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찰리 커크의 죽음

미국 발 개신교 복음 민족주의의 광풍이 몰아칠 것이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5.10.02

지난 9월 10일 유타주 오렘시에 있는 유타 밸리 대학교에서 터닝포인트 액션의 설립자인 개신교 복음주의 정치운동가 찰리 커크가 사망했다. “트랜스젠더를 옹호하는 건 하나님께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는 것”이라고 발언한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3000명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나는 이게 너무 이상하다. 유타의 대학에서 찰리 커크가 강연을 하는데 3000명이나 왔다는 사실이. 유타 밸리 대학교는 종교를 대학의 이념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70%의 학생이 후기성도 교회(몰몬교)의 일원이며, 개신교와 몰몬교는 반목한다. 심지어 커크가 사망하기 직전 한 몰몬교 학생은 “몰몬교가 개신교보다 역사적으로 더 정확하다”라며 종교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를 두고, 종교 탄생의 초기에 백인(니파이인)과 원주민(라만인)으로 구분하며 백인의 우위를 정당화해왔던 몰몬교의 사상과 뉴잉글랜드 백인들을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으로 규정해왔던 미국식 복음주의가 하나의 이해를 향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 교차의 현장에서 찰리 커크가 순교했다. 아마 나도 당신도 찰리 커크를 소셜미디어 관심 종자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그는 MZ세대 개신교도들의 우상이었다. 여러 대학에선 찰리 커크를 위한 밤샘 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커크의 사망으로 미국의 복음 민족주의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몰몬교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버몬트주 출신의 농민 조셉 스미스는 1820년경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나 계시를 받았으며, 1823년엔 천사 모로나이로부터 새로운 성서의 금판을 받았고, 이를 번역해 1830년에 출판했다. 그게 바로 ‘몰몬경’이다. 조셉 스미스는 1844년 6월 27일 일리노이주 카시지에서 반역죄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던 중 성난 폭도들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아마 그의 순교가 없었다면 몰몬교는 지금처럼 세계 각지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세계 종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몰몬과 기독교의 교차로에서 사망한 찰리 커크는 교파를 넘어선 순교자가 됐다. “이제 수백만의 찰리 커크가 들고 일어날 것이다” “이곳은 바로 순교자가 죽은 곳이다” 커크의 사망 이후 유타 밸리 대학교 학생들이 한 말이다. 복음민족주의는 생각보다 빠르다. 주말이면 청계천을 따라 뛰는데, 일요일엔 웬만하면 광화문 앞까지는 가지 않는다. 찬송가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정치 집회인 척이라도 하는 모습마저 버리고, 이제는 아예 대놓고 개신교 행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일요일이면 집회에 참석한 부모들을 대신해 아이들을 돌봐주는 돌봄 텐트마저 설치할 정도로 그 기세가 엄청나다.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아서 세례명도 있는 암브리시오(속명 윤석열)를 위해 태극기를 흔들며 기도 중인 그들을 보면 종종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이 들곤 한다. 찰리 커크가 사망하기 전에 참석한 마지막 행사 중 하나가 한국의 개신교 단체에서 주관하는 ‘빌드업 코리아’라는 이름의 종교 콘퍼런스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잘 없다. 나는 그동안 왜 개신교인들은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광화문 한복판에서 찬송가를 부르는지 궁금했는데, 이 콘퍼런스를 기획한 한 개신교인의 설명에서 그간의 궁금증이 해소됐다. 그는 “한국은 미국 군인들의 도움으로 자유국가가 되었으며,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미국의 건국 이념으로서의 성경적 가치를 우리나라에 이식해왔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자유국가 한국을 건국한 미국의 성경적 가치를 상징했던 찰리 커크는, 광화문의 순교자이기도 한 셈이다. 안전벨트를 꽉 매야 할지도 모르겠다. 미국발 개신교 복음 민족주의라는 기묘한 태풍이 곧 상륙할지도 모르겠다. 정말이다. 이글을 쓴 날, 광화문 시위에서 이미 누군가 ‘우리가 찰리 커크다’를 외치고 있었다.

Credit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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