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럭셔리 리조트 '바이스로이 발리'에서 생긴 일

발리섬 우붓의 럭셔리 리조트 ‘바이스로이 발리’에서 경험한 환상적인 순간들.

프로필 by 박세회 2024.07.14
바이스로이 발리 메인 풀의 전경. 오른쪽이 ‘왕가의 계곡’이라 불리는 울창한 산림으로 그 아래 강이 흐르지만 너무도 빽빽하게 자란 나무 탓에 보이지 않는다.

바이스로이 발리 메인 풀의 전경. 오른쪽이 ‘왕가의 계곡’이라 불리는 울창한 산림으로 그 아래 강이 흐르지만 너무도 빽빽하게 자란 나무 탓에 보이지 않는다.

발리에 도착한 셋째 날 나는 바이스로이 발리 리조트에 있는 발리 최고의 레스토랑 ‘아페리티프’에서 이 레스토랑의 헤드 소믈리에 장 브누아 이젤(Jean-Benoit Issele)이 진행하는 특별한 와인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는 유려한 손목 스냅으로 화려하게 와인 잔을 스월링하며 바롱 필립 드 로칠드가 칠레의 포도로 만든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이라는 에스쿠도 로호에 대해 한참을 설명했다. 그날의 와인 수업에는 13명이 참여했는데, 내 바로 옆자리에는 뉴욕에서 온 젊고 매력적인 미국인 커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뉴욕에서 온 남자가 물었다.
“어디서 묵어요?”
내가 대답했다.
“여기요.”
“여기요? 여기 이 바이스로이 발리에서요?”
나는 그가 놀란 이유를 한참이 지나서야 이해했다. 그날의 와인 클래스는 레스토랑 아페리티프가 속한 바이스로이 발리의 투숙객만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묵었던 그 주말 동안 우붓에서는 푸드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고, 아페리티프의 와인 클래스는 바이스로이 발리가 지역사회와 함께하기 위해 이 행사에 참여해 투숙객 및 외부인 모두를 대상으로 연 이벤트였던 것이다. 우붓 시내에 있는 한 호텔에서 묵고 있다는 뉴욕에서 온 남자(그와 사진까지 찍어놓고, 그만 이름을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다)가 말했다. “이 리조트는 시내에 있는 숙소들과는 다르네요.” 나는 시내에 있는 숙소에 가보지 못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바이스로이 발리 호텔 앤 리조트와 아페리티프 레스토랑의 위상을 설명하려면 지도를 펼쳐놓고 살펴봐야 한다. 발리는 정말 거대한 섬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제주도의 3배가 조금 안 되는 크기다.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의 거리가 자그마치 142km에 달한다. 이 발리 섬의 수도는 덴파사르고 이곳에 ‘응우라라이 공항’이 있다. 우리가 ‘덴파사르 공항’으로 찾는 그 공항으로 대부분의 국제 노선이 통한다. 우붓은 이 덴파사르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의 북쪽에 있는 또 다른 지역이자 마을 이름이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우붓은 발리 섬 기안야르 리젠시 안에 속하는 우붓 디스트릭트와 그 일대를 말한다. 그중에서도 ‘뿌리 사렌 아궁’(우붓 왕궁)부터 몽키 포레스트까지 이어지는 반경 약 3km 시내에 관광객의 90%가 몰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면 나도 그랬다. 아침에는 트갈랄랑의 계단식 논에서 산책을 하고, 재래식 시장을 돌아다녔고, 전 세계 요가인들의 성지인 ‘요가 반’에서 낮 시간을 보내고 리조트의 풀에서 더위를 식히다가도 저녁이 되면 ‘우붓 다운타운’에서 차가운 생맥주를 마시며 뿌리 사렌 아궁에서 발리의 전통 춤인 레공 댄스를 감상했다. (뿌리 사렌 아궁에선 매일 저녁 7시 30분에 ‘레공’ ‘라마야나 발레’ ‘바롱’ 등의 춤 공연을 돌아가며 볼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점은 뿌리 사렌 아궁 바로 앞에 있는 정류장에서 2시간마다 리조트 셔틀이 투숙객을 기다리고 있고, 이 셔틀을 타면 15분 만에 리조트에 다다른다는 사실이다. 택시를 불러 타도 한화로 4000원 정도 나오는 거리다.
“맞아요. 우붓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초호화 럭셔리 리조트라는 점이 바로 우리 리조트의 자랑입니다. 발리 섬 전역에 초호화 럭셔리 리조트들이 흩어져 있지만, 우붓 다운타운을 이렇게 쉽게 오갈 수 있는 초호화 럭셔리 리조트는 우리뿐이죠.” 바이스로이 발리의 제너럴 매니저 어맨다 시로와트카가 말했다. 바이스로이 발리에는 44개의 객실뿐이고 그중 4개를 제외한 모든 객실에는 풀이 딸려 있다. 대부분의 객실은 층고가 5m 넘는 발리 건축 특유의 대나무 천장으로 되어 있으며 벽면과 바닥은 최상급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객실 전면을 차지하는 무겁고 단단한 전창 너머로는 해당 객실의 크기에 비례하는 풀장과 오두막이 있고 그 너머로는 ‘왕실의 계곡’이라 불리는 울창한 삼림이 면해 있다. 이 풀장에 서 있는 당신을 보려면 건너편 정글의 20m 높이 나무 위 혹은 계곡 하나 건너에 있는 다른 리조트에서 망원경으로 보는 방법뿐이다. 즉 북적거리는 여흥의 거리, 수십 개의 인종들이 땀 흘리며 맥주를 들이켜는 우붓 시내에서 불과 15분만 차를 타고 오면 프라이빗한 천국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맞아요. 그런 프라이빗함이 저희 리조트의 매력이죠.” 어맨다가 이어 말했다. 호주 출신인 모친 마거릿과 오스트리아 출신인 부친 오토 시로와트카가 발리에 터전을 잡고 바이스로이 발리를 세운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2002년부터 호텔 사업을 시작했으니 정말 오래됐죠. 그 점 역시 저희 리조트의 큰 장점일 거예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직원이 여러 명이거든요. 저희도 매뉴얼이 있지만, 매뉴얼대로만 서비스를 하지는 않죠. 가족과도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글로벌 프랜차이즈 호텔 브랜드와는 다른 매력이죠.” 어맨다의 말이다.
아페리티프 레스토랑의 가장 큰 자랑 중 하나는 셀러를 가득 채우고 있는 400개가 넘는 레이블의 와인들이다. 와인 셀러의 규모와 수준은 단연코 발리 최고다.

아페리티프 레스토랑의 가장 큰 자랑 중 하나는 셀러를 가득 채우고 있는 400개가 넘는 레이블의 와인들이다. 와인 셀러의 규모와 수준은 단연코 발리 최고다.

레스토랑 아페리티프의 위상도 ‘발리에 있는 유일한 미쉐린 스타 셰프의 레스토랑’이라는 정도의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나는 보통 시내에 나갈 때면 객실에 있는 풀장에서 수영을 하다가 2시간에 한 번 있는 호텔의 셔틀 시간에 맞춰 나가곤 했지만, 몇 번인가는 ‘그랩’이라는 앱으로 택시를 잡아 타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나를 호텔로 데리러 온 기사들이 물어본 질문이 바로 “아페리티프에서 식사를 해봤느냐”는 것이었다. “발리 최고의 레스토랑”이라고 그들은 설명했다. 내가 처음으로 아페리티프에서 식사를 한 건 넷째 날 저녁이었고, 그제야 나는 우붓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아페리티프를 궁금해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바 앤 다이닝 그리고 와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자인 내 눈에, 그건 만약 인도네시아에 미쉐린 가이드가 진출했다면 당장 2스타를 딸 수 있는 수준의 서비스였다. 특히 내가 간 날은 남프랑스에 있는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르프티리옹’의 셰프인 닉 허니먼(Nick Honeyman)과 오클랜드에 있는 ‘파리스 버터’의 파티세리 제논 윌렌스(Zennon Wijlens)가 아페리티프의 헤드 셰프인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출신 벨기인인 셰프 닉 판더비켄과 협업해 엄청난 수준의 요리를 선보였다. 단백질을 다루는 수준이 탁월했는데, 이날 나온 숙성 오리의 껍질은 베이징 덕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맛보여줘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그러나 이 모든 매력에 더해 당신이 우붓을 찾아야 할 이유는 또 있다. 그건 바로 사람들이다. 인도네시아의 다른 곳에 가본 적이 있다면 아마 발리와 우붓 사람들의 천진함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90%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의 다른 섬들과는 달리 발리는 80%가 힌두교 신자인 종교 구성을 갖는다. 삼만삼천 신이 있다는 힌두교의 유연한 특성 때문인지, 혹은 현세의 어디에나 신이 있다는 믿음 때문인지 이들은 항상 선한 미소로 이방인을 반긴다. 그렇다고 그 반색이 관광객들을 주 수입원으로 보는 그런 반색도 아니다. 이른 아침 러닝을 하다 만난 동네 할아버지들마저 눈을 마주치면 손을 흔들고, 언뜻 무서워 보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문신을 한 동네 청년들마저 길을 물어보면 눈웃음을 치며 적극적으로 설명해준다. “발리 사람들의 특성이에요. 포용적이고 잘 웃고 순수하지요.” 어맨다가 말했다. 그녀의 말을 증명하는 일화가 있다. 내가 호텔에 있을 때 나를 주로 에스코트해준 직원의 이름은 체스였다. 체스는 2002년부터 바이스로이 발리에서 일했고, 그사이 딸이 대학에 들어갔다. “우붓에선 다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데, 키를 꽂아두고 다녀요. 여긴 경찰을 보기가 힘들죠. 현지인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체스가 말했다.
그는 그 말을 한 날 나를 태우고 트갈랄랑의 계단식 논을 찾았다. 계단식 논의 꼭대기에는 작은 간이 매점이 있었고, 한 노파가 매점을 지키고 있었다. 노파를 본 체스가 그녀와 한참 뭔가 얘기를 나눴다. “원래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함께 이 매점을 운영했는데, 지난달에 남편이 죽었대요. 지병이 있었다나 봐요. 아이고 세상에나.” 우리가 얘기를 나누자 노파는 내 눈을 바라봤고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위로했고 우리 주변에는 정말이지 그림 같은 계단식 논이 펼쳐져 있었다. 누군가 그 장면을 그냥 찍었다면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에 적어도 초대는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세상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Credit

  • PHOTO Courtesy of Viceroy Bali
  • ART DESIGNER 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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