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성해나는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활자 속에 갇힌다"고 말했다
두 번째 소설집 <혼모노>로 지난 다섯 달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소설가 성해나가 말했다. 어떤 인물이든 작가가 잘 안다고 생각하고 써내는 순간 활자 속에 갇힌다고. 그 말은 소설뿐 아니라 삶에서도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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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의 치기를 벗고, 이십대의 애살에서 겨우 벗어나면, 삼십대에 인생의 첫 절정기가 찾아온다. 한국 최초의 남성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에스콰이어>는 존 레논이 ‘Imagine’을 발표하고,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펴내고, 데이미언 셔젤이 <라 라 랜드>를 찍은 바로 그 삼십대에, 올해 처음 당도했다. 2025년 10월에 맞은 서른번 째 생일을 자축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눈부신 성취를 이룬 절정기의 삼십대, ‘프라임 서티즈’(Prime 30s) 열 명을 만났다.

니트 아크네 스튜디오. 이너 슬리브리스, 팬츠, 벨트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등단할 때 스물다섯 살이었나요? 이후 세 권의 소설 단행본을 발표했고, 그중 한 권인 <혼모노>로 베스트셀러 차트를 지배 중입니다. 자연인 성해나로, 작가 성해나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소설 바깥에서의 저는 때가 좀 많이 묻었죠. 등단했을 때는 20대였고 막 졸업한 때였어요. 뭘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냥 모든 걸 낙관적으로 봤고, 모든 사람을 좋게 봤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저는 늘 눈에서 하트가 나오는 상태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요?
그때처럼 모든 것, 모든 사람을 좋게 보려 노력하지만, 어려워요. 예전보다 경계심도 많아졌고, 날카로워졌고, 염세적으로 변했죠. 내 안에 있던 동화책이 이젠 사라졌구나.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소설가로서는요?
최근에 <혼모노>로 제 소설을 처음 접한 분들은 아마 제가 시류를 잘 타고, 운이 좋은 작가라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그런데 그동안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녹록지 않았어요. 일단 2019년에 등단하고 나서 3년 동안 청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아무도 청탁하지 않은 소설을 써서 문예지 등의 지면에 투고했지요. 그 과정에서 반려당한 원고도 정말 많았어요. 첫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은 거의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게 투고했던 작품들로 묶인 거예요.
와…. 그런 줄은 몰랐네요.
투고를 여러 곳에 했는데 내주는 문예지가 없어서 미발표작인 상태로 실린 소설도 있어요. 게다가 그 소설 모음집 자체도 출판해달라고 투고한 거예요. 이번 소설집에서 '혼모노'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도 투고했다가 반려당했던 작품이고요.
너무 재밌고 좋은 소설들인데, 진짜 속상했겠어요.
정말 속상했죠. 뭘 잘 몰라서 그저 계속 기회를 엿보며 썼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용기도 생겼고, 독기도 생겼어요. 그전엔 쓰기 전부터 겁을 많이 먹었거든요. 소설가라면 누구나 쓸 때 윤리적 갈등이나 고민을 해요. ‘여기까지 다뤄도 될까, 이걸 써도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주저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경계를 좀 자유롭게 넘나들려고 하고, 벽을 세우지 않으려 해요. 쓸 수 있는 것과 쓸 수 없는 것을 나누지 않고, 쓰고 싶은 걸 쓰려고 노력해요.
지금은 정말 많은 사람이 작가님의 소설을 읽고 있죠.
그것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더라고요. (작은 목소리로) 악플이 이전보다 많아졌어요.
저를 포함해 좋은 평가가 훨씬 많은 것 같은데요.
사람은 부정에 약하잖아요. 보통 인간은 부정적인 정보를 긍정적인 정보보다 5배 더 크게 감각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보편의 인간인가 봐요.
처음으로 완결 지었던 소설이 뭔가요?
이 질문은 처음 받아보는 것 같아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소설을 쓴 기억이 있어요. 소설이라고 하기 좀 부끄럽죠. 지금 생각해보면 원고지로 한 50매 정도 됐어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에 관한 소설이었어요.
엇! 등단작인 ‘오즈’?
정확하게 중학생 때 쓴 소설이 ‘오즈’가 된 건 아니지만, 아마도 그 주제의식이 제 마음속에 계속 짐처럼 남았다가 쓰게 된 것 같아요.
중학생 때 마음에 심은 씨앗이 10년 후에 꽃으로 피었네요.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소설을 써보면 좋겠어요. 이야기가 씨앗의 상태로 의식 속에 달라붙었다가 언젠가 태어나는 과정이 정말 재밌잖아요. 못 태어나는 경우도 있지만요.
맞아요, 맞아요. 바로 나오기도 하지요. 그런데 ‘오즈’와 중학생 때 쓴 그 소설은 사실 소재만 비슷하고 완전 다른 소설이기는 해요.
이번에 거의 거꾸로 거슬러가며 역연대순으로 작가님의 작품을 읽다 보니 많은 이들이 소위 소설의 ‘중심부’라 부르는 건 변하지 않은 반면, 그걸 쓰는 형식과 스타일은 정말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중심부라는 단어가 ‘왜 쓰는가’에 대한 소설가의 고찰을 말한다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 맞아요. 그러나 어떻게 쓰는가, 또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많이 변했어요. ‘어떻게’는 늘 변하는 것 같아요. 매번 그래요. 왜냐하면 등장하는 인물의 성별, 세대, 계급이 다르니까요. 그 인물들에게 맞게 변주를 계속 해보는 거죠.
왜 쓰는가에 대한 답은요?
그건 정말 매번 같아요. 전 늘 “사회의 질병을 함께 앓는 사람이 작가”라고 말해왔어요. 내가 그리는 인물들의 질병을 나도 독자도 같이 앓아보면서 의문을 가져보자는 거죠. 이 사회에.
그럼 아까 말한 스타일의 변화는 계기가 있었나요?
계기가 된 작품이 따로 있다고 말하긴 좀 힘들고, 첫 소설집을 냈을 때부터 계속 저만의 인장을 찾아 헤맸어요.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의 특징적인 스타일을 인장으로 갖는데, 저만 그게 없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소설 몇 개를 써보면서 깨달았어요. 제게는 인장이 아니라 탁본의 재주가 있다는 걸요. 나는 고유한 스타일로 세상을 써낼 순 없지만,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과 그들의 삶은 정교하게 옮겨 적고 찍어내고 흡수하는 힘이 있다는 걸요. 다른 사람의 인장을 부러워하지 말자. 난 탁본이 있으니까.(웃음) 그렇게 자기 객관화를 하고 좀 바뀐 것 같아요. 소설을 쓸 때의 주저함도 사라지고, 소설을 쓰는 태도도 바뀌었어요.
그런데 전 오히려 <혼모노>에 실린 작품들이었다면 블라인드 리딩을 해도 성해나의 작품은 10개 중 8개 정도 가려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인장이 있는데….
(웃음) 저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찍어내는 힘으로 버티자’라며 썼거든요.
작가님의 소설은 정말 빨리 읽히는 특징도 있습니다. 빨리 읽히는 소설일수록 느리게 써진다는 얘기를 소설가들에게 자주 들었어요.
저 역시 그래요. 미문은 못 쓰더라도, 좀 투박하더라도 정문으로 쓰자는 마음으로 쓰거든요. 잘 읽힌다는 건 그만큼 읽기 쉽게 쓰였다는 거고, 그렇게 쓰려면 정말 수십 번을 고쳐야 해요. 어제 쓴 걸 오늘 고치고, 오늘 쓴 걸 또 내일 고치고.
어떤 식으로 퇴고해요? 다 쓰고 처음부터 쭉 퇴고하는 작가가 있고, 한 페이지 쓰고 다음 페이지 쓰기 전에 앞에 쓴 걸 퇴고하고 나서야 쓰는 작가들이 있지요.
전 두 가지 방식을 다 하죠. 쓸 때마다 전날에 쓴 걸 고치면서 앞으로 나가고 그렇게 다 완성한 후에 처음부터 다시 다 고쳐요. 저는 소설이 하나의 집이라고 한다면 제가 지은 집이 통풍도 잘 되고 단열도 잘 됐으면 좋겠어요. (창을 닫으면 단열이 잘 되면서도) 창을 열었을 때 통풍이 잘 되는 집들은 구조부터 정교하게 짜여 있잖아요. 저는 소설에서 서사나 문장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이야기 안에서 문장들이 좀 매끄럽고 시원하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정교하게 지으려고 해요.
‘통풍과 단열’로 소설집을 하나 내도 될 것 같은데요?(웃음)
건축하시는 분들이 많이 사실 것 같아요.
언젠가 인터뷰에서 작가님이 소설 쓰기를 운전에 빗대 얘기한 적이 있어요. 소설 쓰기가 주행이라면 언제 브레이크를 밟는지가 궁금해요.
저뿐 아니라 보통 차간 거리가 너무 좁아질 때 또는 앞에 사람이 지나가거나 지나갈 것 같을 때 브레이크를 밟잖아요. 그걸 소설 쓰기로 옮기면 인물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질 때 저는 브레이크를 밟아요. 거리를 두려고요. 제가 어떤 인물을 다 안다고 판단하는 순간, 그 인물이 자연스럽게 소설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활자 속에 갇혀버려요.
어! 맞아요. 그렇죠. 누군가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그 인물이 기호화되지요.
맞아요. 어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내 안에만 고여 있는 사람이 돼버려요. 그래서 저는 쓸 때마다 어떤 인물에 대해 알 것 같다 싶으면 제 자신에게 ‘알긴 뭘 알아’라며 브레이크를 걸어요.
저희 잡지가 올해 30주년이거든요. 서른이 되었을 때 어떤 생각을 했어요?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한 번도 10대나 20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 저는 그때 너무도 미숙했고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고단했거든요. 10대와 20대는 또래의 압력이 너무 강한 시기이기도 해요. 저만 타인의 압력을 느끼는 게 아니라 타인도 나에게 그 압력을 느끼는 걸 체감하지요. 서로 변변치 않은데 그 변변치 않음 안에서 갈등하는 게 좀 힘들었어요.
스물보단 서른이 낫다.
훨씬 낫죠. 늙는 게 좋아요.
Credit
- PHOTOGRAPHER 이규원
- STYLIST 박선용
- HAIR & MAKEUP 권호숙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김동희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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