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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계의 아이돌 원형석은 "기록은 그냥 숫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 30분대에 뛰는 일반인 영상감독. ‘스톤’으로 불리는 한국 러너들의 아이돌 원형석을 만났다. ‘229’로의 진입을 앞둔 그와 마지막 퍼즐에 대해 이야기했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5.09.22

십대의 치기를 벗고, 이십대의 애살에서 겨우 벗어나면, 삼십대에 인생의 첫 절정기가 찾아온다. 한국 최초의 남성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에스콰이어>는 존 레논이 ‘Imagine’을 발표하고,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펴내고, 데이미언 셔젤이 <라 라 랜드>를 찍은 바로 그 삼십대에, 올해 처음 당도했다. 2025년 10월에 맞은 서른번 째 생일을 자축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눈부신 성취를 이룬 절정기의 삼십대, ‘프라임 서티즈’(Prime 30s) 열 명을 만났다.

메타런 쇼트 슬리브 톱, 메타런 5인치 쇼츠, 메가블라스트 러닝 슈즈 모두 아식스.

메타런 쇼트 슬리브 톱, 메타런 5인치 쇼츠, 메가블라스트 러닝 슈즈 모두 아식스.

많은 사람들이 원형석님의 본업이 러너인 줄 알더군요. 러닝 콘텐츠로 유명해진 시기와 전업 시기가 겹쳐서 오해가 생긴 것 같아요.

제 직업이 러닝 인플루언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제 본업은 영상 프로덕션에 소속되어 있는 영상감독입니다. 러닝은 정말 취미예요. 대학 졸업 후에 3년 동안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서 3년 정도 간호사로 일하다 영상 프로덕션에 취직했고, 취미로는 러닝을 즐기며, 러닝 유튜브 채널 262wave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취미라기엔 기록이 너무 엄청나지요. PB(퍼스널 베스트)가 어떻게 되나요?

하프코스는 1시간 10분 52초(2024 서울레이스), 풀코스 마라톤은 2시간 30분 25초예요. 기록으로는 여자 톱클래스 엘리트들과 비슷하고, 국내 마스터즈 부문에서는 최상위권 수준이에요.

러닝이 요새 인기이기도 하고, 수익 사업의 수단도 꽤 보여서 직업으로 삼아도 될 것 같은데요.

유튜브 채널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서 감사한 일이긴 해요. 그런데 좋아서 하는 러닝을 직업으로 생각하는 순간 불필요한 일들,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또 개인적으로 슬럼프가 오는 일도 있을 텐데, 만약 러닝이 제 직업이고 러닝을 해서 번 돈으로 살아야 한다면 좌절도 더 크게 올 것 같아요. 기록에 대한 조바심도 더 클 거고요. 혹시 그러다가 러닝이 싫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요. 이런 생각으로 취미와 일에 대한 밸런스를 잡아가고 있어요.

커머셜 영상 쪽이면, 스포츠 브랜드의 영상을 제작할 때는 도움이 되겠어요.

그렇죠. 요즘은 메이저 스포츠 브랜드들의 커머셜 광고를 주로 작업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러닝이라는 스포츠에 대한 이해도가 깊은 편이라 그런지 좀더 믿고 맡겨주시는 거 같기도 해요. 작업할 때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더라구요. 특히 광고 촬영장에 감독으로 갔는데 클라이언트와 모델들이 저를 러너로 이미 알고 계시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재밌는 상황도 생기곤 하더라고요.

왜 아니겠어요. 가장 인기 있는 러닝 채널 운영자이자 일반인 러너 중 톱이니까요.

브랜드 담당자들 역시 저를 다 아시더라고요. 그렇게 아는 상태에서 시작하니까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도 빠르고, 촬영장 분위기도 좋아지더군요. 그렇다고 스포츠 브랜드 광고만 찍는 건 아녜요. QWER의 노래 ‘메아리’(REBOUND)를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찍은 우리은행 광고도 제작했고, 카카오톡 광고에는 조감독으로 뛰었어요. 영상감독으로 옮긴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따져보니 ATL(Above The Line) 광고를 세 건 제작했네요.

러닝 패커블 라이트 재킷, 메타런 쇼트 슬리브 톱, 메타런 5인치 쇼츠 모두 아식스.

러닝 패커블 라이트 재킷, 메타런 쇼트 슬리브 톱, 메타런 5인치 쇼츠 모두 아식스.

요새 러닝이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마라톤 기록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다면서요.

맞아요. 보통 엘리트가 아닌 일반인 참가자를 전부 마스터즈라고 부르는데요, 옛날에는 마스터즈에서는 2시간 40분대로만 들어와도 사실 서로 이름과 얼굴을 모두가 알 정도로 유명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2시간 30분대로는 들어와야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해주는 시대가 왔지요. 우리나라 마스터즈 중에 20분대도 많아요. 이번 동아마라톤에서 10등까지가 전부 20분대였으니까요.

그래도 2시간 20분대를 노리는 영상감독은 전국에 딱 1명일 거예요.

(웃음) 그렇겠죠. 그렇게 위안을 하고 있어요. 약간 정신 승리를 하듯이 좀 못 뛰더라도 ‘이건 내 취미다. 나는 영상감독이다’라면서요.

상급병원 간호사에서 영상감독으로, 일반인에서 러닝 인플루언서로 참 많은 변곡점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언제 인생이 급하게 바뀌었나요?

첫 번째 변곡점이라면, 상위권 성적을 계속 유지하다가 수능에서 마킹을 실수하는 바람에 완전 미끄러졌던 이야기?(웃음) 그냥 재수해야겠다 싶어서 재수학원에 들어가 있는데 정시로 대학 이름만 보고 넣은 경희대학교 간호학과에서 추가 합격이 됐다고 연락이 왔을 때일 것 같아요. 저는 남중·남고에 평범한 문과 학생이었는데 그냥 간호학과에 갔거든요. 전역하고 나서 별 생각 없이 들어간 러닝 동아리에서 기록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회장을 맡게 된 사건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회장이 되고 나서부터 러닝을 제대로 시작했으니까요. 그때 회장을 하면서 동아리 회원들 영상을 찍어주고 홍보 영상을 만들다가 대학교 콘텐츠미디어 팀에도 들어가게 됐죠. 당시에 한 브랜드의 일반인 앰배서더를 하고 있었는데, 그 브랜드에 현장 스케치 촬영을 하러 오신 감독님과 인연이 생겨서 어시스턴트로 들어가 촬영을 따라다니게 되었어요. 졸업하고 간호사 일을 제대로 시작하기 전, 그 유예의 시기를 최대한 늘려서 10개월 정도 따라다니면서 광고 영상도 찍어보고, 웨딩 촬영도 해봤던 경험이 지금의 영상감독 커리어의 바탕이 된 것 같아요. 병원에서 일하면서도 한 달에 한두 건 정도는 프리랜서로 외부 영상 작업을 받아서 했고, 병원 생활에 관한 영상도 찍어서 유튜브에 업로드도 했었지요. 그러다가 제가 속한 러닝 크루의 행사 스케치 영상을 만들었는데, 이때 저희 크루 파운더이자 지금 제가 속해 있는 프로덕션의 감독님이 좋게 봐주시면서 영상 프로덕션으로 이직 제의를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어떻게 보면 러닝 동아리에서 이 모든 게 싹텄군요.

그렇네요. 영상도 러닝도 다 대학생 때 동아리에서 시작하게 된 거니까요.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마일스톤이 있나요?

예전에는 뉴욕, 보스턴, 도쿄, 런던, 베를린, 시카고를 세계 6대 마라톤이라고 불렀고, 지금은 시드니까지 추가해서 세계 7대 마라톤이라들 하죠. 이 모든 대회를 서브 3(3시간 이하)로 완주한 사람이 국내에 딱 2명 있어요. 그런데 이분들의 기록이 2시간 50분대거든요. 제 평균 기록이 2시간 40분대인데, 이 기록을 그대로 잘 유지하면서 일곱 도시의 모든 코스를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완주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세 번째 7대 마라톤 서브 3 완주자가 되면서 동시에 7대 마라톤 완주 최고 기록 보유자가 되는 거죠. 그리고 그 도시를 달리는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일곱 도시의 마라톤을 쭉 연결된 플레이 리스트로 선보이고 싶어요. 그게 제 가장 가까운 마일스톤이에요.

기록이란 무엇인가요?

마라톤에 있어서 기록은 단순한 숫자가 아녜요. 기록은 제 움직임에 대한 기억이고, 제가 성장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지표이며, 제가 성장할 수 있도록 등 떠밀어주는 원동력이죠.

2시간 30분 25초가 최고 기록이죠. 2시간 30분의 벽을 넘기 위한 그 25초가 정말 힘들다는 걸 형석님을 보면서 알았어요.

40km 지점까지만 해도 안전하게 ‘229’(2시간 29분) 안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2km에서 저체온증과 저혈당이 오더라고요. 체력이 한 번 바닥이 나버리면, 마치 연료가 바닥난 자동차처럼 아무리 엔진을 돌리려 해도 돌지 않아요. 거기서부터는 정말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어요. 레이스가 끝나버린 거죠. 아무래도 컨디션 관리에도 실패를 했었던거 같고, 아직 229를 들어가기엔 실력이 조금 부족했었나 봐요. 주변에 다른 엘리트 감독님들이 모두 저보고 살을 좀 더 빼래요. 지금 체중이 너무 많이 나간대요.(웃음)

여기서 더 빼요?

보통 ‘키빼몸’을 얘기하는데요, 일반인이라면 110정도가 가장 이상적이고 보기에 좋다고 해요. 그런데 제 기록의 영역대에서 뛰시는 분들은 전부 키빼몸이 115나 120이에요. 반면 저는 107이나 108정도의 키빼몸으로 대회를 뛰거든요. 115인 사람보다 7~8kg이나 많은 체중을 가지고 뛰고 있다는 얘기죠. 그래서 에너지 소비가 너무 많고 체력 고갈이 너무 빨리 오나 봐요. 체중감량이 제 마지막 퍼즐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인생이 흘러온 과정을 보니, 돈을 쫓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맞아요. 사실 돈을 쫓았다면 지금 여기서 이런 걸 하고 있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저 좋아하고 재밌는 걸 하려고 하다 보니 돈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형석님의 닉네임인 ‘스톤’을 떠올리면 다들 아식스를 말해요. ‘스톤은 아식스’라는 등식이라도 있는 것처럼요.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2021년도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다른 브랜드를 주로 신었는데, 그해에 아식스에서 메타스피드라는 플래그십 제품이 나왔어요. 그 제품을 착용한 선수들을 인터뷰하는 캠페인 영상을 제가 맡아서 제작하게 되었죠. 그때 제가 ‘저도 러닝해요’라고 하니까 러닝 코치님께서 저를 좀 봐주셨는데, 제가 평발이고 아치가 무너져서 내전이 생겼다고 지적해주시면서 젤카야노를 교정용으로 추천해주셨어요. 그때부터 러너로서 아식스와의 인연이 시작됐죠. 아마추어 선수로서의 인연은 2024년도부터 시작됐어요. 동아마라톤을 준비하면서부터죠.

오늘 신고 뛴 신발은 어떤가요?

이번에 새로 나온 메가블라스트라는 모델인데, 이것도 좀 기념비적인 신발 같아요. 카본 플레이트가 안 들어가 있는데도 미드솔 쿠션의 성능만으로 카본화만큼의 반발력을 내줘요. 게다가 안정성까지 높으니까 빠른 속도의 장거리를 뛰거나 할 때 전혀 부담 없이 마음껏 신고 뛸 수가 있어요. 이번에 시드니 마라톤에서도 이거 신고 2시간 40분을 뛰었으니까 그 성능은 충분히 입증했다고 생각해요. 뛰고서 데미지도 거의 없어서 바로 다음 날 훈련을 연결해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좋았어요.

앞으로 러닝을 30년 더 하면 무슨 일들이 벌어질까요?

기록을 목표로 훈련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부상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특히 마라톤은 42.195km나 준비하다 보니 훈련 과정에서 무리를 좀 하면 꼭 가장 약한 곳이 고장나죠. 이번에 발목을 부상당하고 회복하면 다음번엔 후경골근(정강이뼈 인근을 지나는 근육, 신스프린트)을 부상당하고, 거기가 좀 나아졌다 싶으면, 또 발바닥이 다치기도 하고. 밸런스가 깨지다 보니 돌아가면서 다치게 되는데, 저는 그걸 성장통이라고 생각해요. 회복 과정에서 다친 부위는 더 강화되기도 하고 이 성장통은 계속 도는 거 같아요. 저는 어차피 찾아오는 부상이라고 한다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대응하고 계속 나아가면 되는 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30년 뒤에는 누구보다 강해진 몸과 쌓인 노하우로 더 성장한 모습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JDZ CHUNG
  • hair & makeup 스텔라심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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