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트럼프의 미국에서 한 달을 보내고 느낀 것들

우리는 무력감에 빠져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5.03.11

트럼프는 취임 전, 대통령이 되자마자 100개의 행정명령에 사인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그 숫자가 달성되지는 않았지만, 미친 듯한 속도로 서명을 해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한 달도 안 된 지금(2월 7일 기준)까지 서명한 행정명령의 개수는 자그마치 54개로, 아마도 100일간 92개에 서명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보인다. 나와 비슷한 정치적 스탠스를 지닌 미국인들은 그 모습을 보며 깊은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트럼프 1기 때는 달랐다. 그때의 우리는 전의에 불타고 있었고, 지금처럼 무력하지 않았다. 과연 우리는 이 비인도적인 정책의 홍수 속에서 구명보트를 탈 수 있을까, 비이성적인 트럼프 지지자들과 화해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아주 묘한 타이밍이었다. 지난 11월 미국 대선 당일 한국에 입국했다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직전 미국으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니 어때’라는 한국 친구들의 농담 섞인 귀국 환영 인사와 ‘설마 너 한국 아니지? 계엄선포 전에 돌아와 너무 다행이다’라는 미국 친구들의 안부 문자를 동시에 받았다. 심지어 시애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2024 트럼프 서포터 모자를 당당히 쓴 한 남자가 내 바로 뒷좌석에 앉았다. 한미 정치가 내 여행의 앞뒤를 테이프로 꽉꽉 둘러싼 기분이었다. 8년 전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과 대선에서 맞붙었던 시절만 해도, 그의 지지층은 지금에 비하면 무척 조용했다. 이렇게 대놓고 ‘나는 트럼프의 서포터요’ 하고 돌아다니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적어도 당시 내가 살던 뉴욕이나, 그 비행기의 종착지인 시애틀, 그리고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포틀랜드처럼 전통적인 진보적인 도시에서는 그랬다.


한낱 리얼리티 TV쇼 출신 악덕 셀러브리티의 이벤트로 끝날 줄 알았던 트럼프의 등장은 숱한 성추문과 비상식적이고 독단적 어법, 심지어 공화당의 소극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비록 힐러리가 득표수에서는 더 높았지만) 승리로 이어졌다. 당시만 해도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것은 비논리 비지성 비인권에 동의한다는 것으로 여겨졌다. 마지막까지 모두가 힐러리의 승리를 점쳤던 이유도 그들이 마치 비윤리적인 길티 플레저를 즐기듯 조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승리를 계기로 잠잠했던 트럼프 지지자들은 자신들에게도 다수의 친구들이 있음을 확인했고 하나둘 재빨리 커밍아웃을 서둘렀다. 여자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가져서는 안 되며, 이민자와 불법체류자는 미국의 세금을 갉아먹는 좀벌레고, 백신을 맞았다간 자폐증을 얻게 된다는 비인권 비상식 비과학에 바탕을 둔 세상의 모든 음모론을 주류화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제는 앞뜰에 ‘트럼프 2020’ ‘트럼프 2024’ 팻말을 꽂아둔 집, 그런 스티커를 붙인 차들을 일상 곳곳에서 마주하며 살고 있다. 중요한 건 트럼프가 그 대선에서 공화당의 지지 없이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는 자신이 비윤리적이고 비이성적으로 굴어도,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해도 그 모든 것을 지지하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충성을 바칠 ‘트럼프 서포터’가 많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제 공화당마저 트럼프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초반에는 이 상황에 경악하는 이들의 반격이 만만치 않았다. 언론은 트럼프를 조롱하느라 소비한 헤드라인들이 결국 그를 홍보하는 꼴이 된 것에 대해 크게 자성했고, 미국의 유명 정치인뿐 아니라 대중문화 아이콘들까지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4년 후 이 여세로 트럼프를 끌어내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바이든의 승리가 오히려 트럼프 서포터들을 더욱 결집시키는 계기가 됐다. 트럼프가 직접 부정선거 음모론을 꺼냈고, 서포터들은 국회를 습격했다. 바이든의 승리는 대중이 바이든을 지지했다기보다는 트럼프 반대표가 집결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 지난 세 번의 대선 흐름을 보면 트럼프에게 투표한 숫자는 각각 6985만 표(승리), 7410만 표(패배), 7730만 표(승리)인데, 첫 대선보다 많은 표를 얻고도 두 번째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렇다. 또 중도들의 반트럼프 결집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2024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바이든의 불출마 선언이 너무 늦어 반트럼프 표의 집결 타이밍을 놓친 탓이다.


게다가 2020 대선으로 실각한 트럼프는 밀려드는 수많은 소송을 치러내며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자신의 정치 리스크를 정리한 셈이 됐다. 오히려 2024년 트럼프 재집권 과정은 그가 벌인 수많은 불법행위를 법으로 단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무력감을 미국 시민들에게 심어주었다. 여러 의미에서 지난 2016년보다 훨씬 더 나쁜 영향력을 남긴 선거였던 셈이다. 한때 선긋기를 시전했던 공화당은 이제 그의 존재감과 지치지 않는 서포터들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트럼프를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협력하며 눈치를 보는 중이다. 또한 그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반대하며 도전했던 거대 테크 기업들조차 트럼프의 복수의 칼춤이 벌어지기 전 미리 머리를 조아리며 거액의 후원금을 투척하고, 어떻게든 줄을 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 8년 전 워싱턴 DC로 혹은 각 도시의 다운타운으로 몰려들어 거대한 ‘Women’s March’를 벌였던 미국 시민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저 4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는 무기력과 허무가 우리를 집어삼켰다.


트럼프 행정명령의 내용에 한국 사람들이 놀라는 것과 달리, 미국인들은 이미 트럼프 집권의 4년을 보낸 바 있고, 그 행보를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각의 내용이 시사하는 끔찍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크게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건 어쩌면 오랫동안 꾸준히 고통에 시달리다 보니 생기는 둔감함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1기에 불법이민자 가족들을 뿔뿔이 흩어놓고 캠프에 구금하는 비인도적인 일을 벌인 바 있으며, 제멋대로 국방비를 끌어다가 국경에 벽을 쌓아 올리기까지 했던 그가 이번엔 불법체류자와 이민자들에게 날릴 더욱 강한 철퇴를 준비했을 거란 사실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다.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이루어낸 인권적 진전의 시계를 되감아 형평성과 포용성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환경보호 정책을 모조리 휴지 조각으로 만들 거라는 사실 역시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사실 행정명령의 내용보다 놀라운 것은 그 ‘숫자’다. 그는 지금까지 약 20일간 52개의 행정명령을 내렸다. 미국의 대통령은 취임 초 자신의 정책 방향의 의지를 드러내기 위해 첫 100일간 30개 정도의 행정명령을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 바이든이 좀 많이 해서 42개, 버락 오바마는 19개, 조지 부시는 11개 수준이었다. 트럼프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벌써 52개다. 게다가 그중 많은 수는 헌법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에 연방법원에서 제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의 과격한 행보에 법적 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왜 항상 이러한 무리수를 둘까? 미국이 관세나 금리를 올리겠다는 발표만 해도 전 세계가 흔들거리는데 일단 캐나다와 멕시코에 무려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포한 것도 그렇다. 하나만 발표해도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게 분명한 인권·경제·외교·안보 등에 관한 행정명령을 단번에 쏟아내어 사람들을 충격으로 밀어넣는다. 언론은 이 각각의 사안을 모두 다루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대중이 이 이슈들을 단번에 소화해내기에는 무리다. 이민자의 인권과 성소수자의 인권, 그리고 여성의 인권이 중요도 측면에서 경쟁 관계에 놓이고, 외교·안보·경제 등 각 분야의 문제들도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다. 결국 대중은 지나치게 많은 정보와 중요도의 스트레스에서 완벽한 번아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많은 주요 문제를 일일이 살펴가며 싸우기란 불가능하다.


우리가 무기력한 데는 이유가 있다. 트럼프는 이런 식으로 이슈의 폭탄을 던져 반대 진영과 대중, 언론 모두를 번아웃시키는 게임에 그 누구보다 능하다. 대선 캠페인 중에도 거짓말을 지나치게 많이 늘어놔서, 그 거짓말 하나하나에 일일이 맞대응하다 자신의 홍보 기회도 놓치고 말려버렸던 힐러리 클린턴과 카밀라 해리스를 기억해보라.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가였던 스티븐 배넌은 이를 ‘이슈 홍수(Flood the zone)’ 전략이라고 부르며 민주당과 언론의 반대를 압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녔다. 다만 지난 1기 때만 해도, 이 전략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지난 4년간 이 전략이 점차 고도화되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취임과 동시에 엄청난 양의 행정명령을 쏟아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이 전략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하원 법사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제이미 래스킨 의원은 “이건 감각을 마비시키는 압도적인 공세”라 고백했다. 이 전략이 우리를 무력하게 하는 방법은 이런 식이다. 래스킨은 “암 치료 임상시험을 담당하는 공무원과 통화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일부 담당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법무부 변호사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들 역시 강제 전보 조치를 당할 예정이라고 얘기했다더라. 이런 일이 끝없이 반복된다”라고 말했다. 불법적인 해고에 대응하기 위해 상담을 받아보려 했더니 그 상담사도 불법적인 해고를 당했다는 얘기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지는 폭탄 속에서 우리는 방어할 방법을 잊어버렸다.


민주당 의원들은 여전히 대응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와 그 보좌진들이 에너지를 소진할 때가 올 것이고 실수를 저지를 것이라고 믿고 있다. 헌법을 위반한 사례를 찾아내 싸우고, 창의적인 대응법을 마련하겠다며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현실의 많은 반트럼프 시민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이슈 홍수’ 전략에 완벽하게 대응할 카드를 찾기 전까지 우리는 에너지를 방전시키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까? 양국을 오가는 입장에서 한국의 뉴스를 보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지만, 그것마저 쉽지는 않다. 몇 주 전만 해도 여의도와 시청 앞을 물들인 응원봉의 행렬과 키세스 시위대의 뉴스를 봤다. 그러나 이제는 법원을 때려 부수고 헛소리를 나불대는 모 선생과 모 목사의 뉴스가 주를 이룬다. 설마 한국의 응원봉과 키세스들은 벌써 번아웃을 겪고 있는 중인가? 그도 아니면 우파 극단주의자들의 행동에 지나치게 충격을 받은 미디어가 충격 이슈의 홍수에 지나치게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국의 뉴스를 보며 내가 ‘트럼프가 뿌린 씨앗’이라고 불평을 늘어놓자 내 미국인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Trump got normalized everywhere. That is the problem.(다들 트럼프를 마치 정상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어. 그게 정말 문제야.)”



손혜영은 프리랜스 에디터로, <마리끌레르> <인스타일> 등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현재 남편, 딸과 함께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거주하고 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손혜영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