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유명인이라면 배워야 할 정치적 발언의 원칙

언젠가부터 사회는 기계적인 중립만이 모두의 의무인 것 처럼 압박하고 있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6.03.25

2020년 1월, 영국의 코미디언 리키 저베이스(Ricky Gervais)가 사회자로 나선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코미디의 ‘선’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보여준 사례다. 저베이스는 수위가 높은 성적 농담과 시상식에 나온 유명 배우와 감독에 대한 조롱은 물론이고, 기업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애플TV 시리즈가 후보작에 올라 참석해있던 팀 쿡을 앞에 두고 “인간의 존엄성과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이 드라마는 중국에서 스웨트숍(sweatshop, 긴 노동을 하는 저임금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이 만들었습니다”라고 했다.

그 시상식에서 했던 저베이스의 발언이 코미디의 전설이 된 것은 농담의 강도가 높아서만이 아니다. 그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유명인들을 소재로 삼았고, 특히 그들의 위선을 꼬집었다. 상을 받게 될 배우들에게 오늘 상을 받으면 정치적 연설은 생략하라고 하면서 “여러분은 대중에게 훈계를 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기후 행동을 촉구하며 등교 거부 운동을 했던) 그레타 툰베리보다 학교에 출석한 날이 적은데, 현실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다고 정치적인 발언을 합니까?”라고 외쳤다.

그날의 일을 두고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 코미디언이 영화배우들에게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만 생각하면, 친트럼프 인사가 진보 배우들의 발언권을 제한한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당시의 상황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만 해도 유명 배우들은 물론이고, 기업들도 나서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과 대립각을 세우고 진보적인 가치를 옹호했다. 사실 저베이스가 조롱한 것은 안티 트럼프가 유행처럼 번지며, 모두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트럼프를 욕해야만 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트럼프는 돌아왔다. 지난 1년여의 분위기는 좀 더 심각하다. 기업과 연예인들은 진보적인 발언을 삼가고, 오히려 방향을 틀어 보수적인 가치를 옹호하고 있다. 니키 미나즈(Nicki Minaj)가 미국 내 대표적인 젊은 보수 단체인 TPUSA의 행사에 참여해서 JD 밴스 부통령이 젊은이들의 롤 모델이라고 추켜세웠고, 자신은 트럼프의 ‘넘버원 팬’이라고 자처했다. 더 나아가 트랜스젠더 아동 보호 정책을 비난하고, 기독교 민족주의적인 발언으로 과거의 진보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 던졌다.

기업의 태세 전환은 더 빨랐다.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워싱턴포스트의 사주인 제프 베이조스는 2024년 대선을 열흘 앞두고 워싱턴포스트가 준비한 카멀라 해리스 후보 지지 사설의 발행을 막았다. 트럼프 1기 때 “민주주의는 암흑 속에서 죽는다(Democracy dies in darkness)”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언론의 자유를 외치던 베이조스는 온데간데없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는 트럼프가 당선된 후 팟캐스트에 등장해 “기업 문화가 너무 ‘거세(neutered)’되었다. 공격성을 어느 정도 긍정하는 남성적 에너지가 기업에 필요하다”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와 문화를 따르겠다는 신호를 분명하게 보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트럼프가 대통령인 건 마찬가지인데 분위기는 왜 이렇게 판이하게 다를까?

미국에서 유명인이 한 발언이 문제가 되어 사과를 하거나 ‘캔슬’당할 때, ‘발언의 자유(freedom of speech)’를 이야기하며 부당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론의 자유’로도 번역되는 이 권리는 미국에서 헌법(수정 헌법 제1조)으로 철저하게 보호받는다. 따라서 미국은 증오 발언을 할 권리가 보호받는 독특한 나라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보호’란 정부가 형법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즉 일반 기업이나 소비자가 혐오 발언을 용인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기업에서 증오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임직원을 그날 바로 해고하는 일이 흔하다. 소셜미디어로 순식간에 바이럴이 되는 세상이고, 미국에선 사기업의 해고가 자유롭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전광석화처럼 움직인다.

여기에 미국식‘발언의 자유’가 지닌 양면성이 있다. 형법적으로는 어느 나라보다 발언의 자유를 보장받지만, 여론의 눈치를 보는 기업은 철저하게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본의 논리를 지켜야 한다. 트럼프가 두 번째 당선되기 전, 즉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 일론 머스크, JD 밴스 같은 사람들이 “보수는 발언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기업들이 진보적인 기준을 적용한다는 불만이었다. 머스크는 트위터를 인수해서 발언의 자유가 보장되는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 결과, 트위터는 극우의 가짜 뉴스가 확산되는 플랫폼으로 변했지만 적어도 증오 발언을 이유로 포스트가 삭제되거나 확산이 억제되는 사례는 줄었다.

트럼프 1기와 바이든 행정부 때 BLM(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정책을 내세웠던 구글, 메타, 아마존, 디즈니, 펩시, 타겟 등의 기업들이 트럼프 2기에 들어서면서 진보적인 정책을 포기하거나 대폭 줄이는 행보를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과거에는 진보적 사회 분위기에 올라타는 것이 기업 홍보에 도움이 되고, “장사가 되는” 행동이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기업에 대한 노골적 보복 방침을 밝히자 태도를 바꿨다. 자본주의하에서 기업이 가진 지상의 목표는 주주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므로, 이익이 된다면 진보적 가치를 표방하지만, 손해가 된다면 곧바로 포기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기업이 이윤에 따라 정치적 입장을 바꾸는 건 아니다. 성소수자와 인종 문제, 환경보호와 기후변화 같은 이슈에서 거침없이 진보적인 발언과 행동을 하는 유명 아이스크림 회사 벤 앤 제리스(Ben & Jerry's)는 공개적으로 트럼프의 행보를 비판 중이다. 두 공동 창업자 벤 코헨과 제리 그린필드는 모두 유대계지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에 항의하며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위치한 유대계 정착촌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지 않기로 선언하기도 했다. 애플이나 코스트코, JP모건 같은 기업들은 정치적 발언을 내지는 않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기업 내 DEI 정책을 지키고 있다.

자 다시 기업의 입장으로 돌아가보자. 기업인의 입장에선 정치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것은 이윤에 도움이 되는 행위일까? 그건 어떤 방향에서든 그렇다. 예를 들자면 포드 자동차의 창업자 헨리 포드가 대표적이다. 그는 1918년에 ‘디어본 인디펜던트’라는 지역 신문을 인수한 후, 몇 년에 걸쳐 유대인을 비방하는 기사를 꾸준히 발행했다. ‘유대인은 미국의 언론과 문화 산업을 장악해 미국 사회를 조종하며, 세계 금융을 지배하고 있다’는 이른바 ‘유대인 음모론’을 미국 사회에 퍼뜨린 장본인이 헨리 포드다.

그 시기 독일에서 권력을 키우고 있던 히틀러가 포드를 존경해서, 그의 책 <나의 투쟁>(Mein Kampf)에서 포드를 언급한 바 있다. 어느 정도로 존경했냐 하면, 1938년 독일이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을 포드에게 수여했을 정도다. 그는 미국 내에서는 ‘포디즘’이라 불리는 대량생산 체제를 확립한 인물로 존경받지만, 그의 정치적 발언은 제2차 세계대전부터 지금까지 큰 비판을 받는다. 기업이나 연예인은 본업에만 충실하고, 정치적 발언은 삼가는 게 좋다는 여론이 생긴 이유는 이런 긴 역사의 굴곡에서 나온 일반론이다. 유명인이라고 해서 더 많은 지식이나 더 나은 견해를 가진 것도 아닌데 왜 대중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당연하게도 유명인의 발언에는 힘이 있다. 유명인의 정치적 발언, 행동이라도 본인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경우 큰 공감과 지지를 끌어낸다. 가령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는 베트남 전쟁 징병에 응하는 대신 감옥을 선택하면서 “나를 검둥이라 부르며 차별하는 건 미국의 백인들이지, 베트남 사람들이 아닌데 왜 내가 그들을 죽이러 가야 하느냐”고 말했고, 그의 발언은 흑인 인권운동과 반전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여성 코미디언 엘런 드제너러스가 메이저 TV 스타로서는 처음으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을 때도 그렇다. 유명인이 커밍아웃할 경우, 사회적 인식도 바꾸지만 특히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긍정적인 자아상을 만들어 주고 중요한 롤 모델이 된다. 직업과 무관해도 사회·정치적으로 큰 파급력을 갖기 때문에 유명인이나 대기업이 나서서 영향력을 발휘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반대로, 이런 큰 영향력에서 기인한 대중의 기대는 기업과 유명인 모두에게 큰 부담이 되기도 한다. 미국 최고의 인기 맥주 버드 라이트는 2023년에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딜런 멀베이니와 협업한 캔을 선보였다가 큰 역풍을 맞아 시장 1위 자리를 내줘야 했다. 버드 라이트를 마시는 주 소비자층의 심기에 거슬렸던 것이다.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출신 뮤지션인 배드 버니는 트럼프의 푸에르토리코 정책(그는 푸에르토리코를 ‘쓰레기섬’이라 칭한 바 있다)에 반대하며 ‘반트럼프 연예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지난 2월 수퍼보울 하프타임 공연 무대에서는 “(북·중·남미) 우리는 모두 하나의 아메리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다소 미묘한 줄다리기를 펼쳤다. 미식축구(NFL) 팬 중 트럼프 지지자들과 대립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2025년 트럼프 앞에서 강렬한 메시지를 내놨던 켄드릭 라마와 배드 버니를 비교하기도 했다.

연예인의 정치적 입장 표명과 관련해 미국에서 모범답안처럼 언급되는 사람은 돌리 파튼이다. 올해 80세의 파튼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한) 컨트리뮤직의 스타이지만, 정치적 진영과 무관하게 모든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다. 그 비결이 뭘까? 사람들은 ‘가치관은 분명하게 갖되, 정치적 메시지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그의 원칙을 이야기한다. 파튼은 성소수자 팬들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환영하고, “흑인의 생명이 중요한 건(BLM) 당연한 말”이라는 말로 자신의 생각은 분명하게 밝히면서도, 특정 정치인을 비난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정치와 관련된 질문을 받으면 “저는 정치 얘기는 안 합니다(I don't do politics)”라며 말을 아낀다.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으니 그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도 꼬투리를 잡기 힘들다.

무엇보다 파튼은 말을 적게 하는 대신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책을 보내는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무려 2억 권의 책을 기부하고, 팬데믹 때는 거액의 백신 연구비를 기부하는 등 자신의 가치관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누구도 그런 사람을 미워하기는 힘들다. 때로는 진보의 가치가, 때로는 보수의 가치가 세상을 뒤덮지만,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은 정치적 풍향의 변화와 무관하게 사랑을 받는다. 가장 큰 영향력은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박상현은 <오터레터>의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테크와 미디어, 문화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박상현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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