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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문화 지평 특집 vol4. '아시아 인베이전'의 잠룡 태국

지금 세상의 모든 눈이 동남아시아 연합, 소위 '아세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세안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프로필 by 오성윤 2025.03.17

가치가 다 반영된 주식으로는 아무것도 건질 수 없다. 우리가 늘 찾아야 하는 건 저평가된 주식. 아직 모멘텀을 가진 무언가들이다. 국가가 주식이라면, 우리에게 가장 흥미로운 땅은 이미 발전되어 고착화된 선진국이 아니라, 격변이 도처에서 들끓고 있는 도상국들이다. 수십 년 동안 지하철 출구의 타일 하나 바뀌지 않는 일본이나, 아직도 성에서 귀족들이 살고 있는 유럽이 아니라, 아세안이 미래의 땅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지금 세상의 모든 눈이 동남아시아연합, 소위 ‘아세안’으로 몰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세안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그래서 준비했다. 아세안의 주요 다섯 개 국가에서 가장 사랑받는 각 다섯 분야의 스타들을 뽑았다. 그들의 활동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적 지평을 조금이나마 감각해볼 수 있도록.


THAILAND

태국은 세계적 관광 대국이다. 2023년 수도 방콕에는 총 2278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여 파리, 런던, 두바이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 도시’로 선정되었으며, 푸껫과 파타야도 각각 14위, 15위를 차지했다. 그 덕분에 농경 국가에서 현대 산업 국가로 성공적인 이동을 이룬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기도 한다. 1980년대에 740달러에 불과했던 국민소득은 2019년 7080달러까지 상승했고, 2000년만 해도 42.5%에 달했던 빈곤율은 2021년 6.3%까지 줄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 이면에는 부의 불균형 문제가 있다. 태국은 각 지역마다 최저임금이 다른데, 수도 방콕의 경우만 해도 2025년 기준 최저 일급이 337바트(약 1만4000원)지만 스타벅스 커피 가격은 한국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태국인이 최저 일급으로 하루 일해 스타벅스 커피 두 잔을 마시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는 뜻. 그럼에도 이와 같은 해외 프랜차이즈 카페나 식당에는 늘 사람들이 가득하다. ‘미래’보다 ‘현재’에 집중하는 태국인들의 사고방식은 태국의 소비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계적으로 한류가 가장 많이 확산된 곳 중 하나도 태국이다. 2023년 기준 한국어를 배우는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 역시 태국이었다. 중요한 건 단순히 소비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태국 정부는 한국의 케이스를 연구하고 자국 내 다방면의 문화 산업 육성에 적용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을 벤치마킹해 태국콘텐츠진흥원을 설립한다고 발표한 것이 좋은 예다. 관광, 축제, 스포츠, 음식, 영화, 음악, 미술, 도서, 게임, 디자인, 패션 등 11개 부문에 투자해 소프트파워 강국으로의 발돋움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태국은 세계 사람들이 찾는 국가이며 팟타이와 똠얌꿍으로 대표되는 음식 문화, 무에타이로 대표되는 스포츠 문화, 리사·민니· 나띠·닉쿤 등 케이팝이라는 경로를 통해 증명된 아티스트 잠재력 등 역량을 두루 갖추고 있기에 그 기반은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져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1 - Udom Taepanich

Entertainer

‘쾀싸눅(즐거움)’을 삶의 핵심 가치로 꼽는 태국인들이 가장 즐기는 콘텐츠 중 하나는 코미디다. 태국 가정이나 식당 TV에는 십중팔구 코미디 프로그램이 틀어져 있다. 태국식 개그는 기본적으로 사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풍자 형태로 웃음을 자아내며, 따라서 태생적으로 스탠드업 코미디와 잘 맞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엔터테이너는 단연 우돔 때빠닛이다. 1990년대에 데뷔한 우돔은 코미디언이자 예술가, 시나리오 작가, 배우 등 전방위에서 활동했으며 최근에는 넷플리스 시리즈 스탠드업 코미디 <Super Soft Power>를 발표하며 건재한 실력과 영향력을 증명했다. 그의 코미디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취하는데, 주제는 성별, 인종, 정치, 그리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상황 등 태국인들의 삶이 가진 다양한 면모다. 태국인들이 우돔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의 코미디가 태국의 시대적인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왕권 국가인 태국은 서구와 비교하면 표현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된다고 하기는 어렵다. 바로 그 부분이 태국인들이 입을 모아 우돔이 ‘태국 스탠드업 코미디와 엔터테인먼트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사람들이 말하고 싶지만 차마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절묘한 솜씨로 코미디에 녹여내니까. 그의 이야기에 청중들은 폭소하고, 시원해하며, 이내 공감하고 또 열광한다.


2 - Davika Hoorne

Film Star

태국은 거대한 국내 영화 시장을 가진 나라이며, 멋진 경치와 풍부한 문화 인프라 덕분에 국제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영화 촬영지이기도 하다. 영화에 대한 태국인들의 사랑이 경제와 관광산업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태국 영화의 작품성과 함께, 태국 영화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린 배우가 있다. 바로 다비까 후네다. 영화 <พี่มาก..พระโขนง>(Pee Mak)의 주연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그녀는 175cm라는 큰 키와 동서양의 미가 뒤섞인 아름다운 외모 덕분에(벨기에인 아버지와 태국인 어머니 사이의 혼혈이다) 곧 패션업계로도 진출했다. 중요한 건 그녀가 활동을 태국 내에 국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찌의 첫 태국 브랜드 앰배서더를 출발점으로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했고, 또 한편으로는 유니세프나 동물보호 단체 등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영화산업에 열정적으로 투자하는 태국 정부의 힘을 업고 배우로 데뷔해 성공을 거둔 후 패션, 자선활동 분야로 진출하고, 국제 무대에서 인지도를 쌓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태국 영화산업이 세계와 연결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자신이 얻은 영향력을 태국과 국제 사회가 가진 문제를 말하는 데에 할애하고 있다.


3 - Lisa

Musician

태국의 대중음악은 지난 수십 년간 다양한 기술 및 트렌드와 상호 작용하며 발전해 왔다. 특히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세계적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발전은 태국의 음악 문화에 큰 파급력을 일으켰다. 한국의 케이팝과 일본의 제이팝을 필두로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은 태국의 여러 가수들은 단순히 태국 내에서 데뷔하는 데에 국한하지 않고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케이팝 그룹의 멤버로 데뷔한 2PM의 닉쿤, 갓세븐의 뱀뱀, 그리고 블랙핑크의 리사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특히 리사는 태국 현지 매체들에서 ‘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1위로 꼽힐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정치인의 파워가 막강한 태국에서 정치인을 뛰어넘는 영향력을 가졌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세계적 인지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태국 내에서 성공 신화의 아이콘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계급사회인 태국에서는 사실 그간 ‘하이소’(‘하이 소사이어티’의 줄임말로 상류층을 뜻한다)가 아닌 서민이 가수가 되기란 쉽지 않았다. 리사의 성공은 태국의 음악 트렌드를 바꿔놓았고, 출신과 배경을 떠나 다양한 경로로 작업을 전파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도록 촉발했다. 그녀의 존재가 ‘태국에는 세계에 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큰 자신감이 되었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4 - Korakrit ArunanondchaI

Artist

태국 정부는 최근 문화산업을 강화하는 데에 힘을 쏟고 있으며, 예술 분과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젊은 태국 작가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 작업의 성격이나 주목을 받는 방식에서 종전 세대의 작가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꼬라끄릿 아루나논차이가 대표적 예다. 1986년 방콕에서 태어난 그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학사를,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미술학 석사를 마친 후 방콕과 뉴욕을 오가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데, 매 작품이 ‘양쪽 세계’에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 2022년 서울의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한 ‘Untitled(History Painting)’는 청바지가 불에 타고 재가 되는 과정을 묘사한 작품이었다. 미국에서 촉발되어 세계로 퍼져나간 자본주의, 서양 중심 세계관을 의미하는 ‘청바지’가 한 번 닿으면 모든 것을 환원 불가능하게 만드는 ‘불’을 만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캔버스 위에 사진과 청바지를 붙이고 물감을 칠한 후 전시장 바닥까지 작품의 일부로 끌어오는 등 경계를 두지 않는 작업 성격 역시 그의 특징이라 할 만하다. 그는 세계 곳곳의 주요 매체에서 신진 예술가로 주목받거나 개인전, 단체전에 참여하고 있으며, 많은 태국의 젊은 작가들이 그의 뒤를 이어 새로운 경로와 작업 방식을 탐색하고 있다.


5 - Panipak Wongpattanakit

Sports Star

태국인들은 스포츠에 열정적이다. 포용력도 넓다. 태국인들의 영혼이 깃든 전통 무예 무에타이, 만국 남자들의 공통 관심사인 축구, 최근 국제 스타가 배출되며 인기를 끌고 있는 배드민턴, 세계적 실력으로 큰 자부심이 되어준 여자 배구까지, 두루 사랑한다. 하나가 더 있다.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에서 태국에 금메달을 안겨주고 있는 태권도다. 빠니빡 웡빠따나낏은 2016 리우 올림픽 동메달을 시작으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 후, 2024 파리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며 국민 영웅으로 등극했다. 이런 성취의 이면에는 조력자가 숨어 있다. 빠니빡이 금메달을 딴 직후 큰절을 올린 태국 태권도 국가대표 감독 최영석이다. 세계를 재패한 빠니빡은 최근 은퇴 후 후계자 양성에 힘을 쏟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태국 내 다른 문화 분과의 뒤를 이어, 스포츠 분야에서도 한류의 위상이 높아질 예정이라는 뜻이다.


Who’s the Writer?

강태훈은 방콕을 중심으로 태국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방스 BangkokStory’의 운영자다. 태국 탐마삿대학교 정치외교학부를 졸업하고 주태국 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에서 언론 홍보 담당 업무를 맡기도 했으며, 올해로 12년째 태국에 거주 중이다. 작년 태국 정부 관광청 파트너십 상을 수상했다.

Credit

  • WRITER 강태훈
  • PHOTO 우돔 때빠닛 제공
  • 꼬라끄릿 아루나논차이 안천호/국제갤러리
  • 게티이미지스코리아
  • TRANSLATOR 박수진
  • ASSISTANT 남가연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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