 익숙한 샴페인의 경우 2차 발효로 6기압의 탄산 압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24g의 당을 주입한다. 즉 9g의 당이 만들어내는 기압은 2기압이 조금 넘을 뿐이라 이탈리아의 기준으로는 ‘프리잔테’에 속하는 잔탄산 와인이 완성된다. “부드럽고 자글자글한 탄산과 산미가 아주 인상적인 와인입니다. 달지 않으면서도 도수는 9도밖에 되지 않아 산뜻하고 가볍게 마시기에 아주 좋아요.” 이 와인을 수입하는 이스티와인의 김동훈 대표의 말이다. 화이트 와인이 가진 여러 시트러스 향에 더해 말린 살구와 자두 그리고 해변가의 들풀을 연상케 하는 특유의 허브 향이 멋지다.

Tips
드라이 와인을 마실 땐 단맛을 피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여름엔 아이스크림보다 즐거운 마리아주가 없다. 와인의 신맛을 누그러뜨리고 과실향을 더 풍성하게 즐기고 싶다면 과일 셔벗 계열과 함께, 오히려 산미를 더 강조해 상큼한 기분으로 와인을 즐기고 싶다면 피스타치오나 리조 계열의 젤라토와 함께 즐겨봐도 좋다.

Credit

  • PHOTOGRAPHER 정우영
  • COOPERATION 받터(젤라토)
  • 부떼이와인
  • 윈비노와인
  • 이스티와인
  • 카보드와인
  • 아부아와인
  • POT 프로젝트
  • ART DESIGNER 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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