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배우 노재원이 말하는 연기의 스펙트럼
노재원은 ‘평범함’을 좇는다고 했다. 아마도 그것이 손에 들어올 일은 없겠지만, 그래서 평생 좇을 각오를 하고 있다고 했다.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셔츠, 팬츠 모두 마르니. 슈즈 로에베. 이어커프 톰 우드. 키체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화보 촬영 되게 잘하시네요.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했어요. 아직 저한테는 다 재미있는 것 같아요. 신기하고.
사실 포토그래퍼는 촬영 전까지 걱정을 좀 하는 눈치였거든요. 난해한 구석이 있는 시안인데, 연기 잘하기로 유명한 배우들 중에도 화보는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저는 그래도 (화보가) 연기보다는 부담이 덜한 것 같아요.
연기는 본업이고 화보는 부차적 활동이라서 그럴까요?
그보다 뭔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한데, 화보의 경우에는 전문가들이 다 준비해주시잖아요. 오늘 촬영 같은 경우에도 시안에서부터 정말 고민을 많이 해주셨다는 게 확연히 느껴져서, 제가 할 건 그렇게 많지 않다고 느꼈어요. 너무 감사한 일이죠.
그에 비하면 연기는 외로운 작업이군요.
사실 화보는 제가 큰 고민을 품고 임하지는 않아요. 신경을 안 쓰는 게 아니라, 그런 부분에서 뭘 의도적으로 하려고 하면 오히려 잘 안 되는 것 같거든요. 즉석에서 있는 그대로 표현을 했는데 그걸 담는 과정 속에서 우연의 일치로 뭔가가 나오는 게 더 맞는 것 같죠. 그래서 보내주신 시안들 잘 보고, 메이크업 받고 옷 입어본 후에 그 느낌을 최대한표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왔어요. 포즈를 미리 좀 생각해본다든가 하면 너무 이상할 것 같더라고요. 느껴지는 대로 해봤는데, 그래서 진짜 재미있었어요 오늘.
재미있어 보였어요. 촬영 도중에 갑자기 춤까지 추셨죠.
춤을 췄나요? 제가요?
아, 춤이 아니었나요? 세 번째 컷 촬영 때 이렇게 스텝을 밟으면서 도셨는데, 그게 스튜디오에 틀어져 있던 음악과 딱 맞아 보였는데요.
아, 그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 컷이 의상도 좀 난해했는데 포토그래퍼님이 주시는 동작 디렉션도 잘 이해를 못 하고 있었거든요. ‘이게 맞나’ ‘뭐가 뭔지 모르겠다’(웃음) 하면서 무작정 해보다가 무아지경 상태에 빠졌었나 봐요.
하하하. 춤이 아니라 촬영 중에 길을 잃은 거였군요.
길…은 애초에 없었는데요. 춤이 아니었던 건 맞는 것 같습니다.(웃음)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에서 연기했던 준옥은 몸치 가수라는 설정이었죠. 단편영화 <아빠는 외계인>에서도 캐릭터 설정인지 뚝딱거리는 춤을 추기도 하셨고요. 실제로는 어떨까요?
저 몸 잘 써요. 일단 스포츠를 좋아하고, 그렇게 특출 나지는 않더라도 운동을 못하는 수준은 아닌 것 같거든요. 춤도 막 댄스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무용 쪽에 가까운 움직임은 표현할 수 있고요. 정형성이 없는 그냥 자유롭게 움직이는 춤 있잖아요. 평소에 연기할 때도 그 인물에 맞게 몸 움직임을 바꾸는 걸 재미있어 하는 편이라, 제 생각에 제가 몸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긴, 취미가 복싱이라고 하셨죠.
복싱은 스물여섯 살 때부터 틈틈이 배웠어요. 싸움을 잘하고 싶어서 시작했죠. 사실 제가 살면서 누군가와 치고받고 싸워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그래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게 있었던 거죠. ‘길을 걷는데 갑자기 괴한이 와서 나를 때리기 시작하면 어떡하지?’ 내 한 몸은 내가 지킬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요즘 들어 싸움 실력이라는 건 좀 별개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스파링 같은 걸 해보면 제가 정말 소질이 없다는 걸 절감하게 되니까요. (저한테 없는 부분이 있어서) 그래서 제가 UFC 경기 보는 걸 좋아하나 봐요. 선수들이 ‘목숨 걸고 싸운다’는 게 화면 너머로도 느껴지고, 너무 멋있잖아요.

니트 에스티유 오피스. 셔츠 보우어. 슈즈 캠퍼. 네크리스 스와로브스키. 팬츠, 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취미는 피아노 연주와 복싱에, 가장 좋아하는 건 한적한 숲길 산책과 이종격투기 시합 시청이죠? 이렇게 축약하니까 되게 별난 사람처럼 들려요.
(웃음) 제가 흥미가 생기면 일단 해보는 편이라 그런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게 생긴다는 건 삶에서 선물 같은 순간이잖아요. 우리가 살면서 자기도 모르게 무감각하고 무뎌질 때가 많은데, 특정한 뭔가에 흥미가 생긴다는 건 정말 큰 선물이죠. 그래서 저는 망설이지 말고 일단 저질러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또 일이 시작되면 다른 건 신경 쓰기 어려운 직업을 갖고 있잖아요. 제가 맡은 배역만 생각하고, 그 외의 것에는 흥미가 전혀 안 생기니까. 그래서인지 사실 굉장히 깊이 빠져 있다고 할 만한 취미는 없는 것 같아요. 다 조금씩 틈틈이 하고, 시시때때로 그 종류가 조금씩 달라지는 거죠.
그 취미들도 연기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까요?
아, 인정하기 싫지만… (웃음) 사실 다 연기를 위해서 하는 행동들이죠. 그런 의도로 시작하는 건 아닌데 깊은 내면에서는 자꾸 ‘이것도 연기에 도움이 되겠지’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1차원적으로는, 피아노를 치는 캐릭터나 복싱을 하는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게 될 테고요.
그런 부분보다 일단 그런 취미들을 즐기면서 제 삶이 건강해지잖아요. 결국 저는 다 그것 때문에 하는 것 같아요.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연기를 하면서도 더 재미난 것들을 찾을 수 있게 되니까요. 저는 그렇더라고요.
노재원은 건강한 마음에서 출발하는 배우군요. 스스로를 괴롭히고 몰아붙여서 뭔가를 도출하는 배우가 아니라.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건강하다’ ‘연기적으로 건강하다’는 게 미묘한 표현인데, 제가 말씀드리는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는 건 스스로를 몰아붙일 의욕도 생기지 않는 상태인 거죠. 저도 사실 기복이 심한 편이라, 돌아보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해서 모든 것이 재미없어지는 순간이 분명 있었거든요. 그런 상태가 찾아올 여지를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거예요. 무엇보다도 행복하고 싶어서 연기를 하는 건데 제가 건강하지 못하면 안 되잖아요.
길지 않은 활동 기간 동안 굉장히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죠. 클럽 MD 출신의 거액 채무자, 프로파일러, 나이트클럽 이미테이션 가수, 망상장애 환자, 젊은 애 아빠… 스펙트럼이 놀라워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운 좋게도 좋은 기회를 많이 만났고, 특정한 종류의 역할만 들어오지 않는 것도 제 외모 부분에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 같아서 참 감사했고요. 그런데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요즘 제 스펙트럼이 좀 작다고 느껴서 더 넓히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간 맡았던 배역이 다 극단적인 구석이 있는 거지, 스펙트럼은 다른 부분이잖아요. 제가 폭이 넓은지 좁은지는 저도 좀 더 해봐야 알 것 같아요.
사실 재원 씨가 특정한 말투와 행동으로 캐릭터를 딱딱 짚어주는 스타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 모든 배역이 다 말이 되는 게 신기해요. 그냥 그 사람 같으니까.
제가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그런 이유인 것 같아요. 저는 연기할 때 특정한 캐릭터를 연기하지 않으려고 해요. ‘이 인물의 결이 내 안에 충분히 있다’ 전부 그런 믿음을 갖고 임했거든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지’ 그런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잖아요. ‘진실함’이라든가.
저는 특히 <삼식이 삼촌>을 보면서 감명받았어요. 조직폭력배 보스 역할인데 목소리도 재원 씨 목소리 그대로 쓰고, 일부러 거친 느낌을 표방하는 기색이 전혀 없더라고요.
좋게 봐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한수(디즈니+ <삼식이 삼촌> 속 노재원의 배역)는 개인적으로 좀 아쉬움이 있어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반대로 이것저것 뭔가를 더 시도해봐도 좋을 것 같거든요. 사실 제가 한수로 캐스팅됐을 때부터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죠. 저도 처음 대본을 보면서 ‘어…. 왜지?’ 그랬고요.(웃음) 확신이 없으니까 리딩 때도 좀 어색하게 나왔던 것 같은데, 회식 자리에서 송강호 선배님이 그러시더라고요. “한수는 한글을 모르는 놈인데 너는 영어까지 잘하게 생겼다. 참 안 어울리고, 그래서 묘하다.”
감독님께는 여쭤본 적 있어요? 어떤 의미의 캐스팅이었는지?
네, 여쭤봤죠. 감독님이 되게 독특한 안목을 갖고 계신데 신뢰감을 강하게 심어주는 스타일이시거든요. “진짜 건달 같은 사람을 캐스팅하지 않은 데에는, 내가 재원 씨를 캐스팅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요.” 그렇게만 말씀하셨는데, 딱 알 것 같더라고요. 어떤 걸 생각하셨는지. 저도 그때부터 제 안에 분명히 제 나름대로의 거친 면, 한수 같은 면이 있을 거라는 그 작은 실마리를 갖고 연기했어요.
Credit
- PHOTOGRAPHER 김형상
- STYLIST 박선용
- HAIR 홍현승
- MAKEUP 유지연
- ART DESIGNER 최지훈
JEWELLERY
#부쉐론, #다미아니, #티파니, #타사키, #프레드, #그라프, #발렌티노가라바니, #까르띠에, #쇼파드, #루이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