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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이전을 막고 선 두 개의 큰 산

그리고 그 너머를 생각해봤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5.06.10

세종시로의 수도 이전이 나오는 걸 보니 다시 대통령 선거철이다. 2025년 2월 김경수,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들이 다시 대통령실과 수도 이전 공약을 들고 나왔다. 이들은 윤석열의 잘못된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용산과 청와대가 모두 문제가 있으므로 이번에 아예 대통령실과 수도를 세종시로 옮기자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이재명 대선 후보는 대통령실과 수도 이전에 찬성했으나 신중하고 소극적인 태도였다.

애초 세종시로의 수도 이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중요 정책이었으나, 200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중단됐다. 대신 세종시는 ‘행정도시’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국회와 대통령실 없이 중앙 행정부의 70% 정도만 옮겨졌다. 그 뒤 대선에서 여러 후보가 수도 이전을 공약했지만, 아직 실행되지 않았다. 2002년 노무현 후보가 수도 이전을 공약한 뒤 23년 동안 대한민국의 수도 이전은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 있다.

왜 대선 때만 되면 후보들이 수도 이전을 꺼내 드나? 그것은 1945년 해방 뒤 계속된 수도권-지방 간의 불균형 발전이 극단적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넓이의 12% 정도인 수도권의 인구 비중은 2019년 12월 50%를 돌파했고 2025년 4월 50.93%에 이르렀다. 지역내총생산(GRDP)도 2017년 50%를 돌파했으며 2023년 말 52.3%에 이르렀다. 이 밖에 100대 기업 가운데 80~90개의 본사가 수도권에 있고, 2024년 <중앙일보> 선정 20대 명문대 가운데 19개가 수도권에 있었다. 아파트 평당 매매 가격은 서울 평균이 지방 5대 광역시 평균의 3배에 이른다. 살기 힘든 서울로 청년들이 몰려들면서 합계 출산율도 2018년부터 1 이하로 떨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시작한 ‘지역 간 균형 발전’ 정책이 별 효과가 없었다고 말한다. 이 정책을 시행했는데도 수도권 인구와 지역내총생산이 모두 50%를 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이 정책으로 수도권 인구 비중의 50% 돌파 시점이 2011년에서 2019년으로 8년 늦춰졌다. 또 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도 노무현 정부가 취임한 2003년부터 2011년까지 9년 동안 감소했다. 특히 2011~2016년 사이 수도권-지방 간 인구 이동 방향이 바뀌어 6만272명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동했다. 그전에 매년 수만~수십만 명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지속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균형 발전의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방아쇠는 바로 국회와 대통령실을 포함한 수도 이전이다. 만약 2012년 중앙행정부의 세종시 입주와 함께 국회와 대통령실이 세종시로 옮겨졌다면, 국가 전체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다. 보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모습이 달라진다. 2012년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세종시로 옮겨갔다면 한국의 지역 간 불균형 발전의 심각성을 바로,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계속 미뤄지는 120~500개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의 2차 지방 이전도 즉시 실행됐을 것이다. 지방에 수만~10만 명 이상의 인구와 일자리, 그에 따르는 인구와 일자리가 생겼을 것이다. 또 이번 선거에서도 큰 이슈가 된 9개 지방 거점 국립대 육성(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도 추진됐을 것이다. 지방 학생들이 지방 명문대에 진학하는 숫자도 늘어났을 것이다. 경기도 판교로 간 테크노밸리와 용인으로 간 에스케이와 삼성의 반도체 공장도 지방 도시로 갔을 것이다. 지방에 연고지나 대규모 공장을 둔 서울의 일부 대기업들도 본사나 규모 있는 지사를 지방으로 옮겼을 것이다.

또 인구가 늘어나는 지방 대도시에 주택 공급이 늘어나고 새 도시철도나 빠른버스(BRT, 간선급행버스) 노선도 공급됐을 것이다. 20여 만 채를 공급하는 수도권 3기 신도시나 10조원 이상 투입되는 3개 노선의 GTX(수도권 광역 급행 철도) 사업은 추진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 종로구의 송현공원에 네 번째 수도권 국립미술관(가칭 국립이건희기증관)을 짓겠다는 계획도 없었을 것이다. 대신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지방 대도시에 첫 수도권 외 국립미술관이 들어섰을 것이다.

이에 따라 수도권의 인구 비중과 지역내총생산 비중이 전국의 50%를 넘지 않았을 것이다. 지방의 젊은이들이 대학 입학과 취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도 완화됐을 것이다. 청년층의 서울 집중 완화로 합계 출산율도 1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 인구집중으로 폭등하던 수도권의 집값은 안정되고 수도권과 지방의 집값 차이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수도 이전 정책이 그대로 실행됐더라면 이와 비슷한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이렇듯 수도 이전은 이 모든 긍정적인 변화의 신호탄과 지렛대다. 거의 꺼져버린 지역 간 균형 발전 정책에 불을 당길 유일한 수단이 수도 이전이다.

그러나 세종시로 수도를 옮기려면 험준한 두 산을 넘어야 한다. 하나는 ‘헌법 개정’이다. 수도 이전은 200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개헌이 필수다. 당시 헌재가 ‘수도 서울’을 관습헌법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개헌은 1987년 이후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시기에 따라 정치세력 간의 의견이 크게 갈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집권 초기엔 대통령이 다른 일을 하겠다며 반대하고 집권 말기엔 대통령이 힘이 없어서 할 수가 없다. 선거를 앞두고 우세한 쪽은 반대하고 불리한 쪽은 찬성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둘째 산은 수도권 민심이다. 2004년 헌법재판관들이 수도 이전을 위헌으로 결정한 배후엔 수도권 민심이 있었다. 당시 전국적인 여론은 찬성이 우세하거나 찬-반이 팽팽했지만, 수도권에선 압도적으로 반대가 많았다. 수도권 민심도 처음엔 반대가 강하지 않다가 반대파들이 ‘수도권 집값 폭락’을 선동하자 강한 반대로 돌아섰다. 다시 수도 이전을 추진한다면 수도권 민심을 잘 다뤄야 한다. 다수의 한국인이 가진 유일한 자산이 아파트이고, 서울의 아파트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비싸고, 훨씬 더 가격이 불안정하다.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개헌과 수도권 민심을 넘어 세종시를 수도로 결정했더라도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세종시가 수도로서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수도를 신도시로 만든 것은 완전히 실패였다. 수도는 한 국가의 중심이고 상징이고 동력이다. 따라서 허허벌판이 아니라 어느 정도 역사나 문화, 자연, 인구 등을 갖춘 곳에 만들었어야 한다. 좋은 도시는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충청권으로 수도를 옮기려고 했다면 신도시가 아니라 대전이나 청주로 갔어야 한다. 특히 대전은 정부대전청사와 계룡대, 현충원, 대덕연구단지 등 국가적 인프라와 1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갖고 있다. 세종시가 신도시라는 한계를 극복하려면 수십 년에서 1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가장 부족한 것은 인구다. 세종시 인구는 2025년 4월 아직 40만 명이 안 되는데, 남쪽 행정도시 지역의 인구는 30만 명 정도다. 이 정도 규모의 도시가 대한민국의 수도가 되는 것은 여러모로 아쉬운 일이다. 인구가 적으니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국립미술관과 국립박물관 등 문화 시설이 없으며, 공연장이나 도서관도 매우 규모가 작고 적다. 기차역도 도심에서 20㎞나 떨어져 있다. 국립대학도 없고, 법원·검찰청도 없으며, 백화점도 없다. 프로 야구팀·축구팀·농구팀·배구팀도 없다. 상징 공간도 없다. 서울의 광화문,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파리의 샹젤리제,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 같은 곳이 없다. 번듯한 광장 하나가 없어서 시민들이 집회나 시위를 할 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다.

세종시를 보며 새삼 깨닫는다. 사람은 조상을 잘 만나야 한다. 뭐든지 한번 만들어놓으면 바꾸기도, 없애기도 쉽지 않다. 내가 가는 길의 대부분은 내가 아니라 앞사람들이 닦아놓은 것이다. 지역 간 불균형 발전과 수도 이전을 두고 우리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를 생각해야 한다. 어떤 길을 넘겨줄 것인가? 조상을 잘못 만났다고 원망하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김규원은 <한겨레21>의 선임기자로 역사와 정치, 공간에 관심이 많다. 영국에 대한 <마인드 더 갭>, 세종시에 대한 <노무현의 도시>, 서울 서촌에 대한 <오래된 서촌 오래된 서울> 등의 책을 썼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규원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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