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우 셰프가 말하는 "나를 매혹시킨 '흑백요리사2'의 요리들"
에스콰이어 저널 : 셰프 장준우가 '흑백요리사2'의 요리들을 떠올리며 미식의 지평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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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밝히자면 <흑백요리사2>는 끝까지 보고 싶지 않았다. <에스콰이어>의 요청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영원히 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시즌 1도 3회까지만 보다 말았다. 묘한 거부감의 근원은 대세를 따르고 싶지 않은 반골 기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이 프로그램이 주는 적나라한 감정에 대한 불편함 탓이 컸다. 흔히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현대판 로마 콜로세움 경기에 비견한다. 원형 경기장에서 모든 걸 걸고 싸우는 투사들, 엄지손가락 방향 하나에 엇갈리는 생사, 그리고 환호하는 관중들. 아마도 요리와 관련 없는 보통 사람이었다면 열을 올리며 빠져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리의 세계를 탐구하고 현업에 있는 입장이어서일까. 아직 모르는 세계가 많다는 사실에 압도되고,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할 수 있을까’란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 요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뒤엉켜 만들어내는 아이러니 같은 것들이 떠올라 내내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흑백요리사2>를 재생하기 전까지는.
그럼에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흑백요리사2>는 잘 만들었다. 이전 시즌에서 보였던 감정의 과잉과 억지스러움은 많이 덜어지고, 편집이 깔끔해진 덕에 큰 불편함 없이 매 경연을 관람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우리 시대 음식의 현주소를 담고자 노력한 모습이 엿보인 라인업이다. 전통 한식부터 모던 한식, 대가라 불리는 이들의 중식, 과거의 영광을 담고 있지만 지금 보기엔 아련한 요리들, 그리고 소위 요즘 스타일의 핫한 요리까지. 접시 위에 오른 요리들은 각각의 개성을 넘어 시대를 투영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시선을, 아니 나의 오감을 가장 강렬하게 잡아끈 것은 극단적인 대척점에 서 있는 두 개의 접시였다. 하나는 ‘요리괴물’이 내놓은 극도로 절제된 아스파라거스였고, 다른 하나는 ‘술빚는 윤주모’와 임성근 셰프가 합을 맞춘 돼지갈비였다. 이 두 요리는 마치 미식이라는 거대한 지도의 양극단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처럼 보였다. 하나는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낯선 미래를, 다른 하나는 우리가 지나왔기에 너무나 잘 안다고 착각해 온 과거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요리괴물의 아스파라거스를 보자. 패자부활전이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가 택한 선택이다. 생존을 위해 가장 화려한 무기를 꺼내 들어도 모자랄 판에 그가 내놓은 접시는 의아하리만치 고요했다. 과정은 복잡하지만 막상 접시에서 만나게 되는 건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보여주는 아스파라거스다. 누군가는 ‘저게 무슨 요리냐’며 반문할 수도 있지만, 비싼 음식 깨나 먹어본 사람들은 안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 파인다이닝의 최전선이라는 걸.
현재 파인다이닝 신은 2010년대 초반 덴마크의 ‘노마(Noma)’가 쏘아 올린 거대한 유산 위에 서 있다. 2000년대 엘불리 시대의 분자 요리가 보여준 과학 실험 같은 변형과 해체의 유행은 이미 저물었다. 1차 경연에서 나온 분자 요리법의 사과 디저트가 시청자에겐 신기했을지 몰라도, 파인다이닝의 최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심사위원에게 냉소를 받은 이유다. 지금의 트렌드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재료가 가진 ‘본질’로의 회귀다. 이제는 더 이상 재료를 분자 수준에서 비틀지 않는다. 대신 재료가 가진 본연의 힘을 극한으로 응축시킨다. 겉보기엔 투박해 보일 정도로 물성을 드러내되, 그 안에 발효와 숙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시간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방식이다. 그간 인류가 쌓아온 요리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해 재료의 특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하느냐에 방점이 찍혀 있다.
요리괴물의 아스파라거스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아스파라거스라는 식물성 재료에, 빌 스톡(Veal Stock)이라는 동물성 감칠맛의 정수와 발효에서 오는 복합미를 품은 시오코지(소금 누룩)를 입혔다. 겉보기엔 미니멀리즘의 극치처럼 보이지만, 레몬 누룩 퓌레와 산초 잎, 판체타 등 정교하게 설계된 맛의 레이어와 구조를 통해 입안에서 전해지는 정보량은 맥시멀리즘에 가깝다. 불필요한 조리 과정이나 장식을 과감히 삭제하고 오직 맛의 핵심만을 남기는 방식은 현대미술처럼 불친절하지만, 제대로 구현된다면 그만큼 압도적이다.
1차 경연에서 탈락한 한 지인 셰프의 고백이 생각난다. 그동안 나름 한국에서 음식을 꽤나 트렌디하게 잘한다고 자부했지만, 요리괴물의 요리를 보곤 자신의 진짜 위치를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서울의 스튜디오에서 코펜하겐과 뉴욕의 현재를 목격하는 기분이란, 그에겐 실로 묘한 전율이었던 셈이다.
요리괴물이 보여준 미식의 최극단 대척점에 윤주모와 임성근 셰프가 합세해 만든 돼지갈비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내놓은 요리의 이름을 정확히 호명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돼지갈비가 아니라 뼈에 붙은 살을 포를 뜨듯 얇게 펴내어 칼집을 넣은 ‘박포갈비’였으며, 굽는 방식은 조선의 풍류객들이 눈 내리는 밤에 즐겼다는 ‘설야멱(雪夜覓)’의 재현이었다. 아마 대부분은 박포나 설야멱 같은 단어를 방송을 통해 처음 들었을 것이다. 이렇게나 우리는 한식에 대해 무지하다. 익숙하다는 착각이 도리어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방송 직후 호사가들은 설야멱을 두고 ‘고온과 저온을 오가며 고기를 연하게 만드는 한국식 수비드(Sous-vide)’라고 치켜세웠다. 언뜻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과잉 해석이자 오독이다. 설야멱 조리법의 근거가 되는 <규합총서>에는 ‘소고기를 구운 뒤 냉수에 담가 다시 굽는 것을 세 번 반복한 뒤, 기름장을 발라 구워야 연하다’는 말이 나온다. 의심 없이 읽으면 냉온 열충격에 의해 단백질 결합 조직이 파괴되면서 질긴 고기가 부드러워질 것만 같은 상상력이 발휘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고기의 조직은 얼리고 녹이는 정도의 충격이 아닌 이상 그리 쉽게 파괴되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서 ‘연하다’는 건 질긴 게 부드러워진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질겨지지 않게 관리했다’로 읽어야 말이 된다.
익는다는 건 근섬유가 수축된다는 의미고, 이는 근섬유 속에 있던 수분과 육즙이 밖으로 빠져 나온다는 말이다. 수분이 빠져 나가면 부드러움은 사라진다. 설야멱은 충분히 구워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지만, 속이 과도하게 익는 걸 막는 지혜로운 조리법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장시간 양념에 재워내는 화학적 연육 작용 없이도 박포갈비가 부드러웠던 건 노련한 기술자가 세세하게 낸 칼집에 더해, 더 이상 질겨지지 않게 설야멱 방식으로 고기의 시간을 통제한 덕이었다. 사실 놀랄 만한 요리는 아니지만, 이 접시는 우리가 얼마나 한식에 대해 무지한지,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자랑스러워할 만한 식문화 유산을 갖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온도계도 냉장고도 없던 시대에 사람들은 이미 열역학을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한식을 ‘손맛’이나 ‘정(情)’ 같은 모호한 감정의 언어로만 설명하려 든다. 하지만 박포갈비와 설야멱이 보여주는 한식의 기술은 우리 선조도 주변 나라 못지않게 ‘맛있게 먹는 기술’에 꽤나 진심이었음을 일깨워준다.
요리괴물이 우리를 이끌고 미식의 미래로 날아갔다면, 윤주모와 임성근 셰프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미식의 뿌리를 현재로 소환했다. 한식에는 아직도 우리가 제대로 읽지 못한 문장이 많다. 관심을 갖고, 오해를 걷어내고, 한식이라는 텍스트를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윤주모와 임성근이 차려낸 접시는 그 첫 문장으로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방송을 다 보고 난 지금, 나는 <에스콰이어>의 에디터에게 감사하고 있다. <흑백요리사2>는 단순히 예능을 넘어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시대의 선명한 식문화 기록물이었기 때문이다. 흑백의 승부는 끝났지만 식탁 위에서의 고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동안 궁금해하지 않았던 한식 세계의 문을 열어보고도 싶고, 글로벌 미식 최전선의 조형적 아름다움과 극대화된 풍미도 접시 안에 담아내 보고도 싶다. 셰프라는 직업이 이토록 괴롭고도 설레는 것임을 새삼 실감해 보는 밤이다.
경제지 기자에서 요리의 길로 들어선 장준우는 버티고개역 인근 남산타운에 있는 타파스 바 ‘어라우즈’를 운영 하는 오너 셰프다. 또한 <한국일보> <서울신문> 등에서 푸드라이터로 활동하며 음식 너머에 있는 맥락에 대해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장준우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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