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피크닉의 콤파니 전시 뒤에 숨은 5가지 이야기

헬싱키에서 온 두 디자이너가 20년간 전 세계 장인들과 함께 만들어온 것들, 그리고 그 물건들이 서울 한복판에 모인 과정에 대하여.

프로필 by 박세회 2026.04.07
디자이너 듀오 아무 송(좌)과 요한 올린.

디자이너 듀오 아무 송(좌)과 요한 올린.

서울 중구 퇴계로, 붉은 벽돌 건물 피크닉(Piknic) 건물의 전면 파사드에는 동화에 나올듯한 토속적인 형상들이 가득 차 있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무성했던 전설의 여행가, 장인과 함께 작업하는 디자이너 듀오 ‘콤파니’(COMPANY)의 작품 형상들이다. ‘COMPANY World Affair - 온 세상 만들기의 비밀을 찾아서’는 지난 4월 3일부터 9월 6일까지 이곳에서 열린다. 콤파니(COMPANY)의 요체는 핀란드로 건너 간 한국인 아무 송(Aamu Song)과 핀란드인 요한 올린(Johan Olin) 부부. 두 사람은 2000년부터 함께 일해 왔고, 세계 유수의 디자인 전시에 초대를 받았지만, 이들에 대한 정보는 검색으로는 찾기가 힘들다. 이름 때문이다. 검색 엔진에 영문으로 쳐도, 국어로 쳐도 수천 개의 무관한 결과들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건 작가들의 의도대로다.

우리는 이름을 알리려고 일을 하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차라리 구글에 검색을 해도 잘 찾을 수 없는 이름, 그냥 일을 하자는 우리의 태도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이름(예명)도 그래요. 아무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아무’로 지었죠.

아무 송이 전시 개막 이틀 뒤 피크닉 대표 김범상과 나눈 아티스트 토크에서 한 말이다. 듀오의 다른 한 축인 요한은 ‘콤파니’라는 이름의 또 다른 기원을 이렇게 전했다. “아무가 한국의 부모님께 전화해서 ‘핀란드에서 잘 지낸다. 회사(Company) 다닌다’라고 말하려고 지었다는 버전의 이야기도 있어요.” 어느 쪽이 진짜든, 이름에서부터 이 듀오의 태도가 읽힌다. 아르텍, 마리메꼬, 에르메스와 협업하고 헬싱키 디자인 어워드와 핀란드 국가 디자인상을 받은 스튜디오가 내세우는 이름이라는 걸 생각하면 무척 겸손하다.

다른 디자인 전시의 흐름을 상상해보고 비교하면 이들의 작업 방식이 어떻게 다른 지 이해하기 쉽다. 보통의 디자인 회고전은 시리즈별로 묶이거나 시대순으로 흐른다. 세계 디자인의 사조에 따라 한 디자인 그룹의 조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이 디자인 듀오의 전시는 동시대 세계 곳곳을 떠돌아 온 순례의 행적을 따라 횡보한다. 이들의 작업 방식 탓이다. 콤파니는 러시아, 멕시코, 일본, 페루, 파키스탄, 미국, 인도 그리고 한국 등의 다양한 나라로 떠나 그곳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현지의 디자인 언어를 구현하는 장인들과 교류하고 그 지역이 가진 문화와 삶의 방식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어찌보면 단기 디자인 어학연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상북도 영천의 목탁 장인과 함께 한 콤파니의 모습.

경상북도 영천의 목탁 장인과 함께 한 콤파니의 모습.

그리고는 여행지에서 직접 그린 드로잉을 매개삼아 장인들과 소통하며 협업을 시작한다.예를 들면, 현지의 목공예 장인이 만든 작품을 보고 그의 제작 스타일에 맞는 자신들의 오브제를 주문한다. 전시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모눈 종이에 그려진 드로잉은 피크닉에 따르면 ‘전통을 존중하며 함께 작업하고자 하는 정중한 제안'이자 '수백 년간 이어온 장인의 삶의 방식 위에 작가들의 상상력을 조심스럽게 더하는 과정’이다. 이들은 세계 여러 지역을 여행하고 현지 장인들과 만나 작업하는 이러한 방식의 연작에 ‘시크릿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번 피크닉의 전시는 시크릿 프로젝트 전체를 개괄한다.

전시가 오픈한 이튿날, 피크닉에서는 작가들이 참여하는 대담 행사가 열렸다. 전시된 모든 사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날 아티스트들이 직접 밝힌 이야기를 중심으로 뒷이야기를 정리한다.

1. 멕시코 할아버지의 이야기

전시는 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물건들, 즉 이 듀오에게 영감을 준 사물들로 시작한다. 아무는 이 수집의 방식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냥 숍에서 파는 연필꽂이인데, 그걸 만든 사람이 어떻게 생겼을지 어떤 마음이었을지 왠지 알 것 같은 때가 있었어요. 마음을 말 하는 물건들이 있거든요. 그럼 저희는 그걸 만든 사람을 찾아요.

콤파니는 스스로를 탐정이라고 부른다. 콤파니는 자신들에게 말을 거는 물건을 단서 삼아 만든 사람을 추적한다. 한번은 멕시코 라 유니온이라는 산골 마을에서 거대한 칼(마셰티)로 하카란다(jacaranda)라는 나무를 깎아 작은 물건을 만드는 할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락처도 없었고, 주소도 모른 채로 둘은 텍시를 잡아타고 라 유니온으로 향했다. 우연이 필연이 되었다. 찾고 있는 할아버지의 정보를 택시 운전기사에게 말하자, 운전기사는 어째서 그 사람을 찾는지 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야.” 그렇게 추적의 끈이 닿았다. 그 할아버지와 함께 일한지 벌써 10년이 되었고, 이제 할아버지는 95세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데, 아직도 안경을 쓰지 않은 채 칼로 나무를 깎는다. 전시장 2층,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에 파란 나무 위에 올려진 집과 사람과 나무의 오브제들이 멕시코 할아버지의 작품이다.

파란 나무 위에 올려진 멕시코 할아버지의 조각들.

파란 나무 위에 올려진 멕시코 할아버지의 조각들.

2. 드로잉과 마트료슈카

콤파니가 말도 통하지 않는 장인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의 언어가 드로잉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러시아어를 할 수 없어 시작된 방법이었지만, 이제는 이들의 가장 중요한 언어가 됐다.

(현지의 장인들을 찾아 가면) 그분들한테 저희는 외계인 같은 걸 거예요. 디자인이라는 말도 안 쓰시는 분들이고. 그래서 그림이라는 것은 간절하게 일을 배우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였던 것 같아요.

요한은 장인을 찾아내고 작품을 의뢰하는 과정을 작곡에 비유한다. 장인은 연주자고, 콤파니는 그 연주자가 연주하고 싶하는 음악을 쓰는 사람들이다. 억지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원래 가진 기술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2층에 있는 약 270개의 마트료슈카들이 이루고 있는 장관도 이렇게 탄생했다. 긴 곡선형 테이블 위에 늘어선 마트료슈카들은 볼 빨간 금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콤파니가 러시아에서 긴 시간을 머물며 마트료슈카 공방의 할머니들과 함께 완성한 이것들은 전통적인 형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배추, 가지, 버섯. 고래, 수달의 모습이 보인다. 이런 것들을 만드는 데 드로잉이 없었다면 할머니들과 소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는 막상 그림으로 나눈 대화에서 예상 밖의 반응을 만났다고 말한다.

할머니들이 우리가 그린 디자인을 보시더니 '이거 너무 새로운 디자인인데, 또 우리가 100년 전부터 만들어 왔던 것 같아'라고 하셨어요. 그때가 저희가 들은 디자인에 대한 칭찬 중에 최고였던 것 같아요.

러시아 공방의 할머님들과 협업한 마트료쉬카의 행진.

러시아 공방의 할머님들과 협업한 마트료쉬카의 행진.

3. 젊은 장인의 목탁

이번 전시에는 한국 장인들과의 협업으로 완성된 신작도 처음 공개된다. 예를 들면 너무 귀여워서 단박에 눈길을 끄는, 헤드폰을 쓴 사람의 얼굴 모양의 목탁이다.

아무는 영천의 안진석 장인과의 협업을 준비하며 디자인을 고민했다. 그가 ‘당신의 목소리와 어울린다’고 말해준 오동나무 목탁을 사서 들고 다니며 언제 치면 좋을까를 생각해보고, 숲에서 직접 쳐보기도 했다. 그렇게 목탁만 생각하다 보니 문득 헬싱키의 젊은 친구들이 끼고 다니는 헤드폰이 목탁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목탁을 눕혀 놓는 것이 싫어서 세워 둘 수 있는 디자인도 고민했다. 눈과 코가 달리고 헤드폰을 쓰고 있는 형태로 서 있을 수 있는 목탁의 아이디어가 드로잉으로 완성됐고, 이를 장인에게 약간의 뇌물(초콜릿과 사탕)과 함께 우편으로 보냈다. 기다리는 동안 너무 무서웠다. 불교의 규율을 모르고 실수한 건 아닐까. 답장이 왔다.

"이렇게 하면 정말 목탁이 될 것도 같고 소리도 잘 날 것 같습니다.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젊은 장인의 답이었다. 지금 제작된 것은 장인과 만난 후 1년을 말린 나무로 만든 목탁이지만, 앞으로는 2년 3년을 말린 나무들로 좀 더 좋은 목탁을 함께 만들 예정이다. 여기서 참고로 이들의 시크릿 프로젝트를 관람할 때 팁이 있다.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수화기를 들면 작가의 목소리로 각 나라의 작품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작되었는지를 들을 수 있다. 공중 전화마저 각 나라마다 다른 디자인이라는 점 역시 놓칠 수 없는 디테일이다.

헤드폰을 끼고 있는 모습의 서 있는 목탁.

헤드폰을 끼고 있는 모습의 서 있는 목탁.

4. 비밀의 시장

전시장 3층은 마켓이다. 정확히는 콤파니가 만든 물건들의 집이다. 각국의 길거리 상인을 형상화한 조각들이 작품을 떠받치고 있다. 유리나 아크릴로 씌우지도 않았다. 시장은 이들이 가진 가게에 대한 존경에서 시작한 이야기들이다. 아무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전 작업실 근처에 있는 꽃 가게에 갈 때마다 나도 이런 좋은 가게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 가게가 있어서 우리가 계절을 감각하잖아요. 아 이제 가을이 왔구나 하고요. 그런 좋은 가게들을 보면 너무 고맙고 이런 가게가 만약에 없다면, 도시는 물고기가 없는 바다 같을 거예요.

동대문 시장을 그리는 영상을 전시하기도 한 시장 수집가 요한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동대문은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예요. 헬싱키에는 포목상이 단 하나밖에 안 남아 있는데, 동대문에는 건물 하나에 수천 개가 들어가 있지요. 매번 갈 때마다 모험처럼 느껴져요. 어디를 봐두 제 눈을 끄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커피가 있고, 김밥이 있고, 옷감이 있고 신기한 것들로 가득 차 있지요.

콤파니가 ‘시크릿 프로젝트’를 개괄하는 전시의 절정을 가게와 시장으로 채운 것이 놀랍지 않은 이유다. 그곳에서 상인의 몸은 오브제의 좌대가 된다. 처음에는 두명의 캐릭터 밖에 없었는데 만들다보니 너무 재밌어서 어느새 일곱 명이 상인이 3층의 전시관을 가득 채우고 있다. 수많은 인연도 담겨 있다. 네덜란드 친구 윌렘이 핀란드 자작나무를 다루는 걸 도왔고, 부채 만드는 정명순 장인이 알려준 방식으로 만든 쌀풀로 대나무에 배접지를 붙였으며 그 과정을 런던에서 온 리라는 친구가 도왔다. 처음에 구상한 것은 두 명의 캐릭터와 슈퍼마켓 정도였는데 너무 재밌어서 7명의 상인이 탄생했다. 이 시장은 헬싱키에서 콤파니가 운영 중인 디자인 하우스 ‘살라카우파’(Salakauppa, 핀란드어로 '비밀 가게')의 서울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콤파니 시장의 상인들에게는 각자의 이름이 있다.

콤파니 시장의 상인들에게는 각자의 이름이 있다.

5. 에케코의 새들

전시의 마지막은 가장 인상적인 부록이다. 다들 알다시피 피크닉의 옥상은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이다. 남산을 등지고 시내가 보이며, 적당히 먼 곳에서 시내의 소음이 들린다. 그리고 지금 그곳엔 마치 거대한 손 모양처럼 생긴 푸른 새들이 날아다닌다. 이 새들의 풍경은 전시를 보고 난 뒤 관람객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해보는 틈새를 주기 위해 만들었다.

볼리비아에는 '에케코(Ekeko)'라는 전통이 있어요. 작은 신상을 모셔두고 다음 생에 자신이 가지고 가고 싶은 꿈을 공물로 바치며 수집하는 것이지요. 전시를 보고 난 뒤 관람객들이 우리가 왜 그리고 어떻게 물건을 만들고 또 왜 그것들을 사고 모으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요한의 말이다.

피크닉 옥상에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피크닉 옥상에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6. 피크닉과 콤파니

피크닉 대표 김범상은 이 전시를 오랫동안 준비했다. 디자인에 막 눈을 뜨던 시절, 책을 뒤지다 핀란드 디자인 제품들이 자꾸 나왔다. 이딸라, 아라비아, 피스카스, 아르텍. 핀란드가 디자인의 역사에 있어서 뭔가 중요한 나라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던 무렵, 산업디자인과를 나온 선배에게 물었다. 핀란드가 디자인 강국인가요? 선배는 그렇다면서 핀란드의 호수와 숲이 좋아서 아예 유학을 가버린 후배가 한 명 있다고 했다. 그 후배가 아무 송이었다. 25년 전쯤의 일이다.

그 뒤 김범상은 러시아 여행 중 헬싱키에 들렀다가 키아스마 현대미술관에서 콤파니의 ‘시크릿 프로젝트’ 첫 전시와 우연히 만났다. 디자이너 둘이 키오스크에 앉아 있었지만, 쑥스러워서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 이후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에서 다시 이들의 작업과 마주쳤다. 우연이 세 번 겹쳤다. 그게 이 전시의 씨앗이다.

"저한테 어떻게 이 콤파니 전시를 하게 됐느냐는 이런 질문을 많이 받거든요.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작은 인연들이 모여서 이 전시회를 하게 됐습니다."

전시는 9월 6일까지.

Credit

  • PHOTO PIKNIC

MOST LIKED ARTICLES