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CH

완전 전기차의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린 현존하는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5.01.30
지난 10년, 자동차 판을 가장 크게 뒤흔든 이슈를 고르라면 이론의 여지없이 전기차를 들 수 있다. 상용화된 지 불과 10년 남짓인데, 기후 위기에 따른 각국의 엄격한 규제와 탄소 배출 제로를 향한 기업들의 목표가 맞아떨어지면서 빠르게 시장을 채워나갔다. 흐름을 주도한 테슬라의 역할이 컸다. 초기 2012년과 2015년 각각 모델S, 모델X가 나올 때만 하더라도 주목도가 높지 않았으나, 모델3가 등장한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모델3가 나온 2017년 6월까지의 12개월을 기준으로 테슬라의 매출은 전년도(70억 달러)에 비해 30억 달러나 증가한 100억 달러를 기록했다. 금융정보기관 LSEG(런던증권거래소그룹)에 따르면 2024년 매출은 955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하니, 테슬라의 전기차들이 그사이 얼마나 빨리 도로를 점령해갔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이처럼 테슬라가 자동차의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는 가운데 수많은 패스트 팔로워가 나타났다. 기존의 정통 완성차 회사는 물론 신생 브랜드까지 너도나도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전기차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대부분 2030년부터 2050년까지 5년 단위 기점으로 100% 탈탄소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기차 생산 계획을 밝혔다. 동시에 그럴듯한 차들도 쏟아지며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는 높아져 갔다. 결정적으로 국가의 폭넓은 보조금 지원과 각종 혜택은 안 살 이유가 없어 보일 정도였다. 구입 후 타는 사람들의 입소문까지 퍼지면서 새로운 세상이 올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도 점점 구체화됐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전기차 인기는 화끈하게 타오른 만큼 빠르게 사그라지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률은 둔화됐고 전문 평가사들이 밝힌 전망은 안개처럼 먹먹하다. 구입 자체를 꺼려하다 보니 다양한 신차가 쏟아져도 큰 의미가 없다. 이런 현상이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자 전 세계적인 전기차 침체기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실제로 벤츠와 GM 등 야심 찬 계획을 밝혔던 정통 제조사들은 전동화 전환 계획을 연기하거나 신차 출시를 미루고 있으며 루시드, 리비안, 니콜라 등과 같은 신생 전기차 브랜드는 경영난에 직면한 상황이다.
표면적 원인은 복합적이다. 내연기관 대비 고가라는 점과 긴 충전 절차, 짧은 주행거리로 인한 불편함을 들 수 있겠다. 원자재인 배터리 광물값 상승으로 비싸지는 차 가격, 이와 반대로 점점 줄어드는 보조금과 혜택, 이런 가운데 최근 전기차 급발진, 열폭주, 지하주차장 화재 등 여러 이슈까지 불거지면서 더욱 구입을 망설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실적인 해결을 위해 여러 나라에선 보조금 대신 충전 인프라 확충에 매달렸다. 한국만 해도 2024년 충전 인프라에 배정된 예산이 크게 늘어난 4365억원이었다. 특히 급속 충전기 비중 확대에 치중하는 추세로 전기차 보급보다 충전 인프라 확충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지가 결연하다. 그래야 이용자의 불편이 사라지는 탓이다.
그러나 인프라의 한계 이면에는 기술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물리적 한계가 버티고 서 있다. 충전 시간부터 얘기해보자. 현재 국내에서 가장 빠른 초급속 충전기는 350kW 수준으로 배터리 잔량 10%에서 80%까지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승용차 기준, 약 3분 만에 연료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내연기관과 비교하면, 20분은 성질 급한 한국인에게는 거의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다.
충전 속도를 더 높일 수는 없을까?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충전업계 한 전문가는 “충전 속도가 빨라지려면 P(전력)=I(전류)×V(전압) 공식에 따라 전류와 전압 역시 증가해야 하고, 이렇게 많은 양의 에너지가 배터리로 이동하게 되면 배터리 자체 저항으로 열이 누적되어 결국 과열에 노출되고, 내구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라며 “400kWh급의 급속 충전기로 500A 이상의 수랭식 케이블을 이용한다면, 현실적으로는 최소 800V의 전압 시스템이 받쳐줘야 충전 속도를 10분대로 줄일 수 있는데 이런 고전압이라면 엄청난 발열을 동반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시중에 떠도는 것처럼 ‘과충전이 화재의 원인’이라는 이야기는 정확하지 않다. 제조사가 설정해놓은 안전 마진이 있기 때문이다. 윤원섭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는 지난해 언론 인터뷰를 통해 ‘100% 충전이 위험하다는 것은 오해’라며 과충전에 대한 논란을 잠재운 적이 있다. 그는 “리튬이온 배터리 양극 100%의 용량은 1g당 275mAh 정도인데, 우리가 실제로 쓰는 건 1g당 200~210mAh 정도다”라며 “이미 제조 단계에서 100% 충전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안전 마진을 확보해두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사용자가 생각하는 100% 충전은 실질적인 100% 충전이 아니라 안전 마진 선 안에서의 완충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과충전은 기본적으로 몇 가지 방법으로 이미 차단이 돼 있다. 예를 들어 셀 만드는 회사에서 자기들의 다양한 독자적인 기술로 과충전을 막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충전기 불량으로 과충전이 되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자동차 회사에는 이미 제어 시스템이 있다. 소프트웨어적으로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이라는 제어와 또 물리적으로 연결부가 끊기는 시스템들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안전 마진 역시 현재 양산차에 탑재돼 있는 충전 시스템과 초급속 충전기(100kWh)를 기준으로 할 때 안전을 담보할 뿐이다. 우리가 꿈꾸는 극적인 충전 시간 단축과 엄청난 양의 충전 속도를 위해서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충전 외에도 배터리 자체의 용량을 늘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지난해 가을 미래 전기차 배터리 및 셀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벤츠 e캠퍼스에서 만난 마틴 프레이 셀 기술팀 리더는 배터리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차의 무게 증가와 함께 내구성에 영향을 받고 셀의 개수와 이를 컨트롤 하는 냉각 장치, BMS 등이 고도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적당한 크기가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기차 자체에 대한 물리적인 한계와 현실적인 벽이 무너지지 않는 한 완성도 높은 내연기관의 경쟁력을 넘는 건 쉽지 않다.
이처럼 복잡한 숙제를 안고 있는 전기차는 결국 한철 장사에 그치는 것일까? 논란의 중심에 서 있지만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2030년까지 연평균 30%씩 증가해 2035년경 전 세계 신차 판매의 절반을 차지할 전망이다. 주요 시장 분석 기관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블룸버그 NEF는 2030년 전기차 판매량이 전체 신차 판매의 4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고, 딜로이트도 같은 기간 전기차 판매량이 내연기관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유는 명확하다. 전기차 시장이 수요가 아닌 규제에 의해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가 환경 규제는 점점 강화하고 배터리를 비롯해 새로운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제조업 일자리 및 전기차 공장 유치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 속에서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결국 ‘탄소’다. 탄소 감축은 자동차업계를 넘어 지구촌의 핵심 이슈다. 목표 감축량을 달성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고 운송 분야에서는 자동차가 가장 많은 감축 압박을 받는 상황이다. 대다수 국가에서 탄소세를 부과하는 기준은 미국이 시행하고 있는 기업 평균 연비 제도(Corporate Average Fuel Economy, CAFE)다. 우리나라의 친환경차 의무 판매제, 유럽의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비슷한 성격의 제도로 꼽힌다. 공통점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평균 목표치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즉 효율이 좋은 차만 팔거나 그렇지 못할 거라면 그만큼의 친환경차를 팔아 평균 배출량을 낮게 유지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제조사들은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엄격한 배출가스 규제를 충족하는 엔진을 만들자니 비용이 많이 들고 이미 공학적으로 내연기관은 극한의 효율과 성능을 낼 수 있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그렇다고 전기차로 전환하자니 느린 성장 속도와 불투명한 미래에 손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현시점에 가장 적합한 모델로 꼽히는 게 내연기관과 전기의 장점을 섞어 만든 하이브리드(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다. 탄소 배출의 평균 총량을 줄일 수 있으면서도 전동화 전환 의지를 소비자에게 어필하고 미래 모빌리티를 선도한다는 브랜드 이미지 개선 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점점 구체화되고 확대되는 분위기다. 시장조사 회사 로모션에 따르면 글로벌 PHEV의 올해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80% 증가한 40만 대를 기록했다. 2022년까지는 중국이 적극적인 전기차 보조금 지급정책을 펼쳐 PHEV 판매량이 미미했지만 보조금이 중단된 시점과 맞물리면서 PHEV 판매량이 급증해 전체 승용차 판매량의 23%를 점유했다. HEV는 시장 규모가 더 크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글로벌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의 조사 결과 전 세계 HEV 시장은 2024년 19.2% 성장한 2718억 달러(약 360조5400억원) 규모로 내다봤다. 또 2030년까지 HEV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7.3%로 4439억1000만 달러(약 589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까다로워지는 글로벌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HEV와 PHEV 시장이 어느 정도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두 파워트레인이 지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업체 간 신차 경쟁도 뜨겁다. 전기차보다 개발 비용이 덜 들어가고 기존의 내연기관 차를 바탕으로 전동화 부품을 추가하는 수준이라서 개발 시간도 매우 빠르다. 즉 전기차 못지않게 치열한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전기차로의 완전한 전환은 사실상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메가트렌드로는 전기차가 맞지만 탄소 배출 제로를 향한 100% 실현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정적인 배터리 자원, 이로 인한 비싼 가격, 여러 불편함에 따른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의 거부감 등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따라오는 부작용이 산적해 있고 이를 해결하는 데에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그만큼 지금의 상황에서는 HEV나 PHEV같이 내연기관 기반 전동화 파워트레인이 현실적인 대안이며 시장의 반응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제조사는 판매량을 지켜보며 전기차 속도 조절에 나섰고 노동자를 포함한 산업 생태계를 고려해 각국의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노력은 눈치싸움으로 변해가고 있다. 100년 넘게 우리의 이동을 책임진 내연기관의 보편성을 불과 10여 년 안에 뒤집어보겠다는 도전은 지나치게 무모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도로 위 모든 차가 전기로 움직이는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 시대에는.

김성환은 세상의 모든 탈것이 궁금한 자동차 저널리스트다. <에보>와 <탑기어 코리아>에서 일했고 현재 <오토타임즈> 자동차 취재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KBS><MBC><TBN> 라디오 등에 고정 패널로 출연해 자동차산업과 경제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성환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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