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논비건이 더 많이 찾는다는, 어나더 레벨의 비건 레스토랑 6

비건은 물론 채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 폭넓게 포섭하는 비건 레스토랑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색다른 시선과 감각적인 분위기, 무엇보다 완성도 높은 맛으로. 지극히 엄격하면서도문을 활짝 열어둔 서울의 비건 레스토랑 6곳.

프로필 by 오성윤 2025.10.31
청무화과 샐러드. 우리 땅에서 난 제철 채소를 사용해 계절감을 담아내는 레귬의 아이덴티티가 잘 드러나는 메뉴다.

청무화과 샐러드. 우리 땅에서 난 제철 채소를 사용해 계절감을 담아내는 레귬의 아이덴티티가 잘 드러나는 메뉴다.

LéGUME

@legume.seoul /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652, 207-2

레귬은 스와니예의 오픈 멤버 출신 성시우 셰프가 3년 전 문을 연 ‘100% 식물 기반 퀴진’이다. 운영한 지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미쉐린 1스타를 받았는데, 비건 레스토랑이 미쉐린 스타를 받은 사례는 무려 아시아를 통틀어 레귬이 최초다. 심사평은 이랬다. “누구나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식사다. 단지 식물만을 이용한다는 특징이 있을 뿐.” 성시우 셰프는 그에 대해 식물성 재료만으로 독창적인 맛을 낸다는 점을 높게 평가해준 것 같다는 감상을 내놓았다. “저희는 단순히 동물성 재료를 배제하거나 기존에 알던 맛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제철 채소가 가진 풍미를 극대화하는 조리법이나 재료 조합을 연구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맛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거든요.” 물론 고기, 버터, 달걀, 우유를 일절 쓰지 않고도 놀라운 미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그가 들이는 ‘노력’이란 말처럼 간단치 않다. 그는 질 좋은 제철 식재료, 독특한 매력을 가진 희소 작물을 찾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직접 전국의 농가를 찾아다니며 끊임없는 연구와 테스트를 통해 메뉴를 개발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상품성’이 없다고 판단되어 버려질 운명의 규격 외 채소를 많이 활용한다는 점이다. 맛, 향, 식감 면에서 새롭거나 오히려 시중에 판매되는 것보다 더 뛰어난 경우가 있기도 하거니와, 레귬의 음식들을 통해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저희는 밸런스를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식사 경험에는 재료 선정부터 재료의 유통 과정, 조리법, 플레이팅, 스토리텔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요소가 서로 얽혀 있거든요. 그 모든 요소가 균형 있게 어우러질 때 비로소 저희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미식’을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병아리콩, 표고버섯, 고사리로 끓인 채수에 소면을 더한 국수 메뉴인 고사리 클래식.

병아리콩, 표고버섯, 고사리로 끓인 채수에 소면을 더한 국수 메뉴인 고사리 클래식.

와일드하게 요리하는 모습을 내외부에서 바라볼 수 있는 구조의 매장.

와일드하게 요리하는 모습을 내외부에서 바라볼 수 있는 구조의 매장.

GOSARI EXPRESS

@gosariexpress / 서울 중구 퇴계로85길 12-10

고사리 익스프레스는 서울중앙시장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예쁜옷집’과 ‘수입 토탈 패션 초이스’ 매장 사이에. 가게 전면에는 붉은색 그라피티가 뒤덮여 있고, 미닫이문을 열면 홍콩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작은 국수 가게가 모습을 드러낸다. 벽면 장식, 식기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게 하나도 없지만 누군가 그 앞에서 ‘힙하다’는 감상을 내놓으면 김제은 오너 셰프는 어리둥절해한다. “사실 저는 저희 가게가 클래식의 정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인테리어 요소들도, 음식도요. 힙하다는 건 어쨌든 유행을 탄다는 건데 저는 그런 건 싫거든요.” 고사리 익스프레스의 음식들이 지향하는 건 확실히 ‘콘셉트’보다는 ‘근본’에 가깝다. 오래된 시장 국숫집의 국물 맛 같은 근본 말이다. 고사리 익스프레스는 김제은 셰프가 운영하고 있는, 채식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푸드 스타트업 ‘배드캐럿’의 첫 외식 브랜드다. 배드캐럿은 밀키트 사업으로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는데, 역시나 직접 개발한 ‘고사리 오일 소스’가 주역이었다. “사실 저는 비건이 아니에요. 우연히 고사리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걸 채식으로 확장한 경우죠.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부도 많이 하고 지속가능성에 관련한 활동으로 당위성을 붙여나가고 있어요.” 독특한 인테리어의 큰 축을 담당하는 입구 벽면의 레고 나무 숲은 사실 일종의 적립 쿠폰이다. 탄소발자국으로 계산했을 때 고사리 익스프레스의 음식 한 그릇을 먹으면 나무 0.7그루를 구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시각화하면서 나뭇잎을 다 모은 손님에게 경품을 주는 장치이다. 그리고 판매량에 맞춰 숲을 지키는 단체에 후원도 하고 있다. 이런 고민과 실천, 맛 앞에서 ‘힙하다’는 평가는 아무래도 좀 박하지 싶다.


몽크스부처 도산점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알배추 크림 뇨끼 & 그릴드 브로콜리니.

몽크스부처 도산점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알배추 크림 뇨끼 & 그릴드 브로콜리니.

직관적으로 화이트 와인을 부르는 맛의 애피타이저 차지키 허니멜론 오이 세비체.

직관적으로 화이트 와인을 부르는 맛의 애피타이저 차지키 허니멜론 오이 세비체.

몽크스부처는 비건식이지만 비건식 같지 않은 음식, 비건 레스토랑이지만 비건 레스토랑 같지 않은 분위기를 품고 있다.

몽크스부처는 비건식이지만 비건식 같지 않은 음식, 비건 레스토랑이지만 비건 레스토랑 같지 않은 분위기를 품고 있다.

MONKS BUTCHER

@monksbutcher /서울 강남구 언주로168길 19, B1

비거니즘의 흐름, 새로운 기술의 등장 및 발달과 함께 서울 안에서도 무수한 비건 레스토랑이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2017년 오픈해 8년째 기복 없이 성업 중인 ‘국내 최초의 비건 다이닝’ 몽크스부처의 존재는 업계 내에서 아주 이례적인 축이었다는 뜻이다. 심지어 작년에는 도산공원에 새로운 지점을 내기도 했다. 이태원점은 좀 더 캐주얼한 성격으로 바뀌었고, 기존 이태원점에서 선보이던 메뉴는 좀 더 발전된 버전의 ‘비건 퀴진’으로 도산점에서 이어받았다. “도산점을 낼 때 전체적으로 리브랜딩을 진행했죠.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그냥 저희의 색깔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방향을 택했다는 거예요. 예전만 해도 ‘비건’이라는 키워드가 어떻게 손님들에게 더 잘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해야 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익숙한 키워드가 됐잖아요. 굳이 그걸 설득하기보다 저희가 좋아하는 것들을 구현하는 데에 집중한 거죠.” 이문주 대표의 설명이다. 사실 몽크스부처는 처음 1호점이 문을 열었을 때부터 비건 레스토랑의 전형성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감각적인 브랜딩으로 주목받았던 곳. 음식의 결도 마찬가지다. 우선 몽크스부처의 키친 스태프 중에는 비건이 없다. 비건을 지향하다 보면 입맛이 바뀌기 마련인데, 그렇게 치우치면 대중성을 잡기 어렵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저희는 원래 들어가야 할 동물성 재료를 어떻게 다른 것으로 대체할까 고민하지 않아요. 그렇게 접근하면 사실 맛 차원에서 더 낫기가 힘들거든요. ‘빼기’ 대신 각 재료 자체에 집중하고 거기에 ‘더하기’를 하는 개념으로 다가가죠.” 이문주 대표는 실제로 몽크스부처의 손님 역시 대부분이 논비건이라고 했다. 비건 레스토랑이니 당연히 비건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주요 역할은 좀 더 폭넓은 대중에게 슬쩍 채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팽이버섯을 절묘한 식감으로 튀겨낸 유린팽이, 된장을 활용한 소스로 구수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살린 된장 짜장면.

팽이버섯을 절묘한 식감으로 튀겨낸 유린팽이, 된장을 활용한 소스로 구수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살린 된장 짜장면.

ALT.A

@alt.a_official / 서울 용산구 보광로 109

알트에이는 그 카테고리부터 흥미롭다. 자그마치 ‘비건 중식당’이다. 중식당이라면 한국인이 그 맛을 아주 엄격히 비교하고 평가하는 분야 중 하나일 텐데, 놀랍게도 알트에이의 리뷰는 언제나 호평 일색이다. 비건은 물론, 논비건에게서도 말이다. 그 비결을 묻자 이선녀 매니저는 “기본적으로 음식이 맛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식당이 중식당이라고 하잖아요. 그만큼 남녀노소 좋아하는 보편적 음식이라는 뜻인데, 알트에이의 음식은 좀 더 가볍고 소화가 잘되는 느낌이라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이렇듯 친숙함 위에서 맛까지 잘 구성한 비건 푸드의 효과는 다음과 같다. 비건인 손녀가 할머니를 모시고 오고, 곧 할머니가 단골이 된다. 그리고 자연스레 가족 모임 장소가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부분은 메뉴 구성이다. 알트에이의 메뉴판에는 대체육을 사용한 비건 요리, 그리고 아예 채소만 활용한 요리가 나뉘어 있다. 대체육을 사용한 ‘유린육’과 고기 대신 팽이버섯을 사용한 ‘유린팽이’처럼. 사실 알트에이는 대체육, 대체당 등 대체식품 개발업체인 알티스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애초에 자사의 비전과 기술력을 선보이기 위한 공간의 의미가 컸다. 하지만 운영하면서 고기와 유사한 식감 자체에도 거부감을 갖는 비건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아예 채소만을 사용한 메뉴도 구성하게 된 것이다. “저희 매장을 찾는 모든 분이 만족하고 가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인 거죠. 한 사람도 빠짐없이. 폭넓게 구성한 주류 리스트도 그런 의미이고요. 와인, 맥주, 백주, 칵테일, 소주, 막걸리, 논알코올 맥주까지 다양하게 준비해놓고 있거든요.” 물론 주류 역시 비건 인증을 받았거나 제조 과정상에서 비건 프렌들리한 제품만 취급한다.


비건 피자의 근본 메뉴라 할 수 있을 버섯 피자, 그리고 위어도우의 시그너처 메뉴라고 할 수 있는 바질페스토 연근 피자.

비건 피자의 근본 메뉴라 할 수 있을 버섯 피자, 그리고 위어도우의 시그너처 메뉴라고 할 수 있는 바질페스토 연근 피자.

WEIRDOUGH

@weirdough.friends / 서울 서대문구 증가로 80, 201

피자는 사실 비건을 접목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진 음식이다. 정통 화덕 피자의 도우에는 애초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지 않으며, 기본적으로 무엇을 위에 올리건 그 풍미를 끌어안는 형태의 요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정원 오너 셰프가 피자를 택한 건 단순히 용이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건을 지향하며 본인이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 중 하나가 피자였기 때문이다. “제가 요리를 시작한 이후에 비건이 되었거든요. 피자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비건 피자를 먹으려니까 늘 뭔가 아쉬웠던 거죠. 무엇보다 치즈의 빈자리가 크니까. 그래서 직접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위어도우의 피자에는 박정원 셰프가 직접 캐슈너트로 만든 치즈를 올린다. 물론 그것만으로 일반 피자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성지로 떠오른 건 아니다. 매일 정성스럽게 반죽하고 발효해 이탈리아인 손님들에게도 찬사를 받는 도우의 품질, 투명하고 건강하게 작물을 키우는 농부들에게서 직접 들여오는 식재료, 휴무일에도 멈추지 않는 메뉴 개발로 늘 큰 기대를 모으는 계절 메뉴 ‘스페셜 피자’까지,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 “사실 논비건에게도 매력적일 수 있는 곳이 되고자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부분이 있어요. 국내의 비건 시장은 그렇게 크지 않거든요. 제 지향성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살아남아야죠. 그래야 하나의 대안으로 존속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위어도우는 주류 메뉴도 충실히 갖추고 있다. 맥주, 와인, 하이볼, 위스키까지. 면면이 누군가의 취향으로 섬세하게 고른 티가 나는데, 바로 박정원 셰프 본인이 애주가이기 때문이다. “저는 맛있는 걸 먹을 때 술이 없으면 너무 아쉽더라고요. 보통 피자 하면 맥주나 와인을 곁들여 드시는데, 개인적으로는 위스키를 추천해요. 의외로 정말 잘 어울려요.”


크루아상 샌드위치와 화덕 버섯구이 & 장단콩 후무스.

크루아상 샌드위치와 화덕 버섯구이 & 장단콩 후무스.

오픈 키친과 포근한 브런치 카페 같은 홀을 가진 유알티의 실내.

오픈 키친과 포근한 브런치 카페 같은 홀을 가진 유알티의 실내.

유알티는 매일 아침 우리밀로 만든 다채로운 100% 비건 빵을 구워낸다.

유알티는 매일 아침 우리밀로 만든 다채로운 100% 비건 빵을 구워낸다.

URT

@urt_seogyo /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7길 34

유알티는 파주의 유명 비건 베이커리 카페 베지앙을 이끌어온 김아윤 파티시에와 남편 한형원 셰프가 서교동에 오픈한 ‘베이커리 & 이터리’다. 위치와 상호에 더해 몇 가지 변화가 더 있었다. 우선 ‘베지터블’ ‘비건’ 같은 표현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아, 비건 푸드인지 모르는 상태로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게끔 했다. 실제로 유알티가 영업을 시작한 지는 1년이 조금 넘었는데, 현재 매장을 찾는 손님 중 비건의 비중은 20%도 안 될 것으로 추산한다. 디저트가 중심이었던 메뉴 구성을 베이커리와 식사 중심으로 옮긴 부분도 큰 변화였다. 그 편이 김아윤 대표가 추구하는 비건을 지속하기에 좀 더 용이했기 때문이다. “디저트 영역에서는 달걀과 버터의 역할이 굉장히 커요. 동물성 재료 없이 만들려면 인공첨가물로 거의 분자 요리를 해야 하는데, 그게 지속 가능한 요리, 내가 하고 싶었던 요리일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더라고요.” 물론 베이커리 역시 달걀과 버터를 배제하기 어려운 분야다. 유알티에서 바게트나 사워도 같은 것만 내놓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페이스트리 기반 메뉴가 꽤 많으며, 크림이나 초콜릿으로 속을 채운 것들도 있다. 그 모든 걸 100% 식물성 재료로만 만들면서도 논비건의 호응을 얻는 비밀은 끊임없는 연구로 쌓은 노하우, 그리고 재료의 품질에 대한 집요함에 있다. “가게 한쪽에 재료들을 쌓아놓은 이유는 저희가 자랑하고 싶은 부분이라서 그런 거예요. 우선 우리밀인 백강밀을 사용하고, 설탕도 마스코바도 유기농 황설탕, 유기농 코코넛 슈거 같은 종류만 쓰죠. 장단콩을 비롯해 대부분의 농산물도 파주의 농가에서 직접 들여온 것을 사용하고 있고요.” 팟타이, 화덕 버섯구이, 고사리 들기름 파스타 같은 식사 메뉴도 유알티에 유명세를 안겨준 것들이다. 역시나 타협 없는 식재료의 품질, 그리고 애정 어린 고민과 연구가 큰 몫을 했을 테다.

Credit

  • PHOTOGRAPHER 박기훈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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