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미묘한 부녀 관계를 입체적으로 다룬 영화 4

기억과 상실의 궤적을 쫓는 네 편의 수작. <애프터썬>부터 <흔적 없는 삶>까지, 스크린 위에 투영된 부녀 관계의 내밀한 균열과 화해의 미학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프로필 by 정서현 2026.03.31
10초 안에 보는 요약 기사
  • 애프터썬: 튀르키예 여행의 파편을 통해 부녀 사이의 미묘한 거리감과 그 이면에 숨겨진 아버지의 고독함.
  • 토니 에드만: 괴짜 아버지와 워커홀릭 딸의 기묘한 동행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풍자하며 칸과 유럽영화제를 매료시킨 걸작.
  • 스크래퍼: 선댄스가 주목한 작품. 결핍을 지닌 두 존재가 서툴지만 단단하게 관계의 형태를 갖춰가는 과정.
  • 흔적 없는 삶: 숲에서의 삶과 외부 세계 사이에서 다른 길을 선택하는 부녀를 통해 느끼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울림

애프터썬(2023)

영화를 보고 나면 한동안 사라지지 않는 여름의 열기처럼,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오래 머문다. /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영화를 보고 나면 한동안 사라지지 않는 여름의 열기처럼,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오래 머문다. /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성인이 된 딸 ‘소피’가 20여 년 전 아버지와 함께했던 튀르키예 여행에서의 기억을 재구성하며 전개된다. 이 영화는 기억이란 얼마나 쉽게 왜곡되고 또 얼마나 집요하게 감정을 붙잡아두는지를 보여준다. 샬롯 웰스 감독은 화려한 사건 대신 사소한 순간들—햇빛 아래의 수영장, 어색한 농담, 카메라에 담긴 웃음—을 겹겹이 쌓아 올리며 부녀 사이의 미묘한 거리와 균열을 드러낸다. 겉으로는 다정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아버지의 불안과 슬픔은 잡히지 않는 잔상처럼 남는다.



토니 에드만(2017)

깔깔 웃다가도 어느 순간 마음이 먹먹해진다. /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깔깔 웃다가도 어느 순간 마음이 먹먹해진다. /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일밖에 모르는 커리어 우먼 ‘이네스’와 괴짜 같은 아버지 ‘빈프리트’가 뜻밖의 방식으로 서로의 삶에 끼어들며 관계를 재정립해 가는 이야기다. 마렌 아데 감독은 현실적인 직장 풍경과 터무니없는 연극을 교차시키며, 불편함과 웃음을 동시에 끌어낸다. 우스꽝스러운 장난처럼 보이는 아버지의 개입은 점점 딸의 견고한 세계를 흔들고, 그 틈에서 억눌려 있던 감정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언론 매체와 평단에서 극찬받은 이 영화는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으며, 제29회 유럽영화상에서는 5관왕을 휩쓸며 그해 가장 뛰어난 유럽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스크래퍼(2023)

샬롯 리건 감독의 밝고 경쾌한 유머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샬롯 리건 감독의 밝고 경쾌한 유머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엄마를 잃은 소녀 ‘조지’의 삶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버지라는 존재, 그 둘이 함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서툴고 미숙한 두 사람의 동거는 끊임없이 삐걱거리지만, 그 어긋남 속에서 관계는 서서히 형태를 갖춰간다. 끝내 완벽해지지 않는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면서도, ‘함께 살아간다’는 관계의 기묘한 희망을 가볍고도 단단하게 붙잡는다. 영화는 제39회 선댄스영화제 월드 시네마 드라마 부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주목받았고, 평단에서는 “상실을 다루는 가장 사랑스러운 방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흔적 없는 삶(2018)

사랑은 함께 머무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방향을 이해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 출처: KMDb

사랑은 함께 머무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방향을 이해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 출처: KMDb

사회로부터 벗어나 숲속에서 살아온 아버지 ‘윌’과 10대 딸 ‘톰’이 외부 세계와 마주하며 서로 다른 방향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에도 끝내 같은 삶을 선택할 수 없는 순간, 부녀의 애정은 오히려 더 선명해지며 ‘사랑이 반드시 같은 곳을 향해야만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환기한다. 데브라 그래닉 감독은 극적인 갈등 대신 자연 풍경과 절제된 대사를 통해 두 사람의 서사를 담담하게 따라간다. 말없이 흘러가는 장면들 사이로 깊은 울림을 남긴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회자되는 작품이다.

Credit

  • WRITER 문가현
  • PHOTO 네이버 영화 포토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