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이날치의 프로듀서이자 <정년이>의 음악감독, 장영규의 세계
그에게 당신이 하는 것들은 어떻게 늘 그리 새로운지, 그 새로운 것들이 어째서 이렇게 마음에 바짝 다가서는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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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아더에러. 팬츠 송지오 컬렉션. 슈즈 스테판 쿡. 네크리스 본인 소장품. 셔츠, 슬리브리스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날치가 2집 첫 싱글 ‘낮은 신과 잡종들’을 냈습니다. 두 번째 싱글 ‘히히하하’도 곧 발매할 예정이고요. 어떻게 들으면 굉장히 이날치스럽고, 또 어떻게 들으면 완전히 새로운 음악으로 돌아왔더군요.
사실 당연한 일인 것 같아요. 사람도 바뀌었고(이날치는 1집 때와 팀 구성원이 많이 바뀌었다),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까요. ‘범 내려온다’라는 곡이 워낙 화제가 되면서 그 당시만 해도 그런 고민이 있었죠. 그 곡이 가진 일종의 공식을 다시 활용해야 하는가, 아니면 벗어나야 하는가. 그런데 코로나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일들로 5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버렸고, 이제 그런 건 아무 상관 없게 되어버린 거예요.
음악 스타일도 많이 바뀌었지만 무엇보다 판소리 ‘수궁가’의 대목들을 따왔던 1집과 달리 이번에는 새롭게 창작한 세계관과 이야기, 가락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그건 초창기부터 생각했던 부분이에요. 매번 판소리 다섯 마당을 하나씩 한다고 하면 새로운 작업도 계속 한데 묶여서 가는 건데, 그런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뭐 ‘이날치스럽다’는 평은 받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던 거예요. 예를 들어서 이날치가 드라마 <정년이>의 OST에 포함된 ‘새타령’을 불렀는데, 유튜브에 검색해보면 새타령이 한 20, 30가지 버전이 나올 거거든요. 바꿔 말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작업인 거예요. 그 안에서 이날치가 자기 스타일로 잘했냐 못 했냐, 그런 걸 하고 싶진 않았던 거죠. 그간 누구도 하지 않은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고, 그래서 적어도 정규 앨범 안에서는 계속 새로운 작업을 추구하자고 얘기가 됐죠.
원래도 워크숍 같은 복잡한 과정으로 곡 작업을 해왔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이야기를 구성한 김연재 극작가와 협업하면서 한층 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보통 제가 비트와 베이스 반주 정도를 넣은 구조를 만들어놓고, 판소리 바탕 책들을 갖고 다 같이 모여 앉아서 거기에 어울릴 만한 것들을 하나씩 계속 불러보죠. 느낌이 오는 게 있으면 조금씩 다르게 조정해보고, 녹음을 하고, 그렇게 몇 시간 동안 계속 쌓아서 곡을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는 거기에 가사를 만드는 작업이 추가된 거죠. 일단 구조를 만들면 작가님과 이게 어떤 이야기와 잘 어울릴 것 같은지 회의를 해요. 우리가 원본으로 만들어둔 해당 구조의 가사들을 쫙 정리하고, 작가님이 그 위에 어떤 이야기가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도 쫙 정리하죠. 그리고 불러보면서 뉘앙스를 만들어가는 거예요. 사실 그 과정이… 엄청 힘들어요.(웃음) 쉽지 않은 일이죠.
‘이야기’는 판소리의 핵심이죠. 이번 앨범은 어떤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나요?
‘더미’와 ‘자루’라는 두 주인공이 정복 전쟁을 개시한 왕과 장군에게서 빼앗긴 잡종들의 이름을 되찾는 이야기예요. 모험을 그리는 동화 같은 이야기면서 현실과 맞닿는 부분도 있죠. 지금 세상에 전쟁이 뭐 없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 이야기가 사실 아직 완성된 게 아니에요. 한 곡씩 써나갈 때마다 작가님도 ‘꿈틀꿈틀’한 느낌을 받으면서 작업을 하고 있고요. 저희도 이야기의 큰 틀을 공유하고 여기저기서 발췌하면서 곡을 쓰고 있어서, 이게 어떤 이야기인지 한 번씩 얘기해보면 다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더라고요. 그런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 앨범 녹음이 끝나면 작가님이 소설로 쫙 정리를 하실 것 같고요. 저는 그 소설로 판소리 한 바탕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는데, 뭐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겠다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굉장히 험난하겠다는 마음도 있습니다.(웃음)
감독님은 그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개인적으로는 문화에 대한 좀 더 폭넓은 은유로 이해했어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힘없거나 작은 것들은 사라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계속 생기는데, 그걸 되돌리고 싶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작업하고 있죠. 물론 방금 말했다시피 중요한 건 이게 듣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고요.
꾸준히 밴드 음악을 하면서 영화음악 작업도 이어오고 계시죠.
맞아요. 그런데 그게 영화가 가장 상업적이고 파급력이 있다 보니 가장 크게 보여서 ‘영화음악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제 앞에 자주 붙는데요. 비중으로 따지면 가장 많이 하는 작업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연극 무대의 음악 작업을 더 많이 했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무용 음악 작업도 많이 했고.(장영규는 피나 바우슈, 안은미 같은 대가들의 작품에 음악감독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무튼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진 작품에 제가 음악으로 참여해서 뭔가를 만들어볼 수 있는 작업은 장르에 상관없이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영화만 해도 굉장히 다채로운 작품을 맡으시잖아요. 특히 최동훈, 이경미, 연상호 같은 ‘뻔한 걸 싫어하는’ 감독들이 장영규 감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경미 감독은 이렇게 표현한 적도 있고요. “장영규는 사실 극의 전개를 돕기 위한 기능적 음악을 만드는 분이 아니라, 영상을 해석해서 그걸 음악이라는 언어로 구현해주는 분이다.”
그런 감독들은 저와 몇 작업을 같이 하면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있으니까 좀 더 유기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거죠.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도 ‘이런 부분이 있으면 좋겠다’ ‘나는 이렇게 느꼈다’ 하는 부분을 얘기하기도 하고요. 어쨌든 남들이 쉽게 해줄 수 없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고 느끼니까. 오랜 파트너이니까. 그런 측면인 것 같아요.
최근에는 드라마 <정년이>의 음악감독을 맡기도 하셨죠. 그간 해오신 것들과 의미나 작업 범주가 좀 달랐을 것 같기도 했어요.
그랬죠. 일단은 그 작품이 일종의 음악 드라마잖아요. 저도 그런 작품을 해봐야겠다고 늘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게 국내에서 제일 잘 안 되는 장르예요. 해외에서는 ‘흥행이 보장된 장르’ 취급을 받는데, 희한하게 국내에서는 성공한 작품이 정말 드물죠. 거기다 <정년이>에서 다루는 음악은 판소리고요. 그래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이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작품에서 처음 캐스팅된 스태프가 저였거든요. 김태리 배우 다음으로 제가 캐스팅됐는데, 사실 저는 처음에 좀 만류했죠. “아니 이 어려운 걸 왜 하려고 하시냐.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웃음)
하지만 결국 그 어려운 일에 참여하기로 하신 거군요.
PD는 다시는 음악 드라마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보통 드라마의 3배, 4배는 일한 것 같다고,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요. 물론 저도 엄청 힘들긴 했는데, 그래도 뿌듯한 결과라고 느껴지는 지점이 좀 있긴 했어요. 사실 아무리 배우들이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판소리를 진지하게 듣게끔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방금 말했듯이 음악 드라마라는 장르도 우리한테는 워낙 낯설고. <정년이> 첫 편집본이 나왔을 때도 그런 얘기가 좀 있었어요. 국극 장면, 노래하는 부분을 많이 줄이고 드라마로 끌고 가야 할 것 같다고요. 저는 “아니다” 했죠. “그럼 음악 드라마로서 실패하는 거다.” 노래하는 장면들을 최대한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다행히 결국 1, 2회 사전 작업을 모니터링했을 때는 호응이 좀 있었어요.
OST뿐만 아니라 국극에 사용되는 곡 작업까지 하신 건가요?
네. ‘춘향전’은 원래 있는 거니까 그대로 썼고, 나머지 공연에 쓰인 곡들은 새로 만든 겁니다. 아마 <바보와 공주>나 <쌍탑전설> 같은 공연에 원래 쓰였던 음악들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전통음악을 그렇게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걸 강요하는 게 이 드라마에서 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있었죠.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대목들을 만들어내는 게 좋겠다고. 그래서 크게 보면 이날치 음악 작업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그만큼 구조를 뒤틀지는 않았지만, 짧은 장면들 안에서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대목을 만들기 위해 모여서 하나하나 시도해보는 과정이 있었죠. 국극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악기를 섞기도 했고요. ‘좀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 고증을 무시하자’ 마음을 먹었던 셈인데, 다행히 고증 관련한 불만은 안 나왔던 것 같아요. 의도가 잘 전달된 거겠죠.
어쨌든 또 치열하게 고민하셨을 테니까요. 장영규가 국악을 재해석한 음악들은 아무리 새로운 형태라도 흔히 말하는 ‘퓨전’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머니까.
사실 저는 “이날치는 판소리나 퓨전을 하는 팀이 아니고 그냥 대중음악을 하는 밴드다” 하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우리가 하는 건 소리꾼이 만든 대중음악이라고요. 일단 저는 스스로 ‘퓨전’이라고 말하는 것들의 결과물이 그렇게 재미있지가 않아요. 대부분 화장만 다르게 해주는 정도에 그치잖아요. 화장을 다르게 한다고 옛것이 현재에 존재할 수 있게 되느냐.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고민이 있어야 하는 거죠. 지금은 사라진 그것이 존재했을 당시에 어떤 이유로 대중적이었는지, 그럼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사는 새로운 시대에 그걸 가져오려면 뭘 가져와야 할지, 어떤 지점을 살릴 것인지. 저는 그런 고민이 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과물이 어떻게 됐든 더 다양한 형태의 시도들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고요. 그래야 사람들이 그 문화의 핵심이 뭐였는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뭔지도 알게 될 테니까. →
Credit
- STYLIST 박선용
- HAIR & MAKEUP 이소연
- ART DESIGNER 최지훈
CELEB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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