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스트의 김도형 바텐더는 "바에서 제일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이라고 했다

제스트의 오너 바텐더 김도형은 새로움을 좇지 않는다. 지속가능성, 업계 문화,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행복. 진짜 중요한 것을 고민하다 보면 새로움은 따라온다.

프로필 by 오성윤 2025.09.22

십대의 치기를 벗고, 이십대의 애살에서 겨우 벗어나면, 삼십대에 인생의 첫 절정기가 찾아온다. 한국 최초의 남성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에스콰이어>는 존 레논이 ‘Imagine’을 발표하고,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펴내고, 데이미언 셔젤이 <라 라 랜드>를 찍은 바로 그 삼십대에, 올해 처음 당도했다. 2025년 10월에 맞은 서른번 째 생일을 자축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눈부신 성취를 이룬 절정기의 삼십대, ‘프라임 서티즈’(Prime 30s) 열 명을 만났다.


재킷, 팬츠 아미. 셔츠 쿠어.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 팬츠 아미. 셔츠 쿠어.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어제 바텐더를 다룬 고전 영화 <칵테일>을 다시 한번 봤어요. 1988년 작품인데, 그때 묘사한 걸 보면 지금의 바텐더와는 완전히 다른 직업이더라고요.

맞아요. 그때는 바텐더 하면 술 많이 마시고, 여자 잘 꼬시고, 그런 이미지가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저희 팀만 봐도 정반대로 다 별로 재미도 없고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는 느낌이라서.(웃음) 실제로 제가 이 일을 해온 15년 동안에도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느껴요.

긍정적인 변화일까요?

그럼요. 사실 사람들에게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는 업계였잖아요. 그동안 쌓아왔던 잠재력이 빛을 발하면서 이제야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주목을 받는 지점들이 있다고 봐요. 일단은 다양성이 넓어졌다는 점만 봐도 긍정적인 일이고요.

제스트는 작년 ‘월드 베스트 바’에서 9위, ‘아시아 베스트 바’에서 2위를 기록했어요. 국내 바 신에서 전례 없는 성적인데,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그게 저희 힘만으로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국내 바 문화가 함께 성장하고, 선배님들이 길을 잘 다져놨기 때문에 저희가 기회를 얻은 거죠. K팝을 예로 들면 일찍이 ‘아시아의 별’ 보아가 있었고, ‘월드 스타’ 비가 있었고, 그 전후에 다양한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BTS가 나올 수 있었던 거잖아요. 그 지점에 가장 큰 의미를 둬요. 저희가 어떤 지점을 찍었다는 거. 지금 바텐더를 시작하는 친구들이 저희를 보면서 목표를 더 높게 세울 수 있을 거라는 거.

재작년에는 월드 베스트 바 18위였어요. 이례적인 상승세인데, 그만큼 제대로 조명을 받은 결과일까요, 아니면 제스트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걸까요?

둘 다 있겠죠.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한몫할 테고, 저희 팀도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고요. 제 아들이 지금 다섯 살인데, 제스트가 딱 그런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하루하루 깜짝 놀랄만큼 달라지는 시기. 더 많은 이야기와 가치를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팀도 계속 커지고 있고요. 얼마 전에는 랩(Lab) 공간도 꾸렸어요.

연구 공간을 만들었군요. 해외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지금 건물 위층에 공간을 얻어 새로운 영업장도 준비 중이에요. 아직 어떻게 활용할지 정하지 않았는데 일단 웨이팅하시는 분들이 편하게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결국 전부 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일이죠. 바에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거든요. 저희 팀원이 현재 18명인데, 바텐더가 일을 그만두는 이유는 사실 몇 가지 없어요. 이 일이 싫어졌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나머지는 최대한 내부적으로 해결하고 싶어요. 연구에 좀 더 몰두하고 싶다면 랩에서 관련 업무를 하게 해주거나,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면 저희 해외 브랜치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식으로요. 예를 들어 뉴욕 같은 도시는 바 신에서 워낙 상징적인 곳이기 때문에 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뉴욕지점 이야기를 오랫동안 하고 있어요.

해외 진출 같은 프로젝트가 직원 복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는 건 놀랍네요.

제 가장 큰 목표가 팀원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제스트가 그런 측면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지금도 매달 교육비를 지원하고 있어요. 많은 고민과 협업이 거기서 출발하고 있죠.

고객 입장에서 봐도 제스트는 전통적인 바의 업무, ‘손님에게 맛있는 음료를 만들어 주는 것’ 너머를 지향하는 느낌이 있어요. 바가 사회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을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칵테일을 잘 만드는 바도 있고, 손님 응대를 잘하는 바도 있죠. 그런데 요즘은 그런 측면이 상향 평준화되었고, 소비자들도 본인의 기호를 정확히 알고 있거든요. ‘왜 이 바에 와야 하는가’ 하는 명분을 만들어주는 게 이제 단순히 인테리어를 멋있게 하는 걸로는 어려운 거예요. 인테리어가 왜 그런 식으로 멋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 일종의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하죠. 저희는 그걸 ‘지속가능성’에서 찾은 거고요. 그래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줄인다든지, 국내 생산자들과 협업을 한다든지, 저희가 직접 밭에서 재배한 작물을 서브한다든지, 그런 측면에서 계속 새로운 고민을 하는 거예요. 그 콘셉트가 음료에까지 담겨서 완전히 다른 가치를 전할 수 있도록요.

시그너처 메뉴인 ‘Z & T’만 봐도 제스트가 ‘지속가능성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통해 뭔가를 만들어내는’ 곳이라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사실상 클래식 칵테일인 진토닉인데 그 안의 모든 요소가 새롭잖아요. 제철 식재료로 재증류한 진부터 직접 만드는 탄산수까지.

저희 모든 메뉴에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죠. 쓰레기 배출을 줄이고, 제철 식재료와 우리나라 술을 사용하고. 소비자가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게 탄산음료예요. 제스트는 토닉워터, 콜라, 콤부차 같은 음료를 전부 직접 만들어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저희가 탄산이 들어가는 칵테일을 매달 3000잔 정도 만들거든요. 그만큼 알루미늄 캔이나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거죠. 농장에 직접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직접 가면 패키지에 사용되는 쓰레기를 줄일 수 있잖아요. 유통 과정이 없기 때문에 가장 신선한 상태로 사용할 수 있고, 어떤 농부님이 생산했는지 저희가 알기 때문에 민트 하나에도 이야기를 담아 전달할 수 있고요.

처음 시작은 어땠어요? 5년 전 ‘서울 청담동에 제로 웨이스트를 기치로 내건 바를 차릴 거야’라고 했을 때는 말리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처음엔 조심스러웠고 걱정도 많이 됐죠. ‘제로 웨이스트’라고 하지만 어쨌든 저희가 쓰레기 배출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잖아요. 무엇보다 ‘웨이스트’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도 걱정이었고요. ‘너네가 줄인 쓰레기를 왜 내가 먹어야 하냐’ 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제로 웨이스트’를 아예 상호(제스트)에까지 넣어버리셨군요.

인테리어 측면에서 저희 바가 가진 가장 큰 차이점이, 백 바에 술이 없어요. 설계할 때부터 아예 술병이 들어가지 못하는 높이로 만든 거예요. 당연히 고민이 있었죠. ‘만약 제로 웨이스트라는 기치가 잘 안 풀리면, 그때 가서 그냥 술병들 올리고 다른 바처럼 운영할 수도 있지 않을까?’ 결론은,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물러설 곳을 만들어놓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제대로 하려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야 한다고 봤던 거죠. 다행히 영업을 해보니까 걱정은 기우였어요. 많은 소비자가 이미 제로 웨이스트, 지속가능성이라는 화두에 눈을 뜬 상태였죠. 이런 움직임에 관심을 기울이는 다양한 브랜드가 있었기 때문에 함께 협업하면서 커나갈 수 있는 여지도 많았고요.

제스트를 차렸을 때가 딱 서른이셨죠.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대부분의 바텐더가 꿈꾸는 게 자기 바를 오픈하는 거죠. 저도 10년 넘는 세월 동안 그 꿈을 꾸고 있었고, ‘그게 지금이다’ 하는 느낌이 딱 왔던 것 같아요. 그때가 팬데믹 시기였는데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싶더라고요. 고맙게도 같이하자고 했을 때 동생들도 따라와줬고. (제스트는 김도형을 필두로 우성현, 박지수, 권용진 4인의 바텐더가 공동대표로 차린 바다.) 그때 제가 가진 건 가족하고 팀원들밖에 없었거든요. 돈은 탈탈 털어서 다 써버렸고, 아이를 낳았고, 결혼을 했고, 제스트를 오픈했죠. 팀이 없었다면 절대 못 버텼을 거예요.

제스트는 20대 후반의 젊은 바텐더들이 일 마치고 모여서 나눴던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했다고 했죠. 뭉클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었어요. 라이트 형제 이야기처럼.

(웃음) 좋게 생각해주셔서 그렇지 별것 아니에요. 보통 직장인들이 그러잖아요. 퇴근하고 소주 한잔하면서 ‘나 이제 더는 못 해먹겠다’ ‘그만두고 치킨집이나 할까’ 그렇게 넋두리하는 거죠. 그러다가 ‘너 나중에 나랑 동업할래?’ 하는 이야기까지 가는 거고. 마음 잘 맞는 친구들과는 점점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겠죠. 그때 우리가 함께하면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지금 그렇게 새벽녘 술집에서 자기 꿈을 이야기하고 있을 젊은 바텐더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스물세 살 때였나, 호텔에서 막내 서버로 일할 때 한 선배가 물었어요. 요즘 무슨 생각으로 일하고 있냐고. 그냥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했더니 그 선배가 그랬어요. 너는 누군가의 꿈이라고. 호텔에 들어오기 위해서 계속 이력서를 넣는 사람도 있고, 대학에 들어가서 몇 년 동안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고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꿈의 자리일지도 모른다는 거죠. 제가 만약 지금 시작하는 바텐더에게 뭔가 전해야 한다면, 그 말을 하고 싶어요. 그런 마인드로 하루하루 책임감을 갖고 일하면 좋겠다고. 누군가의 꿈이 되어달라고요. 바 문화는 결국 바텐더들 스스로가 바꿔나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Credit

  • PHOTOGRAPHER 김성룡
  • STYLIST 이예진
  • HAIR & MAKEUP 김민지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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