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라이카 카메라 100주년, 라이카의 고향 베츨라어에서 펼쳐진 풍경들

국내 오프라인 매체 중 유일하게 초청받은 <에스콰이어>가 다녀왔다.

프로필 by 오성윤 2025.07.23
베츨라어의 대형 행사장 부데루스 아레나에서 열린 갈라 이벤트 전경.

베츨라어의 대형 행사장 부데루스 아레나에서 열린 갈라 이벤트 전경.

<라이카 100주년: 세기의 목격자(1925-2025)> 행사의 일환으로 베츨라어에서 열린 제46회 라이츠 포토그래피카 옥션.

<라이카 100주년: 세기의 목격자(1925-2025)> 행사의 일환으로 베츨라어에서 열린 제46회 라이츠 포토그래피카 옥션.

1923년 제작된 라이카 I의 프로토타입 중 하나인 0 시리즈 N.112. 720만 유로에 낙찰되었다.

1923년 제작된 라이카 I의 프로토타입 중 하나인 0 시리즈 N.112. 720만 유로에 낙찰되었다.

사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그 시작점에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 요한 하인리히 슐체나 토머스 웨지우드 같은 발명가들의 선구적 실험에서부터 출발할 수도 있겠고, 다게레오타이프, 칼로타이프, 콜로디온 습판법 같은 초기 카메라의 원리를 구분하여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대의 카메라 옵스큐라 개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도 있을까? 다만 운을 어떻게 떼든, 빼놓을 수 없는 명확한 변곡점들도 존재한다. 1925년 라이프치히 춘계 박람회가 대표적이다. 최초의 상용 35mm 카메라인 라이카 I이 발표된 순간. 누구나, 어디든 갖고 다닐 수 있는 그 카메라의 등장 이후 사진은 완전히 새로운 매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라이카 갤러리 인터내셔널 아트 디렉터 겸 대표 카린 렌-카우프만의 말을 빌리는 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100년 전 라이카는 다큐멘터리와 예술 사진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표현 수단과 다양한 이미지를 탄생시켰죠. 더 중요한 건 라이카 카메라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버렸다는 점이고요.” <라이카 100주년: 세기의 목격자(1925-2025)> 행사의 오프닝 세리머니 무대에 오른 그녀는 어째서 이번 행사가 단순히 한 기업의 창립 기념일을 뛰어넘는 자리인지, 그 의미에 무게를 실었다.

에른스트 라이츠 뮤지엄에서 회고전 <The Pleasure of Seeing>의 개최를 발표하고 있는 사진가 조엘 메이어로위츠와 라이카 갤러리 인터내셔널 아트 디렉터 겸 대표 카린 렌-카우프만.

에른스트 라이츠 뮤지엄에서 회고전 <The Pleasure of Seeing>의 개최를 발표하고 있는 사진가 조엘 메이어로위츠와 라이카 갤러리 인터내셔널 아트 디렉터 겸 대표 카린 렌-카우프만.

열정적인 사진예술 애호가들을 마주한 조엘 메이어로위츠는 직접 자신의 작품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전시 가이드를 자처했다.

열정적인 사진예술 애호가들을 마주한 조엘 메이어로위츠는 직접 자신의 작품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전시 가이드를 자처했다.

지난 6월, 라이카의 고향 독일 베츨라어에서 열린 <라이카 100주년: 세기의 목격자(1925-2025)>는 그 이름처럼 라이카 카메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숫자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남다른 만큼 사진 커뮤니티의 유명인들과 세계 각국의 정재계 인사들이 모였으며, 라이카 역시 신제품 발표, 전시, 사진 포럼, 경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손님들을 맞았다. 우선 베츨라어 시내의 역사적 대성당에서 열린 프리 오프닝 행사부터 참석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잘츠부르크의 합주단 벨라무지카, 라이카 임직원들로 구성된 라이카 합창단, 재즈 트럼페터 틸 브뢰너가 공연을 펼쳤으며 대성당 정원에서는 이색적인 연회가 이어졌다. 이튿날 열린 본 행사도 마찬가지, 라이카 카메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한정판 공개부터 440점 이상의 희귀 품목들이 등장한 경매 행사까지 즐길 거리로 가득했다. 한정판은 101대만 제작해 100대 한정 판매하는 M11-D 100 Years of Leica 세트를 비롯해, 라이카 D-Lux 8, 소포트2, 트리노비드 라인의 10 × 40 쌍안경 등 다채로운 품목으로 구성되었다. 제46회 라이츠 포토그래피카 옥션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1923년 제작된 라이카 I의 프로토타입 중 하나인 0 시리즈 N.112로, 720만 유로(약 115억원)에 최종 낙찰되었다.

행사의 주요 프로그램들이 진행된 독일 베츨라어 라이카 카메라 본사 전경.

행사의 주요 프로그램들이 진행된 독일 베츨라어 라이카 카메라 본사 전경.

방문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라이카 팩토리 투어.

방문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라이카 팩토리 투어.

오래도록 라이카 M과 Q 시리즈 카메라를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진 배우 류준열도 라이카 패밀리로 라이카 카메라 100주년 행사에 초청되었다.

오래도록 라이카 M과 Q 시리즈 카메라를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진 배우 류준열도 라이카 패밀리로 라이카 카메라 100주년 행사에 초청되었다.

행사 시작에 맞춰 3개의 전시도 오픈되었다. 미국 현대 사진사의 거장 조엘 메이어로위츠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 <The Pleasure of Seeing>, 프랑스 저널리스트이자 사진작가인 에두아르 엘리아스의 <Witness>, 영국의 뮤지션이자 사진작가인 제이미 컬럼의 사진전 <There are the Days>가 그 주인공이다. 라이카의 유산과 미래 비전을 동시에 조망하고자 하는 기획으로, 셋 모두 오는 9월 21일까지 이어진다. 제이미 컬럼은 전시뿐 아니라 열정적인 공연으로 갈라 이벤트의 피날레를 장식하기도 했다. 본 행사 날 저녁 부데루스 아레나에서 열린 갈라 이벤트는 과연 행사의 화룡점정이라 할 만했다. 베츨라어의 대형 행사장 부데루스 아레나 전체를 라이카 브랜딩으로 뒤덮은 공간에서 빼어난 만찬과 공연을 즐길 수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영화 <Leica-A Century of Vision>이 최초로 시사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라이카 100주년을 기념해 라이너 홀제메르 감독이 제작한 해당 다큐멘터리는 스티브 매커리, 조엘 메이어로위츠, 세바스치앙 사우가두 같은 거장부터 차세대 포토그래퍼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포토그래퍼들의 세계를 오가며 라이카 카메라가 사진사에 끼친 영향을 담는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자세히 언급할 수 없지만, 핵심 메시지는 라이카 카메라 감독이사회 의장 안드레아스 카우프만 박사가 개회사에서 한 말과 정확히 일치해 보였다. “라이카는 지난 100년간 혁신의 힘, 수공예, 뛰어난 엔지니어링을 통해 사진의 기술적·문화적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해왔습니다. 저희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가장 근본적인 것, 바로 사진에 대한 열정이죠.”


Special Interview

MATTHIAS HARSCH

베츨라어 라이카 카메라 본사에서 CEO 마티아스 하슈를 만났다. 2017년부터 라이카를 이끌고 있는 그는 이 역사적 브랜드의 새로운 황금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당신이 오기 전의 라이카와 현재의 라이카는 어떻게 다를까?

이곳에 처음 왔을 때의 감상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그때는 그게 내 일이었지 않은가. 개선하는 것.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했다. 일단 라이카 카메라는 2008년에 이미 디지털 혁신을 마쳤고, M8을 출시했다. 하지만 제품의 혁신에 비해 공급망, 리테일 사업 부문, 네트워크 관리가 구조화되어 있지는 않았고 나는 그런 부분에 집중하고자 했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제품 측면의 혁신보다는 운영 시스템에서 차이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이 부임한 이후 제품군도 좀 더 폭넓어진 느낌이다. 우연일까?

내가 오기 전에도 이미 회사 내부에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아이디어와 실제 실행 사이에는 언제나 큰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기본기를 다진 이후 우리는 확장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예를 들어 시계 부문에 대한 아이디어는 안드레아스 카우프만(라이카 카메라 감독이사회 의장)에게서 나왔고, 프로젝터 부문은 내가 이전에 일했던 업계의 경험에서 비롯했다. 시대 변화에서 유발된 부분도 있었다. 이 업계에 들어서며 나는 우리가 스마트폰의 적이 아니라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더 이상 ‘그건 우리의 사업 영역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없다고 봤던 것이다. 그리고 샤오미와의 공개 협력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데에 큰 성공을 거뒀다.

파트너십도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 중 하나였다. 라이카가 점점 더 폭넓은 브랜드와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을 진행한다는 느낌이 있는데.

맞다. 크게 두 가지 갈래가 있다. 기술 제휴와 브랜드 컬래버레이션. 우선 우리는 파나소닉, 샤오미, 하이센스 같은 브랜드와 기술제휴를 하고 있는데, 그건 이제 라이카의 생명과도 같은 파트너십이다. 라이카 규모의 회사로는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파트너 브랜드가 무언가를 제안하면, 그것이 해당 영역에서 최고의 제품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협업을 진행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브랜드 컬래버레이션이 있다. 에르메스, 몽클레르, 자가토… 많은 브랜드가 우리와 뭔가를 공유하고 참여하고 싶어 한다. 우리에게는 이런 과정을 체크하는 프로세스와 조직이 있다. ‘그게 말이 되는가?’ ‘이전 협업과 비슷하지는 않은가?’ ‘소모적이지는 않은가?’ 좀 더 폭넓은 고객층에 어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큰 장점이지만 어쨌든 두 브랜드 사이에 공유되는 가치가 있어야만 한다.

라이카의 팬들 중 일부는 라이카가 전체 프로세스를 감독하지 않은 제품에 라이카의 이름이 붙는 걸 반기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그런 시각에도 매우 개방적이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도 있다. 샤오미 폰을 예로 들면, 스마트폰 비즈니스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비즈니스다. 샤오미는 연간 1억6000만 대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물론 (연매출) 6억 유로(약 9680억원) 규모의 작은 회사인 라이카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베이징에 공동 연구소를 짓고 인력을 교환하지 않았다면 샤오미도 이 협업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미지가 구성되는 방식, 다양한 조명 조건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최고의 렌즈 시스템, 그게 바로 우리가 선도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 협업을 시작한 화웨이나 현재의 샤오미가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주목받고 놀라운 성과를 낸 것도 브랜드 지식과 파워가 결합한 결과라고 본다.

라이카 카메라는 작년에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고 들었다. 100년 된 회사가 사상 최대 실적이라니 놀랍다.

사실 5년 연속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100주년이라는 사실을 떼어놓고 보면 그리 새로운 소식은 아니다. 그것이 특정 성공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국가, 모든 사업 카테고리에서 성장한 결과라는 사실을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도 큰 범주의 비결을 하나만 짚는다면.

내가 몸담고 있던 TV 브랜드 로에베를 예로 들 수 있겠다. 브라운관 TV 시절 로에베는 기술을 선도하는 브랜드였지만 디스플레이 기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시대가 바뀌고 삼성과 LG가 새로운 기술로 업계를 점령한 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진 것이다. 라이카는 과거의 기술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계속 새로운 방식을 탐구하며, 최근에도 비구면 렌즈의 양쪽 렌즈 크기를 크게 줄이는 새로운 기술에 거대한 투자를 감행했다. 핵심 기술을 활용하고, 계속 개선하고, DNA를 잃지 않는 법을 아는 것. 그게 비결이라고 할 수 있겠다.

100년 된 브랜드가 브랜드 DNA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도 놀라운 부분이다. 유럽의 많은 헤리티지 브랜드가 시장의 요구에 맞춰 브랜드 리뉴얼을 감행했다가 색깔을 잃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운전석에 앉는 건 그 회사여야 한다. 시장이 아니라. 어떤 게 맞는 길인지 시장에 물으면 수백 가지의 답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혁신이 없을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직접 뭔가를 만들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해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게 한다면 거기에서 뭔가 흥미로운 게 나올까? 명심해야 할 건, 시장이 아니라 회사가 운전석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시장의 이야기에 계속 귀를 기울이면서.




Special Interview

STEVE MCCURRY

베츨라어 라이카 스토어에서 포토그래퍼 스티브 매커리를 만났다. 매그넘 포토스 소속으로 오랜 세월 전 세계를 누비며 사진을 찍어온 그는 로버트 카파 골드 메달, 월드 프레스 포토 어워드 등 세계적 권위의 상을 다수 수상한 바 있다.


베츨라어는 몇 번째인가? 혹시 여기에서도 뭔가 찍을 거리를 발견했나?

솔직히 말해서 그렇지는 않다.(웃음) 지금껏 베츨라어에 온 건 세 번쯤 되는데, 사진을 찍기 위해 온 적은 없었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 가족 같은 사람들, 스튜디오, 갤러리, 박물관까지 모두 여기에 있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진의 메카’라고나 할까. 라이츠 벨트가 품은 ‘사진의 역사’라는 측면 역시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부분이다.

당신은 라이카 명예의 전당에 오른 최초의 작가다. 이미 세계적 사진 상을 두루 받은 거장인 당신에게 그 사실은 어떤 의미인가?

무엇보다 크나큰 영광이다. 지난 100년 동안 많은 내 친구들과 영웅들이 라이카 카메라를 써왔고, 나도 늘 라이카가 최고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이카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다. 대단한 일이다.

무수한 사진작가들 중에서도 당신을 첫 작가로 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스티브 매커리라는 포토그래퍼와 라이카라는 브랜드가 공유하는 가치는 뭘까?

솔직히 말해서 모르겠다. 그건 카린 렌-카우프만(라이카 갤러리 인터내셔널 아트 디렉터 겸 대표)에게 물어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라이카가 이룩한 성취는 굉장히 크기 때문에 내가 그와 뭔가를 공유한다고 말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말이다. 다만 핵심은, 카메라의 품질과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에 발을 들이면 당신은 당신이 존경하는 많은 이들이 라이카를 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테크닉 측면에서든, 스타일 측면에서든, 장비 측면에서든, 당신의 작업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분투할 것이다. 기술과 장인정신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그 안에는 예술과 수공예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라이카와 공유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행사의 부제 ‘Witness to a Century’는 꼭 당신을 표현하는 말 같다. 오랜 세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포착해왔는데, 지금은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나?

세상은 진화했다. 그리고 나도, 내가 찍는 사진도, 하고 싶은 말도 진화했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레바논 전장에 갔던 30, 40대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이가 들수록 책임감이 달라지고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도 달라진다. 그리고 인생은 한 번뿐이니 그에 충실히 따라야 한다. 지금의 나는 인류의 갈등을 포착하는 사진보다는 인간의 행동, 거리의 사람들, 일반적인 삶을 찍는 데에 더 관심이 많다. 좀 더 흥미롭고, 30년 전에 비하면 리스크가 좀 덜한 곳들을 찾는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신이 카메라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다. 신뢰성과 렌즈의 품질. 색감이라든가 다른 부분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두 가지에 비하면 부차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두 가지 지점에서 찾은 최고의 카메라가 라이카 SL3인가?

맞다. 최근에 나온 SL3-S도 훌륭한 카메라고. 카메라 같은 도구에는 예술적 면모, 창의적 면모도 있지만 장인정신도 깃들어 있다. 그런 지점에서 SL3는 내가 지금껏 사용해본 것 중 최고의 카메라다. 물론 모두에게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휴대폰 카메라나 플라스틱 카메라를 사용하고 싶어 하고,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그게 최고의 카메라다. 삶을 어떤 방식으로 촬영하고 싶은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당신의 작업 ‘코다크롬의 마지막 롤(The Last roll of Kodachrome)’을 굉장히 좋아했다. 단종되는 필름의 마지막 한 롤을 통해 한 시대의 종언과 필름이라는 매체의 아름다움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작업이었는데, 지금의 당신은 디지털 카메라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작업하고 있나?

디지털이 필름보다 더 나은 솔루션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무엇보다 훨씬 낮은 조도에서 사진을 포착할 수 있다. 그건 내게는 정말 큰 부분이다. 게임 체인저다. 촬영 결과를 즉시 볼 수 있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구도를 개선할 수 있고 빛의 양을 조정할 수 있으며, 모든 것을 파악한 상태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보관 편의성의 문제도 있다. 슬라이드 필름을 일일이 정리하고 보관했던 때를 생각하면… 그건 악몽이다. 정말 끔찍한 악몽이다.

혹시 ‘라이카 SL 시리즈의 첫 컷(The first shot of Leica SL)’ 같은 순간도 기억이 나는가?

물론이다. 일종의 테스트로 사용해본 날이었다. 내가 써온 카메라와 비교할 때 어떤 이점이 있을지 카메라와 렌즈를 두루 평가해보고자 했고, 결과는 보는 그대로다. 그간 써온 카메라보다 SL 시리즈가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첫 결과물은 마음에 들었나? 혹은 흥미로웠나? 놀라웠나?

쇼킹(shocking)했다.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오성윤/LEICA
  • ART DESIGNER 주정화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