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문화 지평 특집 vol1. 아세안의 대국 인도네시아
지금 세상의 모든 눈이 동남아시아 연합, 소위 '아세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세안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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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가 다 반영된 주식으로는 아무것도 건질 수 없다. 우리가 늘 찾아야 하는 건 저평가된 주식. 아직 모멘텀을 가진 무언가들이다. 국가가 주식이라면, 우리에게 가장 흥미로운 땅은 이미 발전되어 고착화된 선진국이 아니라, 격변이 도처에서 들끓고 있는 도상국들이다. 수십 년 동안 지하철 출구의 타일 하나 바뀌지 않는 일본이나, 아직도 성에서 귀족들이 살고 있는 유럽이 아니라, 아세안이 미래의 땅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지금 세상의 모든 눈이 동남아시아연합, 소위 ‘아세안’으로 몰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세안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그래서 준비했다. 아세안의 주요 다섯 개 국가에서 가장 사랑받는 각 다섯 분야의 스타들을 뽑았다. 그들의 활동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적 지평을 조금이나마 감각해볼 수 있도록.

INDONESIA
인도네시아는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거대한 나라다. 아세안 11개 회원국의 총인구 약 6억8000만 명 중 42%에 해당하는 2억8000만 명이 인도네시아에 산다. 세계 4번째인데다가, 젊다. 15세에서 39세까지의 인구가 50%에 달한다. 700개의 종족이 500개의 언어를 쓰고 있는 다민족 다언어 인도네시아가 통합국가로 기능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과 타인의 종교에 대한 존경과 존중이다. 그 존중의 단적인 예로, 이들의 주민등록증에는 본인의 종교가 표시되어 있다. ‘무교’란 있을 수 없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처음 사람을 만나면 종교가 무엇인지를 인사처럼 묻는데, ‘무교입니다’라고 대답하면, 마치 밥을 왜 먹느냐는 대답이라도 들은 듯 잠시 황망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전 국민의 87%가 이슬람이지만, 그 외 기독교, 힌두교, 불교 등이 퍼져 있으며, 종교 분쟁을 벌이지 않는다. 리조트로 유명한 발리섬의 주민 대부분은 힌두교도인데, 발리섬 덴파사르 공항 남쪽 누사두아 지역에 있는 푸자만달라(Puja Mandala)라는 곳에 가면 그 안에 이슬람 사원과 성당, 절, 교회, 힌두사원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는 상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보니 전국에 걸쳐 다양한 전통 양식과 예술이 존재한다. 3000여 종의 민속춤이 있어 다양한 축제나 행사에서 공연된다. 특히 마자파힛(Majapahit) 제국의 융성과 함께 힌두 문화의 전성기가 펼쳐졌던 발리는 이후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등의 화가들이 몰려들어 화풍의 교류를 이루며 매우 특별한 양식을 이루었다. 인도네시아 문화의 현재를 정의하는 또 다른 한 축은 ‘한류’다. 현대 문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여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나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해마다 대사관과 내가 재직 중인 문화원이 손을 잡고 민관 합동 한국의 날 행사를 크게 여는데, 그 인기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걸 체감 중이다.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의 한국 회사에서 근무하고, 한국 브랜드 영화관에서, 한국 브랜드 간식을 먹으며, 한국과 거의 동시에 개봉하는 한국 영화를 한국어로 본 후, 한식집에서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노래를 들으며 귀가’하는 코리아 트렌드가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번지고 있다. 트렌드는 광고로 이어진다. 최근 송혜교는 콜라겐 음료 광고에 출연해 “나처럼 젊어지고 싶으세요?”라는 카피를 유행시켰으며, 이민호는 커피, 지창욱은 온라인 여행사 플랫폼을 담당했다. 보수적이던 인도네시아 최대 은행 그룹 만디리(Mandiri)도 박서준과 김유정을 홍보대사로 영입했고, 인도네시아의 신라면 격인 ‘인도미’는 뉴진스를 모델로 아예 포장에 ‘한국 라면’이라고 박은 새 제품을 발매했다. 인도네시아 축구 U-20 국가대표팀의 한국인 감독 신태용의 위상은 이미 한국 내에서도 유명할 것이다.
1 - Indra Herlambang
Entertainer
인도네시아는 전통과 문화예술을 즐기고 향유하는 종족들의 집합체다. 인도네시아는 언어의 은유와 환유가 매우 풍부하고 발달되어 있다. 그만큼 인도네시아 민족은 유머러스하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쉽게 말하면 소위 우리의 아재 개그가 통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예능프로그램 특히 <런닝맨>이 이곳에선 ‘예능 프로의 전설’이다. 인도네시아 팬들 사이에서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라는 공식이 성립할 만큼 마니아층이 넓게 형성되어 있다. 인도네시아 수요층의 입소문을 통한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도는 인도네시아 예능 프로 속에 녹아들어 통째로 패러디하거나 우리나라 인기 방송인들의 진행 방식을 도입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진행자 위주의 진행이 이제는 관객과 무대를 함께 아우르며 시청자가 청취자 역할이 아닌 참여자로서 함께 호흡하는 방송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 유명 배우이면서 사회자인 인드라 헤를람방은 한류라는 트렌드의 파도에 가장 잘 올라탄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무대와 관객 간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행사를 진행하며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촌철살인 멘트로 시청자들의 시원하면서도 행복한 마음을 이끌어낸다. 케이팝 아이돌그룹 또는 배우들의 인도네시아 팬미팅, 쇼케이스, 대형 공연 및 리얼리티쇼 등 행사 진행자 초청 1순위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의 ‘X’(구 트위터) 계정에는 수많은 한국 스타들과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인드라는 EXO, 런닝맨 멤버, 이민호, 김선호, 트와이스, 슈퍼주니어, 이재훈, 이종석, NCT 등과 호흡을 맞추며 유명인이 되었다. 인도네시아 팬들 사이에서는 ‘한국 아이돌그룹과 연예인 특화 MC’라고 불릴 정도다.
2 - Reza Rahadian
Film Star
조코위(Jokowi) 전 정부에서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은 눈부신 발전을 보였다. 2024년 기준 전체 영화 관람객 수는 추산 1억1000만 명, 그중 인도네시아 영화 관람 객수는 6000만 명으로 인도네시아 영화산업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3년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의 지각을 흔드는 일이 생겼다. 인도네시아에 외국계 영화관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의 CGV가 진출한 것이다. 소비자의 편의를 생각한 세련되고 깔끔한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와 함께 전개된 공격적인 마케팅과 홍보는 기존의 영화 관람 문화를 뒤바꿀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당시 독점이다시피 했던 인도네시아의 시네마 21의 시장점유율이 나뉘게 된 것이다. CGV는 현재 전국에 71개 상영관이 운영되고 있으며, 2024년 한 해 한국 영화 관람객 수는 무려 1980만 명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로 인해 파생된 인도네시아 영화산업계의 새로운 경향도 주목해야 한다. 좋은 흥행을 기록했던 한국 영화의 리메이크가 그것이다. <써니> <엽기적인 그녀> <수상한 그녀> <7번방의 기적> < 형> 등의 히트작들이 현지 버전으로 리메이크 되었고, 한국 로케이션으로 촬영을 진행하는 등 시대적인 수요를 반영하게 된 것이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인도네시아의 소설작품이 베스트셀러에 오르자, 영화 제작사에서는 발 빠르게 영화로 제작해 큰 흥행몰이를 한 사례도 있다. 이렇게 영화산업의 격변 속에 인도네시아의 배우 레자의 존재는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영화, 광고, 드라마 등 모든 장르의 흥행을 이끌며, 남녀노소 전 층에 걸쳐 폭넓은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그는 그야말로 ‘뼛속까지 영화인’ 또는 ‘믿고 보는 배우’로 일컬어진다. 한국의 청룡영화상보다도 역사가 오래 된 ‘인도네시아영화제(1955년)’에서 2003년 데뷔 이래 총 14번의 최우수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현재까지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레자는 한국에서도 잠시 얼굴을 알렸었는데 2014년 <무림신공:황금봉의 전사>가 한국에서 개봉된 바 있다.
3 - Raisa Andriana
Musician
인도네시아에도 독특한 음악 장르가 있다. 한국에 ‘뽕짝’이 있는 것처럼 인도네시아에는 ‘당둣(Dangdut)’이 있다. 인도네시아 문화예술의 한 축으로 당둣 가수는 인도네시아 국민의 흥과 신명을 책임지는 문화 아이콘, 국민 가수로 대접받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 라이사 안드리아나가 있다. 라이사는 자카르타 GBK(Gelola Bung Karno) 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던 인도네시아 최초이자 유일한 솔로 여자 가수이다. GBK 경기장은 자카르타 중심부에 위치한 초대형 스타디움으로 2018년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이었고, SM타운 자카르타 공연, NCT 콘서트 등 5만여 명의 관중이 몰린 대형 콘서트가 열렸던 곳이다. 2023년 라이사의 단독 콘서트에 무려 4만 2000여 명의 팬이 운집했다. 라이사는 어려서부터 노래에 재능이 있어 10대 때는 독학으로 보컬 연습을 하며 카페를 돌면서 노래를 불렀다. 독특한 고음 창법과 안정적인 목소리가 매력으로 3800만에 이르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갖고 있는 그야말로 인도네시아 최고의 디바로 꼽힌다. 라이사는 자국 활동뿐만 아니라 월트디즈니사의 의뢰로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인도네시아어 버전을 불렀고, 이 곡이 유명세를 타면서 각종 영화주제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수로서의 국내외 커리어를 쌓았다. 한편, 라이사는 2022년 한국계 미국인 출신 가수 샘김과 컬래버로 음악을 발매하여 큰 이슈를 불러일으키기도 한 BTS의 찐팬이다. 2023년 BTS의 멤버 슈가의 자카르타 투어에서 인도네시아 아미(A.R.M.Y.) 팬들과 함께 열띤 응원봉을 흔드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4 - Erica Hestu Wahyuni
Artist
인도네시아 관광창의경제부(2024년 프라보워 신정부는 관광부와 창의경제부로 분리)는 2020년 인도네시아 국내총생산 총 1058조 달러 중 1억6200만 달러가 예술 부문에서 기여했다고 발표했다. 인도네시아 민족은 손재주가 많으며 지리적으로 열대지역만의 독특한 특성과 다민족 국가로서의 다양한 문화 아이콘이 예술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도시와는 사뭇 다른 지방 갤러리나 미술시장에 가보면 입구는 평범해 보이나 안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작품이 구석구석 전시되어 있다. 인도네시아는 총 29개의 대학에 예술대학이 개설되어 있다. 그중 미술 부문의 상위 5개 대학을 꼽자면 발리 덴파사르예술대, 족자카르타예술대, 반둥문화예술대, 수라카르타예술대, 자카르타예술대가 있으며, 수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해오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009년부터 매년 아트 자카르타(Art Jakarta)를 개최하고 있으며 전 세계 유명 갤러리들이 대거 참석하여 문전성시를 이룬다. 인도네시아 미술품을 세계시장에 소개하는 3개의 미술품 경매회사라고 하면, 소더비(Sotheby’s) 자카르타지부, 발린도(Balindo) 그리고 싯다르타 옥셔니어(Sidharta Auctioneer, 2005)를 들 수 있다. 이들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법인인 ‘라라사티 옥셔니어스’(LARASATI Auctioneers) 등이 인도네시아 예술인들의 세계 진출을 돕고 있다. 최근 싱가폴 소더비 경매에서 인도네시아의 미술품이 약 35억5000만 원에 판매되는 등 인도네시아 예술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가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에리카는 족자카르타 예술대학교와 러시아 예술학교를 거쳐 현재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예술가로 ‘유머러스하고 재미난 캐릭터’를 부각시키며 예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단순 시각적인 감상이 아닌 개인 경험을 화폭에 담은 것이 특징이며, 기술적으로도 자신만의 대담한 색채와 조합을 구사하여 활기차고 즐거운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치고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 교통부의 초청으로, 자카르타 국제공항 제3여객터미널과 VIP 전용 출도착지에 에리카의 대표작 ‘Prospertiy of Heritage’ 외 28점이 전시되어 있다. 지나갈 일이 있으면 놓치지 말고 잠깐 발을 멈춰보기를 바란다.
5 - Jonatan Christie
Sports Star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개최되어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는 인도네시아를 주목했다. 수많은 경기와 드라마가 펼쳐진 가운데, 가장 이목을 끌었던 것은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등장한 슈퍼주니어의 케이팝 공연. 그리고 데피아 로스마니아르 (Defia Rosmaniar) 선수의 태권도 품새 금메달일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첫 메달이자 금메달이 바로 우리나라가 종주국인 ‘태권도’ 품새 종목에서 나왔던 것이다. 당시 인도네시아 태권도 국가대표팀을 맡은 한국인 감독의 수년간 지도가 빛을 발했던 순간이다. 이 날 조코 위도도 대통령도 경기를 관람했는데 메달 결정 순간 그 환한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아시안게임 이후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졌고, 2020년 인도네시아 U-20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한국인 신태용 감독을 영입하는 등 발빠른 행보가 이어졌다. 과거 아시아의 강팀이었던 터라 현재 인도네시아의 축구에 대한 위상은 큰 아쉬움을 품고 있다. 그런 마음의 틈새를 매꿔준 것이 바로 배드민턴이다. 인도네시아의 배드민턴은 세계 정상급으로 과거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나라의 위상을 세워준 유일한 종목이었다. 조나단의 닉네임 조조(Jojo)는 2012년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지금까지 눈부신 성장을 해오고 있는, 실력에 외모까지 갖춘 MZ세대 스포츠 선수다.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조조는 남자 단신 금메달을 획득하며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매해 경기마다 눈부신 활약을 보였고, 덕분에 조조가 뛰는 배드민턴 중계방송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경기 외적으로도 인도네시아 여성 아이돌그룹 멤버와의 연애와 결혼 소식을 들려주며 뭇 여성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Who’s the Writer?
김현주는 국립 인도네시아대학교(UI)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본교 한국어학과 초빙강사로 활동하며 문화·예술, 문학, 경제, 국방 등 다양한 분야의 지역 코디네이터로 약 15년간 활동했다. 현재 주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에서 사업기획 및 한국-인도네시아 유관기관 협력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Credit
- WRITER 김현주
- PHOTO 레자 라하디안 / 라이사 안드리아나 제공
- 인드라 헤를람방 X계정 / 갤러리 요한나 / 게티이미지스코리아
- TRANSLATOR 박수진
- ASSISTANT 남가연
- ART DESIGNER 김동희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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