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마음속엔 미디어가 주입한 도시의 심상이 있다. <애틀랜타>를 본 사람이라면 그 도시의 모든 흑인이 힙합 뮤지션이거나 힙합 뮤지션의 친척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8 마일>을 본 에미넴의 팬이라면 디트로이트 다운 타운에 발만 디뎌도 총을 맞을 수 있다며 두려워할 것이다. 유튜브로 샌프란시스코 랜선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범죄 소굴이 되었다고 여길 테고, 라스베이거스가 여러 영화에서 다뤄진 방식을 생각하면, 그곳이 지난 20년 사이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거주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도시 중 하나라는 사실을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에스콰이어 코리아>는 다음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기 직전, 우리가 그동안 발견한 미국의 다섯 도시의 조금 다른 실상을 기록하기로 했다.
DETROIT
2013년 1월 <포브스>는 미국에서 가장 비참한 도시로 디트로이트를 꼽았다. 범죄율이 심각했다. 디트로이트는 2012년 미국 내 범죄율 1위 도시였다. 살인 범죄율이 10만 명당 48.2명, 강간 범죄율은 59.8명, 강도 범죄율은 695.6명, 폭행 범죄율은 1333.6명에 달했다. ‘범죄도시’로 전락한 건 경찰력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2009년 재정 부족을 이유로 디트로이트 당국은 경찰 인원 30%를 감축했다. 이로 인해 평균 출동시간이 58분까지 치솟았다. 참고로 미국 내 평균은 11분이다. <포브스>의 말이 씨가 됐던 것일까? 같은 해 7월, 디트로이트는 파산 보호 신청을 하고 만다. 당시 시가 갚아야 할 총 채무액은 180억 달러(약 25조2000억원)에 달했다. 2007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디트로이트 외에도 파산한 펜실베이니아주의 스크랜턴과 로드아일랜드주의 센트럴폴스가 있었지만, 전부 인구 10만 명 수준의 소도시였다. 디트로이트 몰락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순환이 반복된 상태였다. 몰락의 시작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 초 디트로이트는 포드, GM, 크라이슬러 같은 미국을 대표하는 빅3 자동차 브랜드들의 본거지로 부를 쌓았다. 디트로이트가 ‘모터시티’ 또는 ‘모타운’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유다. 미국이 자동차 왕국이라면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왕국의 수도였던 셈이다. 1950년까지만 해도 디트로이트는 인구 185만 명이 거주하는 미국 내 네 번째로 큰 도시였다. 그러나 1950년대 들어 자동차 빅3사의 공장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1957년 미국 시장에 진출한 토요타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빠르게 자동차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일자리가 없어 도시를 떠나는 사람이 늘자 다운타운은 활기를 잃고, 경제 활동이 침체되며 세금까지 적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백인 중산층이 교외로 빠져나가 다운타운은 빠르게 슬럼화됐다. 1970년대 석유파동까지 겹치면서 디트로이트의 자동차공업은 깊은 수렁에 빠졌다. 수천 명이 상주하던 대형 공장들이 통째로 버려졌고 빈집은 쓰레기와 낙서로 뒤덮이거나 부랑자들의 소굴이 되기 일쑤였다. 심지어 1980년대에는 ‘악마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방화가 성행해 1984년 한 해에만 800건이 넘는 화재가 발생했다. 2009년 10월호 <타임스>는 ‘디트로이트의 재앙’이라는 제목의 표지를 발행하며 기사에 이렇게 썼다.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황폐화시킨 지 3년이 지난 지금, 이 도시의 실업률은 11%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의 실업률은 28.9%다. 도대체 어떤 태풍이 디트로이트를 휩쓸고 지나간 것인가?’ 끝없이 추락하던 디트로이트의 인구는 2013년 70만 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정점을 찍은 1950년과 비교하면 60% 이상 줄어든 수치다. 되살아날 방법이 요원했다. “디트로이트의 1인당 소득은 1만5000달러 미만으로 전국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40%의 주민이 빈곤의 위험 속에 살고 있는데 이 역시 전국 평균의 2.5배 이상이죠. 실업률도 마찬가지고요.” 트럼프가 2016년 디트로이트의 유세장에서 한 말이다. 이어서 그는 중국을 겨냥하며 “해외에 세운 자동차 공장들을 다시 미국으로 불러와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스피치 덕분인지는 알 수 없으나 트럼프는 당시 클린턴이 우세할 것으로 예상됐던 미시간주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트럼프의 말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2018년 캐딜락이 뉴욕에 위치하던 본사를 디트로이트로 옮겼고 2021년에는 지프, 푸조, 크라이슬러를 거느린 스텔란티스 그룹이 16억 달러를 투자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 생산 공장을 세웠다. 디트로이트에 새로운 자동차 공장이 들어선 건 30년 만이다. 지난해 GM도 22억 달러를 들여 전기차 전용 공장을 세웠다. 자동차 관련 산업은 아니지만, 2023년 아마존도 4억 달러를 투자해 디트로이트에 새로운 물류센터를 지었다. 이렇게 흘러 들어온 막대한 자본이 디트로이트를 바꾸고 있다. 미시간 중앙역이 대표적이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폐역’으로 불리던 이곳은 1988년 문을 닫은 후 30년간 방치됐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덕에 에미넴이 2009년 발표한 ‘Beautiful’의 뮤직비디오와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등장한 곳이다. 흉물로 전락한 폐역을 개조한 건 디트로이트의 터줏대감 포드다. 2018년부터 6년간 공사를 거쳐 EV & 자율주행 연구센터로 재건했다. 디트로이트에 엄청난 돈을 끌어온 두 명의 인물이 있다. 첫 번째는 댄 길버트다. 2023년 기준 <포브스> 추산 183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2010년대 초반부터 디트로이트의 부동산을 매입하기 시작해 현재 130여 개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디트로이트 출신인 그는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회사가 디트로이트 시내로 들어오면 다른 사람들도 따라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디트로이트는 다시 일어설 잠재력이 충분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물은 마리안 일리치다. 남편 마이클 일리치의 뒤를 이어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의 구단주를 맡고 있기도 한 그녀는 미시간대학교에 2억5000만 달러를 기부했을 뿐만 아니라 시와 협력해 8억 달러 규모의 도시 재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프로젝트는 부동산 사업 외에도 스타트업 장려, 세금 감면, 저소득 주민을 위한 금융 프로그램 등이 포함되어 있다. 2013년 디트로이트의 파산 이후 ‘저점매수’를 노린 부동산 투자가 늘어나면서 기존 거주민과 투자가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도시 재건을 빌미로 자신들을 내쫓는다고 느낀 것이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시 아트 앤 컬처 디렉터 로첼리 라일리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부정적인 젠트리피케이션만 있는 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1912년 지어진 굿 셰퍼드 교회가 좋은 예다. 디트로이트 출신인 안토니는 다운타운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한 이스트 빌리지의 버려진 굿 셰퍼드 교회를 사들여 갤러리와 카페로 개조했으며, 인근 부지를 매입해 저렴한 임대료로 예술가에게 스튜디오와 거주 공간을 제공했다. 모여든 예술가들은 공원에 조각 작품을 전시하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식으로 협력한다. 하이델베르크 프로젝트도 디트로이트를 바꾼 대표적인 커뮤니티 활동 중 하나다. 타이리 가이튼이 1986년 시작한 프로젝트는 디트로이트의 빈집과 공터를 새롭게 꾸미는 방식이다. 깨진 유리창, 화재로 반쯤 무너진 집을 알록달록한 프린팅과 벽화로 뒤덮은 모습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재미있는 점은 가이튼이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갈 때 지역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함께 작업했다는 사실이다.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난 3월 <블룸버그>는 10년 만에 신용등급이 ‘투자등급’으로 격상한 기사를 작성하며 ‘디트로이트가 돌아왔다’고 평했다. 2023년 디트로이트 실업률은 4.2%로 33년 만에 제일 낮은 수치였으며 1950년대 이후 약 70년 만에 인구가 증가했다. 치솟았던 범죄율도 가라앉아서 57년 만에 가장 적은 살인 범죄 건수를 기록했다. 총격 사고와 자동차 관련 범죄도 각각 16%, 33% 줄었다. 200명의 경찰을 추가 배치했고 보수도 1만 달러 가까이 높인 결과다. “위험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어요.” 2009년부터 약 6년간 유학생으로 디트로이트에 머물렀던 폴스타 디자이너 이수범 씨의 말이다. 그는 “여전히 디트로이트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제가 있었을 때보다 요즘 더 살기 좋아졌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곳에 비해 물가가 저렴한 것도 장점이죠”라고 덧붙였다. 지난 5월 디트로이트에 다녀온 ‘DJ 시나 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밤늦게 다운타운의 여러 레코드 숍과 와인 바를 돌아다녔어요.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동양인은 저 혼자였는데 무서운 느낌은 없었어요. 다들 자신의 믹싱 스타일에 맞춰 디제잉을 즐길 따름이었죠. 디트로이트 하우스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고향에 온 기분이 들 정도로요.” 곧 취임을 앞둔 트럼프는 자동차 제조사에 ‘관세 폭탄’을 예고했다. 한미 FTA 폐기를 주장한 나바로를 무역 고문으로 내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한국에는 악재지만 디트로이트에는 호재다. 이 정도면 ‘모터시티’ 디트로이트의 화려한 부활이라고 해도 손색없다.
THE HENRY FORD MUSEUM
단순히 자동차를 모아놓은 수준을 넘어 미국 내 시대별 자동차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졌다. 예를 들어 자동차 보급이 낳은 미국 특유의 모텔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1950년대 모텔 객실을 통째로 옮겨다 놓는 식이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존 F. 케네디가 저격당할 때 탔던 링컨 컨티넨탈, 역사상 가장 커다란 증기기관차 등 희소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디트로이트가 ‘모터시티’라고 불리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곳이다.
RIVER WALK
디트로이트는 디트로이트 강을 경계로 캐나다 윈저와 국경을 나눈다. 디트로이트시는 2009년부터 순차적으로 디트로이트 강 주변을 산책하기 좋은 곳으로 바꾸는 중이다. 리버 프런트 콘서번시부터 강을 따라 걸어 미시간 중앙역까지 이어지는 약 3.5km의 산책로를 따라 테라스 카페, 고급 요트 항구, 푸드트럭, 자전거 대여소 등 각종 편의시설이 줄지어 위치한다. 달에 한 번 반려견과 산책하는 행사를 여는 등 지역과 연계한 소소한 이벤트도 열린다.
WOODWARD AVENUE
에미넴 덕에 ‘8마일’이 먼저 떠오르지만, 디트로이트 토박이가 꼽는 ‘근본’ 스트리트는 우드워드 애비뉴다. 줄여서 M1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세기 초 조성된 이 길은 헨리 포드가 자신의 첫 자동차를 운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서울의 세종대로나 종로쯤 되는 셈이다. 매년 8월, 약 4만 대의 클래식카가 퍼레이드를 펼치는 ‘우드워드 드림 크루즈’는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자동차 행사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