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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원이 <오징어게임> 남규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이유

노재원은 ‘평범함’을 좇는다고 했다. 아마도 그것이 손에 들어올 일은 없겠지만, 그래서 평생 좇을 각오를 하고 있다고 했다.

프로필 by 오성윤 2025.02.21
재킷 선플라워 by 지스트리트 옴므 494.

재킷 선플라워 by 지스트리트 옴므 494.

그럼 재원 씨 안에 <오징어게임>의 남규 같은 면도 있는 거겠죠?

그럼요. 제가 생각한 남규는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득 찬 친구예요. 내가 최고가 되고 싶고 짱이 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응어리가 쌓인 거죠. 아마도 클럽 MD를 하면서도 정말 많은 무시를 받아왔을 거거든요. 그래서… 솔직히 저는 남규가 못된 놈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살아온 삶을 하나하나 짚어보니까 저는 남규가 이해되던데요? 물론 그건 저만의 상상이니까, 남규의 스토리는 저만 알고 있으니까 밖에서 보면 못돼 보이겠지만요. 제가 보기엔 명기가 진짜 못된 놈이죠. 코인 사기를 쳐서 여러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그것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와 있는데 혼자만 착한 척 올바른 척하고 있잖아요.

그런가요? 저는 사실 남규가 명기 도시락 뺏는 장면에서 감탄했거든요. 대사가 “먹는 건 존나 밝혀요 쪼끄만 게”였던가요? 뭐 크게 잔인무도한 대사도 아니었는데 그 몸짓이며 톤이며 눈빛이며, ‘와 쟤 진짜 못됐다’ 하고 깜짝 놀랐어요.

(웃음) 그 장면을 짚어주시는 분은 처음인데요. 감사합니다. 사실 그 신은 저도 보면서 ‘어라 내가 저렇게 했었나’ 싶었어요. 밥이 떨어져서 그걸 손으로 탁 쳐 넣는 것 하며… 어쩌다 그렇게 연기하게 됐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 신 찍을 때는 아직 다른 배우들이랑 친해지기도 전이라 긴장도 정말 많이 했거든요. 타노스가 죽기 전까지 남규가 타노스를 받쳐주는 인물인데, 그 부분도 아직 좀 어려웠고요.

시즌 2의 남규는 말하자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체육부장 같은 역할이죠. 캐릭터가 극 중에서 그런 기능적인 부분을 수행하면서도 입체적인 인물로 보였던 건, 배우가 어떤 마음으로 임했기에 가능했던 걸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사실 저는 제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어요.

남규가.

극 중의 남규가 그런 인물이기도 하지만 일단 저도 제 걸 너무나도 잘 해내고 싶었죠. 어떤 다른 캐릭터를 받쳐줘야 한다, 극 중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캐릭터다,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했고요. 그냥 남규로서 존재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사실 촬영하면서 여기저기 튀고, 흘러넘치는 부분이 있었고요. 감독님이 절제를 많이 시켜주셨고, 저도 완성본을 보고서야 깨달았어요. ‘아, 감독님이 나를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정말 많이 도와주신 거였구나’ 하고요.

살인을 저지른 남규의 얼굴 미장센으로 보건대, 시즌 3에서 분명 역할이 더 커지겠죠?

어, 글쎄요. 그건… 모르겠어요. 남규의 활약을 기대해주세요.(웃음)

(웃음) 알겠습니다. 노재원이라는 배우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작품이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인 것 같아요.

그게 어쨌든 대중에게 저라는 사람을 알려준 첫 작품이죠.

그 역할을 위해서 고시원에 살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실제 고시생 인터뷰도 하고.

그게 사실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었고요. 그냥 혼자 있고 싶어서, 저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데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겸사겸사 숙소를 구했던 거예요. 그리고 그 고시원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열악한 느낌이 아니라 깔끔하고 꽤 좋았거든요.(웃음) 인터뷰도 상황이 자연스럽게 됐던 거죠. 추석날에도 제가 고시원에 있었거든요. 고시원 주인 어머님께서 “총각, 와서 밥 먹어” 하시길래 가보니까 고시원에 살던 다른 공시생 두 분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기회다’ 싶어 말을 건 거죠. 오늘 밥 먹고 뭐 하시냐고, 바로 밑 카페에서 커피 한잔 안 하시겠냐고. 그런 다음에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는데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고요.

새로운 역을 맡으면 모친께 자주 묻는다고도 하셨죠. 그 인물이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런 선택을 하는지에 대해서.

맞아요. 저희 엄마가 공감 능력이 뛰어난 편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무리 해도 뭐가 안 풀리면 엄마한테 묻기도 하죠. “엄마, 내가 이 인물을 연기하는데 이런 부분 어떤 것 같아?” 하고요. 영감의 원천…은 아니고, 영감의 한 부분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재킷, 팬츠 모두 잉크. 슈즈 크리스찬 루부탱. 안경 젠틀몬스터. 브레이슬릿 포트레이트 리포트. 링 톰 우드.

재킷, 팬츠 모두 잉크. 슈즈 크리스찬 루부탱. 안경 젠틀몬스터. 브레이슬릿 포트레이트 리포트. 링 톰 우드.

갑자기 강등이 되셨네요.(웃음)

(웃음) 아니, 원래는 엄마가 엄청난 영감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요즘 보면 엄마도 이해 못 하겠다고 하는 게 있더라고요. “모르겠는데” 그냥 그러시니까. 그래도 아직 정 안 풀리는 게 있으면 엄마한테 묻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주로 연기의 영감을 얻는 곳이 있을까요?

매번 다른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가 될 수도 있고, 한 장의 사진이 될 수도 있고, 음악이 될 수도 있죠. 길을 걷다가 ‘어 저 사람 누구 같다’ 이럴 때도 있고요. 다른 누군가의 연기를 참고해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고, 대신 정 안 풀릴 때는 특정한 동물을 생각해보기도 해요. 요즘은 음악에서 받는 영감이 제일 큰 것 같네요. 제가 음악을 정말 좋아해서. 남규 연기할 때도 엄청 자주 들은 클럽 음악이 하나 있었거든요. 진짜 기괴한 음악이었는데, 그걸 들을 때 마음속에 모아지는 어떤 단서, 조각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역시 연기에 접근하는 방식이 좀 남다르긴 하군요. 재원 씨가 나온 작품들의 유튜브 클립들을 보면, 댓글에 ‘연기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런 사람을 갖다 놓은 것 같다’는 류의 반응이 유독 많더라고요.

맞아요. 저도 그런 댓글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 연기의 지향점도 그런 부분이거든요. ‘진짜보다도 더 진짜 같은 순간을 연기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요. 가득하죠. 그런데 사실 그렇다고 제가 딱히 특이한 것 같지는 않고요. 제 주위의 연기하는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다들 비슷한 결을,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거든요. 물론 그 고민을 통해 각자가 찾아낸 방식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요. 어떤 친구들과는 연기 얘기를 하다 보면 막 질투가 나기도 하고 그래요. 그 방식이 너무 대단하고, 노력의 농도도 높아서. 제 주위에 아직 세상에 연기를 선보일 기회를 얻지 못한, 정말 경이로운 배우들이 많아요.

재원 씨가 지금껏 들은 칭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예요?

송강호 선배님 말씀이요. <삼식이 삼촌> 촬영할 때 저한테 그러셨거든요. “관객들은 배우가 관객들 머릿속에 있는 연기를 하면 그 연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자기 머릿속에 없는 연기를 하면 감동을 받는다. 너는 사람들 머릿속에 없는 연기를 하는 그런 배우가 될 것 같아.” 제가 그날 집에 가서 일기장에 그걸 썼어요. 송강호 선배님 같은 분과 함께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격스러운 일인데, 그런 말씀까지 들었다는 건 정말 꿈만 같은 일이잖아요.

그러네요. 그것도 그냥 ‘너 잘하는구나’ 같은 상투적인 칭찬도 아니고.

그런데 그 이후로 연기가 더 어려워지는 거예요. 특히 선배님 앞에서.

(웃음) 아, 좀 더 ‘선배님 머릿속에 없는 연기’를 해야만 할 것 같고.

그게 중심이 되어서 자꾸 새로운 걸 고민하게 되고… 그래서 하루는 뛸 듯이 기뻐했다가, 이후로는 또 굉장히 자책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제가 그 정도로 그릇이 작아요. 아직 너무 부족하고 어리죠.

어느 인터뷰에서 ‘이제는 남을 위해 연기하고 싶다’고 하신 적이 있지 않나요? 저는 그걸 보고 굉장히 생각이 깊은 배우구나 했는데.

그게 안 되니까 어린 거죠. 그때 아마 제가 너무 제 자신만을 위해서 연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거든요. 제 만족만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사는 것 같은 거죠. 내 앞에 있는 상대 연기자를 위해서, 이 작품을 보는 분들을 위해서도 연기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좀 더 그런 신념을 갖고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나 봐요. 사실 연기라는 일의 가장 큰 행복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부분이니까.

지금의 재원 씨에게 ‘좋은 연기’란 어떤 거예요?

좋은 연기요. (잠깐 생각하다가) 저는… 평범한 거.

평범한 거. 신기한 답변이네요.

내 야망을 위해서, 좋은 연기를 위해서 애쓰고 욕심부리는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요.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 그런데 사실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아마 그런 경지는 평생 터득이 안 되지 않을까요? 터득했다 싶다가도 다시 돌아가고, 또 고민하고. 그렇게 계속 좇는 게 제가 평생 해야 할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Credit

  • PHOTOGRAPHER 김형상
  • STYLIST 박선용
  • HAIR 홍현승
  • MAKEUP 유지연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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